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17화 (17/135)

LV.8 총잡이 이복동 - [3]

지휘관이 시체들을 향해 다가갔다. 시체들 앞에 있던 지존무쌍이 소리질렀다.

“손대지 마! 노터치! 노터치! 이거 다 우리가 죽인 거야. 이 템들 다 우리 거라고!”

전리품을 뺏길세라, 지휘관의 접근을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한편 지휘관은 그런 반응에 신경 쓸 정신이 아니었다.

“셋이서 다 죽인 거라고?”

멍하니 중얼거리면서 다른 인원을 바라보았다.

그 눈길을 받은 인원이 증언했다.

“아, 예. 맞아요. 진짜 세 명이서 다 죽이던데······”

“아니, 대체 뭔 수로?”

“저도 잘 모르겠는데, 저분이 먼저 돌격하니까 싹 다 죽어버리는 게······”

이후로는 온갖 증언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총알을 튕겨내더라. 총 다섯 번 쏘니까 여섯 명이 쓰러지더라. 영상에서 본 그대로더라 등등.

“마법도 막 쓰고, 아스인이라던데?”

누군가가 중얼거린 말, 지휘관은 애써 납득해보려 애썼다.

‘그래, 판타지 주민이니까 판타지다운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이거지.’

그러나 여전히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도 단 한 가지 사실만은 어찌어찌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한 바를 물어보았다.

“직접 보진 못했어도 아무튼 헐리우드 영화 한 편 찍으셨다 이거죠. 혹시 이런 수준의 전과······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까?”

가온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마.”

“그럼 몇 곳 더 보내도 같은 결과를 보여주실 수 있단 말이죠? 정말 그래도 될지······”

보통 플레이어들은 이미 챙긴 전리품들이 많다면 더 싸우기 싫어하는 법이다. 죽으면 모두 잃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번에도 가온은 자신감 넘치게 대답했다.

“뭐, 예.”

지휘관은 정말 이래도 되나 머뭇거리며, 가온과 나머지 두 명을 다른 지점에 투입했다.

그로부터 십오 분 후, 보고가 돌아왔다.

적 섬멸 및 거점 점령을 마쳤노란 보고였다.

같은 일이 세 번 반복되었다.

********

자신이 죽인 적의 아이템을 챙기는 것이 4판타지 온라인 프로게이머의 주 수입이다. 그리고 지금, 지휘관은 트럭에 가득 쌓인 아이템을 보고 할 말을 잊었다.

저게 모두 한 명과 나머지 두 명이 적들을 죽이고 얻어낸 성과라고?

‘이거 이런 겜이 아닌데.’

시가전의 특징은 예상이 어렵다는 것이다. 주변의 모든 것이 엄폐물이요, 엄폐물 뒤에 대체 얼마나 많은 적이 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시야는 제한되며 민간인과 적은 쉬이 구별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시기와 지점에서 적습이 시작된다.

그렇기에 시가전에서 같은 병력과 같은 전술을 사용하더라도 같은 전과를 올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가온 한 명과 나머지 둘이 올리는 전과는 매번 동일했다.

일방적인 섬멸의 반복.

혼자서 대대의 전진을 막는 우드엘프 저격수가 있었다. NPC답게도 플레이어와 비교할 수 없을 만치 강력한 적이었다. 놀라운 민첩함으로 건물 옥상을 오가며 저격 지점을 바꿔가며 소리 없이 활을 쏴 저격하곤 했다. 어디서 어디로 오가는지, 어디서 공격하는 것인지도 알기 어려운 적이었다.

가온과 나머지 둘을 보낸 뒤, 옥상에 걸쳐진 우드엘프 저격수의 시체를 발견했다. 정확히 그 심장이 뚫려있었다.

시내에 매복한 고블린 분대가 있었다. 고블린은 몸이 작은 종족이다. 배수 시설에 일단의 병력이 숨을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종류의 매복을 제때 알아차리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제때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일렬로 늘어선 채 죽은 고블린들의 시체들을 보고 있자니 대체 어떤 식으로 전투를 치렀는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세 명을 보낸 곳마다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병력을 잔뜩 투입해도, 피해를 감수하고서도 제압하기 어려우리라 짐작했던 적들이 분 단위로 제거되고 있었다. 역동적이면서 기계적인 학살.

학살한 보람이 있었다.

[레벨 업]

가온은 싱긋 웃었다.

레벨 17.

몬스터가 거의 없어 안정적인 레벨 업이 어려운 이 게임의 특성상, 이 정도면 이미 베테랑 중의 베테랑도 올리기 힘든 고 레벨이라고 했다.

가온은 능력치를 힘과 마나에 분배한 뒤,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어······”

뒤늦게 상황을 보러 온 정찰병이 부릅뜬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제 돌아가서 이 판타지스러운 전투 결과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보고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고생 좀 해야할 것이다.

사실, 딱딱한 전과 보고까지도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한 줄이면 충분할 테니까.

‘골목마다 시체가 즐비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지나, 지휘관은 다시 병력을 소집했다.

지휘관을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단 한 명에게 못 박혔다.

가온은 자신을 향한 시선들을 즐겼다.

가온이 성취감과 희열에 들뜬 가운데, 지휘관이 말했다.

“이로써 거리 쪽은 정리 끝났습니다. 여러분 모두와······ 특히 한 분, 수고 정말 많으셨습니다.”

“거리 쪽 정리 끝났으면, 적들 다 죽인 겁니까?”

“완전히는 아니고, 죄다 죽고 밀리니까 건물로 숨은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뭘 해야 하냐면, 건물 제압입니다. 보세요.”

지휘관이 건물들을 가리켰다.

철근 콘크리트를 아낌없이 써서 만든, 높고 두꺼운 고층 건물들.

“저 건물 하나하나가 적들의 거점이라고 보면 됩니다. 하나씩 차례대로 제압해 나가야 하죠. 어려운 일입니다. 현실 같으면 공격헬기로 대전차 미사일 쏴서 날려버리든 불도저로 벽 부숴버리든 할 텐데 여기선 그럴 수 없으니까.”

“헬기랑 불도저는 그렇다 치고, 전차 끌고 와서 주포로 쏴버리면 안 되나?”

“그건 좀······”

“아, 그냥 육탄돌격이 훨씬 싸게 먹힌다 이거지.”

“뭐······ 그렇습니다. 그래도 여기서 전사하셔도 괜찮도록, 지금까지 챙기신 전리품은 확실히 가지고 돌아가실 수 있도록 보장합니다. 모쪼록 몸 아끼지 말고 싸워주세요.”

지금까지 거둔 전리품. 트럭 짐칸에 가득 쌓인 전리품.

이번에 거둔 소득을 생각하니 정신적으로 취한 모양이었다. 지존무쌍이 소리쳤다.

“쓸어버린다! 다 쓸어버린다 씨발!”

이복동은 민망한 가운데 속으로 혀를 찼다.

‘왜 자기가 신났대. 졸졸 따라다니기만 하면서······’

전투가 계속되었다. 도시 곳곳의 건물들을 향해 병력이 달려나갔다.

장비가 빈약하다면 특수부대라도 투입하는 것이 나으련만, 이 게임에서 그럴 수야 없는 법이었다.

결국 내려진 지시는 간단했다. 속전속결. 피해를 감수한 병력 투입.

원래 지나치게 많은 병력이 밀집하면 효율이 나오지 않는 법이지만 지금은 그마저 신경 쓰지 않았다. 지휘관들은 최대한 빨리 전투를 끝내기를 원했다.

지휘관들은 한 건물마다 과도할 만치 많은 병력을 한꺼번에 투입했다. 그 결과, 한 번의 돌격마다 수두룩하게 죽어 나가면서도 차례차례 건물들이 제압되어갔다.

그리고 다수의 병력이 건물 하나를 겨우 제압할 동안, 가온과 두 명은 건물 두 채를 섬멸하고 돌아온 길이었다.

가온을 본 지휘관이 고개를 숙여왔다.

“아, 벌써 돌아오셨습니까······”

저 ‘벌써’라는 말을 오늘만 수십 번은 들은 듯했다.

가온이 씩 웃는 가운데, 지휘관은 다시 무전을 이어나갔다.

“거기 아직도 제압 안 됐어? 시내 중앙이라 제일 중요한 거점 아냐. 거길 아직도 제압 못 했음 어떡해? 소대 하나로 안 되면 그냥 막 밀어 넣으라 했잖아.”

무전기 너머 누군가가 혼미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게······ 소대고 뭐고 들여보내는 족족 전멸합니다」

“뭐? 왜?”

「총이고 뭐고 못 쓴다고······」

지휘관은 그 보고를 듣고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직접 상황을 확인할 겸 현장으로 향했다. 가온과 나머지 두 명도 그 뒤를 따랐다.

두꺼운 벽의 건물이 보였다. 적들이 숨은, 지휘관이 제압을 지시한 건물이었다.

멀리서 보기에 특이할 것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미 저 건물에 병력을 잔뜩 투입했다고, 설령 지뢰로 밭을 깔아뒀더라도 모조리 돌파가 가능했을 만큼 잔뜩 투입했는데도 전멸했다고 했다.

저 건물 안에 돌격했다가 돌아온 생존자가 있었다. 그 생존자가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증언했다.

“총알이 안 나갔어요. 내 것만 그런 게 아니라 딴 사람 것들도 전부.”

“총알이 안 나간다니? 단체로 총기 불량이었다고?”

“아뇨, 총은 멀쩡한데 총알 문제로 터지질 않는 느낌이었어요. 그 와중에 건물 안에는 칼잡이며 쇠뇌 든 놈들이 잔뜩이더라고. 총알이 안 터지는데 어떻게 이겨? 다 화살 맞거나 칼 찔려서 죽었죠 뭐.”

듣도 보도 못한 상황이었다. 여기 모인 지휘관들이 다들 어이가 없어 웅성거리던 때였다.

가온이 중얼거렸다.

“여신의 권능······.”

“뭔지 아세요?”

가온은 헛기침하고는 설명했다.

“신성 주문이에요. 웬 사제가 건물 내에 신의 권능을 퍼뜨린 거지.”

그 말에 누군가가 알아챘다.

“아, 나도 알아요. 불과 화로의 여신, 맞죠?”

가온이 눈을 부릅뜨더니 정정했다.

“여신님.”

“예?”

“님 꼭 붙여요.”

“아, 예.”

한 지휘관이 움츠러든 가운데, 다른 지휘관이 물어보았다.

“아무튼 불과 화로의 여신, 님? 신의 권능? 그게 대체 뭡니까?”

“그러니까, 여신의 사제가 주문을 외면 신의 권능이 퍼지는데······ 신의 권능이 닿은 영역에서는 연소반응이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연소반응이 안 일어난다는 건 또 뭔 소리?”

“과학 시간에 조셨나? 뭔가에 불이 붙거나 폭발하질 않게 된다고요.”

“아, 그래서 총알이 안 나갔다 이거지. 대체 뭔······”

“신화에 따르면 불과 화로의 여신께서 인간들을 가엾이 여겨 불을 넘겨주시기 전엔 그 누구도 불을 쓰지 못했다는데요. 그러니까 불과 화로의 여신님은, 이 아스에서 모든 불과 온기의 주인 아니시겠습니까. 주인 된 권능으로 원래 당신의 소유물인 열을 회수하여 못 쓰게 만드시는 거지요. 대충 그런 느낌입니다. 부싯돌이든, 성냥이든, 화약이든 다 못 쓰게 되는 겁니다.”

설명은 길었지만 주목할 내용은 하나였다.

“아무튼 그럼······ 저 안에서 화약 무기 아무것도 못 쓴다고? 그래서 저기 매복한 놈들은 진작 칼이랑 쇠뇌 준비해놓고 쓰는 거다?”

“그렇다니까요. 참고로 증발연소도 안 일어나서 기름이 타질 않으니 기계도 잘 못 쓸 겁니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그런 게 가능하면 2차 대전 때 아스가 왜 밀렸대? 모두한테 중세시대 전투 강요할 수 있으면 아스가 다 이겼겠네.”

“웬만해선 그 주문의 범위가 고작 수 미터 반경이라 그렇죠. 더 강력한 사제가 써봤자 수십 미터 반경에 펼쳐지는데, 총기 사거리가 기본 수백 미터니까 별 쓸모가 없는 셈이고. 그런데 수십 미터 범위가 넓은 전장에선 쓸모없어도 건물 한 층 채울 정도는 되나 보네요.”

물론 신의 힘은 더없이 위대하지만 그 위대한 신의 권능을 인간의 몸으로 온전히 펼칠 순 없기에 한계가 있다느니 어쩌느니는 굳이 설명하지는 않기로 했다.

“어떻게 할까요? 현대병기 못 쓰는 상황에 쇠뇌수들이 그리 많다면 건물 외부에서 제압해야 한단 소린데. 지금 그러기 쉬우려나 몰라······”

지휘관은 그리 말하면서 가온을 흘긋 보았다. 정확히는 그 허리춤에 달린 칼을 보았다.

무엇을 원하는지는 명백했다. 가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알아서 하죠.”

지휘관은 고맙다고 연신 말하더니 문득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칼만 들고 온 여자 봤는데. 그 여자 데려올까요? 그 여자, 여기 와서 아무것도 안 하더니 마침 활약할 기회가 생겼네그래······”

가온이 경기했다.

“아뇨, 같이 들여보내지 마세요! 혹시 들어오려 하면 책임지고 막아줘요. 무조건.”

지휘관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세 명은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곳곳에 아직 처리되지 않은 사제 폭탄이 깔려있었지만 소드마스터의 전투 감각을 속일 수는 없었다. 가온이 총 한 발 쏠 때마다 기껏 설치해둔 함정은 무력화되었다.

막힘없이 계단을 올랐다.

복도를 조금 걷다 말고, 가온이 정지신호를 보냈다.

벽 앞에서 멈춰 서서는 두 동료에게 속삭였다.

“저깄네. 모퉁이 너머에 매복해 있어요.”

이복동이 속으로 신음했다.

‘대체 어찌 아는 거야······’

시험 삼아 가온이 저 너머로 수류탄을 던져 보았다.

수류탄은 터지지 않았다.

하나 더 던져보아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안전핀을 뽑아 던졌는데도.

이쯤 되니 저쪽에서도 굳이 숨기지 않기로 한 모양이었다.

모퉁이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건한, 종교적인 음성.

“불과 화로의 여신이시여. 가정의 수호자시여. 내 집에 당신의 화로가 불타나이다. 부디 이 미천한 종이 집에 돌아가 당신의 은총으로 몸을 녹일 수 있게 하소서. 재 속에서 불사조가 날아오르듯, 이 시련을 넘겨 영광으로 날아갈 수 있게 하소서.”

기도문만 들어봐도 틀림없었다. 불과 화로의 여신, 그 사제가 저기 있었다. 사제의 존재로 말미암아 여신의 권능이 이 층에 퍼져있었다.

가온은 잠시 심호흡했다. 그리고는 눈을 감더니, 여신께 여쭈었다.

‘여신이시여. 제가 저 사제 NPC를 해쳐도 되겠습니까? 비록 데이터 조각이라지만 해쳐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여신의 동상을 부수는 것은 비록 형상에 불과함에도 끔찍한 신성모독이잖습니까? 그렇다면 사제의 경우에는 어떠할지······’

여신께서 답변하시었다.

‘가온아, 내 대전사가 방금 무엇을 입에 담은 것이냐? 대전사가 여신의 사제를, 자신의 교우(敎友)를 해치길 원한다고 말한 것이냐? 간절히 부탁하노니, 네 여신이 방금 잘못 들었노라 해다오!’

가온은 혼란스러워졌다.

‘어······ NPC가 제 교우라면 여기 있는 게임 친구들은 실제 현실 친구와 다를 바가 없겠군요. 여기 있는 건 현실에서 있는 거랑 똑같은 거고······ 어쩐지 현실이랑 분간이 잘 안 가더라니, 게임이 곧 진짜 현실이었······’

당신의 대전사를 놀리려던 여신께서 대경하시었다.

‘아······ 농담이었느니라. 가온아. 가상과 현실의 구분은 지금껏 잘하지 않았느냐? 지금도 그래야 하리라. 저건 허상에 불과하다. 어서 가서 베어버려라!’

멀거니 서 있던 가온은 여신께서 내리신 명을 수행했다.

왼손에 칼, 오른손에 총을 쥔 채 벽 너머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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