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15화 (15/135)

LV.8 총잡이 이복동 - [1]

4판타지 온라인에는 플레이어들이 완수해야 할 최종목표가 존재한다.

게임 최종목표란 다음과 같다.

「대차원문과 그 근처 지역을 점령할 것」

목표를 달성하면 보상이 주어지기 마련이다. 그 보상을 주기로 약속한 자들이 있다.

아스의 신들.

그들은 4판타지 온라인의 후원자로서, 최종목표를 달성할 시 천상의 이름으로 보상하리라 약속했다.

그 보상이란 게임 캐릭터의 육체를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91살 인간 플레이어가 엘프 캐릭터로 최종보상을 얻으면, 비루한 늙은 몸뚱이를 버리고 엘프의 몸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영원히 늙지 않고 아름다운 육체를.

신들이 공표한 바에 따르면 보상을 받을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단 한 명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최종목표를 달성할 당시에 가장 공헌도가 큰 세력의 장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직접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그 하수인들이 목표를 달성한다면 보상은 자신이 챙길 수 있는 셈이다.

이 보상을 노리고 세계 각국의 권력자와 재력가들이 게임 플레이어들을 후원한다. 4판타지 온라인의 게임 내 재화와 현실 재화가 거의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이 후원자들이 돈을 아낌없이 푸는 까닭이다.

영생을 얻기 위한 천상계의 경쟁.

이 경쟁에서 최고 우위를 차지한 것은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이다. 그보다 돈 많은 경쟁자야 여럿이지만, 자길 위해 싸워줄 무보수 병력이 많기로는 이 독재자를 따라올 자가 없는 덕분이다.

김일성은 자신을 꼭 닮은 하이엘프 캐릭터를 생성했다. 그리고는 역사상 가장 못생긴 하이엘프가 되기 위해, 가상세계에서의 군사훈련을 명목으로 조선인민군 대부분을 게임 속에 투입했다.

단 한 명의 지시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현직 군인 수십만 명을 막아내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순식간에 게임 속 북한군은 드넓은 영토를 점령했으며, 그들이 차지한 영토는 아린 벌판 끝자락까지 닿았다.

대차원문은 아린 벌판의 중심에 있다. 그러니까, 북한군은 이제 약 120km만 더 전진하면 게임 최종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토록 놀라운 전과를 거둔 지가 벌써 반 년이 넘었음에도, 아직 역사상 가장 못생긴 하이엘프는 탄생하지 못했다.

북한군의 북진을 가로막는 자들이 있는 까닭이다.

아린 벌판과 대차원문의 원래 주인, NPC 세력 카르세 제국이 북한군과 반 년째 대치 중이었다.

NPC들이라 게임 바깥의 상황을 모를 카르세 제국으로서는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지구와 전쟁하는 중에 본래 동맹이어야 할 하이엘프들이 쳐들어온 상황이라니?

역사 고증 따윈 집어치운 이 대치 상황에, 언뜻 보면 카르세 제국군은 순식간에 짓밟혀야 정상으로 보인다.

서로 맞붙는 카르세 제국군과 북한군, 양군의 질적 차이가 확연한 탓이다.

카르세 제국군의 주 무장은 창칼과 쇠뇌요, 포병이라곤 노획한 포들을 겨우 굴리고 있을 뿐이다. 노획한 전차가 몇 대 있긴 하지만 연료가 없어 굴릴 수도 없는 와중에 전쟁 골렘들은 모조리 파괴된 지 오래다.

반면 북한군은 대검까지 장착한 AK-47를 든 가운데, 수백 대의 전차를 굴리고 공군과 포병까지 운용하고 있다.

이 와중에 카르세 제국군이 가진 이점이라곤 소드마스터가 하나 있다는 것뿐이다.

그 소드마스터란 카르세 제국의 변경백, 흉턴 경이 아니다. 흉턴 경은 자기 의무마저 저버리고 지구인들을 죽이러 저 멀리 원정을 떠나버렸다.

그 공백을 채우고자 와준 소드마스터가 있다.

카르세 제국의 동맹, 후긴 엘 왕국에 얼마 전 국왕으로 즉위한 그레이엘프.

소드마스터 가온이 카르세 제국군을 이끌고 북한군과 맞서고 있다.

그리고 그 소드마스터와 맞서는 북한군이 자기네 입장을 표현하자면, 그들은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있었다.

*******

창밖에 벚꽃이 피었다. 그 분홍빛을 보고 있자니 이복동은 우울해졌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었음을, 이룬 것 없이 시간만 흘렀음을 강제로 알게 되는 것이다.

이복동은 중졸이고 자격증 따윈 없다. 사람과 어울리는 일이 어려운지라 노가다를 할 자신도 없다. 가능한 일이라고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뿐이지만 주변 사장들이 단합이라도 했는지 최저임금도 받기 힘들다.

고교 중퇴의 원인이 왕따였는지라 애인은커녕 친구도 없다. 아르바이트하고 돌아와서는 야동 좀 보다가 드러눕는 인생이다. 이대로 살아봤자 하류 인생 중에서도 밑바닥을 전전하다 고독사할 것을 안다.

이 끔찍한 인생을 바꿀 기회를 얻고자 악명 높은 사행성 게임을 시작했다.

의외로 잘 풀리고 있기는 했다.

우연히 만난 이계인. 그 덕분에 통장에 이백팔십만 원이 꽂혔다. 이복동에게는 놀라운 수익이었다. 한 번에 이리 많은 돈을 벌어본 것은 난생처음이니.

그 이계인과 당분간 같이 다니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꽤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다.

그러나 이 상황만으로 만족스러우냐면 그렇지는 않았다.

그 이백팔십만 원은 자기 힘으로 번 돈이 아니었다. 이계인이 선뜻 가지라고 넘겨준 덕에 얻은 돈이었다.

앞으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알 수 없었다.

4판타지 온라인은 한몫 벌고 싶어 안달 난 인생 실패자들이 꼬이기로 유명한 게임이다. 자신 또한 그 인생 실패자 중의 한 명 아닌가.

하지만 그 이계인은 그렇지 않다.

존재 자체가 판타지스러운 이계인. 돈 많은데 끔찍하게 강하기까지 한 그 이계인은 척 보기에도 여유가 넘친다. 게임에 접속해서 칼만 휘두르다 로그아웃한다. 얼마 전에는 고작 해골 좀 부리겠답시고 20억을 쓰려고도 했다.

사는 세상이 너무 달라 부럽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지경이다.

그 이계인이 게임하는 목적도 모르겠다. 흥미? 검술 수련?

어느 쪽이건 언제든 그만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이계인과의 인연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

자기 힘만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이복동은 이 프로게이머 노릇이 정말로 직업이 되기를 원한다.

‘다른 직업 얻을 자신이 없으니까······.’

가상현실 기기를 노려보았다.

거울을 보며 복동이 넌 잘할 수 있다고, 자신부터 믿지 않는 말을 속삭인 뒤, 게임을 시작했다.

놀라울 만치 현실같은 세계가 이복동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나 현실과는 달리, 이곳에는 이복동의 동료 비슷한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두 남자가 자신을 반겨주었다.

“왔어요? 빨리 다 모였네! 등록하러 가죠.”

이계인, 가온의 말에 이복동은 부랴부랴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시간보다 오 분 일찍 왔지만 지각한 기분이었다.

쭈볏쭈볏, 이복동은 가온과 지존무쌍을 따라나섰다.

잠시 후, 세 명이 들어선 곳은 용병 사무소였다. 각 세력의 의뢰를 받고 플레이어들을 전장에 보내주는 곳.

4판타지 온라인은 실시간으로 각 세력끼리 땅을 뺏고 뺏는 게임이다. 당연히도 병력이 많아야 이길 수 있는 법이다.

각 전장이 실시간으로 병력을 모집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인기 좋은 전장은 따로 있었다. 그리고 반 이상의 플레이어가 돈벌이를 원하는 이 게임에서, 인기 좋은 전장이란 돈이 잘 벌리는 전장이었다.

그런 전장에는 아무나 나설 수 없었다. 배신하거나 간첩 노릇을 하지 않도록 신원이 확실한 가운데, 중개인들에게 뇌물까지 따로 주어야만 그런 전장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인기 없는 전장은? 돈을 벌기 힘들거나 오히려 잃을 수도 있는 전장이었다. 패색이 짙거나 사망률이 높은 전장. 그런 전장에서는 푼돈을 받거나 무보수로 전투에 나서서는 결국 죽어서 아이템만 잃고 끝나는 수가 있는 것이다.

인맥 없고 교섭 능력조차 없는 이복동은 절대 좋은 일을 맡을 수가 없는 셈이었다.

그러나 저 이계인의 경우에는 아니었다.

용병 사무소장은 NPC가 아니라 플레이어였는데, 가온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시장보다 유명한 도시 유명인사니까.

“이 전장 나서시려고? 인기 좋은 전장이긴 한데, 돈도 많으시면서 왜 굳이?”

“그냥. 아무튼 여기 가도 돼요 안 돼요? 아, 신원보증인이랑 소개장이 필요하다고 했나? 시장님 허락 받아올까요?”

“아뇨. 그럴 필요 없어요.”

사무소장이 문서에 도장을 콱 찍어주더니, 씩 웃었다. 가온도 따라 웃었다.

“어, 바로 허락해주시네?”

“당연하지. 우리 회장님 신원을 누가 의심해?”

“그럼 수고비라도 드릴까?”

“됐어요. 이 일 하면서 딴 새끼들한테서 충분히 뜯어내고 있으니까.”

“음, 도장 찍어주는 일 썩 재밌어보이진 않는데. 돈은 괜찮게 벌어요?”

“반 년 일했는데 에쿠스 한 대 뽑았어! 계속하다 보면 집도 살 수 있을 거 같애. 내가 누구 덕분에 이 일 계속할 수 있게 됐다? 다 회장님 덕분이다! 감사의 의미로 큰절 올립니다, 회장님!”

그리 말하면서 사무소장은 가온을 향해 장난스레 절했고, 가온은 껄껄 웃었다.

이 상황을 이복동은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뭐라 봤던가. 4판타지 온라인의 용병 사무소장은 돈이 걸린 일에 플레이어들을 꽂아줄 수 있는 요직이라, 그 권세가 가히 신과 같으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할 프로게이머들은 발이라도 핥을 듯 굴어야 한다고 했던가? 잘 보여야하니 프로게이머들은 입장하자마자 큰절부터 올려야 한다고.

‘그런데 저 양반은 전장 프리패스에 오히려 절을 받네······’

이 이계인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인맥이 되어주었다. 이복동과 지존무쌍도 덩달아 허락받을 수 있었다.

“타요!”

잠시 후, 지존무쌍이 트럭을 몰고 왔다.

두 지구인과 엘프 하나를 태운 트럭이 전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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