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14화 (14/135)

LV.7 소드 엑스퍼트 이미리 - [2]

가온은 여성에게 유독 친절했다. 어찌나 친절한지, 예전에 하던 게임에서는 여왕벌 추종자라 비방하는 자들을 현실 PK로 입 다물게 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 가온조차 눈앞의 여자를 맘속으로 ‘미친년’이라 지칭할 뻔했다.

‘이 여자 사고방식이 보통이 아닌데.’

소년 시절 받은 교육과 종교관이 가까스로 기사도 정신을 끌어냈다. 가온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뭐 겨뤄달라면······”

그리고는 교관에게 배운 자세를 취했다. 왕관 자세. 요새 수련한 보람이 있어 그 자세는 완벽했다. 교관마저 흠잡을 데 없노라고 칭찬할 정도였다.

그러나 가온의 자세를 본 이미리는 칭찬도, 감탄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그거 교관이 가르쳐주는 독일식 검술이잖아. 영상에서 보여준 자세는 그거랑 달랐는데? 그때 검술 안 써요?”

가온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요? 그때 칼 휘두른 건 검술도 뭣도 아닙니다. 총알 베는 거랑 검술이랑 뭔 상관이겠어요?”

“아무튼······ 원래 검술로 해줘요.”

“나 검술 같은 거 모르는데.”

“왜 구라를 쳐요? 영상에서 칼로 사람 막 회 치고 그랬잖아.”

“그건 그냥 칼 잘 휘두르는 겁니다. 체계적인 검술과는 아무 상관 없어요.”

가온은 진실을 말한 것이었지만, 이미리가 듣기에는 거짓말인 모양이었다. 검술을 보여주기 싫어서 하는 거짓말.

“일인 전승의 비전 검술, 뭐 그런 거야? 시대가 언젠데 그런 걸 유지하고 그래? 나 발전하는 게 다 대한민국을 위한 거예요. 친일파 후손 아니면 순순히 가르침 내놔요.”

가온은 대한민국을 위해서란 게 무슨 소리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건 대답했다.

“나 친일파 후손은커녕 한국인도 아닌데?”

“뭔 개소리야? 여기 한국 지역인데.”

“아스인은 캐릭터 생성할 때 지역 제한 없어요.”

이미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스인이야? 그럼 가진 돈 별로 없겠다. 내가 교습비로 한 달에 오십만 원 줄 테니까 순순히······”

가온은 질겁했다. 사람 무시하는 발언이 어찌 저리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수가 있나 하고.

“나 돈 많아요. 저번에 여기 회원들한테 칼 들고 돌격해주는 대가로 돈 준 게 난 거 몰라? 그때만 해도 수천만 원 단번에 썼구만.”

“그래서······ 검술 못 가르쳐주겠다?”

“아니, 가르쳐줄 검술 같은 거 없다니까.”

“그래?”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리 중얼거리더니, 이미리는 이미 뽑은 칼을 칼집 속에 넣지 않았다.

그러는 대신, 휘둘렀다.

가온의 목을 향해서.

“뒤져라 씹새!”

기습. 그러나 소드마스터의 동체시력에 똑똑히 포착되었다. 덕분에 가온은 여유롭게 피하면서도 기겁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요?”

가온이 비명지르는 가운데, 이미리는 계속 칼을 휘둘러왔다.

이미리가 외쳤다.

“입 다물고 칼이나 휘둘러 씹새야! ”

가온이 그 배를 걷어찼다. 이미리는 땅을 구르며 넘어지더니, 벌떡 일어나 표독스럽게 덤벼왔다.

“칼 휘두르라고 칼! 내 모가지 따!”

그러나 가온은 이 자리에서 사생결단을 낼 생각이 없었다. 평소 버릇대로, 회피를 시도했다.

텔레포트. 멀리 이동하지는 못했다.

“이 개씨발 새끼가 어디로 튀었어!”

저 너머에서 이미리의 고함이 들려왔다.

가온은 황급히 건물 문을 닫으며, 아까부터 이쪽을 구경하던 교관에게 물었다.

“뭐야? 방금 봤죠. 저 여자 뭐하는 거예요?”

교관은 슬쩍 웃으며 말했다.

“검술 훔쳐 배우려고 그런 거 아닙니까? 직접 싸워보면 익힐 수 있을 거라 믿고요.”

“아니, 검술 배우고 싶으면 선생님한테 배울 것이지 왜 나한테?”

“저 아가씨는 저한테서 배우는 검술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왜요?”

“독일 검술 익혀서 소드마스터 된 놈 없지 않으냐더군요. 검 아무리 잘 휘둘러봤자 소드마스터 아니면 쓰레긴데, 그럼 소드마스터 못 배출한 검술은 쓰레기다 이거죠.”

“그걸 대놓고 말했어요? 정신머리 레전드네.”

대화가 들린 모양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이미리가 들이닥쳤다.

“여기 숨었니?”

이미리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아니, 씹······”

“오늘 내가 죽든 네가 죽든 둘 중 하나야.”

이미리가 덮쳐오던 그때, 가온은 텔레포트했다.

이번에는 검술 교습소 밖으로.

위치를 옮기고는, 습격을 피해 부리나케 뛰었다. 알고 지내는 플레이어들이 있을 만한 곳으로 향했다.

과연 두 플레이어가 게시판 앞에서 잡담하는 중이었다.

이복동과 지존무쌍이 보였다.

지존무쌍은 대낮부터 취한 것처럼 들떠있었다. 그럴 만했다. 어제 노획한 아이템이 전부 팔린 것이다. 현금화도 이미 끝났다.

통장 속 수백만 원이 자신감을 키워주는 모양이다. 지존무쌍은 호탕하게 말했다.

“형이 술 사준다니까, 응? 술! 만나서 마시자고!”

“저 술 못해요. 맥주 마시면 취해.”

“그럼 형이 소주 마실 동안 콜라 마시면 되겠네! 안주나 열심히 먹어, 응?”

이복동은 사람 만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것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너무 찐따 같아 보일 테니까.

마땅히 거절할 말주변이 없어 어물거리는 가운데, 가온이 둘 사이로 걸어왔다.

“싫다는데 왜 강요해요?”

이복동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지존무쌍의 관심이 변경되었다.

지존무쌍이 살갑게 물었다.

“어, 수련 벌써 끝났어요?”

“아니, 쫓겨났어. 수련할 시간인데 별 이상한 일 생겨가지고. 짜증 나······”

“쫓겨나? 왜?”

가온이 투덜거리듯 방금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일을 말했다.

다 듣고 난 이복동은 심드렁했다. 어떤 식으로든, 여자가 관심을 주는 상황 자체가 그에게는 꽤 기만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지존무쌍은 마치 그 심정을 이해했다는 듯, 화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미친년이네! 콱 죽이지 봐줬어요?”

“죽이면 PK 상태 되잖아? 수배범 되고.”

“PK 상태 걸려서 수배범 돼봤자 여기 시장이 가온 씨 편인데 뭐 어때?”

“그래도 여자 죽이는 건 좀.”

그 말에 이복동은 불만스레 생각했다.

‘게임에 과몰입? 아님 여자 플레이어한테 잘 보이려는 거?’

직접 말할 용기는 없어 입을 다물었다. 말 놓으라 해서 놓긴 하지만 정말 친하다는 자신은 없다.

그러나 지존무쌍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여자고 뭐고 이거 게임인데.”

“너무 현실 같잖아?”

“아니, 그래도.”

“아, 내가 다 비극적이고 눈물 나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서 그래! 나 사연 있는 남자란 말이야. 뭐 여자고 뭐고 사실 죽이려면 죽일 순 있을 거 같은데, 그럼 꿈자리 사나워질 거 같아서 그래. 됐어요?”

그 말에 지존무쌍이 제안했다.

“그럼 내가 죽여줄까요?”

“어, 진짜?”

“그럼! 그년 검술 교습소에 있지?”

지존무쌍이 총을 쥐고 성큼성큼 나섰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이복동은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물었다.

“여자 죽이는 거 싫다매. 남 손으로 죽이는 건 괜찮아요?”

“아니, 게임인데 좀 죽이면 뭐 어때? 도시에서 죽은 거니까 죽으면서 템도 안 떨굴 거고, 재접속도 한 시간 뒤에 바로 가능하구만.”

이복동이 어이없어하던 와중이었다. 저 멀리서 총성과 비명이 울렸고, 둘은 지존무쌍이 성공했음을 알았다.

과연 잠시 후 돌아온 지존무쌍은 씩 웃었다.

“죽였어요?”

“응. 칼잡이에게 총의 위대함을 알려주고 왔지.”

“굳.”

가온이 엄지를 내미는 가운데, 지존무쌍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그런데 회장님? 회장님이야 PK 상태 돼도 별 상관없겠지만 전 아닌데 말입니다. 이대로 도시 돌아다니다간 템 떨구고 좆될 수가 있는데······”

“아, 그래. 피해보상 줘야지.”

“보상을 바라서 하는 말은 아니고······ 내가 꽤 괜찮은 일거리를 물어왔거든요? 거기까지 운전도 내가 해줄 테니까······ 응?”

가온은 한숨 쉬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슬슬 알겠지만 전 진짜 이 겜 돈 때문에 하는 거 아니거든요. 차라리 수고비로 돈을 주면 줬지 돈 대신 시간을 딴 데 쓰는 건 좀 그런데.”

“아, 이번 일은 진짜 관심 있으실 만한 일이에요. 검술 수련하시잖아? 그럼 도움 될 거야.”

“검술 수련에 왜 도움이 돼?”

“거기 소드마스터들 가끔 출현하기로 유명하거든요. 그리고 이 겜 소드마스터들은 현실 소드마스터 빼박이라니까, 직접 보면 검술 수련에 뭔가 도움이 될 거 아냐?”

그럴 듯한 말이었다. 가온은 조금 생각해보더니, 관심 있음을 드러냈다.

“소드마스터 나온단 거 진짜?”

*******

“소드마스터가 아니었다고?”

“예. 게시판 글 보시면······”

주변 백골부대원들이 눈치를 보는 가운데, 게시판 글을 보고 온 류시범은 혀를 찼다.

류시범은 백골부대의 길드장이다.

요즘은 부쩍 기분이 좋지 않다. 정정 시도를 여러 번 했는데도 계속해서 일베충이니 뭐니 불리지 않나······.

심히 억울한 일이다. 실제로 류시범은 일베는커녕 다음 카페조차 가입한 적이 없다. 길드 이름을 백골부대라 지은 것은 실제 대한민국 백골부대에서 복무한 기억을 자랑스럽게 여겨서지 일베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류시범에게 잘못이 있다면 몇 가지 정치적 발언과 폭언을 했다는 점뿐이다. 그 실수를 돌이키고자 애써왔지만, 아직도 돌이키지 못했다.

류시범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2방어선 휩쓴 놈, 흉턴이 아니라 그냥 가속 주문 쓸 줄 알고 칼도 잘 쓰는 놈이었다 이거지? 난 지레 겁먹고 다 이긴 싸움 내뺀 거고.”

“제가 그리 말한 건 아니고, 인터넷에서······”

류시범은 조금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그놈 소드마스터 맞는 거 같은데.”

“예?”

“그놈 소드마스터 같다고. 흉턴. NPC 말고, 실제 흉턴 말이야. 독재하는 그 양반.”

백골부대원은 ‘당신이 뭔데 소드마스터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느냐’ 따지지 않았다. 그랬다간 몇 시간 욕 먹을 테니까.

그래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흉턴은 대통령 아닙니까? 대통령씩이나 돼서 게임에 몇 시간씩 접속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러나 그 말마저 늙은 퇴역 군인을 분노케 했다. 류시범은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좆같은 새끼. 씨발 새끼. 말을 하면 그냥 닥치고 듣기나 할 것이지,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꾸야 좆만한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백골부대원이 쩔쩔매는 가운데, 류시범은 화를 가라앉히고자 애썼다.

이 망할 게임을 하면서 분노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거듭 쌓이는 스트레스가 맘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애초에, 류시범은 이 게임의 길드장 노릇을 하면서 기분 좋았던 적이 없었다. 어차피 다 돈 때문에 하는 짓이다.

류시범은 최대한 진정하고는 말했다.

“내가 전 장성씩이나 돼서, 니네 같은 꼴통들 지휘하느라 골 빠지는 이유가 뭐냐? 다 돈 받고 고용돼서 그러는 거 아니냐? 알지······ 누가 나 고용했냐?”

“그······ 그룹 회장님이요.”

“그래. 그 회장 양반은 왜 비싼 돈 주고 나 고용했겠냐? 게이머라곤 죄다 돈 벌려고 게임하는 버러지뿐이라 이미지도 안 좋은 사행성 게임인데, 이런 병신 같은 게임에 일베 소리 듣는 게임단 지원해서 기업 광고하려고?”

“아뇨. 게임 최종보상 받아서 수명 연장 기회 노리려고······.”

“그래. 그리고 흉턴도 그 기회 노리고 싶을 거 아냐. 그 양반, 백 살이 넘었지 않냐? 인간이 백 살 넘었으면 뭐냐? 오늘 내일 하는 반송장 아니냐? 그런 양반이 수명 늘리려고 게임 직접 한다는 게 뭐 그리 이상해?”

*******

가온은 내일 있을 전투에 참여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면서 가온은 순전히 싸움으로 얻을 경험에만 관심이 있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가온은 내일 있을 전투의 결과에도 관심이 있었다.

돈이 아닌 다른 것에.

가온은 한국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을 보았다. 자기 활약이 담긴 영상이었다.

그 반응이 댓글로 주르륵 달려있었다.

슈퍼로드 : 뭐야 ㅅㅂ 총알을 어케 튕겨내 키리토임?

어우아 : 합성 아니에요?

나나나 : ㄴㄴ아님. 실제로 2방어선 죄 털려서 백골단 물러남 ㅎㄷㄷ

자신을 향한 감탄들.

가온은 이 댓글들을 보고 또 보았다.

네 시간째 거듭해서 보았다.

간지흑형 : 저 양반 통도 존나 크다... 팔백 명 참전 보수 저 양반이 다 내줌. 수천만 원 썼을걸? 일베 새끼들 자본주의에 참교육 당함 ㅎㄷㄷ

→ 니엄마 : -근-

댓글로 칭송이 계속되었다.

이번에 물리친 백골부대의 이미지가 심히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의의 수호자라느니, 뭐니 하는 칭찬까지 보인다.

‘가온아, 잠이 안 오면 네 여신이 자장가를 불러주랴?’

이 모든 칭송이 어찌나 달콤한지, 가온은 여신이 그만 자라고 눈치를 주는 것마저 못 들은 척했다.

계속해서 댓글을 감상했다.

그러던 중에 귓가에 노래가 들려왔다. 여신께서 들려주시는, 천상에서 들려오는 노래였다.

‘잿더미를 요 삼아 편히 자라 우리 아기. 비록 집이 불탔지만 재 속에서 불사조가 태어난단다. 잿더미를 요 삼아 편히 자라 우리 아기. 자장자장, 우리 아기······.’

그 감미로운 노래마저 가온을 잠들게 하지 못했다.

소드마스터는 영광을 원한다. 수십 년 전에 얻지 못한 그것을.

계속해서 댓글을 보고, 또 보던 와중이었다.

여신의 노래가 끊겼다.

‘자장가를 들려주어도 자지 않겠다면, 통곡을 들려주어야 잘 것이냐? 네가 정녕 여신의 곡소리를 듣고 싶어 그러는 것이냐? 내 대전사가 원하는 바를 네 여신은 기꺼이 이루어 주리라······. 그 뾰족한 귀를 열고 여신의 울음을 잘 들어라, 가온아.’

여신께서 분노하심에 그제야 가온은 잘못을 뉘우쳤다.

“자겠습니다 여신이시여. 바로 자겠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다행히도, 자비로운 여신께서는 불충한 대전사를 용서하시었다.

‘그래, 착하지? 어서 잠들렴. 우리 가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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