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7 소드 엑스퍼트 이미리 - [1]
게임 속 도시를 걸으며 이복동은 기분이 좋았다.
가온이 걸어가는 가운데, 이복동은 뒤따라 걸었다.
둘에게 쏟아지는 주변의 시선과 관심들.
가온을 본 플레이어가 장난스럽게 외쳤다.
“지나가십쇼, 회장님!”
가온은 저번 전투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에게 약속한 대로 값을 치렀다. 현질의 힘으로.
그 결과 병력이 수백 명이나 더 모집된 바, 전투에서 이길 수 있었다. 그때 모집에 응한 플레이어들은 보수는 물론 전리품까지 챙겨 한몫 벌었다.
심지어 스켈레톤들을 고용하기 위해 가온이 20억씩이나 내려 했다는 것은 도시 전체에 회자되는 일화였다.
가뜩이나 돈을 벌기 위해 게임하는 플레이어들이 많은 게임이었다. 그렇듯 돈에 관심이 많은 플레이어들이 보기에 돈이 많다는 것은 그 자체로 존경받을 이유였다.
덕분에 현재 가온은 회장님이라 칭송받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한테 별 이득 없는 일에도 묵돈을 쓸 정도로 위대한 회장님.
그 위대한 회장님 뒤를 따라 걷자니 이복동은 덩달아 유명인이 된 기분이었다.
‘뭐 사실, 유명인과 친하다는 것도 우월감을 느끼기 충분한 일이지······ 저번엔 말도 놓기로 했고······’
그리고 가온 또한 기분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저번 전투로 레벨이 다섯 개나 올랐겠다, 칭송을 듣는 상황 자체가 가온으로서는 대단히 즐거운 일이었다.
영웅으로 대접받는 일, 중독될 것 같다.
현실에서는 영웅이 될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게임에서는 아니다.
잠시 후, 가온은 이복동과 씩 웃으며 헤어졌다.
“이제 평소 하던 대로 검술 수련할 거예요?”
“응. 그리고 말 놓으라니까.”
평소대로 검술 교습소에 들어갔다. 교관이 웃으며 반겼다.
“정말 열심히로군요. 경. 그 실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겠습니다.”
가온 또한 웃으며 검을 들었다. 다시 시작되는 검술 수련.
며칠 계속 이런 식이었다. 가온은 누구보다 먼저 접속해서 누구보다 늦게 로그아웃했으며, 그 대부분의 시간을 검술 수련으로 보냈다.
그 열정을 ARMA 회원들도 좋게 보는 모양이었다. 또한, 가온은 저번에 돈을 주고 고용한 뒤로 ARMA 회원들과 친해진 마당이었다.
가온 다음으로 접속한 ARMA 회원이 말을 걸었다.
“어, 가온 씨. 언제나 열심히네? 이름처럼 소드마스터 되려나 봐?”
“뭐, 글쎄요?”
이후로 접속한 ARMA 회원들과도 즐거이 말을 나누던 중이었다.
마지막으로 웬 여자 회원이 로그인하여 모습을 보였다.
슬슬 익숙해진 얼굴이었다. 이번에는 가온이 먼저 말을 걸었다.
“방가방가, 이미리 양!”
그러나 인사는 무시당했다. 이미리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검을 잡기 시작했다.
가온이 어색하게 웃는 가운데, ARMA 회장이 말했다.
“미리 얘가 원래 싸가지가 없으니까 이해해 줘. 저번에 가온 씨 꼬시려다 거절당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나 봐.”
이미리는 이쪽을 노려보더니, 굳이 해명하지는 않았다. 그저 검을 휘두를 뿐.
모두 검을 휘두르고, 검을 휘두르다가 하나둘씩 로그아웃했다.
이후로 ARMA 회원들 중에서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이미리였다. 가온이 친한 척 말을 걸어보았다.
“이제 로그아웃하려고? 열심히네?”
그러나 이미리는 이번에도 무시했다. 인사를 받아주지 않고 로그아웃하여 사라졌다.
가온으로서는 저 여자가 왜 저러는지 당최 알 수 없었다.
어쨌건 계속해서, 가온만이 남아 맹렬히 검을 휘두르는 중이었다.
이복동이 찾아와 말했다.
“인터넷에 글 올라온 거 봤어요?”
“말 놓고, 뭔 글?”
“어, 음. 백골부대 있잖아. 진 이유를 설명하는데······”
이복동이 설명했다.
인터넷에 백골부대가 글을 올리기를, 자기네가 퇴각한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 예상하지 못한 피해가 생겨난 탓이라고 했다.
피해 상황을 보고받고는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소드마스터가 나타난 줄 알았다고?”
“예. 지구 진영끼리 붙을 때 무작위로 전장에 난입하는 특수 NPC······ 흉턴 경이 나타난 줄 알았다네요. 그래서 퇴각했다는데요.”
그러니까 자기네가 싸움에 밀려서가 아니라, 우연한 상황이 발생해서 물러난 것이라 주장한 셈이다.
썩 듣기 좋은 해명은 아니었다.
가온으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요, 불안한 일이기도 했다. 승리의 요인을 전력 이외 다른 데서 찾는다면 또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반박할 겸 인터넷에 내가 잘 싸운 덕에 이겼노라 글을 올리면 찌질해 보일까? 아니면 찌질해 보이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이었다.
이복동이 제안했다.
“저, 그때 전투한 거 동영상 찍었는데······ 올릴까? 저쪽이 왜 그리 피해 입었는지 알 수 있게. 그럼 해명글 반박될 거 같은데.”
이복동은 별 생각이 없는 척 그리 물었지만, 속으로는 제발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길 바랐다.
그 놀라운 영상에는 자기도 출연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프로게이머로서 성공하고 싶은 이복동에게 자신을 광고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가온은 관심 없는 척, 자기 활약이 공개된다는 상황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대답했다.
“뭐, 그러든가.”
이복동이 얼른 대답했다.
“그럼 오늘 올릴게. 유투브에 올린 뒤에 백골단 글에다 영상 링크로 달면 되겠지?”
“맘대로 해.”
*******
그리고 다음 날이었다.
백골부대와의 전투 이후, 지존무쌍은 돈 벌러 가자고 조른 적이 없었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가온으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검술 교습소에 맘 편히 계속 있을 수 있으니까.
오늘도 수련에 열중하며 다른 ARMA 회원들이 접속하기를 기다렸다. 그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ARMA 회원들이 인터넷에 올라온 자기 활약을 봤기를 기대했다.
그들로서는 가온이 자신들과 똑같은 평범한 검술 수련자인 줄 알았는데, 칼로 총알을 튕겨내는 놀라운 실력을 보고 감탄할 것 아닌가. 접속하자마자 몰려와서 칭송하리라.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었다······.
“방가방가!”
“방가, 가온 씨! 오늘도 열심히 합시다!”
그러나 ARMA 회원들은 딱히 인터넷 글에 흥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접속한 그들이 기대한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 가운데, 가온은 시무룩해졌다.
조금 시간이 지나, 가온이 슬슬 칭찬 따윈 기대하지 않을 즈음, ARMA 회원 하나가 더 접속했다.
이미리였다.
가온은 이번에 인사하지 않기로 했다. 또 무시당할 테니까.
그러나 왠지, 오늘은 이미리에게서 먼저 인사가 돌아왔다. 그것도 대단히 살갑게.
이미리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가온 씨? 안녕하세요!
의외의 반응, 가온은 살짝 놀랐다.
“어, 인사해주네? 내가 먼저 하면 무시하더니.”
“어제까진 인사받아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뜻밖의 말에 가온은 당황했다. 정말로 꼬시는 거 거절해서 화가 났나? 하지만 거절 좀 했다고 인사받아줄 가치가 사라지진 않을 텐데.
“아니, 왜?
“너무 오래 접속하길래! 직업 없는 백순 줄 알았어요.”
그 말에 가온은 충격을 받았다.
“백수면 안 돼?”
“절대 안 되지. 내가 격이 있지, 백수랑 친한 척 말 섞긴 좀 그렇잖아요?”
“글쎄······ 백수도 사람인데······”
“그런데 계속 무시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이번에 올라온 동영상 봤거든요.”
“어······ 나 쩔었지?”
“응. 엄청 쩔더라고요. 그래서 부탁인데······ 나랑 좀 붙어줘요.”
*******
장검정권 수립 10주년 행사는 지구 전체에 기사가 되었다. 신문 1면을 차지하는 이슈.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도저히 무시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국의 입장에도 마찬가지였다.
「참마황, 한국의 동맹 거절에 분노, 막말 파문」
“말만 앞서는 조센징은 패야 말을 듣는단 걸 비로소 깨달아. 기꺼이 몽둥이를 들 것.”
“그래, 참마황 그 양반이 빡이 돌긴 돌았나 본데. 그래서 장관님? 그 양반이 뭐라 합디까?”
“조센징이 역사를 잊은 모양이니 역사를 떠올리도록 도와주겠다고······ 일본보다 한국을 먼저 두들겨주겠다 합니다. 그러니까 한반도도 공격 대상에 포함시키겠다 이거죠.”
“그 새끼, 딱 보니까 이쪽 공격할 명분 어거지로 쌓으려는 거 아닙니까? 점령 목표인 대차원문이 만주에 있는데, 한반도가 전선 기지 역할하기 좋으니까······”
“그런 건 됐고. 아무튼 그 새끼들이 전쟁 벌일 때 우리나라를 내버려 두지 않을 건 확실하다 이겁니다. 자, 다음 페이지 보십쇼······.”
「제3차 대전, 일촉즉발」
「소드마스터 가온, 장검정권 10주년 행사에 모습 보여」
「파장 뒤 참마황과 비공개 회담 확인」
“보시면 아시겠지만, 생각보다 전쟁이 빨리 시작될 거 같습니다.”
“소드마스터들 골치 아픈 건 잘 아는데, 한 놈 추가됐다고 막 전략이 달라지고 그러나? 전쟁 발발 날짜가 앞당겨질 정도로?”
“그게, 카샤드랑 가온 둘 추가된 시점에 저쪽 입장엔 필요한 전력 다 모인 거나 다름없어서······ 가온 이 귀쟁이가 이계에서 귀환한 게 1957년이었죠 아마? 그때 후긴 공화국은 영미 지원 착실히 받아서 군이 현대화 끝난 상태였습니다. 못해도 지금 이스라엘, 지방 강국쯤은 됐단 말이에요.”
“가온 그 귀쟁이가 그 현대화 된 군을 혼자 박살 냈죠 아마.”
“예. 소드마스터가 세다, 초인이다 하는데 그래도 총 맞아 죽긴 하는 족속이라 전면전에서 대놓고 깽판 치진 못합니다. 그런데 가온 이 귀쟁이는 그게 된다고 확인된 놈이에요. 미군이 대(對) 초인병기를 여럿 개발하긴 했는데, 그걸로도 이 귀쟁일 잡는다고 확신은 못 할 겁니다. 그리고 사실 대 초인병기 그런 거 있어봤자 딴 소드마스터들도 쉽게 잡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2차 대전 장비로도 넷이나 잡았지 않나?”
“2차 대전 당시엔 소드마스터들이 전면전에 뛰어들었으니까 그랬죠. 후방에서만 깽판 치면 답이 없습니다. 애초에 2차 대전 때 소드마스터들이 전면전에 투입된 건 저놈들 입장엔 피치 못한 겁니다. 너무 열세니까, 방어선 뚫릴 때마다 전장의 소방수 역할 하려고 어쩔 수 없이 전장에 직접 나선 거예요. 그러다 죽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아스 군도 나름 전면전할 역량이 되니 소드마스터들이 전장에서 직접 싸울 이유는 없을 테고, 오히려 2차 대전 당시보다 제거하기 어려울······”
“그래서 소마 새끼들 세구나, 하고 감탄만 해야 하는 건 아닐 테고. 뭐 어째야 합니까? 대책 하려고 뭐 하고 있는 게 있습니까? 신 무기 개발이라든가······”
“있긴 한데······.”
“오, 있어요? 뭔데?”
“소드 엑스퍼트(Sword Expert) 양성이 현재 계속되고 있습니다.”
“소드 엑스퍼트? 아니, 아직도 진행 중이었어요? 그거 한국에서도 소드마스터 키워내서 적 소드마스터랑 맞붙게 하자는 병신 같은 계획 아닌가?”
“그게 왜 병신 같습니까? 저쪽 비대칭 전력을 이쪽에서도 키우잔 건데.”
“아니, 내가 소드마스터 돼서 검기 좍좍 뿜는 초인 되면 목숨 걸고 싸우란 명령 안 들을 거 같은데? 어디서도 환영받을 초인이니 적당히 간 보다가 이민이나 가버리지, 호구도 아니고 왜 국방부 명령 들어준대······”
“그래서 양성자들은 최대한 애국자를 기준으로 뽑고 있습니다.”
“가려 뽑아갖고 소마가 탄생해요? 칼 쓰는 놈이면 아무나 불러다가 지원해줘도 모자랄 거 같은데? 왜, 아스에서도 인간 소드마스터는 참마황 그 새끼뿐이잖아. 지구인 중에 소드마스터 된 건 반지성 그 새끼뿐이고. 아무리 봐도 병신 같은 계획이 맞는 거 같은데?”
“아, 그래. 병신 같은 계획 맞다 칩시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어요. 반지성 말 나온 김에 말해봅시다. 반지성 그 또라이가 서울에서 깽판칠 때 어떻게 잡았습니까?”
“미군 불러서도 잡을 수가 없으니까 아스에 소드마스터를 초청해서 잡아달라 부탁했죠. 결국 참마황이 와서 잡아줬고······ 그러니까 소드마스터 잡으려면 무조건 소드마스터가 필수다?”
“예, 생각보다 착실하게 진행 중인 계획입니다. 가려 뽑아선 안 될 거라 하셨지만 애국적이면서 인성이 바르고 재능까지 있는 후보들이 생각보다 꽤 많이 모여있습니다. 후보자 샘플 보여드리자면, 여기 이미리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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