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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4판타지-12화 (12/135)

LV.? 소드마스터 가온 - [2]

물론 가온은 웃지 않았다.

가온이 팔짱을 낀 가운데, 참마황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는 모두를 향해서 하는 말이었다.

“누군가는 우리 승산이 부족하다고 하지. 이제 지구인들도 마법을 쓰고 우리에 대해 잘 알게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가난하며 수마저 적다고. 심지어 기술마저 빈약하여 드워프들이 만드는 전차는 너무 구식이라 미제 에이브람스에 깡통처럼 짓밟힐 것이라고 해. 그걸 믿소?”

“아니!”

드워프 장인들이 노성을 지르는 가운데, 참마황이 말했다.

“물론 사실이 아니오. 하지만, 사실이라도 상관없어. 우리는 단결했고 목표는 뚜렷하니.”

“대통령. 목표라 하면, 세워둔 전략은 있나?”

드래곤 아타락시아가 묻자 참마황은 미리 준비해둔 것처럼 답변했다.

“물론. 목표는 그거요. 백 년 전에 대마법사가 연 그 차원문······.”

“대차원문(大次元門)?”

“그래, 그 재앙과도 같은 차원문! 그걸 통해 오만 쓰레기들이 넘어왔고. 아스는 더럽혀졌어. 뒤늦게라도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지! 차원문과 그 지역을 통째로 놈들에게 빼앗겼으니. 수십 년 전 우리는 그곳을 되찾을 엄두도 내지 못했소. 빼앗긴 땅을 탈환하기는커녕 더 빼앗기지 않으려고 방어하기 급급했으니까.”

참마황은 씹어 내뱉듯 말을 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빼앗긴 땅을 되찾고, 거기 있는 차원문을 파괴할 거요.”

“단순히 영토 회복을 위해서만은 아니로군.”

“그래. 지구 쓰레기들은 우리 세상에서 온갖 것을 훔쳐갔지만 차원문 생성의 비전은 아직 훔쳐가지 못했지. 그러니까 그 망할 차원문만 없애버리면, 놈들이 우리 세계에 넘어올 방법은 사라져. 우리만이 일방적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는 거요.

그게 싫어서 미 제국주의자들은 아린 벌판의 반환을 거부했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내놓으라는 최후협상마저 거부했소.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말이야! 그래, 그놈의 안보가 그리 걱정된다면······ 걱정한 일이 이루어지게 해줘야지!”

“진정하지. 대통령.”

“미안하오······ 아무튼, 우리의 전략은 간단하오. 아린 벌판으로 모든 전력을 집중시켜, 차원문을 점령하고, 파괴하는 거요. 그때 비로소 전쟁이 끝나는 거요.”

참마황이 말하는 ‘전쟁이 끝난다’란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후로는 마음껏 복수하면 돼. 일방적으로! 엘프 소드마스터들이 자기네 윗것들을 죽이자 지구 제국주의자들은 잔인하게 보복했지. 세계수를 불태워 그들의 영혼을 모욕했어······ 같은 일이 반복될 걱정은 이제 없소. 그놈의 차원문만 파괴한다면! 우리의 드래곤과 소드마스터들이 도쿄에, 뉴욕에! 런던과 파리에 나타나도 놈들은 보복할 수 없어!”

“전략은 잘 들었고. 예산은? 전쟁 자금은 충당이 되겠나?”

“회장의 자금 지원은 물론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소. 오락이 그리 돈벌이가 잘 되는 줄은 몰랐는데, 놀라운 일이었지.”

“공치사를 듣자는 게 아니다. 내 지원만으로 군대를 무장시킬 순 없어. 그밖에 후원자는 충분히 있나? 내 알기로 경제인들은 모두 당신이 일으킬 전쟁에 질색하는 줄 아는데.”

“아, 물론. 경제인들보다 나은 후원자가 있지. 이 자리에서 소개하리다······ 모두 기도합시다.”

참마황이 눈을 감더니, 기도했다.

“신들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몇몇이 따라했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그것은 기도였다. 신에게 바치는 기도.

기도가 천상에 닿았다.

가온은 이 자리에 내리꽂히는, 너무나도 강력한 의지를 느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느낄 수 있을 만치 강력한 의지였다.

“천상의 신께서 임하셨도다.”

참마황의 말에 자리에 모여있던 이들이 황급히 예를 표하기 시작했다.

신의 의지는 이제 눈에 보일 만치 강력하게 이 자리에 임했다. 대부분의 인원은 아예 엎드려 복종을 표시했다.

이 와중에 서 있는 것은 자신이 신들과 대등한 동업자라 믿는 오만한 드래곤, 그리고 신의 대전사로서 다른 신들에게 복종할 의무가 없는 가온뿐이었다.

잠시 후, 신의 의지는 선명한 실체를 얻었다.

도둑과 전령의 신이 말했다.

「천상의 의회에서 성전지원법이 통과되었다. 신전에 신탁을 내려 십일조의 절반을 기부하도록 명할 것이며, 신자들에게 전쟁채권 구매를 의무화할 것이다」

참마황은 엎드려 절한 채 물었다.

“면죄부 발행은? 면죄부 판매는 분명 전쟁채권보다 더 자금충당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건 어찌 되었는지······”

「면죄부 발행법은 부결되었다. 기부 가능한 재산액에 따라 천국으로의 입장에 특혜를 주는 것은 너무 우익적인 발상이라는 비난이 있었다.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다. 좌우 진영으로 나뉘어 다툴 시기가 아니거늘」

신들조차 정치성향으로 비난받는 시대였다. 중도좌파의 대표 신으로서 화톳불의 여신께서는 분노를 표하시었다.

‘저 작자가 이제 와 진보 탓을 하는구나! 보수 쪽도 신자들이 떨어져 나갈까 봐 두려워 대놓고 그런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지 못했음을 네 여신이 뻔히 보았거늘!’

중도를 지켜야 할 전령신이 어찌 저리 편향적으로 발표할 수 있냐느니, 반드시 항의할 것이라느니 분노하시는 동안 가온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자고로 정치에 관련해서는 가족은 물론 모시는 신과도 토론하면 안 되는 법이었다.

‘네 여신이 그 정신 나간 법안에 총대를 메고 반대했는데, 그 일로 내 신자들에게 보복을 시도하고도 남았으리라. 네 여신의 교회에 세무조사를 강행하도록 명하는 식으로 말이다. 내 대전사가 노려보고 있으니 차마 그리 치졸하게 굴진 못하는구나. 참으로 잘 왔다, 가온.’

여신께서 분을 삭이시는 동안, 도둑과 전령의 신이 계속 말했다.

여기 있는 유일한 언데드를 향해서.

「카샤드, 불사왕. 그대에게 전할 기쁜 소식이 있다」

카샤드의 정신파가 떨렸다.

「혹시?」

「기대하는 바와 천상의 뜻이 일치하리라. 그대와 같은 자발적 언데드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천국에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관습법이 폐기되었다. 이 결정을 전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죽음의 신을 거부하고 리치가 된 바, 사후 지옥에 떨어질 운명이던 카샤드는 정신적으로 흐느꼈다.

「고마우셔라······ 고마우셔라······」

「그러나 천상은 이 결정으로 말미암아 지상에 언데드가 지나치게 늘어나 생길 혼란을 우려한다. 이 결정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으리라. 그러니 지금 발표한 바에 대해서는 보도관제를 내려야 할 것이며, 좌우를 막론하고 반대가 극심한 결정이었기에 카샤드 그대의 행동 여부에 따라 언제든 번복될 수 있음을 알라. 천상이 호의를 베풀었음을 알 것인즉, 천상을 실망케 하지 말라」

「아, 주여······.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리치의 정신파가 격렬하게 퍼지는 가운데, 드워프들이 영혼에 타격을 받아 몸을 떨었다.

가온이 듣기에도 썩 듣기 좋은 통곡은 아니었다. 가온을 포함한 거의 모두가 불만스럽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참마황은 즐거이 웃었다.

이로써 저 해골의 참전은 확정이다. 기독교의 신이 직접 강림해 자기네 천국에 넣어주겠다고 회유할 것이 아님에야, 결코 배신할 수 없겠지.

전령 신이 마지막으로 신탁을 내렸다.

「기독교 왕국을 불태우라. 그들이 우리 신전을 무너뜨렸듯 놈들의 교회에도 갚아주어라. 천상의 신들이 성전을 지켜보나니, 싸우다 죽는 자들에게 천국의 길이 열리리라」

신탁을 마치고, 신이 사라졌다. 그러나 여기 모인 자들은 바로 일어날 생각들을 하지 않았다.

신의 말을 직접 듣는 영광이라니? 몇몇은 울고, 몇몇은 웃었다.

그 와중에 여전히 고까워하던 가온은 다 집어치우고 돌아가고 싶은 맘뿐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대통령의 비서가 조심스레 다가오더니, 허리 숙여 절하며 말했다.

“폐하께서 뵙길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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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 수련에 진보는 좀 있었는가.”

“덕분에. 이것저것 바쁜가 봐?”

“보람찬 시간이지. 어때, 아무리 세상과 담을 쌓고 지냈다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대강 알 거 같은데. 함께하겠나?”

“아니.”

“아······ 솔직히 당황스럽군. 바로 거절할 줄은 몰랐네. 슬슬 보복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이유를 들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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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온은 내내 표정을 구겼다.

참마황과의 대화는 너무 길었고, 정신적으로 피로했다. 거기에 이제는 미용실까지 가서 게임할 시간을 낭비해야 했다.

미용실에 들르기 전 폴리모프 주문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게임에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인간의 모습. 순식간에 모습을 꾸며낼 수 있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손질할 때 진짜 머리칼도 똑같은 모습으로 잘리도록 완벽한 조정까지 끝마쳤다.

“이야, 진짜 잘생기셨네. 여자친구 있죠?”

귀찮게 구는 미용사의 말을 흘려들으며 미용실을 나왔다. 다행히도, 회의 내내 기분이 좋지 않으시던 여신께서 진심으로 기뻐하시었다.

‘이렇게 꾸미니 얼마나 좋으냐? 다음부터도 주기적으로 괸리하여 네 여신을 기쁘게 하여라, 가온아······’

그마저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두운 뒷골목, 거기에서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담배를 피우며 껄렁거리는 오크들. 추운 봄인데도 민소매 셔츠를 입어 근육질 팔뚝을 드러내고 있었다. 덩치마저 우람한, 전형적인 오크들이었다.

아무래도 오크 갱들인 것 같았다.

그 사실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오크들이 가온을 보고서는 바로 표정을 구기며 다가와 윽박지른 것이다.

“어딜 인간 새끼가 기어 들어와? 뒤지게 처맞기 싫으면 당장······”

가온이 주변에 널브러진 막대기를 찾을 때였다.

정의의 수호를 말리는 오크가 있었다.

“잠깐, 잠깐!”

가온이 아는 오크였다. 그 얼굴을 알아보았다.

‘저번에 구해준 그 오크?’

눈에 띄게 왜소한 오크가 떨리는 눈으로 말했다.

“하지 마. 저번에 나 도와준 분이야.”

“아, 그래?”

그러자 오크 갱들은 작업을 바꾸었다. 갈취에서 물건 판매로.

“좋은 분이었네. 그럼······ 가루 안 살래? 우리 브라더도 도와줬고 하니 엄청 싸게 줄게.”

오크의 말에 가온이 물었다.

“가루?”

“코카인이랑······ 파티 드러그. 왜, 처음인가? 아닐 거 같은데? 잘생긴 거 보니 잘 놀 거 아냐. 응?”

마약 판매, 가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거 안 산다.”

“아니, 진짜 싸게 줄 건데. 이거 진짜 좋은데······ 뱀파이어들이 파는 물건이거든? 혹시 짭새한테 잡혀가도 영수증 보여주면 풀려나, 응?”

가온은 문득 왜소한 오크를 보았다.

본의가 아닌지, 어깨가 움츠러든 채 죄지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생긴 것만 봐도 이런 놈들이랑 어울릴 줄은 몰랐는데.

뭐라 훈계하려던 차였다. 여신께서 말씀하시었다.

‘사주거라.’

‘예?’

‘저 오크가 왜소하니 무리에서 입지가 작을 것 아니냐? 자기 탓에 저 오크들은 너를 갈취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약도 사주지 않으면 나중에 저 오크가 욕을 볼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온은 순순히 여신의 말씀을 따랐다.

“얼만데?”

오크들은 바로 희희낙락하더니, 약값을 불렀다.

‘이 새끼들 싸게 해준다면서 바가지 씌우네.’

가온은 그리 생각하면서도 잠자코 값을 치렀다. 아까울 것이 없었다. 어차피 세금에서 나갈 돈 아닌가.

“고마워요으······”

왜소한 오크는 죄책감과 안도감이 공존하는 표정으로 감사를 표했다. 여신의 우려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왜소한 오크가 절하듯이 고개를 숙이는 가운데, 가온은 어색하게 웃고는 뒤돌아섰다.

뒷골목을 벗어나 걷다가 약봉지를 공중으로 던졌다. 그리고는 손을 휘젓자 불이 붙었다.

여신의 권능으로 발한 신성한 불이었다. 약 기운이며 냄새가 퍼지는 일 따윈 없이, 약은 재가 되어 공중에서 흩날렸다.

이로써 지상에서의 모든 일을 마친 뒤, 가온은 적당한 위치에서 텔레포트했다.

저 어두운 지하 밑에 숨겨진, 문과 승강기를 포함한 출입구 따윈 없는, 그래서 손님 따윈 찾아올 수 없는 자신만의 요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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