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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4판타지-9화 (9/135)

LV.5 칼잡이 가온 - [4]

정진영이 벌컥 소리쳤다.

“아니, 무슨 돈낭비를······”

“병사 모집해야죠.”

“아니, 그 돈이면 더 낫게 쓸 수 있단 말입니다. 도시에 처박혀서 방관할 놈들한테 두당 현금 십만, 아니, 오만 원씩만 제시해도 병력으로 모집이 돼요!”

가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놈들도 모집하고, 스켈레톤도 따로 고용하지 뭐.”

기어이 고용하겠다고? 그 가격에?

다들 말문이 막힌 가운데, 리치가 정신파를 토해냈다.

「놀랍군. 이 가격을 받아들이려 하다니, 승산이 있다 생각하시나 보군?」

“비싼 건 아나봐?”

「알지 물론. 방금 말씀드린 건 농담이었거든. 아무튼 정말 이길 수 있다 여기시는 거라면, 훨씬 더 나은 조건에 병력을 빌려드릴 수 있지······ 삼백만 골드와 약간의 추가 보상만 받으리다」

“추가 보상이 뭔데?”

「전사자들의 시체 사백 구」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은 아니었다.

“콜.”

「좋은 거래였소」

그리 말하며 정신적으로 웃더니, 리치가 사라졌다. 여기 나타났을 때와 같은 순간이동.

남겨진 사람들이 아연하게 가온을 바라보았다.

“어······”

지존무쌍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가운데, 가온은 정진영에게 물었다.

“두당 십만이면 구경꾼들 병사로 모집할 수 있다고요?”

“예, 아마.”

“그럼 시장님? 돈은 댈 테니까 얼른 모집해줘요. 나만 돈 부담하는 게 좀 그렇다 싶으면 뭐, 이왕 이 도시 지키는 거니까 같이 좀 분담해주시든가.”

정진영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불할 돈이 정말 있느냐,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 물어야 할 상황이지만 너무나도 자신감이 넘치는 태도에 순간 해야 할 일도 잊고 말았다.

「병력을 모집합니다. 보수가 있습니다. 반복합니다. 병력을 모집합니다. 보수가 있습니다」

바로 방송이 시작되었다. 병력 모집에 제시된 보수는 두당 십만 원. 이 정도면 전투 한 번 뛰는 것치고는 상당히 좋은 보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 중앙에 용병들이 모였다.

정진영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아까보다는 많이 모이긴 했다. 그러나 충분히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어찌어찌 팔백은 모였는데 역시 이거 갖곤 못 이겨요. 여기다 해골들 합쳐봤자 고작 구백인데 적진에 꼴아 박다가 다 죽지. 직접 확인은 안 되도 분명 여기보단 저놈들이 포도 많을 건데······”

정진영의 말에 가온이 대답했다.

“아니, 왜 시작부터 자신감이 사라졌어? 이길 수 있어요.”

“왜, 좋은 작전이라도 있어요?”

“있죠 물론.”

“뭔데?”

“돌격.”

정진영은 그것이 아까 자신이 주장했던 것임도 잊었다. 그저 어이가 없어 물었다.

“그러니까 적진에, 이 병력 그대로 꼴아박겠다고요?”

“예.”

“아니, 적 진지 구축도 다 끝났는데 이제 와서 그게 무슨······”

가온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냐. 봐봐, 참호선부터가 빈약한 게 달랑 두 줄이죠? 1방어선, 2방어선. 이걸로 끝.”

“뭐, 천 명 좀 넘는 병력으로만 포위하려는 거니까······”

플레이어들이 이동하기 힘들지 않을 만큼, 실제보다 면적이 줄어든 게임이기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당장 방어해야 할 도시의 크기부터가 실제라면 마을 규모밖에 되지 않을 만큼 작았다.

그에 맞게 포위망과 참호선 또한 짧았다. 진짜 전쟁과 비교하면 아주.

“진짜 현대적 전장이라면 전장이 눈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넓을 텐데, 여긴 그냥 고층 빌딩에서 다 보일 정도로 좁고.”

가온이 계속해서 설명했지만, 정진영으로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뭐 게임이니까 실제 전쟁 규모는 아니긴 한데, 지금 그게 뭐 어떻다고? 적보다 적은 병력 어택땅 해야 하는 상황인 건 똑같은데······”

그리고 가온이 소리쳤다.

“아, 할 만하다니까!”

*******

1910년대, 대마법사가 차원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1차 대전 시기.

지구인들도 이때는 아직 미숙했다. 참호전의 교리도, 제병협동의 원칙도 아직 완벽히 자리잡히지 않은 시기였다.

당시 군은 대부분의 병력을 전방 참호선에 집중시켰다.

이 시절 사령관들은 전투의 승리는 과감한 돌격으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후방에 지나치게 많은 병력을 남길 경우 돌격이 수월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후방 참호선에 남긴 병력은 전체 군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 결과 1910년대, 소드마스터는 참호전의 악몽으로 부상했다.

지구인들은 자기네 세계에서뿐만 아니라 아스에서도 한 뼘의 땅을 더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 평범한 아스인들은 이방인들이 자기네 땅에서 제멋대로 싸우는 동안 무력하게 방관자로 남아있어야 했다.

그러나 검에서 빛을 뿜는 초인의 경우에는 아니었다.

‘용맹한’ 흉턴 경은 소드마스터였고 변경백이었으며, 다른 세계 잡것들이 변경에서 제멋대로 구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 땅 근처에서 웬 잡것들이 서로 싸우고 있으면, 두 잡것 중 그나마 덜 무례한 쪽과 동맹을 맺고 싸움에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적의 참호로 직접 돌격했다.

소드마스터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빗발치는 총알과 무자비한 포격, 기관총탄. 소드마스터에게도 죽음을 불러올 수 있는 것들.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나아갔다는 점에서 흉턴 경은 용맹하다 칭송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수 킬로미터를 포복해서, 혹은 함께 돌격하는 기사들의 떼죽음을 감수하고 흉턴 경은 돌격했다.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결과, 흉턴 경이 어찌어찌 적의 참호 안에 진입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들어선 참호는 곧 흉턴 경의 양쪽을 가리는 벽이 되어주었다. 그 안에서 사격 범위는 극히 제한되었다. 제한된 사격 범위만을 가지고 소드마스터를 제압할 수는 없다.

1910년대 초기에만 흉턴 경은 열한 번 돌격했고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열한 개의 전방 참호선을 궤멸시켰다. 그리고 1910년대 초기에 전방 참호선의 궤멸이란 곧 사단 규모의 궤멸과 동일한 뜻이었다.

지구인들은 경악했고, 충격을 받았으며, 충격을 전훈으로 삼았다.

가뜩이나 전방 참호선에 병력을 집중시킬 경우 포격에 너무 큰 피해를 입는다는 전훈도 쌓인 마당이었다. 지구인들은 전방에 일부의 병력을, 후방에 주된 병력을 배치 시키는 올바른 병력 배치방법을 터득했다.

성과는 곧 드러났다.

이후로도 흉턴 경은 여러 전투에 끼어 용맹하게 돌격했다. 그리하여 계속해서 참호전의 악몽으로 군림했지만, 예전만큼 대단한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이제 흉턴 경이 진입한 참호선에는 전멸하더라도 치명적이지 않을 만큼의 병력만이 배치되어 있었다. 무시무시한 칼잡이 하나가 참호까지 돌격에 성공했다 하여 부대의 절반 이상이 궤멸하는 사태가 더는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다.

또한 아군 참호란 곧 아군의 모든 포격 범위에 노출된 장소였고, 이제 지구인들은 소드마스터가 아군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제거해야 할 적임을 잘 알고 있었다. 소드마스터의 위치가 드러난 순간 사령부는 아군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그쪽에 포격을 집중시키길 마다하지 않았다.

가진 재주라고는 빛나는 칼을 잘 휘두를 뿐이었던 흉턴 경은 그 과도한 관심에 잘 버티지 못했다.

이제 흉턴 경의 돌격은 더 많은 위험을 동반했고, 훨씬 더 적은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결국 흉턴 경은 덜 용감해져야 했다.

이 성과에 지구인들은 문명이 또다시 승리했다며 자긍심이 고양되었다.

자긍심과 오만함은 비례하기 마련이다.

지구인들은 아스인 최고의 전사를 저지할 수 있게 되었음을 곧 아스인들에게 더 무례하게 굴어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더 무례하게 구는 과정, 그러니까 흉턴 경에게 겁을 주겠답시고 인질극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흉턴 경의 네 살짜리 아들이 죽었다.

용맹한 흉턴 경은 ‘미쳐 날뛰는’ 흉턴 경이 되었다.

*******

이복동은 적진을 바라보았다. 도시를 둘러싼 참호선, 능선 너머에 펼쳐져 있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먼 거리인데······ 이제 저기에 돌격해야 한다고?

게임인 걸 알면서도 기가 죽는 가운데, 가온이 물었다.

“두 분 임무가 뭐라고?”

지존무쌍이 힘없이 대답했다.

“같이 달리면서 엄호해주기······”

그 앞에는 먼저 돌격하기로 한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팔백 명의 플레이어들.

그들을 향해, 시장이 돌격 명령을 내렸다.

「돌격! 돌겨어어어어억!」

그와 함께 몇 문 되지 않는 곡사포들이 적 참호를 향해 포격을 개시했다. 이쪽 돌격이 수월하도록, 적들의 반격을 줄이기 위한 공격 준비 사격이다.

쾅, 쿵, 쾅 하고.

발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포성이 요란하게 울린다. 귀가 먹먹해지도록, 적들이 도사린 전방보다 아군이 있는 후방이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지도록 쏘고 또 쏜다.

오래 쏘지는 못할 것이다. 가뜩이나 이쪽 포가 적은 상황에 포들의 위치가 적진 가까이 노출된 상황 아닌가. 순식간에 적 화력에 제압당하고 말 것이다.

물론 적진을 향해 돌격해나가는 보병들한테는 이쪽 화력이 어쩌고, 전술이 어쩌고 하는 상황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런 걸 신경 쓸 정신이 없다. 달리다가 죽느냐 사느냐만 남을 뿐이다.

「몸 사리지 말고 빨리 달려! 가장 늦게 달리는 새낀 보수 반만 줄 거야!」

물론 전장에서 남들보다 빠르게 달려나가는 것은 남들보다 빠르게 죽으려는 행위로 여겨진다.

그러나 남들보다 먼저 죽으러 달리는 자들이 있다.

이미 죽은 자들. 대기 중이었던 일단의 해골 무리가 돌격을 시작한다.

스켈레톤들이다.

이 해골들의 뼈만 남은 손에는 AK-47 한 자루씩들이 들렸다. 총구에서 불을 뿜으며 달그락달그락 달린다.

이 언데드들은 고대의 주술로 만들어졌지만, 20세기에야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은 현대전의 수혜자들이다.

냉병기의 시대라면 스켈레톤들은 그다지 무서운 적들이 아니었다. 근육이 없이 뼈밖에 없는 그들은 외양처럼 빈약하여, 평범한 병사들도 얼마든지 힘으로 제압 가능한 뼈다귀 소모품들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열병기의 시대에 스켈레톤들은 피격 면적은 터무니없이 작아 일반 병사들보다도 오래 살아남으며, 딱 총을 들 수 있을 정도의 근력만 있으면 충분하므로 대량양산이 가능한 돌격의 화신들이다.

빗발치는 총알들이 그 갈비뼈 사이로 스쳐지나간다.

두개골이 파괴된 스켈레톤들은 무게를 덜하여 오히려 더욱 빠르게 달려나간다. 운 나쁘게 척추를 당해 상반신만 남아 쓰러진 스켈레톤들은 엎드린 자세가 되어 더욱 안전하게 총을 쏴갈긴다.

“좆나 안 죽······”

참호에 숨은 병사들은 이 해골들을 잘 저지하지 못한다. 가뜩이나 그들의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지는 와중이다.

결국 기관총들이 이 해골들을 향한다. 한 발의 총알로 제압하기 어렵다면 수십 발로 제압하면 된다는 논리로, 탄창을 비워가며 무자비한 열선을 토해낸다. 그와 동시에 떨어지는 포탄들.

이내 해골들이 산산이 조각나 유해로 바뀌어나간다.

이미 죽은 자들이 쓰러진 자리로는 살아있는 보병들이 달려오고 있다.

앞선 죽은 자들의 희생 덕분에 제법 많이들 살아남았다. 적들과 충분히 거리를 좁힌 보병들은 바로 엎드려서 조준사격을 시작한다.

그 와중에 엎드리지 않고 계속 달려나가는 자들이 있다.

“용돈벌이 감사!”

칼잡이들이다.

그들은 검술 수련을 즐기다 말고, 두당 십오만 원씩 주겠다는 제안에 계정비나 벌 겸 이번 전투에 참여했다. 일부 총을 든 보병들 또한 돌격소총을 쏴갈기며 함께 달려나간다.

죽고, 넘어지고, 죽는다.

그런 희생 끝에 끝내 참호 안으로 당도하는 병력이 있다.

“방가방가!”

참호 속에 뛰어든 가온이 무기를 겨누었다. 왼손에는 칼 한 자루, 오른손에는 권총 한 자루.

“어······”

참호 속 적들을 만나자마자 속사했다.

권총이 다섯 번 불을 뿜었고, 다섯 명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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