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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4판타지-7화 (7/135)

LV.5 칼잡이 가온 - [2]

물론 사과를 받아도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가온은 허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내가 진짜 소드마스터 같으면, 직접 물어볼 게 아니라 몰래 빠져나가서 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뇨?”

“어째서?”

“지구 서양인 아니신가? 그럼 가온은 적국 수장이잖아. 여기 잠입해 있게 내버려 두면 안 되지.”

“적국 수장이건 말건 저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전 이 땅에 검을 수양하러 왔습니다. 자본가들을 위해서가 아니라요.”

“훌륭하시네. 그래서 내가 정말 소드마스터 가온이라 답했음 어쩌려고? 그래도 검술 가르치시게?”

가온은 빈정거렸지만, 교관은 경건하게 대답했다.

“못 가르칠 것 없지요. 영광으로 알고 가르칠 겁니다.”

“정작 가온이 거부하지 않을까? 소드마스터씩이나 돼서 왜 칼에서 검기 뿜지도 못하는 동네 검술을 배워?”

그 말에 교관은 멋쩍은 듯 웃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가온 경께서 거부하셔도 한번 가르쳐보고 싶군요. 배우면 분명히 도움이 될 거라 설명드리면서요.”

“도움이 돼? 왜?”

“왜, 가온 경께서 원수한테 거듭 패배한 건 유명하지 않습니까? 소드마스터 하고 말입니다.”

아니, 그걸 왜 게임 속 NPC마저도 알고 있나? 가온의 얼굴이 굳었다.

“그 유니콘 새낀 만 살 넘게 처먹은 고인물이라 질 수밖에 없었을걸? 싸워온 경험이 다른데요.”

“경험만으로는 세 번 연속 승리할 정도로 절대적인 우위를 설명할 순 없습니다. 게다가 하고 경, 소드마스터 중에 제일 연장자긴 하지만 소드마스터들끼리의 대결에서 가장 승률이 높은 소드마스터는 아니잖습니까?”

“경험 탓이 아니면 왜 가온이 계속 졌는데?”

“감히 추측 드리자면······ 가온 경께서 검은 잘 다뤄도 막상 이론적인 검술은 모르는 탓이 아닐까 싶더군요.”

가온으로서는 기가 차는 소리였다. 웬 듣도 보도 못한 칼잡이가 감히 소드마스터를 평가하다니?

“그게 뭔 헛소리요?”

“왜, 칼은 보통 사람을 상대하는 물건이고 소드마스터들은 당연히 사람끼리 싸운 경험이 넘쳐나지만 가온 경은 예외죠. 특이하게도 가온 경은 딴 세계에서 괴물들과 살아남고자 싸우다가 본능적으로 싸우는 법을 터득해서 소드마스터가 되신 분 아닙니까? 원래는 사제셨지 검사가 아니셨고요.”

“뭐, 그렇죠.”

“그 탓에 괴수나 군대는 딴 소드마스터들보다 훨씬 잘 때려 잡으시면서 막상 소드마스터끼리 붙으면 결과가 안 좋으신 거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 상대하는 검술을 모르실 테니까요.”

“소드마스터쯤 되면 굳이 검술 이론 같은 거 몰라도 되는데? 전투감각이라고 모르시나?”

그 말에 교관은 설교하듯, 진지한 얼굴로 주장했다.

“그래도 머리로 알고 하는 검술은 중요합니다. 이론을 알아야 전략과 전술을 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략과 전술 없이 싸우면 전투에선 이기다가도 전쟁에서 지는 법이죠.”

이 인간 나한테 졌으면서 가르치려 드는 게 고까운데.

가온은 그리 쏘아붙이려다 말았다. 굳이 정신이 피곤해지는 게임을 다시 하기로 한 이유를 생각했다.

생각을 정리한 뒤, 물었다.

“이미 칼 잘 쓰는 놈도 이론적인 검술 익히면 도움 될 거란 주장 말이야. 소드마스터 가온은 아닌데, 우연히도 검술은 배워본 적 없지만 썩 잘 싸우긴 하는 칼잡이한테도 적용이 될 거 같아요?”

“예. 아마. 다시 말씀 드리지만 신입 교습생은 환영입니다. 성함이?”

“가온.”

“어······”

“그 가온은 아니고······”

“아, 예.”

가온은 변명했다.

“변명하는 건 아닌데, 내가 진짜 소드마스터 가온이었어도 남들 앞에서 소드마스터인 건 숨겼을 겁니다.”

“어째서?”

“소드마스터 가온이 말이야. 의지의 사나이로 유명하잖아? 세간에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자 수십 년째 폐관수련 하고 있노라 알려졌다고. 그런데 실은 딴짓하고 있단 거 들키면 체면 구길 거잖아요. 내가 소드마스터 가온이면 폐관수련 컨셉 유지하고 싶어서 가끔 바람 쐬러 외출할 때도 굳이 인간 모습으로 폴리모프하고 그럴걸? 그러다 가끔 악당들 혼내줄 때나 몰래 정체 드러내고······”

너무나도 헛소리라 NPC마저 흘려넘길 정도였다.

“아, 예······”

“뭐 이건 됐고. 아무튼 배우기나 합시다. 선생님. 뭐부터 하면 돼?”

그제야 교관이 검을 다시 잡았다.

일찍이 경지를 이룬 검의 종사를 향해, 조심스레 말했다.

“제대로 배우시겠다면 기초부터 다시 해야겠지요. 올바른 자세대로 반복해서 휘두르기부터 해보는 게 어떨까요. 지루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뭐, 안 괜찮을 것 없죠.”

껄렁한 대답, 훈련 태도 또한 그러리라 예상할 만했다. 교관 또한 그리 예상하고는 교습을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가온은 대단히 열심인 학생이었다.

남들보다 훨씬 더.

*******

교습 첫날, 가온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여기까지는 교관도 가르치면서 별 감명을 받을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배우는 초기에 열심인 교습생이야 널렸으니까.

그러나 가온은 첫날 16시간 내내 칼을 휘둘렀고,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 긴 시간 동안 가온은 조금도 쉬지 않았다. 단 조금도.

그 정도로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교관은 감명을 표했다.

“훌륭하시군요, 정말······ 자, 그건 이제 완벽하게 해내시는 것 같습니다. 다음 동작으로······”

[경험치 500 획득]

훈련 한 번에 시간을 오래 쓰는 식이라 예상보다 경험치 획득 속도는 훨씬 느렸다. 그래도 상관없이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종일 칼만 휘두르는 광경이 ARMA 회원들이 보기에도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저 정도 열정이면 회원 자격이 충분하다. 그리 판단한 ARMA 회원이 영입을 시도했다.

한 중년 남자가 가온에게 다가가 말했다.

“엄청 열심히 하시네? 보니까 검술 제대로 하려나 본데, 우리 동호회 가입해서 같이 합시다, 응? 전화번호도 교환해서 연락하고 지내자고.”

“쏘리.”

집중하고 있던 가온은 바로 거절했다.

중년은 어색하게 웃고 돌아가더니 다른 회원에게 말했다.

“중년 아재가 꼬시니까 싫은가보다. 미리야? 네가 가서 꼬셔 봐.”

이미리는 이 게임에서 유독 희귀하며, ARMA에서는 아예 유일하기까지 한 여성 플레이어였다. 힘찬 발걸음으로 가온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잘생긴 오빠, 나랑 좋은 시간 보낼래?”

그제야 가온이 고개를 돌렸다.

이미리가 자신감에 넘쳐 웃는 가운데, 가온은 제법 관심 있게 대답했다.

“아가씨 이쁘네요. 몇 살?”

“꽃다운 스물넷!”

그리고 가온은 정색했다.

“이십 대는 좀······. 딱 마흔 살만 더 먹고 오렴, 애기야.”

잠시 후, 이미리가 일그러진 얼굴로 돌아오자 중년이 물었다.

“차였니?”

“미친놈이야. 할매가 좋대.”

“음······ 존중하자.”

그 모욕적인 대화가 고스란히 들렸지만 가온은 무시했다. 집중하는 동안에는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당장 가진 목표에 집중했다. 가르침 받은 자세대로 칼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이백 년 전, 다른 세계에 갇혔을 때처럼.

며칠 전에 세운 목표를 다시금 떠올렸다.

하고를 이겨볼 생각이었다. 같은 소드마스터를 상대로.

약 사십 년 전, 가온은 소드마스터 하고와 결투하여 패했다.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결투를 신청했으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자존심을 버리고 기습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또 다시 처참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육체적으로는 별로 다치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크게 다친 전투였다. 결국, 그 싸움은 가온이 소드마스터로서 벌인 마지막 전투가 되었다. 이후로는 자기만의 요새에 칩거했으므로.

한동안은 그 원수의 존재를 굳이 떠올리려 하지 않았다. 모든 의욕이 사라진 데다 승산까지 썩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그 수치스러운 패배가 다른 세계 인터넷에까지 못 박힌 것을 확인한 지금, 가까스로 설욕의 의욕이 다시 생겨났다.

설욕을 위한 토대를 세우고자 이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레벨을 잔뜩 올려 캐릭터를 강력하게 만든 뒤, 이 게임에 현실과 완벽히 똑같은 능력으로 존재한다는 하고에게 무작정 도전해볼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면 적에게 익숙해질 것 아닌가.

충분히 익숙해진다면 끝내 승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현실의 하고에게도 승산이 생길 것이다. 그때 다시금 도전해볼 계획이었다.

그 계획은 지금도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단순히 적에게 적응할 뿐만 아니라 검술도 다시금 단련해보자는 또 다른 계획이 생겼을 뿐이다.

단련에 매진한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레벨 업]

레벨은 딱 하나 올랐고, 아직 훈련소의 훈련은 극히 일부밖에 완료하지 못했다. 어쨌건 훈련을 착실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검술 교습소에 불청객이 들어왔다. 불청객을 본 가온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존무쌍이 따졌다.

“아니, 뭔놈의 훈련을 그리 오래 해요?”

“훈련이 생각보다 많아서 그래요. 좀 기다려.”

“검술 쪽은 그렇게 힘들어요? 그럼 저기 사격 훈련소에서 훈련하시든가. 나도 벌써 훈련 마치고 레벨 업 여러 번 해서 레벨 5 됐는데······”

또 돈 벌자는 징징거림. 가온이 뭐라 하려던 때였다.

“여기들 계시네······”

검술 교습소에 또 다른 불청객이 들어왔다.

지존무쌍은 그 얼굴을 알아보고 밝게 웃었다.

“아, 공익 친구! 나 찾아온 거야?”

이복동은 공익이라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예······ 경매장에 내놓은 매물들, 아직 안 팔렸죠?”

“응, 아직. 하지만 다 인기 품목이니까 곧 다 팔릴 거라던데? 아마 내일쯤 다 팔려서 현금화 가능할걸.”

“내일요?”

“어.”

“그럼 우리 좆됐어요.”

“응?”

“우리 좆됐어요.”

공익이 중얼거린 뒤였다.

마을 밖에서 웬 소리가 울렸다.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이 도시를 대표해서 말씀드립니다. 곧 전쟁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이 도시에 백골단에서 군대를 몰고 쳐들어왔습니다」

도시 회관에서 하는 공개방송이었다. 방송에서 뭐라고 했나?

백골 어쩌고, 들어본 적 있는 단체였다.

“백골부대? 거기 요새에서 우리 갈취하려다 망한?”

맞는 것 같았다. 방송은 정확히 그 사건을 언급했다.

「그 새끼들, 얼마 전에 자기네 요새 털린 게 우리 도시에서 벌인 짓이라 주장하네요. 그게 아니라 정말 여기와 상관없는 뉴비들이 저지른 일이라면, 요새 털어먹은 뉴비들 아마 이 도시에 있을 거니까 찾아서 내놓으라는데······」

“뭐야 씨발!”

「······영 어이없는 요구라서 거부했더니,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고는 여길 점령하고 빼앗긴 물건들 되찾겠답니다. 그리되면 당장 도시에 있는 물건들은 다 뺏기는 셈입니다. 뺏기기 싫으면 싸워야합니다. 여기 도시에 지킬 재산이 있거나 벌레 새끼들 싫은 분들은 다 싸우러 나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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