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5화 (5/135)

LV.1 칼잡이 가온 - [4]

공익 출신 청년의 이름은 이복동이고, 프로게이머 지망이다.

계정도 프로용으로 구입했다. 영상녹화 기능이 달린 68만 원짜리 VIP 패키지. 최저임금 미만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처지에 그 거금을 내면서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예의 영상녹화 기능을 아까 협박당할 때부터 켜두었다. 예정대로라면 길드의 만행을 고발하는 영상이 되었을 텐데.

어째서인지 영상은 정의구현 방송으로 완성되었다.

이복동은 영상녹화를 유지한 채 성벽 위를 걸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마다 널브러진 시체며 피가 눈에 들어온다. 보통 전투로 생겨난 시체는 보기 역겨운 법이지만 여기 생겨난 시체들은 그렇지 않다.

어떻게 가능했는지 몰라도 모두 가슴에 총알 한 발씩 맞아 죽었다. 보기에 놀라울 만치 깔끔하다. 수위조절을 위한 영상편집도 따로 필요하지 않아보인다.

‘진짜 개쩌네. 영상 올리면 대박이겠다.’

이 현장을 만들어낸 당사자에게 영상을 올려도 되느냐 허락을 받을 생각이다. 자신도 도와서 총질을 했으니 그럴 권리가 있지 않으냐 주장해야지. 실제 도움이 됐는지 안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어떻게든 영상을 올리면 수입이 짭짤할 것이다. 프로게이머로서의 시작이 꽤 좋은 느낌이다······.

계속 걸어가니 시체들 사이에서 두 남자가 보였다.

평범해 보이는 남자와 이 현장을 만들어낸 남자.

이 현장을 만들어낸 남자는 느긋하게 칼날에서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이복동이 가까이 다가갔다.

그 잘생긴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이복동은 질겁했다.

‘아.’

이복동은 키 크고 잘생긴 남자가 무섭다. 학창시절에 일진이었을 것 같기에.

‘이건 현실이 아니라 게임. 현실이 아니라 게임. 저 얼굴은 커마 설정······’

속으로 되뇌면서도 막상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단순히 학창시절 트라우마 때문만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무서운 인간 아닌가.

방금 목격한 학살은 단순히 게임 고수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게임의 전투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이 게임에서 혼자 죄다 죽여버릴 수 있다면 현실에서도 그럴 수 있다.

당장 영상을 올려도 되느냐 허락받을 엄두 따윈 나지 않았다. 이복동이 입 다문 가운데, 지존무쌍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가온 씨 뭐하던 분이야? 현실에서 군인이셨어? 아니, 하루 열 시간 넘게 게임하시던 분이 군인이실 수가 없는데?”

가온은 느긋하게 대답했다.

“군인은 아니고, 그냥 쩌는 인간.”

“아, 그래! 진짜 개쩔드만! 막 마법도 쓰시고····· 아까 그거 마법 맞지?·”

노골적인 아첨에 가온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흐뭇하게 웃다가 문득 이쪽을 바라보았다.

이복동이 움찔하던 그때, 가온이 말했다.

“지원해주셨지? 고마워요. 덕분에 훨씬 쉬웠어.”

한 명 쏴 죽이긴 했다. 딱 한 명. 지존무쌍도 한 명 쏴 죽였고, 나머지는 모두 저 인간이 죽였다.

“아, 예······”

이복동은 대답해놓고서 혹시 자기가 말 더듬지 않았나 걱정했다.

한편 지존무쌍이 주장했다.

“나도 도왔어!”

“알죠. 도움 됐고.”

“도움됐어? 다행이네. 그럼 말이야, 여기 떨어진 물건들. 나도 주워가도······”

순간 이복동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프로게이머의 주 수익, 남 죽이고 약탈해서 전리품 챙기기······’

이 게임에는 인벤토리가 없다. 그 탓에 몬스터든 플레이어든, 죽을 때 지니고 있던 물건은 고스란히 땅에 떨어지고 만다. 그리고 이 게임의 거의 모든 아이템은 현금 가치가 있다.

그러니까 지금 이것은 프로게이머로서 첫 수익을 올릴 기회였다. 그것도 아주 큰 수익을 올릴 기회.

주변에 널브러진 모든 것이 다 돈이었다.

두 ‘프로게이머 지망생’이 초조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가온은 별 고민 없이 말했다.

“당연히 주워도 되죠. 공익 친구도 주워가. 그런데 다 가져가진 못할 거 같은데? 도수운반 해야 하잖아. ”

“수레라도 있나 찾아봐야······”

세 명이 사다리를 내려갔다.

성벽 아래에서는 신규 플레이어들이 신나게 요새 안을 쏘다니는 중이었다.

그러다 한 물건이 끌려 나왔다. 그 물건을 본 지존무쌍은 환희에 차 소리질렀다.

“트럭!”

냉큼 달려가자 신규 플레이어는 순순히 트럭을 가온에게 넘겨주었다. 요새 창고에 있던 물건이니 어차피 당신 것이라며, 위업에 대한 존경의 표시와 함께.

“계정 비싼 거로 등록해서 뒤질까 봐 개쫄았는데, 진짜 감사합니다. 저 프로 지망이라 앞으로 전장에서 뵈면 알아모셔야 할 거 같은데요······ 성함이?”

“가온이요.”

“가온? 아, 그거 소드마스터 이름이죠 아마? 혹시 정말 소드마스터십니까?”

“내가 진짜 소드마스터면 소드마스터씩이나 돼서 대낮에 게임하고 있노라 밝힐까요? 절대 신분 안 밝히지.”

“소드마스터 생각이야 난 잘 모르겠고······ 아무튼 거듭 감사합니다! 개쩔었어 진짜.”

그리 말하며 신규 플레이어가 트럭에서 내렸다. 지존무쌍이 트럭 시동키를 넘겨받았다.

가온은 오랜만에 칭송을 받아서, 지존무쌍은 많은 전리품들을 옮길 수단을 얻어서 행복해졌다.

지존무쌍이 헤실헤실 웃으며 물었다.

“다 가져갈 수 있겠는데. 전리품 분배는······”

가온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내가 죄다 죽이긴 했지만 뭐, 어차피 나 혼자 다 가져갈 수도 없으니까. 내가 반 가지고 나머진 똑같이 나누는 걸로 합시다.”

공익도, 지존무쌍도 이의는 없었다.

삼십 분 지나, 세 명은 트럭에 거의 모든 전리품을 옮기는 데 성공했다. 다 챙기지 못한 나머지 물건은 다른 신규 플레이어들이 챙기도록 내버려 두었다. 더 오래 남아있다가는 백골부대에서 지원병력을 보낼지 모르니까.

이윽고 트럭이 출발했다.

요새를 나오니 바로 도시가 보였다. 그곳을 목적지 삼아 달려간 트럭은 이내 도시 NPC의 안내를 받아 경매장에서 멈추었다.

경매장을 운영하던 플레이어는 트럭에 실린 물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좆나 많네? 기관총에 4.2인치 박격포에······ 이걸 어디서 다 털어왔어?”

그 질문에 지존무쌍이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저기 신삥들 털어먹는 새끼들한테서!”

“아니, 거기? 완전히 요새화돼서 소수인원으론 절대 못 터는데 어떻게······”

어쨌건 가격을 쳐주었다. 트럭에 실린 물건들이 모두 경매 매물로 옮겨갔고, 그로써 오늘 벌이는 성공으로 끝났다.

경매장 플레이어가 보장하기로, 최소 팔백육십만 원 이상이 나올 것이라 했다. 불과 한 시간 만에 수백만 원씩 번 것이다.

“맨날 이렇게 벌면 빌딩 세우겠네! 프로게이머 첫날부터 대박이야. 너무 좋아······”

지존무쌍의 말에 가온이 물었다.

“아까부터 프로게이머, 프로게이머 하던데 프로게이머면 이스포츠 선수들 아뇨? 오늘은 그냥 약탈만 했잖아요. 그걸 프로게이머다운 일을 했다고 볼 수 있나?”

이복동이 대신 설명했다.

“어······ 여기선 그냥 게임으로 먹고 살면 다 프로게이머라 해요. 용병일 해서 돈 벌든, 골드 팔아서 돈 벌든 간에.”

“그런 사람들은 그냥 작업꾼이라 하지 프로게이머라곤 안 하잖아?”

“그게, 이 게임은 돈 벌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 즐기는 목적으로 하는 사람보다 많아서요. 수도 많으니 멸칭 쓰지 말고 좋게좋게 부르잔 식으로······”

그 말에 가온은 어이가 없었다.

“돈 벌려고 겜 하는 사람이 절반? 그게 뭐야. 그따윈데 게임 경제가 돌아가? 수요가 공급보다 훨씬 많아야 하는 거 아냐?”

“돈은 외부에서 꾸준히 유입이 돼서요. 아무튼 돈 벌려고 이 겜하는 사람이 다수인 건 분명하고요. 이 게임 컨텐츠가 전쟁인데, 그거 즐기는 사람은 거의 다 돈벌려고 겜 하는 사람들일걸요?”

그 말에 가온의 얼굴이 굳었다. 놀라운 수입을 올려서 들떴던 지존무쌍은 그 표정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이복동과 헤어진 뒤, 지존무쌍은 더없이 즐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재밌었죠?”

가온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예, 뭐. 그런데 나는 재밌었지만 딴 사람들은 별로 재미없었을 거 같네.”

“난 재밌었는데?”

“돈 벌어서겠지?”

“그렇지!”

“우리가 돈 번 만큼 그놈들은 돈 잃었을 거고.”

“돈 잃어도 싼 놈들이었죠?”

“그러긴 했죠. 그래서 이번은 그러려니 해도······ 이 짓거리 계속하긴 뭐하네.”

시큰둥한 대답, 지존무쌍은 당황했다.

“예?”

“즐기면서 할 만한 겜이 아닌 거 같애. 죽이면 약탈이 가능하고 그때마다 돈을 뺏고 뺏기니까. 누구 쓰러뜨릴 때마다 미안해질 거 같은데 그게 좀 그렇네. 돈 된다길래 사행성 심한 줄은 짐작했는데, 그래도 딱 한국겜 수준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건 그 수준을 뛰어넘은 것 같아.”

“아니, 돈이 벌리는데 왜 못 즐겨······”

“난 돈 벌려고 겜하려던 건 아니라서. 미안해요.”

“아니, 아니······”

지존무쌍은 대체 왜 그러느냐? 그러지 말고 계속 게임하자, 하면서 졸라댔지만 가온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당장 지존무쌍이 계속 같이 게임하자고 졸라대는 이유야 알 만했다.

이쪽이 잘 싸우니 함께하여 돈을 벌고 싶은 모양이지? 그렇다면 더욱 어울려주기 어렵다.

‘내 덕에 저 양반이 주기적으로 돈을 벌게 되면? 그땐 정말 맘대로 겜 그만둘 수도 없게 될 거 아냐.’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 지저분한 상황 따위는 원하지 않는다. 이쪽은 어디까지나 넘쳐나는 시간을 죽이고 싶은 것 아닌가.

그 점을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했지만 지존무쌍은 알아먹는 기색이 아니었다.

“제발······”

벌써 지저분하다. 가온은 이 망겜을 그만두기로 한 자신을 칭찬하며 말했다.

“그만 겜 끌게요.”

*******

가상현실 게임기기는 투박하고도 단순했다. 의자 하나 있는 공중전화 박스, 거기에 헤드셋 하나가 더 있을 뿐이다. 언뜻 봐서는 완벽한 가상현실 구현이 가능할 만큼 놀라운 물건이라 믿기는 어려웠다.

그 안에서 나온 가온은 한숨 쉬었다.

바로 집어치우자니 아쉽기는 했다.

재밌었던 것은 분명했다. 수십 년 만에 몸을 움직여 활약했지 않은가.

뭐, 그렇다고 해서 역시 정신적 피로를 겪으면서까지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현실의 자신부터가 소드마스터 아닌가. 활약은 현실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싫어서가 문제일 뿐.

가온은 습관대로 컴퓨터 전원을 눌렀다. 너무나 당연한 듯이 모니터 앞에 앉았다.

무심결에 원래 하던 온라인 게임을 켜려다 말았다. 우울하게 생각했다.

평소에 게임을 안 할 때, 그러니까 밥 먹을 때는 뭘 하던가?

시간 죽이기에 좋은 위키질.

위키에다 ‘4판타지 온라인’을 쳤다. 유명한 게임답게 긴 문서가 나왔다.

5. 게임 특징

--5.1. 과도한 사행성

--5.2. 완벽한 현실구현

--5.3. 게임 최종보상

6. 등장인물(NPC)

무의식적으로 등장인물 항목을 클릭했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떴다.

1. 신들

2. 아스

--2.1. 인간

--2.2. 엘프

--2.3. 오크, 고블린, 드워프

--2.4. 드래곤

-- 2.5. 소드마스터

----- 2.5.1. 가온

----- 2.5.2. 반지성

----- 2.5.3. 흉턴

----- 2.5.4. 하고

가온은 소드마스터 항목의 한 이름에 주목했다.

‘2.5.1. 가온’. 저거 내 이름 아닌가?

동명이인일 리는 없다. 역대 소드마스터들의 수는 손가락과 발가락만 멀쩡해도 전부 셀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소드마스터는 희소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그러니까 저기 적힌 소드마스터 가온이란 틀림없이 자신일 텐데, 어이없는 일이었다.

2차 대전 배경 게임 아니었나? 하지만 가온은 2차 대전 당시에 지구도 아스도 아닌 딴 세계에 있었다.

‘반지성 저 친구도······’

어쨌건 호기심이 든다.

천천히 읽어내리자니 문서는 이렇게 시작했다.

5.5.1. 가온

현대 군대가 상대하기 가장 어려운 소드마스터.

판타지 무력의 화신.

그 아래에는 ‘아스 진영의 최종병기’ ‘지구인 도살자’ ‘혼자서 종심돌파-전과확대하는 개먼치킨’ 따위 글귀가 볼드체로 적혀있었다.

가온은 낯부끄러운 것을 느끼면서도 계속 읽어내렸다.

문서에는 게임 내 보스로 등장하는 가온이 어찌나 강력한지, 그 탓에 플레이어들에게 어찌나 악명이 높은지, 그러니까 얼마나 대단한지 줄줄 적혀있었다.

가온은 평소에 칭찬받을 일이 별로 없었다. 같은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방긋방긋 웃으면서 문서를 읽어내렸다.

그러다 정색했다.

항목의 맨 아래 문단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 소드마스터 가온은 일방적으로 소드마스터 하고를 적대한다.

가온이 전장에서 하고를 만날 때마다 먼저 공격한다. 같은 아스 진영인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기습하는 것이 목격된다.

그리고는 매번 가온이 패배하는데, 고증이라고 한다. 이유는 추가바람.

가온은 저 글귀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얼굴을 붉혔다가, 주먹을 움켜쥐었다가, 한숨 쉬었다.

우울하게 마우스 스크롤을 움직였다. 항목의 앞으로 돌아가자 이런 내용이 나왔다.

5.5 소드마스터

아스 진영 최종보스들.

2차 대전 당시에 이계(異界)에 있었던 두 소드마스터가 참전한 것은 이 게임의 배경이 대체역사이기 때문으로, 2차 대전 도중에 두 소드마스터가 원래 세계로 복귀한 결과 전장에 합류했다는 설정이다.

이렇듯 현실과 다른 부분도 있지만, 이외 부분에서는 완벽하게 현실을 구현했다고 한다.

게임 제작자들은 이 게임의 모든 소드마스터들이 실제와 똑같은 능력과 기술을 지니고 있음을 보증했다. 따라서 죽이기가 끔찍하게 어려우며 아직 한 명도 죽지 않았다.

그마저 다 읽고 나서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오랜만에 복잡한 생각들을 여럿 했다.

가온은 한숨을 쉬고, 쉬고, 또 쉬었다.

그 와중에 핸드폰이 울렸다. 받아 보니 예상한 대로 지존무쌍이었다.

「가온 씨, 제발······」

“게임 계속 같이 하자고?”

「예, 좋은 게 좋은 거잖아요. 자잘한 건 내가 다 챙겨줄 테니까······」

절박한 목소리. 동정심을 유발하려는지 울음기까지 섞여 있었다.

가온은 동정과는 다른 이유로 그 부탁을 승낙했다.

“그래, 합시다. 그 망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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