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4판타지-4화 (4/135)

LV.1 칼잡이 가온 - [3]

제대로 이마에 맞았다. 조교가 순간 몸을 가누지 못했다.

가온은 그리 될 줄 미리 결과를 알고 있었다. 결과를 알고 있으니 행동에 아무런 주저함이 없다.

칼자루끝장식을 던지면서 가온은 땅을 박찼는데, 두 행동은 정확히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래서 조교가 휘청거리던 그 순간, 가온은 장교의 측면에 당도해 있었다.

“―억······”

가온은 아주 살짝, 칼을 뻗었다가 당겼다.

여기까지 0.5초.

반응하기에는 너무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래서 장교는 칼에 목을 찔리면서 표정도 바꾸지 못했다.

0.7초.

가온은 뽑혀나온 칼을 살짝 휘둘렀다. 장교의 목에서 피가 나오기도 전에, 칼날은 우아하게 움직여 장교의 허리춤에 닿았다.

허리춤 권총의 트리거가드에 칼끝이 파고들었다.

살짝 스냅을 주어 칼을 당겼다.

권총이 장교의 허리에서 빠져나오더니 회전하며 가온에게 날아왔다. 직접 던져줘도 그러기 힘들 만큼 절묘하게, 정확히 오른손을 향해서.

가온은 오른손에 닿은 권총을 바로 쥐었다. 그리고 쏘았다. 탕!

조교는 0.9초 전, 칼자루끝장식에 얻어맞아 아직 휘청거리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 가슴에 총알이 다가와 심장에 꽂힌 그 순간에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심장이 터진 가슴에서 피의 꽃이 피어났다. 목표한 곳에 잘 맞혔다는 증거였지만 가온은 그것을 굳이 확인하지도 않았다. 쏘면 맞는 것이야 당연한 일 아닌가.

그리하여 1초가 완성된 순간, 가온은 달려나갔다.

가온이 두 발짝 내디뎠고 등 뒤에서 두 남자가 연달아 쓰러졌다. 머릿속에 울리는 시스템 메시지.

[경험치 500 획득]

[경험치 1100 획득]

가온은 신경 쓰지 않고 달렸다.

이 모든 것이 지나치게 빠른 순간 이루어졌기에 요새 위 사람들은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나마 뒤늦게라도 반응한 것은 총성이 울린 덕이었으리라.

누군가가 외쳤다.

“쏴!”

총성이 연달아 울리더니, 사방에서 총알이 쏟아졌다.

당연히도 총알은 빠르다. 지나치게 빠르다. 아무리 빠르게 달린들 두 다리로 저 십자포화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가온은 텔레포트했다.

*******

「도움말 : 4판타지 온라인의 마법은 현실의 마법과 똑같은 원리로 발생합니다. 현실에서 마법을 쓰실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게임에서도 써보십시오. MP가 충분하다면 마법이 발동할 것입니다」

[Mana Point 2/10]

LV.1 캐릭터답게 MP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작 십 미터 텔레포트 해냈지만,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기야 텔레포트는 지나치게 고난이도 마법이다. 현실에서든 이 게임에서든, 이 마법을 목격하기는 어렵다.

“뭐야!”

저들이 놀라건 말건 가온은 제 할 일을 했다.

텔레포트로 거리를 좁힌 덕에 바로 사다리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

걷거나 달리라고 있는 사다리가 아니라 두 손과 두 발로 기어오르도록 걸쳐진 사다리. 그러나 가온이 느끼기에는 계단과 아무 차이가 없다.

순식간에 사다리 위를 달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성벽 위로 올라가는 순간 총격에 노출될 테니, 그 전에 적을 제거해야겠다고.

굳이 방법을 궁리하지는 않았다. 숟가락으로 밥을 뜨는 것보다 살짝 쉬운 일이니까.

성벽 위에서 말소리가 들려온다.

“씹······” “뭐야?”

엘프의 청각에 소드마스터의 예민한 감각이 합쳐지면 유사 반향정위(反響定位)가 탄생한다. 박쥐들이나 지닌, 소리를 통한 위치 색별 능력이다.

그 덕에 보지 않고도 근처 적들의 위치가 모두 파악된다. 숨소리만 들려와도 직접 볼 필요가 없다.

가온은 오른손에 쥔 권총을 들었다.

모름지기 소드마스터는 칼뿐만 아니라 활, 쇠뇌, 창, 할버드 따위 여러 무기의 사용법에 능통한 법이다.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소드마스터인 가온의 경우에는 총도 예외가 아니었다. 덕분에 서부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할 수도 있다.

지금처럼.

적을 보겠답시고 성벽 위로 몸이나 얼굴을 내밀 필요가 없었다. 사다리에 매달린 채 총구만 살짝 내어 다섯 번 쏘았다.

속사.

‘탕탕탕탕탕’ 총소리가 아주 짧은 순간 한꺼번에 울렸다. 비명도 마찬가지였다.

“억!“윽.“악.”윽.”억!”

비명이 울리기 무섭게 가온이 내부로 진입했다.

언뜻 보이는 시체 다섯 구. 모두 정확히 목에 총알이 박혀 있었지만, 거기에 관심을 주지는 않았다.

[경험치 3400 획득]

[레벨 업]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성벽 위는 일종의 밀폐된 복도를 이루고 있었다. 이 요새의 주인은 외부의 적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도 진압해야 했다. 그래서 요새로서는 특이하게도 양쪽에 벽을 세웠는데, 얼간이 짓이었다.

그 벽 덕분에 일단 진입하고 나니 사방에서 총격을 당할 걱정이 없었다. 그렇다면 급할 것이 없다.

가온은 이제 달리지 않고 걸었다. 천천히, 소리 없이.

계속 걷자니 총을 들고 두리번거리던 남자와 마주쳤다.

“어······”

남자가 겨우 자신을 포착한 그 순간에, 가온은 이미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탕, 총성이 울리고서야 남자의 눈이 놀라움에 크게 뜨였다.

물론 늦었다. 너무 늦었다.

[경험치 600 획득]

심장이 터진 남자가 꿈틀거렸다. 가온은 남자의 시체에서 총을 들어 올렸다.

1차 대전에서나 쓰이던 구식 카빈 소총.

탄약이 한 발 남은 권총은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왼손에 롱소드를 들고 오른손에 소총을 든 채 다시 걸었다.

계속해서 소리 없이 사뿐사뿐. 적이 소리를 듣고 자신의 접근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이후로 가온은 계속해서 걷다가 적과 마주치면 쏘고 죽인 뒤 계속 걸었다.

계속해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똑같은 총을 든 두 명이 마주쳐도 총알은 교차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이쪽에서 쏘고 끝날 뿐.

소드마스터의 초인적인 동체 시력은 무조건적인 선제공격이 가능케 한다. 그리고 총은 먼저 쏴 맞히면 그것으로 끝이다. 반격 따위는 없다.

다가오는 총알은 없다.

이 분 지나 열 명을 죽였다. 삼 분이 지나 스물세 명을 죽였고, 레벨이 두 개 더 올랐다. 가온으로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요새가 쓸데없이 넓어 걷는 데만 시간이 꽤 지나버렸다.

그리고 삼 분이면 충분히 긴장감이 생겨날 법한 시간이었다. 과연 요새 위 사람들은 이미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끼고 있었다.

“뭐야 이거. 아직도 못 죽였나봐. 계속 총소리 나······”

“움직여, 움직여······”

귀가 적들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양쪽에서 다가오는 발소리. 양 무리로 나뉘어 다가오고 있다. 포위해서 제압하려는 모양이다.

가온은 눈살을 찡그렸다.

‘앞뒤에서 총 쏘면 못 피하는데.’

이대로 느긋하게 걸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소리를 내면서라도 달려야 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저 멀리에서 또 다른 발소리가 울렸다. 복도에서 울린 것이 아닌, 저 아래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뒤이어 누군가가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소리.

누군가가 성벽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성벽 위로 올라올 사람들이 있다면 신규 플레이어들뿐이다.

그 의미를 알아챈 가온은 살짝 웃었다.

잠시 후, 등 뒤에서 총성이 울렸다. 가온을 향한 총격이 아니었다.

“억······”

가온은 저 멀리서 들리는 단말마를 들을 수 있었다.

뒤이어 복도에 울려 퍼지는 성난 목소리.

“군필 새꺄, 공익한테 죽냐!”

목소리를 떠올려볼 것도 없이 그 공익이었다.

당연하게도 아까는 참고 있었을 뿐 열불이 뻗쳤던 모양이다. 공익이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총성이 연달아 울려 퍼지는 가운데, 공익의 옆에 누군가가 다가와 섰다.

가온은 발소리만으로 몸무게를, 그 신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존무쌍이 공익 옆에 선 것이다.

‘아까 틀딱이라 불린 것도 화나겠다, 도우려나 보지?’

자, 이제 후방에 아군이 생겼다. 단순히 제 자리에서 버틸 뿐인 후방 거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가온은 계속 걸었고, 요새 한 바퀴를 다 걸었을 때 남아있는 적은 없었다.

[레벨 업]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왼손에 들고 있던 검은 휘두를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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