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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4판타지-1화 (1/135)

LV.0 소드마스터 가온 - [서장]

내게 소중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무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어릴 때의 나는 그런 것을 조금도 몰랐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나도 이제 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너무 가여워진 나······.

내 삶의 전부였던 것을 빼앗긴 나는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정말 무섭고도 끔찍한 일이었다.

내가 죽어라 하던 온라인 게임이 오늘 서비스 종료된 것이다.

그것은 내 지난 이십 년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음을 의미한다. 하루 한 시간도 자지 않고 사냥과 레이드에 몰두하던 충실한 나날이.

우울하게 걷고 있던 와중이었다.

시가지를 힘없이 둘러보던 중에 웬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골목길, 그러니까 건달들의 놀이터에서 정의롭지 못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씨발아, 얼마 있냐고?”

인간 양아치 셋이서 키 작은 오크를 압박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못 본 척 지나쳤다. 두려움, 그리고 오크 따위야 저런 일 당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공존했으리라.

나는 이 상황을 화풀이에 쓰기로 했다.

골목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오크 주머니 털기에 한창이던 양아치들이 나를 노려보았다.

얍삽하게 생긴 양아치가 물었다.

“뭐냐?”

“소드마스터.”

내 대답에 감명이라도 받은 걸까? 양아치들은 잠시 침묵했다.

놈들은 내 말에 박장대소를 터뜨려야 할지, 아니면 화를 내야할지 고민하더니 그냥 쫓아버리기로 한 모양이었다.

“지랄 말고 꺼져라. 응? 아님 뒈질래?”

감동적일 정도로 상투적인 대사로군. 보답으로 나는 예쁘게 비웃어주었다.

열불이 뻗친 모양이다. 놈들은 내게 손마디를 뚝뚝 꺾으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내 옆에 떨어져 있던 막대기를 주운 뒤, 막대기 끝을 세 놈에게 겨누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 일부러 힘차게 외쳤다.

“덤벼라! 내 너희 악당들을 무찔러 이 도시를 정화하리라!”

물론 막대기 좀 들었답시고 세 명을 도발하는 것은 똑똑한 짓이 아니다.

그러나 내 막대기를 바라본 놈들은, 비웃으며 덤벼오기는커녕 새파랗게 질린 채 뒷걸음질 쳤다.

내가 한 발짝 다가섰다.

양아치 두 놈이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으, 으어어어······.”

결국 놈들은 땅을 구르며 도망쳤다. 싱거운 놈들. 어쨌건 도시의 정의는 지켜졌노라.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있는 오크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괜찮아요?”

오크는 입을 연 즉시 말을 내뱉지 못했다. 한참을 더듬거린 끝에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거······ 검기예요으?”

오크의 시선은 막대기에서 일렁이는 회색 에너지에 꽂혀있었다.

“이거? 예.”

“소드마······”

“큰 소리로 떠들진 말고.”

오크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고······, 고고고, 고마워요으.”

이후로 오크는 한참이나 굽신거리고, 몸을 떨면서 골목길로 사라졌다.

도시의 어둠 속으로.

나는 그 너머에 펼쳐진 빛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휘황한 불빛이 밤하늘의 별빛을 집어삼켰다. 별보다 휘황하게 번쩍거리는 네온사인과 차량의 헤드라이트.

내가 기억하는 수십 년 전 세상은 이렇지 않았다. 훨씬 조용하고 밤하늘엔 별들이 떠다녔으며, 오크들은 우렁찬 전투함성을 내지르며 평원을 달렸다.

*******

약 백 년 전, 대마법사가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양쪽으로 통하는 문을.

우주적 신비인지 저쪽 세계에도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세계 사람들이 저쪽 세계에 주목했듯, 저쪽 세계 사람들도 우리 세계에 주목했다.

저쪽은 정말이지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세계였다. 저쪽 친절한 사람들은 기꺼이 우리 세계에 문명과 자유를 배달해주려고 했다.

그러니까, 군대를 보내서 세계 전체를 식민지 삼으려 했다는 뜻이다.

전차가 맨드레이크밭을 짓밟는 가운데 전투기가 와이번 떼에 기관총탄을 퍼붓는, 엘프 게릴라들이 유격전을 펼치고 드워프 공병들이 참호를 파야하는 시대가 찾아왔다.

문을 연 대마법사는 책임을 통감했다. 자신이 저 끔찍한 것들을 이 세상에 불러들였으니, 모든 수단을 써서라도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리라.

그러나 대마법사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 정도로 천재였지만 전쟁에 관한 마법은 잘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마법사는 소년들을 소집했다.

나도 당시에는 소년이었다. 다른 소년들과 함께 대마법사의 설명을 들었다.

“여기와는 시간 흐름이 다른 세상이 있다. 여기보다 시간 흐름이 수십 배 빠른 세계가. 여기서 일 년이 그 세계에선 수십 년······ 그러니까 그 세계에서 일 년쯤 훈련해도 우리 세계에선 며칠 지난 셈이지.”

거기서 일 년쯤 보내도 여기선 며칠만 지났을 거라니?

나를 포함한 모든 소년들이 그 말에 혹했다. 소년들은 빠르게 어른이 되길 바라는 법 아닌가.

“그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겠다. 덜 자란 몸을 키우면서, 훈련하라. 숙련된 전사가 되어 돌아와라.”

훈련 계획, 보급 계획 따위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를 돌봐줄 교관이며 노예들과 함께, 우리는 대마법사가 열어준 문에 들어갔다.

비장한 사명감을 품고, 그 세계에 발을 디뎠다.

원래대로라면 고작 오 년쯤 있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언제나 어긋나는 법.

그 세계에서 우리는 원래 계획보다 훨씬 오래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백 년이 흘렀다.

그 세월 내내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조금도 쉬지 않고 휘둘렀다.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훈련과 전투를 거듭하던 어느 날, 내 검이 강렬한 에너지를 품고 빛났다. 잿빛의 검기(劍氣).

그리하여 나는 내가 소드마스터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검객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 지고한 경지에 말이다.

자, 이제 검기도 좍좍 뿜을 수 있게 되었겠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세상을 구원할 준비가 된, 더는 소년이 아니었던 나는 문을 박차고 나왔다.

원래 세상이 나를 맞이했다.

아주 오랜만에 본 고향은 이미 평화로웠다.

*******

‘모쪼록 차분한 마음으로 들어주십시오. 말씀드리기 심히 죄송스럽지만······’

내가 떠난 이후 이십 년이 지났다고 했다.

그러니까 너무 늦게 돌아왔다고.

전쟁은 끝났고, 세상은 변해있었다. 엘프들의 세계수가 불탄 자리에 마천루가 솟아난 그런 세상으로.

심지어 내가 살던 왕국은 공화국이 되어있었는데, 썩 좋은 일이 아니었다. 결코 아니었다.

혼란 속에서 자잘한 싸움을 몇 번 치렀다.

좋은 추억이 되지는 않았다.

공황만이 가중되는 가운데, 뭐가 뭔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변해버린 세상 사람들한테 검기 좍좍 뿜는 구원자 따윈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

결국 혼자만의 요새에 처박혔다. 인터넷이 연결된 요새였다.

어쩌다 손댄 온라인 게임에 파고들었다.

방구석 소드마스터의 탄생.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고, 서비스 종료 공지사항 하나로 그 수십 년은 또다시 물거품이 되었다.

허무하다.

고작 게임 하나 서비스 종료한다고 이러기엔 우습지만 나는 지금 심각하게 자살 생각이 간절하다.

젠장, 내 거의 모든 인간관계가 그놈의 게임에 있었단 말이다!

우울하게 걷자니 주머니가 시끄러웠다.

핸드폰 벨소리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동안 하도 전화가 오지 않았던 탓이다.

“누구세요?”

「여보세요. 가온 씨? 가온 씨 맞아요?」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한국말.

갑자기 왜 이계어(異界語)로 전화가 걸려왔는가? 그 이유를 알아채기는 어렵지 않았다.

내가 한 게임은 한국 온라인 게임이었다. 그 게임에서 서비스 종료를 기다릴 동안, 게이머들과 작별할 때 몇몇 인원과 핸드폰 번호를 교환했다.

한국 서버였고, 당연히 게이머들도 한국인들이었다.

그중 한 명이 내게 연락한 모양이다.

“예, 가온 맞습니다. 그럼 그쪽은 지존무쌍님?”

「예! 지존무쌍 맞습니다! 아, 틀렸음 쪽팔렸을 건데 다행이네. 아무튼 겜 망해서 우울한데 술이나 한잔하죠?」

핸드폰 너머 한국인은 중년 아저씨 같았다. 투박하다 못해 갈라진 목소리.

지금은 그 갈라진 목소리마저 반가웠다.

나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미안한데 저 웬만해선 한국 못 가요. 여권 없어서.”

「여권?」

“겜에서 말씀 드렸지 않나? 저 후긴 공화국 사람인데.”

「후긴? 어, 진짜 이계인이었어요?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인 아니라니까.”

「한국말 너무 잘해서 그건 컨셉인 줄 알았는데? 아무튼 진짜 이계인이라니, 이게 뭔······」

내 보기엔 댁이 이계인인데.

아무튼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게임에서 뭘 했고 그때 얼마나 즐거웠는지 실컷 떠들어댔다.

그러길 한참, 한국인이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말인데······ 딴 게임 같이 안 할래요?」

“딴 게임?”

「4판타지 온라인이요. 들어본 적 없어요?」

당연히 들어본 적 있었다. 내가 하던 온라인 게임이 망한 원인이니까.

문득 길거리 광고를 보았다.

세계 유일, 완벽한 가상현실 구현!

몸소 전장에 뛰어들거나, 병력을 이끌어 세계를 정복하라!

번쩍거리는 광고를 보고 있자니 한국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돈이 돼. 엄청 돼」

“고작 게임이?”

「그래, 게임이! 개발도상국에선 직접 일하는 것보다 그놈의 게임을 하는 게 훨씬 수익 높을 지경이거든? 그 탓에 몇몇 나라에선 사회적 문제로 떠오를 지경이라니까? 한국인들 기준에도 열심히만 하면 최저임금 챙기는 건 누구나 가능하다 하고······」

한국인은 유혹하듯 말했지만, 나는 게임으로 돈을 벌어야겠단 생각은 없었다.

나는 명색이 소드마스터 아닌가. 세상에 일곱 명밖에 없는 존재. 숨만 쉬고 있어도 재벌들이 후원금을 보내온다.

그런데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돈이 되는 게임이면 쉽게 망하지 않을 테니까.

수십 년 붙잡던 게임이 망한 지금, 나는 쉽게 망하지 않을 게임을 원했다.

「그러니까 같이 해요. 분명 돈 많이 벌 거야. 가온 씨 슈퍼 폐인이잖아요? 하루 열네 시간 접속하는 인간 매크로」

한국인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뭐, 해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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