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종결
“뭘 봐?”
“응? 아! 아니야.”
강준은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인을 보며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후우! 춥다. 우리는 언제 구조 될까?”
“글쎄.”
강준은 무언가 잊어버린 것이 있는 것 같았지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척이나 중요하고 왠지 모르게 슬픈 그런 기억 같은데 떠올리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꼭 누군가와 약속을 한 것 같아.’
강준은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곳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
“응? 왜?”
엘리라는 이름의 여인은 강준의 따뜻한 눈빛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알지 못하는 동양인 남자였지만 왠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이었다.
마치 오랜 여인을 마주 보는 듯한 느낌에 엘리는 강준에게 빠르게 빠져들었다.
비록 지극히 위험한 상황에 빠져 있었지만 걱정은 그리 많이 되지 않았다.
강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통 하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두툼한 옷을 껴입고 있었지만 살을 애일 듯한 추위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강준은 자신들이 어째서 이 곳에 온 것인지를 떠올렸다.
‘비행기가 추락을 했지.’
수백명이 넘는 거대한 여객기가 추락을 했다.
그냥 평범한 추락 사고였다.
사망자들에게는 안 된 일이었지만 생존자들은 자신들을 구조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수백명이 타고 있는 여객기가 추락을 했다면 국가 차원을 떠나 전 세계적인 뉴스 거리였고 즉시 구조대가 움직일 터였다.
그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다들 버티려고 했다.
부족한 식량을 최대한 아끼면서 사람들은 서로를 믿으며 협동을 했고 그렇게 충분히 버틸 수 있을 듯 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사람들의 희망은 착실하게 깎여 나갔다.
그렇게 점점 생존자들은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고 분쟁이 터져 나왔다.바로 그 때 고장난 줄 알았던 여객기 안의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투 제로 제로 세븐 원! 투 제로 제로 세븐 원!-
“이 봐! 무전기가 작동한다! 구조대야! 구조대라고!”
백여명 가까운 생존자들이 구조대로 추정되는 목소리에 환호를 하며 무전기로 몰려들었다.
-스킨디나비아 에어 투 파이브 제로! 지직! 들리는가? 스킨디나비아 에어 지직! 투 파이브 제로! 들리는가?-
부서진 항공기 외부로 보이는 250의 숫자는 자신들을 찾고 있는 것이 확실함을 알려주고 있었다.
문제는 연락을 받을 수는 있었지만 상대방에게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 답답함에 수 많은 생존자들이 가슴을 두드려야만 했다.
하지만 희망이 다시 생겼고 어느 날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사람들은 비행기 소리를 들었다며 아우성이었다.
문제는 폭풍우가 전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구조대가 우릴 발견하기 힘들겠어.”
몇 번이고 비행기 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의 고함소리는 폭풍우 때문에 구조대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결국 사람들은 둘로 나누어졌다.
한 쪽은 그대로 폭풍우가 그치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이들과 다른 한 쪽은 비행기가 날아온 쪽을 향해 가자는 쪽이었다.
물론 다들 구조대를 기다리자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식량이 바닥이 나고 있다는 상황에 더는 버틸 여력이 없었다.
거기에 더해 하루에 세 번의 비행기 소리는 두 번이 되고 한 번이 되며 점점 줄어들어 생존자들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남겨진 이들을 뒤로 하고 사람들은 하나 둘씩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길! 숨어!”
데이브의 외침에 엘리와 데런 그리고 젠트 데일리 선혜 미셸이 눈 밭에 엎드린 채로 숨을 죽였다.
“빌어먹을 자식들!”
식수는 눈을 녹여서 어떻게든 해결을 할 수 있었지만 식량이 떨어진 상황에서 식량을 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결국 그들은 식인을 해야만 했다.
누가 먼저 시작을 한 것인지는 몰랐지만 생존자들은 구조대를 찾는 것보다 생존을 먼저 생각하며 각자의 파티끼리 뭉쳐서 다른 파티나 생존자들을 사냥했다.
“뭐지? 이 것은?”
강준은 너무나도 익숙하면서도 끔찍한 상황이 언젠가 겪었던 일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 그 거 나 알아. 데자뷰 같은 거지.”
동료들도 웃으면서 대답을 해 주었고 강준도 그렇게 생각을 했다.
이런 경험을 자신들이 몇 번이고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는 없었다.
“쿨럭! 쿨럭! 아! 정말 살고 싶었는데 말이야. 여기까지인가 봐.”
“젠트! 정신 차려! 젠트!”
한 명 한 명 운명처럼 죽어갔고 남겨진 사람들은 슬픔을 겪으면서도 계속 걸음을 옮겼다.
“오빠! 나 아빠가 보고 싶다.”
“강준씨! 우리 한국으로 돌아가면 데이트 해요.”
“뭔가 이상하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이상해. 이 상황 어쩌면….”
그렇게 다들 한마디씩을 강준의 기억 속에 남기며 사라져 갔다.
하지만 그 것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그렇게 강준의 옆에 있던 동료들 하나하나가 사라져 가면서도 강준은 계속 구조대가 있을 위치로 걸었고 어느덧 혼자가 되어 버렸다.
“하아! 하아!”
하얀 눈에 비친 태양빛에 이미 눈은 멀어 있었고 얼굴의 피부는 다 갈라졌으며 손과 발은 동상에 걸려 끊어질 듯이 아팠다.
정말이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텼다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강준은 너무나도 이질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얀 설원이 마치 예리한 칼로 싹뚝 잘린 것처럼 끊겨 있었고 훈훈한 봄바람이 부는 듯한 초원과 꽃나무가 우거진 땅이 붙어 있었다.
한 쪽에서는 눈보라가 치고 있었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벚꽃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그 벚꽃이 흩날리는 장소에서 사람들은 바비큐 파티를 하고 있었다.
“오! 이제야 왔네. 생각보다 빠른 걸.”
“그러게요. 음 실험체 317번. 저번 실험 때도 상당히 좋은 결과를 내더니 이번에는 결국 성공을 하네요.”
“…….”
강준은 바비큐 파티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말을 하는 것을 이해 할 수 없었다.
“이 봐! 배고프지? 이리 와서 먹어. 뭐 안 먹어도 그리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크큭!”
“그래도 맛은 느껴지니까 와서 먹어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저번에 나도 한 이틀 굶어 봤는데 정말 못 견디겠더라고요.”
“…….”
강준은 자신이 길을 잘못 들었고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여기 구조대 아닙니까?”
“구조대? 아! 맞어!”
피식피식 웃는 남자의 말에 강준은 멍하니 가까이 다가갔다.
“구조 왜 안 해요? 구조 왜 안 하냐구요?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 많아요. 저기! 사람들 있잖아요.”
강준은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외쳤다.
강준의 말에 남자는 웃으며 대답을 해줬다.
“다 죽었어. 너 혼자 살아남았다고. 축하해.”
“축하?”
강준은 축하한다는 남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그리고서는 남자의 멱살을 붙잡고 고함을 질렀다.
“축하는 얼어 죽을! 저기 사람들이 있다고!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구조를 해야 할 거 아니야! 구조를!”
화를 내는 강준의 모습에 남자는 피곤하다는 듯이 강준을 밀쳐내었다.
서 있을 체력조차 없는 강준은 그냥 툭 밀었음에도 불구하고 힘없이 넘어져 버렸다.
“자! 실험 끝났으니까 정리하자고. 최종 생존 실험체는….”
“팀장님!”
강준은 다시 폭풍우가 몰아치는 곳을 향해 달렸다.
그런 강준을 막으려고 몇몇 사람들이 달려들었지만 강준은 폭풍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자신이라도 남은 생존자와 동료들의 시신을 거두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헤매던 강준은 차가운 시체가 되었다.
“아! 꿈이구나.”
그렇게 강준은 다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