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종결
무슨 말을 해도 그 어떤 증거를 들이밀어도 결코 믿지 않는다.
타인에 대한 불신을 넘어 자기 자신에 대한 불신까지 있는 생존자들에게 있어서 팔루의 말은 아무런 믿음을 줄 수 없었다.
“멍청한 놈들아! 지금 보면 알잖아! 저 놈들의 공격이 멈춘 이유를 말이야! 그리고 남은 생존자들은 이제 우리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생각을 해 보란 말이야!”
팔루는 발악을 하 듯이 외치고 있었지만 팔루 자신도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는 상태였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뭘 어쩔 건데?”
중년 남자의 말에 다들 중년 남자를 바라보았다.
“지금 우리 상태로 이 곳을 나간다고 멀쩡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냐? 외상후 스트레스? 후후! 그래. 아마 미치광이 살인마로 감옥에서 평생 살 거나 자살해서 뒤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산다고 다 사는 것이 아니야.”
중년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남자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자신들이 죽인 사람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기억도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살인의 그 순간만큼은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그 기억들이 솟구쳐 날 지경인데 평화로웠던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차라리 저 넘들이라면 모를까.”
중년 남자는 한 쪽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는 이들을 가리켰다.
자신들이야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겠지만 아직 그 끔찍한 상황을 자주 겪지 못한 이들은 괜찮을 지도 몰랐다.
팔루는 그런 중년 남자의 말에 화를 내며 외쳤다.
“그래서 이대로 그냥 죽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저 멍청한 놈들 중에 하나만 살려 주고!”
억울했다.
지금까지 그 고생을 다했는데 엄한 놈들이 살아나간다는 것이 못 견디게 화가 났다.
“난 못 죽어! 그래! 니 놈들 멀쩡하게 못 살 것 같으면 니 놈들이 죽어. 그러면 되겠군!”
팔루의 외침에 다들 표정이 굳어졌다.
자신들이 살겠다는 생각은 점점 없어지고 있었지만 그런다고 타인을 살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특히나 발악을 하며 외쳐대고 있는 팔루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했다.
저벅! 저벅!
“뭐야? 이 새끼! 죽고 싶어?”
한 남자가 잔득 굳은 표정으로 팔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권총을 들고 있는 팔루였기에 겁을 먹을 법도 했지만 그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
마치 쏴보기라도 하라는 듯이 다가오는 남자에 팔루는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이 새끼! 내가 못 쏠 것 같아!”
이미 수 많은 살인을 저질렀는데 또 살인을 저지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것은 다른 이들도 다 알고 있었다.
탕!
발사 된 권총과 함께 남자의 몸이 비틀거리며 선혈이 튀었다.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몸에 맞았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게 얌전히 있을 것이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두 눈을 부라리는 팔루였지만 급소에 맞지 않는 이상 권총 한 발로 사람이 죽거나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더욱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저지력이 약했다.
저벅! 저벅!
총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좀비처럼 발걸음을 내딛는 남자에 팔루는 버럭 화를 냈다.
“정말 죽고 싶은 거야! 죽고 싶냐는 말이다!”
“죽여 봐!”
탕! 탕!
두 발이 더 남자의 몸을 관통해 들어갔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서는 무기도 없는 손을 들어 올렸다.
죽기 전에 팔루의 얼굴을 후려갈기고 죽기라도 하겠다는 듯 했다.
탕!
“하아! 하아! 하아!”
하지만 남자의 생각대로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팔루는 권총으로 남자의 머리를 겨누고서는 발사를 해 버린 것이었다.
끈 끊어진 인형처럼 허물어져 버린 남자는 더 이상 숨을 쉬지도 움직이지도 못 한 채로 이 세계와의 접속을 끊어 버렸다.
“봤지! 이….”
저벅! 저벅!
팔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한 남자가 팔루에게도 다가갔다.
마치 자신도 죽여 보라는 듯한 행동에 마침내 팔루의 얼굴에서도 공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죽고 싶어? 정말 네 놈도 죽고 싶은 거야?”
“…….”
팔루의 손에 들려져 있던 권총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1
바로 코 앞까지 다가오는 남자에 다시금 총성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단 한 발로 남자의 몸이 허물어졌다.
팔루의 손이 흔들려서 권총의 총구도 흔들렸지만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였기에 정확하게 머리를 관통해 들어간 것이었다.
고통도 없이 단숨에 죽음이 찾아왔다.
그 정도라면 나쁘지 않은 죽음이었다.
생존자들 간의 싸움 속에서 이토록 깔끔하게 죽는 경우는 사실 드물었다.
대부분은 칼이나 돌 등으로 무수하게 내려쳐서는 고통 속에 몸부림을 치다가 숨이 끊어지고는 했다.
그 것은 지금 살아남은 이들이 다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죽여 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저벅! 저벅!
그렇게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팔루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편하게 죽자는 듯이 팔루의 권총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었다.
“이 미친 놈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생존자들의 행동에 결국 뒷걸음을 치는 팔루였다.
이제는 몇 명 남지 않은 생존자들이었지만 권총의 총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탕!
또 다시 발사된 총알에 또 다시 허물어지는 몸이었지만 그 것으로 끝이었다.
철컥!
“제기랄!”
총알이 바닥이 난 권총에 팔루는 이를 악물었다.
아직 남아있는 생존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은 팔루의 권총에 총알이 바닥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마치 자신은 왜 고통 없이 죽여주지 못하느냐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가까이 오지마! 가까이 오지 말라고!”
팔루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들을 위협하려는 듯이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런 위협이 통하지 않았다.
퍼억!
팔루의 주먹에 한 남자가 맞아 비틀 거렸지만 팔루가 남을 때릴 거리라면 다른 이도 팔루를 때릴 위치에 도달했다는 소리였다.
퍼억! 퍽!
맞아가면서도 팔루에게 다가온 이들이 결국 팔루의 몸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아악! 하지마! 하지 말라고!”
팔루는 이내 핏투성이가 되어서는 저항을 했지만 그 저항은 부질없었다.
온통 분노에 찬 주먹과 발길질이 쏟아졌다.
아무리 팔루가 마피아 출신이고 육체적으로도 타인들보다 강하다고 할지라도 여러 명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온 몸으로 쏟아져 오는 폭력 앞에 인간은 한 없이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으아악!”
팔루는 온 몸을 웅크린 채로 주먹질과 발길질을 받아내다가 더는 이렇게 맞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있는 힘껏 사람들을 밀어내고서는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히익! 익!”
이대로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도망을 치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자신을 죽이려는 이들을 뿌리치고서는 정글 숲을 벗어나자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사…살려줘!”
팔루는 그들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평생 살아오면서 익힌 생활 패턴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위기 시에는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법이었다.
하지만 팔루는 자신들이 가두어졌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떠올리지 못했다.타타탕!
“아! 제길!”
우리에서 빠져나가려는 위험한 맹수는 죽을 뿐이었다.
온 몸이 박히는 총알에 팔루는 극심한 통증과 함께 점점 의식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아아. 제이미. 루아. 아빠가 미안하다. 선물 사 가….”
팔루는 무엇 때문인지 그 동안 기억을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던 자신의 딸들의 얼굴이 비로소 떠오르는 것에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미안함이 밀려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