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놀라운 진실
타탕!
이제는 죽는 것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누군가가 자신을 죽여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큭!”
강준은 총구를 군복차림의 남자에게 겨누었다.
하지만 군복차림의 남자는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총구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상황이라면 공포에 질리든 할 터였다.
“죽여.”
“…….”
마치 죽여도 상관없다는 듯이 미소까지 짓는 군인에 강준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직접 사살을 하는 거지?”
“무슨 소리야? 빨리 죽여.”
강준의 질문에 남자는 대답을 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자신을 죽이라고 했다.
그런 군인에 강준은 대충 짐작을 했다는 듯이 물었다.
“이미 다 알고 있다. 가상현실이라는 거.”
“뭐? 어…어떻게?”
군인은 강준의 말에 무척이나 놀라며 강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절대 알 수 없는 일을 생존자들이 알고 있으니 놀란 것이었다.
“말해. 왜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거야?”
강준의 잔잔한 말투에는 분노도 공포도 없이 오직 호기심만 들어 있었다.
그런 강준의 질문에 군인은 멍하니 강준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나도 우리가 왜 투입되나 했더니 너 때문이었군.”
“뭐? 나 때문이었다고?”
강준은 군인의 말에 의아해했다.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 할 수 없었다.
“그래. 뭐 다 아는 것 같더니 실제로는 하나도 모르고 있었잖아. 크큭!”
군인은 조금은 불쌍한 듯이 강준을 바라보았다.
강준으로서는 영문도 모를 일이었지만 수 많은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눈 앞의 군인이 필요했다.
“알려줘.”
“…….”
강준의 부탁에 군인은 한숨을 내쉬며 강준을 바라보다가 무언가 고민을 하는 듯 했다.
아마도 말해도 될지 아닐지를 생각하는 듯했다.
“너 일차 실험체지?”
“실험체? 일차?”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처음으로 들어온 것이라면 맞는 말이었기에 강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면 재처리 대상이니 말해 줘도 상관 없겠군. 어차피 이 곳의 기억은 전부 말소되니까 말이야. 2차 실험체들은 이미 망가진 놈들이라 지금처럼 성비 불균형으로 인해 자살자 방지로 투입되는 녀석들이지만 너희들은 고급 실험체들이거든.”
강준은 군인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들을 인간이 아닌 동물 실험체로 보는 듯 한 기분이었다.
‘하긴 이 딴 짓을 할 정도면 그리 생각할 수 밖에 없겠군.’
기가 찰 지경이었지만 강준은 그냥 납득하기로 했다.
“아무튼 나도 잘은 몰라. 정확한 것은 윗 쪽에서 판단하고 그러는 거니까. 아무튼 본래는 이 곳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니 놈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각을 했기 때문에 정신 오염을 막기 위해 우리가 투입된 것 같다. 행여라도 정신오염으로 인해 자살하는 놈들이 늘어나 버리면 골치 아파지거든. 특히나 고급 실험체들이 자살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손해가 막심해서 말이야.”
강준은 어떤 목적으로 자신들이 실험에 동원되고 있으며 그 실험에서 자살은 완전한 실패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실험은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기억을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왜?’
무슨 이유로 이런 실험을 하느냐하는 의문이 강준의 머리 속을 채웠다.
그리고 그런 강준의 표정을 통해 군인도 짐작을 했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왠지 궁금하지? 그럼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봐. 너 정도라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되는 것 같은데 말이야. 아! 실험이 실패해서 초기화하기 위해 우리가 투입되기는 했어도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놈은 진실의 문을 통과 할 수 있거든. 크큭! 뭐가 진실인지는 니가 판단해 보라고. 자! 이제 내가 아는 것은 이게 다야. 팀장급 정도 되면 좀 더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도 다는 모를 거니 헛수고는 하지 말고 살아남아 보라고.”
군인은 더는 알지 못하며 안다고 해도 말해 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강준도 그런 군인에 별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았다.
탕!
강준은 머리가 터져 버린 군인의 몸을 놓아주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의문을 풀지 못하고 더욱 더 혼란스러워졌다.
“끝난 거야?”
“밀러.”
밀러와 밀리나가 잔득 긴장을 한 체로 나타났다.
둘 다 강준과 군인의 대화를 엿들은 것인지 충격받은 표정들이었다.
자신들이 어떤 실험을 위한 실험체라는 것에 맨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
특히나 밀리나는 자신이 2차 실험체이며 1차 실험체들의 욕정을 풀어주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에 더욱 더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경계심보다는 왠지 모르게 강준이나 밀러에게서 성욕이 생겨나는 것에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렇게 자신에게는 기회조차 없다는 것에 밀리나는 자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그들이 말하는 정신 오염 같은 건가 보군.’
강준은 밀리나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에 자신이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준 자신조차도 암담한 상황이라고 밖에는 표현을 할 수 없었지만 그나마 희망이라도 있는 것에 반해 밀리나는 그런 희망도 없었다.
물론 그 희망이라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정도로 작았지만 희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할 터였다.
강준은 밀러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다시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상태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이제 곧 마지막 한 명만이 남겠지만 살아남는 것이 그리 만만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강준과 자신 둘 중에 한 명은 군인이 말한 진실의 문을 넘어갈 수 없다는 것에 둘 중 하나는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것은 밀러도 알고 있는 것인지 강준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강준은 밀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을 했지만 밀러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비록 너와 내가 만들어진 친구 관계라고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한 법이니까.’
강준은 진실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보다 차라리 자살을 통해 뫼비우스의 띠 같은 현실에서 도망을 가고 싶었지만 끝까지 살아남고자 하는 듯한 밀러를 돕고 싶었다.
“실험은 계속 반복된다.”
밀러의 말에 강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이 아니라도 언젠가 가능할 것이라는 말이었고 강준을 안심시키는 것이었지만 강준은 그런 밀러의 말이 자신이 할 말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보다 밀러가 이 생존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아는 것이었다.
‘나는 다음에 통과를 하면 되니까.’
라는 말을 밀러에게 하고 싶었지만 밀러가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강준은 마음 속으로만 다짐했다.
‘만약 기억이 유지되어 새롭데 실험이 시작된다면….’
강준은 자살을 선택할 것이었다.
탕!
“아!”
“…….”
강준과 밀러는 총 소리와 함께 머리가 터져 쓰러지는 밀리나를 볼 수 있었다.
잠시 그녀에게서 시선을 때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해 버린 것이었다.
끝까지 살아남고 싶어했던 그녀였지만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결국 삶을 포기 해 버린 것이었다.
아니 삶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실험체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었다.
그런 그녀의 결정을 강준이나 밀러 모두 막을 수 없었다.
“이 지옥에서 벗어난 것을….”
생존자가 사망자에게 했던 말이 강준의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끝까지 할 수 없었다.
어쩌면 생존자들 모두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이 지옥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었다.
그렇기에 다들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들을 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강준은 죽은 밀리나의 시체를 똑바로 눕혀 주었다.
불필요한 행동에 불과했지만 조금이라도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천국이 있다면 그 곳으로 가서 환생이 있다면 이번에는 좋은 삶을 살아가길.”
어떤 이유에서 이런 실험체가 된 것인지 강준도 알지 못했지만 내세에서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