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놀라운 진실
죽었다가 살아 돌아왔다는 밀러의 말은 놀라웠다.
지금까지 누구도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이는 없었다.
“뭘 본거지? 정말 이 세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진실이 아닌 건가? 우리는 여객선에 탄 것도 아니었고! 저 자들도 실재하는 것이 아닌 건가?”
강준의 질문에 밀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건 나도 몰라. 단지 난 하얀 방에 하얀 옷을 입고 누워 있었다.”
밀러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기억을 떠올렸다.
물론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었다.
지극히 제한적인 정보 밖에는 얻을 수 없었고 그 제한적인 정보조차도 짧은 시간만이 얻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나도 무슨 상황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들었어.”
밀러는 흐릿한 기억들 속에서 들린 남녀의 대화를 떠올렸다.
“생각보다 오래 버티기는 했는데 역시 안 되겠지?”
“그래. 아무래도 이 정도로는 무리지.”
의사나 연구원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무엇을 하는 자들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실험에서는 조금 가망이 있을까?”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몇 명은 꽤나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 뭐 그렇다고 해도 지금의 상황을 어찌 하기란 어려울 것 같으니까.”
남자의 목소리에서 절망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 절망감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밀러도 불안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때 남녀는 조금은 당황한 듯이 한 침대의 남자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제길! 자살했잖아.”
“어휴! 일거리 늘었네. 그만큼 했는데도 자살자가 나오면 어쩌자는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살자가 나오자 남자와 여자는 짜증을 내고 있었다.
밀러는 그 때 자살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욕을 높이고 섹스를 충분히 시켜주는데도 문제네.”
“아마 지금은 아닐 걸! 성비 무너졌잖아.”
“아니 이번에는 가망성이 높다며 신규로 더 투입시켰다고 하더라.”
아직 완전히 의식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머리 속에 남자와 여자의 대화는 들어오고 있었다.
“일단 이건 폐기 처분 하자고. 이만큼 키우기도 힘든데 자살이라니.”
“어쩔 수 없지. 응? 뭐지? 왜 접속 링크가 낮게 나오지?”
여자는 밀러의 침상 옆에서 있다가 밀러의 신체와 연결되어 있던 기계를 보고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결 감도를 높여 봐. 간혹 있는 일이니까.”
“응! 알았어.”
여자는 남자의 말에 밀러의 몸에 연결된 기계를 조작했다.
“으음!”
그러자 밀러는 의식이 아득해지면서 마지 잠에 빠져드는 것처럼 눈이 감겼다.
“…….”
“…….”
강준과 밀리나는 멍하니 밀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도무지 밀러가 하는 말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그 걸 믿으라는 거냐?”
“후우! 알아. 어쩌면 내가 그냥 꿈을 꾼 것인지도 모르지.”
밀러는 자신이 꿈을 꾼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너무나도 생생해서 오한이 돋을 지라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지금 자신들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살은 안 된다. 그리고 죽어서도 안 끝날 것 같다.”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다.
밀러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상황을 언젠가 겪어 본 것 같은 데자뷰를 느끼고 있었다.
그 것이 남자와 여자의 대화를 들었던 것 때문에 느껴지는 감각 같았다.
여기서 죽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시 이 지옥같은 경험을 다시 하게 될 것만 같았다.
문제는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면 다른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정말 한 명만인지 아니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인지 모른다. 그리고….’
밀러는 강준을 바라보았다.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의 강준이 보였다.
어쩌면 자신이 알아챈 단편적인 정보가 강준에게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었다.
“그렇군. 그러니까 자살을 한다면 이 끔찍한 것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이라는 소리로군.”
“강준!”
강준의 말에 밀러는 고함을 질렀다.
어찌보면 강준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계속 반복되는 생존 게임을 해나갈 바에는 이대로 자신의 삶을 완전히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었다.
그 것이 바로 자살이었지만 밀러나 밀리나의 머리 속에 자살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알 수 없는 생각들이 가득했다.
아니 강준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극단적인 상황의 연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강준 자신의 정신력이 강했기도 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강준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어지간한 상황에서도 자살을 하지 않았지만 간혹 나오는 자살자들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자살과 함께 폐기 처분의 불량품이라고 불릴 뿐이었다.
“자살이 아니라고 해도 이 악몽을 끝낼 길이 있다.”
“아니. 이 실험은 실패했다.”
강준은 밀러의 말을 부정했다.
“저들이 개입한 것. 뭔가 잘못되었기 때문이겠지.”
강준은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소총의 발사음을 들으며 생각했다.
정확한 것이 아닌 오직 예상으로만 유추하는 것들이었지만 어떤 존재들이 자신들을 실험에 동원하고 있고 그 실험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고서는 전부 폐기 처분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강제 리셋을 할 수 없는 실험인지 하나하나 죽이는 수고로움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가진 기억들도 전부 진실이 아닐 수도 있겠군. 밀러 너하고의 추억도 만들어 진 것일 수도 있어.”
“…….”
밀러는 강준의 말에 강준과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너무나도 생생한 추억들이었지만 그 것이 잘 만들어 진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만 같았다.
“빈에서 우리가 뭘 했지?”
“미치고 멍청한 짓.”
밀러의 질문에 강준이 웃으며 대답을 했다.
“그럼 됐어. 넌 내 친구다.”
비록 만들어 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밀러는 강준도 자신과 같이 기억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미소를 지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비록 만들어 진 것일지라도 그 것이 자신을 버티게 해줄 유일한 동아줄이라는 생각이었다.
때로는 모든 진실을 알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드는 밀러였다.
“후우! 넌 항상 그랬어. 난 어쩌면 불량품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는데.”
강준은 밀러의 웃음에 고개를 내저었다.
자살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자신을 붙잡아 주지 않을 때 오는 극단적인 행동이었다.
지금처럼 자신을 붙잡아 주는 존재가 있을 때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결국 자살을 포기한 아니 뒤로 미뤄둔 강준에 밀러는 몸을 일으켜서는 강준의 몸을 껴안았다.
“미안하다.”
“아니. 괜찮아.”
밀러는 이 것이 강준의 편안한 안식을 막는 어떤 제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밀러 자신도 자살을 하려고 하면 강준이 지금의 자신처럼 막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무척 잘 만든 세상인데 말이야. 이거 만든 놈 얼굴 보려면 마지막까지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 그런데 강준 넌 어떻게 알게 된 거야?”
밀러는 우연같이 겪은 행운으로 알게 되었지만 강준은 어떻게 지금의 세계가 진짜가 아닌 가짜임을 알게 되었는지 의아해했다.
“종이.”
강준은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고개를 돌려서는 한 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도망가. 온다.”
“뭐?”
강준은 자신의 발 아래 떨어져 있는 자동 소총을 들고서는 달리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익숙한 감각이 되돌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