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보다 왜소해 보이고 연약해 보이는 데런이었다.
그의 가는 팔로는 누구하나 죽이지 못할 것 만 같았지만 제니퍼는 데런이 자신도 무시 못할 실력자임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보통은 여기까지 생존해 있다면 이미 보통은 넘는다고 봐야만 했다.
“죄송하지만 어쩌면 그가 아주 중요한 단서를 찾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대로 죽이기에는 좀 아쉽군요.”
제니퍼는 데런의 말에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지요?”
상대하기 까다로운 상대임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죽이지 못할 상대는 아니었다.
허튼 소리를 한다면 고통 속에 몸부림치게 하며 죽여 버릴 생각인 그녀였다.
“아! 저도 잘은 모릅니다. 하지만 어쩌면 좋은 소식을 알아 올지도 모르지요.”
“죽고 싶어!”
섬의 생존자들 중에 참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들은 사실 없었다.
참고 상대의 말을 듣고 있느니 그냥 죽여 버리거나 잔인한 고문을 통해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 되는 세계였다.
당연히 그녀의 반응은 적어도 이 곳에서는 당연했다.
그렇게 발끈하는 그녀의 몸에서 풍겨나는 냄새에 데런은 피식 웃으며 한 발작 뒤로 물러섰다.
물론 그런다고 냄새가 퍼지는 속도보다 빠른 것은 아니었지만 물러서며 던져진 데런의 단검이 그녀의 뺨을 스치며 지나가는 것에 그녀는 몸을 흠짓할 수 밖에 없었다.
주륵!
붉은 피가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언제 던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제니퍼는 데런이 자신을 죽이고자 마음 먹었다면 충분히 죽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진정하세요. 저도 당신을 죽일 생각이 없으니까. 당신의 힘이 필요할지도 모르거든요. 이제 그만 끝을 내야 하지 않겠나요?”
데런의 말에 제니퍼는 이를 악물고서는 입을 열었다.
“혹시 그들의 정체를 알아내기라도 한 것인가요?”
“분명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저도 알지 못한다고요. 하지만….”
데런은 강준이 누워 있는 넝쿨 족을 힐끔 바라보았다.
마치 강준이라면 무언가 알고 있지 않겠냐는 듯한 행동이었다.
“그러면 그를 잡아서 알아내면 될 거 아닌가요?”
강준이 매력적인 남자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무언가 알고 있다면 무슨 수를 쓰던 알아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제니퍼였다.
제니퍼라고 해서 지금의 생활이 만족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금의 짐승같은 삶이 미치도록 싫었기에 그들이 한 약속처럼 자신 혼자 살아남고 모든 이들을 다 죽여 버리겠다고 미쳐 날 뛰고 있었다.
“아시잖아요. 그 놈들이 새로운 애완동물을 들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데런은 두 팔을 벌리며 재미있다는 듯이 말을 했지만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기와 분노는 제니퍼로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약속과는 틀렸다.
비록 어렵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다지 많지 않은 생존자들로 몇 주 내로 결판이 날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마지막 희망을 짓밟아 버리는 상황이 와 버렸고 강준 뿐만 아니라 제니퍼나 데런은 지금까지의 발버둥이 모조리 헛수고가 되어 버린 것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되어 버렸다.
“그가 알고 있다는 증거는요?”
대화를 할 인내심을 찾은 것인지 제니퍼의 말에 데런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없어요. 단지 그라면 왠지 해결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친놈.”
제니퍼의 욕지거리에 데런은 자신이 생각해도 그렇다는 듯이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 했다.
“당신도 받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그로부터 받은 최후의 만찬. 그리고 그와 만난 이들 중에 두 사람이 배를 만들어 섬 밖으로 떠나더군요.”
“섬을 떠났다고요?”
제니퍼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지금의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배를 만들어 떠났다는 것은 제니퍼로서도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 동안 섬을 떠나면 손목의 폭탄이 터질 것이라고 여겼기에 시도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예! 돌아오지는 않더군요. 잘 빠져 나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테일러와 헉스가 배를 타고 섬을 떠난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 데런이었다.
적어도 상당히 멀리 나가면서도 폭발음은 들지 못했다.
당연히 총소리 같은 것도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상당히 멀리까지 나갔다는 소리였다.
데런은 그들이 무사히 탈출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잘지 못했지만 나름 나쁜 시도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우연찮게도 외부의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면 이 곳에 대해서 이야기 할 테고 누군가는 확인을 하러 올 수도 있는 일말의 가능성은 있을 터였다.
물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의 실망조차도 품을 희망도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
제니퍼는 묵묵히 데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전에 강준씨의 다른 동료였던 선혜씨가 한 말이 있었죠. 섬의 중심부에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
“없었어. 아무 것도.”
제니퍼 그녀라고 해서 섬의 곳곳을 뒤져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혈안이 되 듯이 섬을 뒤졌다.
혹시나 강준처럼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을 최소형 카메라와 도청장치들을 하루 종일 시야가 보이는 공간 내에서 모조리 뒤지고 다녔다.
당연히 섬의 중앙에서 그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강준은 무언가를 발견했던 모양이더군요.”
“뭐?”
제니퍼는 상당히 놀랬다.
강준이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어쩌면 자신들이 이렇게 된 것과 정체불명의 존재들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게 뭐지?”
제니퍼의 재촉에 데런은 더 이상 자신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한 걸음 더 물러섰다.
“칫!”
“그러니까 일단 그를 놔두자는 겁니다. 그리고 복수의 대상은 당신도 아시잖아요. 물론 우리가 지겠지만 말입니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데런의 몸에서 뿜어지는 살기에 제니퍼는 몸이 오싹함을 느낄 수 있었다.
데런이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을 방해한다면 결코 살려 두지 않겠다는 느낌에 제니퍼는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물론 제니퍼도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을 터였다.
‘이미 내 독에 중독되어 있으니까.’
데런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향기를 버틸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결국 이 이상 시간을 끈다면 둘 다 죽게 될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주르륵!
당장 데런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그가 그리 오래 버틸 수 없는 상태임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었다.
휙!
데런은 제니퍼가 던진 무언가를 잡았다.
“난 인내심이 그리 길지 않아.”
“후후! 감사합니다.”
데런은 제니퍼가 던진 것을 입 안에 넣고서는 꼭꼭 씹었다.
지금 중독된 독의 해독제임을 아는 것이었다.
자신의 제안을 제니퍼가 받아들였고 제니퍼는 자신의 계획에 협조를 하려는 것이었다.
“상황이 들어나면 찾아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 말과 함께 제니퍼는 숲의 그늘 속으로 천천히 흡수되듯 들어가서는 사라져 버렸다.
“후우! 정말이지 무서운 그녀군요. 밖에서 만났다면 정말 동료로 삼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강준씨?”
데런은 강준을 불렀지만 대답을 듣기를 원하는 것은 아닌지 강준이 누워 있던 곳이 아닌 정글 숲 사이로 비치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도 그리 오래는 못 기다려 드립니다. 최대한 빨리 알아내 주세요.”
데런은 그 말과 함께 자신도 정글 속의 그늘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이내 적막이 가득하니 그 공간을 채웠다.
“…….”
강준은 천천히 눈을 뜨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