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생각보다는 편안함 밤을 보냈다.
물론 차가운 땅바닥이라 그 한기에 몸이 굳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경험이 처음인 그녀로서는 밤 잠을 설쳤고 밤 세도록 몸을 떨어야만 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는 것만 같았고 실제로도 학살의 현장이 곳곳에서 일어났었다.
다행히 날이 밝아 오면서 그 광란의 시간은 잠시나마 멈출 수 있었다.
생존자들은 다른 생존자들에 대한 불신과 공포를 절실하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강준의 첫 번째 희생자들과는 달리 두 번째 희생자들은 섬에서 살아남아 있는 포식자들에 의해 처음부터 불신의 씨앗이 심어져 버린 것이었다.
인간이기에 협동이라는 힘으로 현상황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박탈당해 버린 것이었다.
“사…살려 주…세요. 제…제발.”
“지…진정해요. 난 당신을 죽일… 생각이 없어요. 우리 함께 합니다. 우리….”
그런 불신과 광기의 시간에도 강준이나 벤이 그랬던 것처럼 공동체를 형성하려고 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으…으아아아! 오지마! 오지 말라고오!”
“허억! 컥! 아…아니 난 단지.”
하지만 모두가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선의에 의해 다가가기만 한 이들은 불신에 막혀 상처를 입어야만 했다.
“이런! 많이 다쳤잖아. 괜찮아? 아! 걱정 마! 난 자네를 해칠 생각이 없어.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다니 정말 문제야.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서로가 힘을 합쳐야 하는데….”
“저…정말 해치 실 건 아니시죠?”
“그럼! 당연하지. 사람들을 모아서 여기를 탈출해야 해. 우리들만으로는 힘들어. 그러니까 나를 믿고 우리 힘을 합쳐서 한 번 해 보자고! 아! 내 이름은 팔루야!”
능수능란하게 사람을 다루는 이들은 하나씩 사람들을 포섭해 갔지만….
씨익!
‘이거 너무나 쉬운데 크큭! 다시 사람들을 모아서 그 놈을 잡는다. 빠득! 이번에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
섬에서 살아남은 포식자들이 그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왔다.
또 다른 분쟁과 피의 씨앗들이 섬의 곳곳에서 싹이 트고 있었다.
그렇게 섬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듯 하면서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아저씨. 일어나 봐요. 아저씨!”
밀리나는 강준이 여전히 깨어나지 않는 것에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며 결국 강준의 몸을 흔들며 깨우려고 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기에 강준이 죽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계속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 건 죽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자신은 시체를 안고서는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준으로부터 진실을 듣고 난 뒤에 넝쿨 더미를 빠져나와 돌아다닐 용기는 없었다.
평범한 일반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한 현실이었다.
“흐윽! 흑! 흑! 허억!”
언제 누구에게서 넝쿨 더미가 들추어질지 알 수 없었기에 울음소리도 시원스럽게 낼 수 없어 가슴 속으로만 울음을 터트려야 했다.
평소에는 그 죽음이라는 것이 조금은 멀게만 느껴졌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가깝게 자신의 옆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밀리나가 한참을 두려움에 떨며 울음을 죽이고 있을 때 자신의 머리를 덮는 커다라면서도 따뜻한 손을 느낄 수 있었다.
“울어. 마음대로.”
짧지만 강한 한 마디였다.
분명 울면 위험한 일들이 생길 것 같았지만 강준의 말에 왠지 그래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흐아앙! 으! 엉! 엉엉! 흐어엉!”
막혔던 둑이 무너져 봇물 터지듯이 눈물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무서운 남자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리는 밀리나는 스스로도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이렇게 억지로 가두지 않고 넘쳐 흘려보내야만 진정이 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밀리나의 울음소리는 조용하기만 하던 섬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숨을 죽인 채로 사냥감을 찾던 이들에게 여인의 울음소리는 무척이나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다.
이제는 단지 생존을 위한 사냥이 아니라 광기에 의한 학살로 넘어가 버렸다.
“흐흐흐.”
그렇게 밀리나를 향해 몰려드는 하이에나들은 울음소리가 넝쿨 더미 안이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흐흐! 거기 숨어 있었구나. 귀여운 것. 울음소리가 힘 찬 걸 보니 싱싱한 게집인가 보군.”
남자에 비해 여자는 조금 더 활용도가 컸다.
물론 그 여자의 입장에서는 끔찍한 일이었지만 이성은 마비 되어버리고 본능만 남은 이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렇게 넝쿨 더미를 들추어내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곧 이 손은 우악스럽게 변해 강압스러운 폭력을 행사하게 될 터였다.
하지만….
오싹!
그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돋아나는 소름과 함께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남은 감각이 주는 경고는 더 이상의 행동을 멈추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가는 기분 나쁜 느낌은 자신과 같은 하이에나가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상대를 의미했다.
마치 상처 입은 호랑이가 천천히 이빨과 날카로운 발톱을 빼어들려고 하는 느낌이었다.
도무지 이해 할 수는 없었지만 허약하기 짝이 없는 토끼 한 마리를 최상위 포식자 중에 한 명인 호랑이가 보호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라.”
그리고 들려온 말은 영어가 아닌 이질적인 언어였지만 그의 뇌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언어와 비슷했다.
“이익! 죄…죄송합니다! 으익!”
그는 한국어를 알지 못했지만 자신이 노린 상대가 누구인지를 알았다.
살인과 약탈이 일상이 되어 버린 곳이 되었지만 점차 나름의 규칙과 서열이 정해지는 것은 생태계라면 너무나도 당연했고 그 먹이 사슬 또한 형성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강한 늑대라도 사자와 호랑이에게는 이길 수 없는 법이었다.
그렇게 강준은 섬의 생태계에서 가장 강한 포식자 중에 하나로 군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강준의 품에 안겨 울고 있는 밀리나는 그 왕의 여자였고 물건이었다.
왕의 자리를 찬탈하기 전에는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역린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호기롭게 욕망을 풀 대상을 찾아온 그는 허겁지겁 도망을 쳐야만 했고 그 주위에서 그런 그를 지켜보던 다른 하이에나들은 입맛을 다시며 물러나야만 했다.
자신들이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무리 강한 호랑이라고 할지라도 수십의 사냥개에게는 잡힐 수도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모여든 하이에나들은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호랑이 사냥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굳이 건드릴 필요는 없지. 그나저나 마침내 찾았군. 여왕께서 좋아하실 거야.”
꽤가 많은 여우 한 마리가 미소를 지으며 어디론가로 바쁘게 다리를 놀렸다.
그토록 찾고자 하던 존재를 마침내 찾아낸 것이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신출귀몰한 강준을 찾기란 요원한 일이었고 설령 찾는다고 해도 자신의 여왕에게 찾아갔을 때는 이미 강준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는 일일 수 밖에 없었다.
“히히! 족쇄구나. 족쇄야. 암! 호랑이라도 짝짓기는 해야지. 크큭!”
강준의 몸에 족쇄가 생겨버렸으니 전과 같은 신출귀몰은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흔적을 남기지 않던 강준과는 달리 그 족쇄는 사방에 흔적을 남기게 될 터였다.
바로 지금처럼….
그리고 여왕에 의한 사냥이 시작될 것이었다.
무척이나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여왕에게 걸리는 사냥감은 설령 호랑이라고 할지라도 쉽지 않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