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겟 어 라이프-143화 (143/161)

##143 비밀의 열쇠

“…….”

수도 없이 사람을 죽여 봤지만 이번에는 죽이지 못했다.

죽이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꺾어 버릴 수 있었지만 강준은 할 수 없었다.

상대가 여자였기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제길! 왜! 왜 왔어! 이 곳에 왜 온 거냐고!”

자신들이 마지막이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절대 다른 피해자가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빌어먹을 존재들은 또 다시 사람들을 밀어 넣었다.

마치 참혹하면서도 차가운 실험실에 아무 것도 모르는 생쥐들을 집어넣는 것처럼 두 번째 개체들을 밀어 넣은 것이었다.

강준은 도무지 무엇 때문에 이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들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인류를 위한 실험에 대한 희생이라면 차라리 자기 위안이라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이 광경들을 쳐다는 보고 있는 건가?”

섬을 온 종일 뒤지고 다녔어도 카메라와 같은 것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재미와 도박을 위해서라면 카메라라도 있어야만 할 터였다.

“저…저기요.”

새로운 사람들이 투입되면서 처음의 약속과도 달라져 버렸다.

마지막 생존자를 무사히 나가게 해 주겠다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모두가 죽을 때까지 잔인한 데스 매치가 벌어지게 될 것이었고 마지막에 살아남는다고 해도 또 다른 생쥐들이 밀려들어 오게 될 터였다.

“우욱! 욱!”

강준은 그 생각이 머리 속에 들자 갑자기 헛구역질이 나왔다.

아무리 강준이 이 것 저것 다른 이들보다 많은 식량을 찾아 섭취를 해 왔다고는 하지만 그 것은 최소한의 영양 섭취일 따름이었지 뱃 속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헛구역질을 해도 강준의 입에서는 침과 위액만이 흘러나올 뿐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강준은 자신의 몸 속에 들어있는 것을 게워 내고만 싶었다.

“어억! 욱! 우욱!”

“저…저기! 괜찮으세요? 흑! 죽지 마세요. 제발! 죽지 말아요.”

여인은 방금 전까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강준이 헛구역질을 하며 괴로워하자 울면서 강준에게 죽지 말라고 소리쳤다.

강준이 듣기에도 기가 찰 일이었지만 이런 지옥에서 혼자 남겨질 것이 더욱 두려워서 일지도 몰랐다.

세상에서 인간이 가장 무서운 존재이지만 인간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존재였다.

그렇게 온 몸의 기가 다 빠져나가버려서는 땅바닥에 널브러진 강준의 옆에 울면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여인에 강준은 허탈한 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한 번만 이야기 한다. 선택은 니가 해라.”

“예?”

무슨 선택을 하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준은 일체의 설명도 없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평범한 크루즈 여객선의 관광객이었다. 난 3000여명의 여객선 관광객 중에 한 명이었어. 몇 일 동안은 아무런 일도 없이 그냥 그렇게 아니 너무나도 평화롭게 바다 구경을 했지. 그러다가 사건이 터진 거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그녀의 얼굴이 공포로 번져갔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몰라. 아니 알아도 의미가 없을지도 몰라. 우리는 그들에 의해 이 이름 모를 섬에 끌려왔고 이 팔찌를 차게 되었어.”

강준의 손에서 붉은 반짝임과 함께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 다른 관광객을 죽여야만 했어. 그러지 않으면 내가 죽게 되거든. 그들은 말했지. 단 한 명만이 이 지옥에서 빠져나가게 해주겠다고.”

강준은 애초부터 희망 없는 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과 함께 했던 그들과 함께 이 지옥같은 섬에서 빠져나갈 그 의미없는 꿈을 꾼 것을 말이다.

“그래서 다 죽었어. 아니 이제 몇 명 안 남았지. 서로가 죽고 죽이는 게임이 거의 끝이 날 때가 되었거든. 뭐 나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남은 누군가는 이 곳에서 나가서 이 곳에서 있었던 일을 세상에 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거든.”

강준은 자신이 매우 아주 멍청하게 순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큭큭큭! 정말 바보 같다니까. 설마 그 것을 믿었다니 말이야. 어린 아이도 믿지 않을 그 것을 믿었다니. 크크큭! 크하하하하하!”

“…….”

강준의 이야기에 그녀 또한 어떤 상황인지 이해를 하고서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선택해.”

너무나도 무미건조해서 소름이 돋아나는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며 강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는 자신이 조금의 긍정만 보인다면 고통 없는 죽음을 줄 것만 같았다.

‘죽는다.’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그 근처까지도 실행을 할 마음을 먹은 적은 없었다.

단지 삶에 대한 서투른 투정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강준이라는 칼로 자살을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강준은 기다려주고 있었지만 그 결정을 뒤로 미룰 수는 없다는 단호함을 지금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죽고 싶지 않아.’

모든 인간의 아니 모든 생명체가 가진 살고자 하는 본질적인 욕망은 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 또한 비록 희망이 보이지 않는 끔찍한 현실이 눈 앞에 펼쳐질 것임이 분명함에도 죽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

그 두려움 가득한 살고자 하는 치열한 아우성을 강준이라고 못 알아차릴 리가 없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격렬한 거부 의사에 조소를 흘려야만 했지만 인간이란 자신이 직접 겪고 느끼기 전에는 그 실상을 이해 할 수 없는 존재였다.

판도라의 상자를 직접 열어야 직성이 풀리는 동물이었기에 강준은 그 지옥의 문이 열리는 것을 직접 보겠다는 것에 딱히 말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도와 줄 생각은 또 없었다.

‘정을 주면 안 된다.’

지금까지 정을 준 이들 모두가 자신을 떠났다.

그로 인한 상실감은 너무나도 감당하기 어려워서 지금도 가끔씩 멍하니 있고는 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자살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강준을 죽일 수 있는 최적의 순간일 정도로 강준은 외부에서의 감각을 완전히 닫아 버리는 것이었다.

“…….”

그리고 지금 강준은 이름도 모르는 여인을 눈 앞에 두고서는 외부와의 관계를 닫아 버렸다.

“저…저기요?”

그녀가 만약 나쁜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강준으로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로 강준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 봐요! 괜찮아요? 이 보세요.”

분명 눈을 뜨고 있었기에 죽은 것은 아닌 줄 알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멍하니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강준에 그녀는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비록 자신을 죽이려고는 했지만 점점 어두워져가는 주변에 강준 말고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강준의 말이 아니라고 해도 이미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죽음의 생존 게임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강준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흐윽!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죽지 마요! 흐으윽! 제발 정신 좀 차려 보시라고요! 무섭다고요! 제발!”

혼자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부스럭!

“……!”

그녀는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에 순간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칫 자신을 죽일 무언가 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도…도망가야해.’

그녀는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을 했지만 어디로 도망을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정글 속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고 그 어둠 속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것이었다.

결국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도망보다는 숨는 것을 선택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숨을 곳을 찾던 그녀는 때마침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있는 곳 사이로 넝쿨이 가려진 공간을 볼 수 있었다.

넝쿨들에 피부가 꽤나 쓰라질 듯도 싶었지만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그렿게 그녀는 그 쓰러진 나무 사이의 넝쿨 더미 속으로 들어가려다가 여전히 멍하게 있는 강준을 보았다.

무언가가 점차 다가오는 듯한 소음이 들리고 있었기에 빨리 숨어야만 했지만 강준을 그냥 놓아두어야 할지 고민이 되고 있었다.

“아…아저씨, 누가 와요. 숨어…야 해요.”

소리를 죽이느라 들릴듯 말듯 한 목소리로 강준에게 말을 했지만 강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강준에 아절부절 못했다.

자신이 그냥 혼자 숨는다면 강준은 살해 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을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아직까지는 때가 타지 않았다.

질! 질!

결국 그녀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스스로도 이해를 못하며 강준의 몸을 있는 힘 없는 힘 다 짜서는 넝쿨 더미 속으로 밀어 넣고서는 자신의 몸도 강준의 몸 위에 포개서는 숨을 죽였다.

“읍!”

그리고 얼마 뒤에 인기척이 주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서는 숨마저 멈추어야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집중력은 그다지 오래 가지는 못했다.

단지 숨는 행위였지만 극심한 긴장감에 기진맥진해서는 어느 순간 의식을 놓아 버리고야 말았다.

강준과 그녀는 넝쿨 더미 속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어둠을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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