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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 어 라이프-141화 (141/161)

##141 비밀의 열쇠

인연이란 무척이나 가늘디 가는 실로 연결되어 있다.

그 때문에 인연의 실은 때로는 너무나도 쉽게 끊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실은 다시 묶어 이을 수 있는 법이었다.

그렇게 실을 다시 묶을 의지만 있다면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인연이었다.

비록 그 실들이 때로는 엉키고 엉켜 도저히 풀 수 없을 지경이 되더라도 그 실을 풀어내거나 끊어내는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강준은 과연 자신이 이 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이제는 알 수가 없어졌지만 숨을 쉬고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인연들이 만들어지고 자신의 길이 생겨나고 있었다.

인간의 길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인연들이 모이고 모인 가운데 생겨나는 길이었다.

그렇기에 강준 또한 다른 이들로부터 끝임없이 영향을 받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크륵! 크륵! 큭!”

강준은 자신의 몸 아래에서 숨을 쉬고 싶어서 꺽꺽 대는 남자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해 왔던 이들이 누구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름이 뭐지?”

무슨 생각이신지 강준은 순간 힘을 빼며 물었다.

힘을 뺏다고는 하지만 고작해야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 뿐이었으니 남자는 자신이 죽음을 벗어나기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커억! 컥! 아담 세일.”

아담은 자신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는지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서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고통스러웠지만 그 것만큼은 꼭 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가 이 곳에서 부정되기만 할 것 같은 공포가 들었다.

죽음의 공포는 그 어떤 것보다 두려운 것이었지만 그 다음으로 잊혀지는 공포 또한 두려운 것이었다.

“아담 세일.”

강준은 아담의 이름을 조용히 읍조렸다.

그 이름을 나중에도 기억할지 못할지는 스스로도 장담을 할 수 없었지만 아담은 강준과의 인연이 이어졌고 그대로 자신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위안이 들었다.

이 죽음의 섬이 아닌 밖이었다면 저주의 말을 퍼부었을 것이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살아있는 것이 더욱 더 고통스러운 세계였기 때문이었다.

“고생했습니다. 나중에 따라 갈게요.”

강준은 그 말을 끝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인간의 생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질겼지만 때로는 너무나도 허망할 정도로 쉽게 끊어졌다.

삐빅!

이제는 완전히 목숨이 끊어졌다는 소음이 들려오고 강준에게는 좀 더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소음이 들려왔다.

이제는 그 소음에도 지독한 모멸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신체뿐만 아니라 뇌까지도 완전히 적응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인간의 뇌란 생각 이상으로 적응이 빠른 기관이었다.

특히나 생존을 위한다면 그 어떤 것으로든 적응을 할 수 있는 것이 뇌였다.

그 적응을 막고 있는 것이 도덕이니 법이니 하는 것들이었지만 그 것이 사라지고 나면 뇌는 변해버리고야 만다.

그렇게 변해버린 뇌의 명령에 신체는 너무나도 쉽게 변절을 해 버린다.

강준은 그렇게 죄책감조차도 느끼지 못한 채로 살인을 하고 숲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래지 않아 다시 만난 생존자에 강준은 자신이 길 다가 단 덜 익은 과일을 던져 줬다.

“…….”

마치 유령처럼 나타나 있는 강준에 생존자는 식은 땀을 흘리며 강준을 바라보았다.

온 정신을 기울여서는 주변을 주시하고 있던 그에게 인기척도 없이 자신의 가까이 나타난 존재는 공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라는 의문조차도 떠오르지 않은 채로 자신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만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강준이 자신의 몸 앞에 던져 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단지 고양이 앞에 쥐처럼 덜덜 떨면서 고양이가 배가 부르기만을 기도할 뿐이었다.

“먹어.”

강준은 그 말을 하고서는 남자의 앞에서 사라졌다.

방금 전의 남자는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죽이지 않은 것은 강준의 생존 시간 때문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사실 강준도 알지 못했다.

그냥 그 때의 기분이 그런 다른 상황을 만든 것 뿐이었다.

사람들은 이유를 찾지만 사실 그 것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어떤 행위에 대한 이유.

그 것은 그 것이라도 알지 못하면 너무나도 허탈하고 억울하기에 알려고 하는 것이었다.

세상 일이란 그렇게 너무나도 단순하고 어이없이 흘러가는 일들 투성이였다.

그런 세상에서 원인과 결과를 찾아내려는 것은 그래야만이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허억! 허억!”

강준이 사라지고 난 뒤로도 한참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로 눈동자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던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서는 자신이 있는 곳이 안전한 곳이 아님을 알고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툭!

그렇게 몸을 일으키고 난 뒤에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발에 걸린 것에 남자의 시선이 자신의 발 아래로 향했다.

“과일?”

이름을 알 수는 없었지만 그 것이 과일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계속 굶주려야만 하는 상황에 먹을 것은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

비록 그 것이 악마가 준 것이라고 할지라도 받아들여야만 했다.

남자는 강준이 준 덜 익은 과일을 손으로 집어들고서는 더욱 더 빠른 눈동자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자신의 먹을 것을 누군가가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생겨난 것이었다.

“크크르!”

남자의 입에서는 경고의 울부짖음이 짐승의 그 것처럼 흘러나왔다.

그 누구에게도 결코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이 으르렁거리던 남자는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렇게 정글 속으로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강준은 그 남자가 앞으로 어떻게 할지 관심도 없이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을 바라보았다.

배낭.

강준조차도 정말이지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안에 무기와 먹을 것 및 약간의 생필품이 들어 있던 전투 배낭이었다.

처음부터 가져다 놓았던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남몰래 놓고 간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강준은 배낭을 발견했다.

총이나 칼 등의 무기가 들어 있기에 생존을 위해서는 대단히 유용한 물건이었다.

한동안 섬에 총소리가 들렸다가 이제는 거의 들리지 않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강준이 꽤나 섬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배낭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것이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강준은 그렇게 발견된 배낭을 열어 보고 난 뒤에 작은 비스켓 조각이 들어 있는 과자 봉투를 꺼내었다.

생각해 보면 그다지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비스켓 과자에 강준도 멍하니 바라보게 만들었다.

안에 들어 있는 무기보다 더 이 별 것 없는 먹을 것에 강준의 신경을 더 기울이게 만들고 있었다.

다른 생존자들보다 원활하게 식사를 해결해 나가고 있던 강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내가 풍기는 비스켓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입가에 침이 고이던 강준은 한참동안이나 그 것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슬픈 표정을 지었다.

“미...미안해.”

그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있던 강준이었지만 터져 나오듯이 나온 목소리에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에 강준은 한참을 소리없이 울고 난 뒤에 배낭을 짊어지고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어설프게 만들어진 무덤가들의 앞에 작은 비스켓 조각들이 하나씩 놓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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