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비밀의 열쇠
테일러와 밀러는 아무런 말 없이 한참동안 서로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강준이라는 이름의 연결고리 말고는 서로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는 두 사람이었다.
특히나 밀러의 상태는 그다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미치광이가 된 것인지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연신 강준이라는 이름만을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완전히 이성이 날아가 버리지는 않은 것인지 테일러가 강준에 대해서 알자 더 이상은 덤비지 않고 있었다.
테일러 또한 이런 상태의 밀러로부터 강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후우! 그래도 물어 봐야겠지. 강준. 그 동양인 남자.”
테일러는 최대한 강준의 특징에 대해서 밀러에게 설명을 했다.
그렇게 테일러가 구체적으로 강준의 생김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나가자 밀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비록 실어증에 가까운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태였지만 미친 것은 아니었다.
더욱이 밀러는 강준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과도 같은 생각으로 머리 속이 가득했기에 강준을 알고 있는 듯한 상대가 나타나자 거친 숨을 내쉬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후우! 맞는 것 같네. 혹시 그 강준이라는 남자하고 아는 사이에요? 친구?”
“가…강준.”
테일러의 말에 밀러는 말을 더듬거리며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강준의 하나 뿐인 아니 이제는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친구임을 격렬하게 전하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친구? 친구 맞다고요? 음! 나 강준 얼마 전까지 같이 있었어요.”
테일러는 강준과 자신이 함께 있었다는 말을 하며 자신은 밀러의 적이 아님을 말하고자 했다.
덥썩!
하지만 테일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밀러의 우악스러운 손이 테일러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강준. 강준?”
“커억! 컥!”
강준이 어디에 있냐는 듯이 두 눈을 부릅뜨며 손에 힘을 주는 밀러에 테일러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만 해! 강준을 만나고 싶다면 말이야!”
테일러의 외침에 밀러는 두려운 듯한 눈빛으로 테일러의 멱살을 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강준을 만나야만 했다.
그렇기에 강준과 함께 있었다는 테일러의 말에 한없이 약자가 되어야만 했다.
만약 테일러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강준을 두 번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겨났다.
그렇게 테일러의 눈치를 보며 몸을 덜덜 떨어대는 밀러의 모습에 테일러는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비밀의 열쇠라고 생각을 했지만 눈 앞의 열쇠는 반쯤은 망가져 있었고 쉽사리 열릴 것만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내야만 해.’
사실 알아낼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엄청난 지적 호기심도 아니었고 세기의 발견일 것도 아니었다.
설령 알아낸다고 해서 그 누가 알아 줄 것도 아니었다.
당장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줄 그런 비밀도 아니었다.
하지만 테일러는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의 온 몸을 뒤덮고 있다는 생각을 밑바닥에 깔고 있었다.
한마디로 자신은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테일러였다.
그런 상황에서 테일러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해야 할 사명감이 존재한다고 여겼다.
그 것이 이성적으로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 테일러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하얀 종이. 그리고 이 곳의 이상함. 마치 이 세상에 우리만 존재하고 있는 것 같은….’
테일러는 아직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며 그 비밀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 태웠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금 강준을 만나거나 강준이 찾은 하얀 종이의 비밀을 알아내야만 했다.
“강준이라는 남자에 대해서 말해 줘 봐!”
테일러는 밀러에게 강준에 대해서 말하라며 위압적으로 말을 했다.
마치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강준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협박과도 같았다.
그 때문인지 밀러는 저신보다도 왜소해 보이는 테일러에 공포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더듬더듬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테일러는 상당히 이해하기에는 어려웠지만 강준에 대해서 조금씩 알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전해들은 내용들이 너무나도 부족하기만 했지만 아무 것도 없는 사막에서 한 모금 생명수와도 같았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두 사람은 강준이라는 한 명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밀러가 강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밀러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 테일러 또한 잠시 동안 본 강준이었지만 자신이 만난 강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강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해나가면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것이 사실 강준이라는 남자에 의한 동질감은 아니었다.
단지 오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이 체감하기에 너무나도 오랜만에 이루어지는 한 주제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때문에 오는 동질감이었다.
하지만 그런 동질감은 두 사람 모두 극단의 기로에 의한 정신적 충격 덕분인지 묘한 반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동료라고 보기에는 어색하지만 동료가 아니라고 보기도 어려운 관계가 되어 한 존재를 찾아 죽음의 섬을 떠돌아다니게 된다.
한편 뗏목을 만들어 섬을 빠져나가고 있던 헉스는 자신이 인질로 잡아 놓은 남자의 이름이 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의외로 그 세인이라는 남자 또한 바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남자였다.
“이 쪽 방향은 맞지만 이 쪽보다는 좀 더 북 쪽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야?”
“그래. 내 기억으로 조금 더 북 쪽으로 가면 도시가 나온다.”
세인은 헉스의 무모함에 고개를 가로젓다가 생각보다 튼튼한 사모안식 뗏목과 바다의 상태에 어쩌면 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세인 또한 바다를 통해 육지로 가자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홀로 남겨지기 전 자신에게도 동료가 있을 때 배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헉스가 만든 땟목 이상의 배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너무나도 어려웠다.
특히나 바다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설픈 뗏목으로 바다를 건널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러던 중 결국 세인도 동료들을 모두 잃고 자신만 살아남아 버렸다.
그리고서는 바다로 탈출을 하겠다는 꿈을 포기 한 채로 살아남기 위한 노력만을 할 뿐이었다.
‘그래. 차라리 잘 된 거다. 그냥 아무 것도 해 보지 못하고 죽는 것보다는 이런 도전이라도 해 보고 죽는 것이 낮겠지.’
세인은 자신의 욕기 없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과 함께 원항이 가능한 배를 만들겠다고 의기투합했던 동료들이 떠오르는 세인이었다.
그 때 조금 튼튼한 뗏목을 만들어서는 차라리 탈출을 했다면 동료들의 허무한 죽음도 없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이었고 세인은 회한에 찬 눈으로 넓고 넓은 수평선만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그다지 구름이 끼지 않아 하늘의 별자리는 선명하게 보였다.
항해도구가 있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그런 것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해류를 타야해. 하지만 이대로는 해류를 탈 수 없다. 그리고 돛이 너무 작아. 이 걸로는 제대로 바람을 탈 수 없다.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라도 펼쳐서 최대한 바람을 받아야해.”
뗏목식이었지만 나름 바람을 이용하기 위해 돛도 만들어 둔 헉스였다.
천으로 죽은 이들의 옷을 벗겨 얼기설기 만들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세인은 너무나도 부족해 보였다.
그렇기에 자신이 입고 있던 옷 전부를 벗어서는 바람을 최대한 받을 수 있도록 돛을 보강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살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그런 세인에 헉스는 자신의 시도가 생각 이상으로 성공적이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이 왔었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
하지만 이제는 그 방향조차도 가름 할 수 없을 정도로 죽음의 섬의 그림자도 발견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와 있었다.
이제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