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겟 어 라이프-132화 (132/161)

##132 위험한 공존

테일러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가 살아 있다는 것에 안도를 하면서도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느끼고 체념을 했다.

이제 자신은 눈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에게 살해를 당하고 말 터였다.

쏴아아아아아!

눈을 뜨는 것도 힘겨울 정도로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테일러는 눈을 감았다.

맥이 풀린 지금의 상태에서 눈 앞의 생존자를 이길 것 같지 않았다.

이미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다들 숙련된 사냥꾼들일 터였다.

그런 사냥꾼 앞에서 무방비의 상태로 모습을 드러냈으니 남은 결말은 하나뿐이었다.

“아! 나도 지쳤다. 정말이지 지쳤어. 집에 돌아가서 소고기 스테이크에 감자 샐러드가 먹고 싶네.”

테일러는 미소를 지었다.

아득바득 살려고 하다가 이렇게 모든 것을 놓아버리려고 하니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이었다.

이내 자신의 몸 속으로 차가운 것이 뚫고 들어올 것이라며 기다리는 테일러였다.

“…….”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충격은 없었다.

“왜 안 죽이는 거냐?”

눈을 감은 채로 테일러는 잔득 화가 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비참하고 비루하게 죽고 싶은 마음은 없는 테일러였다.

만약 눈을 뜬다면 죽음의 각오가 사라지고 비굴한 매달림이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 것만 같았다.

만약 다시 살아남는다면 또 다시 살인귀가 되어 사람 고기나 씹어 먹으며 사람 백정 짓이나 할 터였다.

그렇기에 테일러는 눈을 뜨지 않으려고 한 것이었다.

“죽여라. 마지막 경고다. 지금 날 죽이지 않으면 내 너를 씹어 먹고 말테다.”

테일러의 목소리에서 음산함과 함께 살기가 느껴졌다.

이 것은 진정으로 사람을 죽여 본 자에게서만이 나오는 그런 종류의 느낌이었다.

“…….”

하지만 상대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테일러는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의 앞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존재감.

터무니 없는 과학적이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지만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물적인 감에 의지하기 시작하면서 이 미묘한 존재감을 본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존재감이 여전히 몸 바로 앞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자식!”

테일러는 결국 눈을 떴다.

붉게 충혈이 되어 있는 그의 눈에 빗속에 서 있는 한 인형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일러는 그 인형을 향해 달려들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상대가 자신이 어찌 할 수 없는 상위 포식자임을 느낀 것이었다.

‘제길!’

상대가 방심하지 않는다면 자신으로서는 어찌 할 수 없다는 그런 느낌.

그 것은 종 자체가 틀린 그래서 반항이 의미가 없는 그런 상태를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

“…….”

테일러와 정체불명의 존재는 그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뭐냐.”

테일러는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은 채로 자신을 바라만 보고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무언가 사소한 듯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마치 흥밋거리가 생겼는데 그 것을 해결할까 말까 하는 듯한 느낌인 것이었다.

테일러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일이었지만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오르는 분노와 살인 충동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단은 살아남아야만 했다.

눈을 뜬 순간부터 테일러는 다시금 살인귀이자 식인귀가 되어 버린 상태였다.

눈 앞의 감당 어려운 포식자를 기필코 죽여 버릴 그런 사냥꾼이 되려는 테일러였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생존의 법칙을 떠올리는 테일러였다.

그렇게 이를 악물며 정체불명의 존재를 노려보는 테일러는 정체불명의 존재의 몸이 살짝 흔들린다는 것을 보았다.

“뭐?”

퍼억!

방심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테일러는 자신의 얼굴을 강타하는 느낌과 함께 곧바로 의식을 잃어야만 했다.

정체불명의 존재는 테일러의 얼굴을 향해 빠르면서도 강력한 발을 내질렀다.

거의 준비단계 없이 뻗어 나온 발차기에 테일러는 막을 사이도 없이 기절을 해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기절을 해서는 땅바닥에 널브러진 테일러를 바라보던 정체불명의 존재는 테일러를 어깨에 메고서는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테일러가 너무나도 요란하게 소란을 피워서는 날파리들이 꼬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가끔씩 이성을 잃어버리고서는 미치광이처럼 소란을 피우는 생존자들이 생겨났고 그들의 최후는 거의 비슷했다.

그렇게 테일러를 어깨에 메고서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사라지고 난 뒤에 그 자리로 살기를 뿜어내는 사냥꾼들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

“…….”

“…….”

그들은 모습을 들어내지는 않았다.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 다른 사냥꾼들의 먹이가 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들 모두 주변에 다른 사냥꾼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성을 잃은 채로 날뛰던 테일러가 사라져 버리자 이내 흥미를 잃고서는 다시금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굳이 어려운 사냥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서로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물론 곧 만나게 될 상대들임을 잘 알고 있었고 결국 그들과 싸워 이겨야지만이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후후! 다들 만만한 놈들은 하나도 없군. 하긴 방금 미쳐 버린 놈도 식인귀 녀석이었으니 말이야. 그 놈이 미쳐 버렸다고 해도 상대하는 것은 상당히 난감한데 말이야. 그나저나 그 자식 아직도 살아 있었던 건가.”

어둠 속에서 완전히 몸을 숨긴 채로 혼잣말을 하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팔루였다.

강준에게서 쫓겨 몸을 숨겼던 팔루는 지금까지 살아남아서는 강준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팔루조차도 죽음의 섬이 되어 버린 곳에서 살아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겨야만 했고 그 것은 생존력과 함께 지독한 운이 따라 주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그 놈이 죽을 리가 없지. 나에게 죽어야 할 운명이니까 말이야.”

팔루는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의 느낌도 나지 않을 정도로 흉폭한 짐승의 느낌을 풍기며 미소를 지은 채로 더욱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

그런 팔루를 대부분의 사냥꾼들은 알아채지 못했지만 한 존재는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 존재는 흉폭한 맹수인 팔루마저도 쉽사리 사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존재였지만 팔루에게 관심조차 가지지 않은 채였다.

“강준.”

그 존재 또한 강준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 강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 것은 팔루처럼 혼자만이 들을 수 있는 혼잣말이 아니었고 그 덕분에 주변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사냥꾼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다들 몸을 숨긴 채로 상대의 약점을 노리고 있던 사냥꾼들 사이에서 스스로 몸을 드러내는 실수를 해 버린 것이었다.

그 때문일지 성미 급한 한 사냥꾼이 그 존재를 향해 몸을 날렸다.

“흐흐! 아직까지 여자가 살아있다니. 간만에 욕정을 풀 수 있겠는걸!”

이미터가 넘어가는 엄청난 덩치의 근육질의 남자가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곧바로 낚아채서는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모습에 다른 사냥꾼들은 아쉬움에 한 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경악을 해야만 했다.

부들! 부들!

“호호호! 설마 날 노린 거였니?”

이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덩치는 여인의 앞에서 입에 거품을 문 채로 몸을 덜덜 떨었다.

“끄윽! 끄윽! 도…독거…미.”

한 쪽 눈을 잃은 것인지 오른 쪽 눈만이 파랗게 빛이 나고 있는 한 여인.

제니퍼는 온 몸에 기이한 향기를 뿜어내며 자신의 덫에 걸린 먹잇감을 바라보았다.

“감히 너 따위가. 너는 먹잇감으로도 부족하다.”

제니퍼는 날카롭게 벼려진 독침으로 남자의 목의 동맥을 그어 버렸다.

마치 덤벼 볼 테면 덤벼 보라는 듯이 제니퍼는 유유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숲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 버렸다.

최상위 포식자의 사냥에 숨을 잔득 죽이고 있던 남은 사냥꾼들은 이를 악물고서는 이내 하나 둘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한 명의 시체만을 남기고서 어둠이 짙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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