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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 어 라이프-131화 (131/161)

##131 위험한 공존

쏴아아아아아!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생존자들은 다들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배고픈 이들도 많았지만 적어도 내리는 비로 인해 갈증을 느끼는 이들은 없었다.

그 비가 산성비니 공해에 오염된 비라는 생각 따위는 전혀 가지 않았다.

그렇게 갈증을 해결하고 나자 비는 짜증스러운 것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몸이 젖어 들어간다는 그 불쾌한 느낌은 왠지 모르게 죽음의 공포와 비슷했다.

비록 날씨가 추운 것은 아니었지만 비로 인해 체온은 조금씩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체력의 소모는 빨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체력의 소모는 허기짐으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식량을 어느 정도 구할 수 있다면 조금은 버틸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지독한 허기짐에 점차 힘들어져 갈 뿐이었다.

“제길. 언제 그치는 거야?”

비는 그치지 않았다.

손목의 타이머 덕분에 시간이 얼마나 흐르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미 신체는 시간 개념을 완전히 상실한 상황이었다.

어두운 밀림 속에서 밤과 낮의 구분이 흐릿해졌고 손목의 타이머는 낮 시간과 밤 시간을 구분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밝으면 낮이고 어두우면 밤이라는 것만이 생존자들이 시간의 개념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잔득 흐린 하늘에 비가 쏟아지는 것에는 어절 재간이 없었다.

“제길! 훈제 고기가 비에 젖어서는 흐물거려져 버렸잖아.”

테일러는 자신의 품 속에 넣어두었던 인육으로 만든 훈제 고기가 비로 인해 엉망이 되어 버린 것에 인상을 찡그렸다.

완벽하게 훈제를 해도 습기에는 약한 단백질인데 테일러의 기억으로 초기 훈제법으로 만든 인육은 더욱 더 습기에 약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조금씩 상해갈 수 밖에 없었고 테일러는 본능적으로든 이성적으로든 자신이 모은 모든 식량이 쓰레기가 되어 버렸음을 알 수 있었다.

‘먹으면 죽는다.’

현대인들은 조금이라도 상한 음식에 신체가 곧바로 반응을 한다.

야생 생활에 조금 단련이 되어 있다고 해서 적응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테일러는 과거의 원시인들이었다면 식량이 어느 정도 상하더라도 신체나 위가 큰 문제를 만들지 않겠지만 지금의 자신이라면 곧바로 탈이 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점차 썩은 내를 풍기기 시작하는 인육을 버려야만 했다.

“제길!”

아쉬운 표정으로 땅바닥에 버려진 인육을 바라보던 테일러는 점차 허기짐이 심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허기짐이라는 것이 계속 배부른 상태에서 배가 부르지 않은 상태로 넘어가는 순간이 가장 컸다.

물론 심리적인 반응이었지만 테일러는 그 심리적인 반응에 의해 극심한 허기짐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

물론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인육이 상하기 전에 배를 채운 상태였고 별 다른 움직임 없이 체력을 채운 테일러였다.

하지만 테일러는 점차 안절부절 못해하며 무언가를 입 안에 넣고만 싶었다.

“하아! 하아! 하아!”

테일러의 두 눈은 피로로 인해 실핏줄이 터져서 붉게 물들어 있는 상태였고 그로 인해 더욱 더 괴기스러운 모습이었다.

냉철하면서도 이지적인 학자였던 테일러의 과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고…고기.”

얼마나 시간이 지난 것인지 테일러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시간이 지나갈 무렵 테일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식량을 구하러 움직이기로 했다.

그 식량은 당연히 인육이었기에 세차게 내리는 비로 인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사냥을 하려는 것이었다.

쏴아아아아아아!

그렇게 비를 맞으며 생존자들이 있을만한 곳을 향해 움직이는 테일러였다.

다들 어디엔가 숨어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이 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었다.

아무리 섬이 넓다지만 은신처로 삼을만한 곳은 한정되어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대충 그런 은신처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쏟아지는 비로 인해 움직이지 않고 있을 것이 분명한 생존자들이라면 몇 몇 군데의 은신처들을 뒤진다면 찾아낼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지독하게 위험한 일이었지만 테일러는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배고프다. 배고파.”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사람을 잡아먹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었다.

“없다. 여기는 없어.”

평소 눈여겨 보던 은신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누군가가 머물렀었다는 흔적은 발견할 수 있었다.

고고학적 지식과 경험이 있는 테일러로서는 그런 흔적을 쉽게 찾아 낼 수 있었다.

물론 지금 그런 흔적 따위는 테일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치 유령처럼 비가 쏟아지는 밀림을 걸어 다니는 테일러였다.

그렇게 두 번째의 은신처를 찾아내서 조심스럽게 다가갔지만 역시나 그 곳에도 아무도 없었다.

다들 알고 있는 은신처이기에 있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너무나도 많이 죽어 버려서 얼마 되지 않은 은신처가 남아도는 것인지 알 도리는 없었다.

테일러는 그렇게 몇 차례 다른 은신처를 다 둘러보았지만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다.

“뭐? 뭐야?”

이성을 잃은 듯이 인육을 얻기 위한 사냥을 하려던 테일러는 그 어떤 인기척도 발견하지 못하고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 것에 조금씩 이성을 찾아갔다.

그 이성은 가장 먼저 고독함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뭐야? 하하! 설마 나만 살아남은 건가? 전부 다 죽어 버린 거야? 그런건가?”

테일러는 자신이 얼마 동안 이 섬에서 생존 게임을 벌인 것인지 생각을 해 보았지만 도무지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까 나 여기 갇힌지 얼마나 된거지? 한 달? 아니 반 년? 아닌가? 일 년이 넘었나? 그럼 나머지 놈들도 다 죽은 거 아닌가?”

최후의 생존자.

이미 기억 따위는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으면 이 섬에서 빠져나가게 해주겠다던 그 악마같은 존재들의 말은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눠 본지도 너무나도 오래되었고 오직 살아있는 인간은 오직 죽여야만 하는 상대로 여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살아남은 인간은 단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아! 하아!”

테일러의 조심스럽던 움직임은 점차 격렬하게 변했다.

그렇게 자신이 알던 다른 은신처들을 찾아 헤매었지만 역시나 테일러는 생존자의 흔적을 발견해 내지 못했다.

“하하! 뭐야? 다들 죽어 버린 거야? 이제 나만 살아남은 거야? 정말이야? 하하! 뭐가 이래? 이 봐! 다들 어디 간거야?”

얼마 전까지였다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을 테일러는 하고 있었다.

이성을 찾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큰 소리로 외쳤지만 인기척은 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테일러는 자신만이 살아남았다는 결론에 도달을 하고 있었다.

“하하! 그렇구나. 그랬어. 하긴 먹을 것도 없는 이 곳에서 인육을 먹고 버틴 내가 대단한 거지. 다들 굶어 죽어 버렸겠지.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을 리가 없잖아. 하하!”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에 테일러는 기쁨을 느꼈지만 이내 그 기쁨은 공포가 되기 시작했다.

마치 인류가 멸망하고 난 뒤에 홀로 살아남았다는 그런 공포와도 같았다.

“이…이 봐! 다들 죽은 거야? 이 봐! 말 좀 해 보라고! 살아 있으면 말 좀 해 봐! 난 여기 살아 있다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섬을 뛰어다니는 테일러의 모습은 광기에 찬 미치광이로 보였다.

인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의 상황을 넘어서 버려서인지 테일러는 미치도록 인간이 보고 싶어졌다.

철푸덕!

“크윽!”

그렇게 한참을 뛰어다니던 테일러는 무언가에 발이 걸려서는 흙탕물이 가득한 땅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통증에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의 발을 건 것을 노려본 테일러는 오래지 않아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해…해골?”

언제 죽은 것인지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가고 하얀 백골만이 남아 있는 해골이 테일러를 바라보고 있었다.

덜! 덜! 덜!

그런 해골에 테일러는 자신 또한 그런 해골이 될 것이라는 공포에 몸을 덜덜 떨었다.

자신만 살아남았다면 더 이상 식량으로 쓸 인육도 구하지 못할 것이기에 자신은 굶주림으로 굶어 죽어 버릴 것이 분명했다.

“하! 이…이럴 줄 알았으면 테미 녀석을 살려 둘 걸 그랬어. 아…니 헤라를 살려 놨어야. 아기도 낳고 그렇게 먹을 것을 불렸을 텐데 말이야. 아! 하하!”

이성이나 도덕 윤리 따위는 완전히 테일러의 머리 속에서 부서져 있었다.

“아하하하하! 아하하하!”

테일러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쏴아아아아!

거친 빗소리마저도 무색할 만큼 커다란 웃음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제는 혼자 남았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움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테일러의 웃음은 한 순간에 멈추어 버렸다.

“아하하. 아!”

테일러는 눈도 뜨기 어려운 빗 속의 어둠 가운데 무언가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세히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테일러는 그 것이 자신과 같은 인간임을 오래지 않아 알아 볼 수 있었다.

“뭐야? 아직 살아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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