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신의 부재
존재해야 하지만 존재하지 않음으로 인해 느끼는 혼란은 공포심을 만들어 낸다.
특히나 그 본질을 아는 자들일 수록 그런 공포심은 배가될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 뭔가가 있는데….”
테일러는 지금 껏 자신의 지식들이 부정되는 상황 속에서 해답을 찾아내려고 노력을 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올바른 지식을 개인이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인간이 만든 법칙 조차도 완벽하지 않으며 언젠가는 깨질 수 밖에 없기에 예외의 상황이라는 것이 존재함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테일러가 있는 이 곳에 과거의 인간의 흔적이 전혀 없다고 할지라도 지금의 테일러의 상황을 해결할 방법 따위는 되지 못했다.
“제길! 모르겠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잖아. 빌어먹을.”
직업병처럼 인간의 생태에 대한 연구로 밥 벌어먹고 살았을 때야 한정없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매달렸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목에 칼이 들어오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고 조금만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다음 날을 보지 못할 터였다.
질겅! 질겅!
그렇게 무언가 중요한 듯하면서도 손에 잡히지 않는 문제를 뒤로 하고서 테일러는 호주머니에서 고기 조각을 꺼내어서는 입 안에 집어 넣었다.
조미료가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고기 조각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맛이기는 했지만 계속 씹자 단백질 특유의 단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보통이라면 이내 몇 번 씹고서는 목 너머로 넘겼을 터였지만 테일러는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 씹고 또 씹었다.
꿀꺽!
그렇게 고기 조각이 거의 분해가 되기 직전에야 위로 넘겨 버리는 테일러였다.
“훗! 이제는 아주 익숙하구만. 제길! 괴물이 되어가는 기분이군.”
말은 무척이나 혐오스러운 느낌이었지만 테일러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다시금 고기조각을 꺼내어서는 자신의 입 안으로 집어 넣었다.
이 섬에서 고기를 얻는다는 것은 사실 대단히 힘들었다.
사냥을 할 만한 작은 동물들도 그다지 보이지 않았고 설령 사냥을 할 만한 동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사냥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죽음과 삶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이들의 감각과 행동들이 대단히 날카로워졌다고 할지라도 쉬운 일은 결코 아니었다.
아니 당장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영양보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이나 쇠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하루 종일 먹을 것을 찾아다녀도 사회에서 먹는 한 끼의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이 대단히 힘들었다.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체력이 대단히 많이 떨어져 있었다. 남은 것은 단지 살인에 대한 주저함이 사라진 짐승들과 같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테일러는 고기 조각을 씹으며 자신의 체력을 보충하고 있는 것이었다.
구하기 어려운 고기.
하지만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고기의 재료.
결론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야만과 문명을 가르는 기준이 바로 식인이라지만 생존 앞에서는 야만도 문명도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테일러는 설마 자신이 식인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아니 그 누구도 평소에 식인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죽을 것 같이 배가 고픈 순간 먹을 것이 사람 밖에 없다면….
그리고 자신은 반드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결정을 해야만 했다.
엄청난 고민 속에 수백번도 넘는 각오를 하고서는 입 안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온 몸이 탈진을 할 만큼 구토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빌어먹을 상황이었지만 바퀴벌레보다 인간의 적응력은 더욱 더 뛰어나기까지 했고 테일러는 자신이 그토록 공부를 해 왔던 식인종들의 식습관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고기는 사실 취급을 하기가 대단히 까다로운 식재료였다.
자칫 관리를 못하면 금방 상해버려서 신체에 독이 되는 식재료였다.
특히나 인간의 고기는 아니 현대인들의 신체는 각종 해로운 화학물들과 오염원들로 인해 그다지 좋은 식재료는 아니었다.
빠르게 부패되며 지독한 독극물로 변해버리는 하질의 식재료였다.
거기에다가 주변의 환경은 단백질이 빠르게 상하는 고온다습한 지역이었기에 테일러 조차도 그냥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 덩어리를 들고 다니면서 먹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불에 구워서 먹을 정도로 안전한 지역도 아닐뿐더러 불에 구운다고 상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오래된 식인종들의 고기 훈재법이 떠오르다니.”
사실 식인의 역사는 대단히 오래되었다.
야만과 문명을 가르는 것이 식인이라고 하지만 문명 사회에서도 식인은 때로는 기호 식품과도 같은 취급을 받을 정도로 은밀하게 명맥을 이어올 정도였다.
그렇기에 사람의 고기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숫자의 요리법들이 존재했다.
그 것은 인류가 시작된 순간부터 발전해 온 요리법과 관리법이었다.
혐오스러웠지만 인간을 연구하는데 의식주와 성욕은 사실상의 전부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식문화에서 식인은 너무나도 큰 부분을 차지했기에 테일러는 무척이나 자세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비교적 안정적인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안정적으로 확보된 식량은 다른 생존자들에 비해 체력적 우위를 이룰 수 있었고 보다 쉽고 안정하게 식량 확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식량 때문에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테일러였기에 방금 전의 의문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테일러는 계속 움직여야만 했다.
“후우! 물을 찾는 것도 고역이네.”
사실 물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물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물을 볼 수 있는 것과 마실 수 있는 것은 달랐다.
언제 어디서 자신을 노리고 있을지 모르는 다른 생존자들 때문에 마음 놓고 물을 마실 수도 물가에 계속 있을 수도 없었다.
가끔 시냇가 아래로 흘러들어오는 옅은 피 냄새와 맛에 기겁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극도의 긴장감과 피로를 느껴야만 하는 생존자들이었다.
테일러는 그나마 잘 버티는 축에 속해 있었기에 여유를 가진 채 사냥감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사냥감을 찾아다니고 있을 때 테일러는 어둠 속에서 어떤 그림자 하나가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긴장 따위는 없었다.
더욱이 조급함도 느껴지지 않은 채로 무척이나 천천히 몸을 수풀 사이로 밀어 넣었다.
굳이 사냥감을 향해 움직이지도 않았고 그냥 그대로 숨을 죽인 채로 기다리기만 했다.
사냥감은 초식 동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흉흉한 육식 포식자였다.
어설프게 뒤를 따라 움직였다가는 자신이 사냥감이 될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사냥감이 상당히 멀리 움직였다고 느껴질 때 테일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는 중간 중간 자신을 미행하거나 주변의 다른 인기척을 느끼려고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그렇게 시야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희미하게 남겨진 흔적을 따라 추적을 해 나가는 테일러였다.
그런 추적술을 누구에게서 배운 적은 없었지만 실전으로 직접 터득을 한 노하우였다.
조심스럽게 사냥감이 남긴 흔적을 따라 움직이는 테일러는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사실 이런 추적은 성공하기보다 실패가 더 많았다.
순간 끊기듯 희미해져 버린 흔적에 조급히 움직이기보다는 깨끗하게 포기를 해 버리던 테일러였다.
그 것이 테일러로 하여금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
하지만 성공을 한다면 테일러는 사냥감의 목을 직접 노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었고 테일러는 결코 망설이지 않고 움직였다.
“…….”
잔득 지친 표정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냥감은 그다지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한 눈에 보더라도 상처를 입은 짐승이라는 것을 느낄 정도로 힘겨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고 테일러의 미소는 더욱 더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잘 됐군. 마침 식량도 다 떨어져 가고 있었는데 말이야.’
테일러의 눈에 상처 입은 사냥감이 식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긴장 풀린 다급함을 보이지는 않았다.
사냥감의 발톱과 이빨은 여전히 날카로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테일러는 그렇게 한참동안 사냥감을 관찰하며 지켜보았고 점차 해가 져 가는 것을 보며 마침내 움직이기로 결정을 했다.
그렇게 테일러의 몸이 수풀 사이로 사라졌고 사냥감은 자신이 위기에 쳐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로 허기를 달랠 것을 찾고 있었다.
“하아! 하아! 배고파.”
평소였다면 절대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을 열지 않았을 터였지만 허기짐이 극심해지자 결국 소리를 내 버렸다.
이내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흘러나온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내 공포에 질린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몸을 떨어야만 했다.
다행이 자신의 소리에 반응을 하는 것은 없는 듯이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남자는 다행이라는 듯이 미소를 짓다가 오늘도 허탕이라는 듯이 어디론가 쉴 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둠 속에서 먹을 것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더욱이 다른 생존자들의 습격에 대응하기가 힘들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을 청할 곳을 찾던 남자는 오래지 않아 몸에 익은 은신처를 찾을 수 있었다.
“후우! 내일은 먹을 것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은신처를 발견했다는 것에 긴장이 풀린 것인지 두 번째 실수를 하는 남자였고 그 실수는 치명적이었다.
“그러게 나도 니가 내일 먹을 것을 찾았으면 좋겠어.”
“흡!”
테일러는 남자가 은신처로 보이는 곳의 입구에 목에 걸릴 덫을 놓아 둔 상태였다.
어둠 속에서 부주의하게 들이민 목에 그대로 넝쿨을 휘어 감아서는 있는 힘껏 잡아 당겨 버렸다.
바둥거리는 사냥감에 테일러는 손에 들린 과도로 남자의 목울대를 그어 버렸다.
“미안하지만 소란 피우지 말아.”
괜한 소음으로 다른 사냥꾼을 불러들이는 것은 사양하는 테일러였다.
사실 상 사냥은 끝나버린 상태였고 테일러는 쉽게 풀린 사냥에 기뻐하며 축 늘어진 고기 덩어리를 식재료로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조심스러운 테일러 조차도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