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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 어 라이프-129화 (129/161)

##129 신의 부재

시간은 흐른다.

모든 인간에게 아니 모든 생명체에게 시간이란 무조건 흐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존재에게 시간이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이들과 건강한 사람의 시간은 같이 공유되지만 같은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금 이 지옥이 펼쳐지고 있는 섬의 사람들에게도 시간이란 각자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후우! 후우!”

한 사람을 죽이고 나자 한 시간 남짓 남았던 시간이 168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인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들이 이 곳에 갇힌 지 얼마의 시간이 지난 것인지도 잃어 버렸다.

오직 더 살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행위만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동료도 있었다.

인간이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기에 누군가의 짐이 되어야만 하는 존재였다.

스스로 짐이 되고 스스로 짐을 이는 존재.

그래야만 생존을 할 수 있는 존재였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짐승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걱!

방금 전 168 시간의 시간을 얻었지만 차가운 무언가가 자신의 목을 스치고 지나간다.

본능적으로 더 이상은 살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뜨거운 것이 몸 밖으로 터져 나오고 있었고 그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화가 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

“크윽! 큭! 고…고마워.”

자신을 죽인 존재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었다.

“지옥에서 벗어나는 것을 축하해.”

고맙다는 말에 대한 대답은 꽤나 무미건조했지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도가 되는 말이었다.

삐빅!

타이머가 리셋이 되고 사람을 죽인 이는 빠르게 하지만 그 어떤 짐승들보다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숨는 행위 따위는 없었다.

하루라도 이 지옥을 벗어나기 만을 위할 뿐이었다.

그 것이 자신이 마지막까지 살아남든지 아니면 죽어서 나자빠지든지 벗어나기만을 원할 뿐이었다.

모든 것이 한계에까지 도달해 있는 중이었지만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곳에서 어떤 정의나 의미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생존이라는 것만은 그토록 끈질겼다.

“후우! 또 쫓아오는 거냐? 빌어먹을 놈.”

죽어서라도 이 지옥을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그냥 죽고 싶은 마음을 가진 이들은 이제 없었다.

그런 그들은 언제 부터인가 기분 나쁜 느낌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유령처럼 따라붙고 있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죽여. 죽이란 말이다!”

이제는 짐승 같은 기감을 가지게 된 생존자들이었지만 자신들을 미행하는 존재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차라리 자신들을 죽여 이 고통을 끊어주기만을 바랬지만 그 정체 불명의 존재는 미행하며 주시만을 할 뿐이었다.

“빌어먹을 놈! 날 가지고 노는 거냐!”

자신이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지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 죽음의 게임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미행을 받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느끼는 순간부터 미행을 받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결코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는 사실이었다.

더욱 더 기분이 나쁜 것은 이 미행의 느낌이 하루 종일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느 순간 이 느낌이 없다가 갑작스럽게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하루 종일 움직이는 자신을 언제라도 다시 미행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 것이 너무나도 못 견디게 만들고 있었다.

“제길!”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렇게 미행은 또 다시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마치 자신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만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 희미하기만 하던 인기척이 사라지고 난 뒤 생존자는 이 악물며 계속 움직여나갔다.

하루라도 빨리 죽여야만 했다.

그렇게 마지막이 남을 때까지 죽이고 난다면 이 빌어먹을 게임이 끝난다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수 천명이 돌아다니던 섬은 이제는 백 명도 되지 않는 숫자의 생존자들만이 남아 있었고 그들은 아무리 기감이 예민해졌다고 할지라도 서로를 발견하는 것도 힘겨워지고 있었다.

생존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섬은 크고 넓었다.

그런 섬에 사람들이 살지 않는 것이 의아스러울 정도였지만 지금의 생존자들은 그러한 것들을 생각할 여력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의 미행. 그리고 이 곳 너무나도 이상하다.”

테일러는 시간이 점차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이 있는 이 섬에 의문이 생기고 있었다.

지금까지 생존을 한 이상 테일러도 다른 사람들을 죽인 생존자였다.

처음에는 겁에 떨며 포식자들에게 도망을 다니던 이들 중에 한 명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포식자들마저 잡아먹은 상위 포식자였다.

테일러의 직업은 다른 이들과는 조금 특이하게도 인류학자라는 것이었다.

인류학자란 인류, 그러니까 인간에 관하여 그 문화의 기원이나 특질을 연구하는 학자인데 인간의 모든 것을 연구하기에 상당히 연구 범위가 광범위했다.

흔히 고고학자라고 하기도 하지만 사실 고고학자는 인류학자 안에 들어가는 하부의 영역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고학자 그러니까 인디아나 존스의 영화와 같은 탐험가를 떠올리게 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건물 속에서 연구를 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런 학자들과 달리 직접 현장 속에서 과거의 흔적을 발굴하는 이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이 인디아나 존스와 비슷하지만 실제 탐사와 탐험은 그렇게 긴박하지도 스릴 넘치는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무척이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과정이었다.

가끔 TV에서 작디 작은 붓으로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 하루 종일 무언가를 문지르는 것을 볼 수 있을 터였다.

그런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으니 영화처럼 유물이나 보물들을 함부로 만지다가 부셔먹는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하여튼 테일러는 상당히 수완 좋은 인류학자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현장 경험도 제법 많은 베테랑이었다.

처음 이 섬에 들어오고 나서는 살기 위해 정신이 없어 주변을 볼 수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자신의 학자로서의 호기심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호기심보다 다른 포식자를 죽이는 것에 신경이 곤두서고 있었다.

“이상해. 정말 이상해.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어.”

하루 종일 자신이 죽일 생존자가 보이지 않는 것에 아이러니하게도 학자의 호기심이 커져갔고 테일러는 자신의 머리 속의 인류학자로서의 지식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넓다. 그런데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수천명이 온 섬을 뒤지고 다닌 흔적이라면 테일러의 눈에 너무나도 잘 보였다.

하지만 테일러는 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테일러는 이 섬의 원주민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지구의 모든 장소에 인간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혹독한 극지에도 인간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지구는 너무나도 넓어서 인간을 볼 수 없는 곳이 더 많을 수 밖에 없었다.

“풍부한 물과 식량 자원. 거기에다가 포식자의 부재. 무엇보다 이 곳. 육지와 그리 멀지 않아.”

별자리 정도는 테일러의 지식 속에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테일러는 자신이 있는 섬이 인간이 살기에 너무나도 적합한 지역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원주민들이 살았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전부 학살을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아무리 이 지역을 구석 구석 돌아다녀 봐도 그 흔적이 전혀 보이질 않아.”

테일러는 멸족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남겨지는 흔적을 아무리 해도 찾아낼 수 없었다.

인류학자나 고고학자들의 눈에 보이는 인위적인 흔적은 먼 과거라도 인간이 살았던 흔적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테일러는 아예 인간이 살기에는 너무나도 적합하건만 전혀 찾을 수 없는 흔적에 혼란스러웠다.

먼 옛날의 흔적이 파괴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흔적이 남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파괴의 흔적도 없었다.

물론 수천명이 만든 혼란스러운 흔적들이 섬 가득 있었지만 그 정도의 구분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테일러였다.

테일러의 지식으로는 반드시 있어야만 할 것이 없는 것이었기에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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