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신의 부재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잘못되기는 한 것인지도 이제는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마음 속이 허물어지는 것 같은 휑함 이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한숨만을 내쉬고서는 차갑게 식어가는 체온을 가슴에 품은 채로 조금이나마 유지시킬 뿐이었다.
영혼이 빠져나가 버린 껍데기였지만 저 천국에 가기 전까지 따뜻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삐삑!
저주스러운 소리가 강준 자신의 손목에서 들려왔지만 강준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손목을 잘라버려서라도 벗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강준의 냉철한 머리 속에서는 그런 행동은 멍청한 짓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꼬옥!
강준은 고통과 공포에서 벗어나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선혜의 머리를 가슴에 안고서는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딱히 그녀를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같은 한국인이라는 동질감이 강준을 의무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기는 했다.
아니 한 때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자국민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자 의무라는 생각이 더욱 강했을지도 몰랐다.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에 강준은 스스로에게 쓴 웃음을 짓게 만들었지만 이제는 왠지 모르게 그런 자괴감도 들지 않았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나약하게만 굴었어. 지켜내려고만 안달을 했고 그래서 도망만을 가려고 했던 것 같네.”
강준은 선혜에게 아니 그 동안 자신과 같이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에게 말을 했다.
물론 다들 세상을 떠났기에 지금의 강준의 말을 듣을 수는 없었지만 강준은 차분하게 자신의 말을 할 뿐이었다.
“도망을 가고 또 도망을 가고 또 도망을 가면 결국에는 도망을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 정도 능력은 있다고 믿고 있었고 사실 할 수도 있었던 것도 같아.”
강준의 얼굴에서는 서글픈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말이야. 할 수 있었는데 좋은 사람 흉내 내려고 하다 보니까 그게 좀 안 된 것 같네.”
강준의 눈이 차분해져 갔다.
감정이라고는 느끼기 힘든 눈빛으로 변해 갔지만 그 눈빛에는 살기나 냉혹함과는 조금 거리가 먼 느낌이었다.
마치 그냥 기계 덩어리가 된 듯한 그런 느낌으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인간이란 무감정을 유지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을 스스럼없이 죽이는 살인자나 암살자라고 할지라도 감정을 무감감하게 유지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광기나 살기를 뿜어내는 살인마로 변하거나 흥미나 즐거움으로 느껴버리는 미친놈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수 많은 훈련과 경험들 속에서 기계처럼 행동을 하게 될 수는 있다.
마치 극한까지 수련을 한 운동 선수들처럼 무의식적인 기계적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그 것이었다.
강준 또한 특수부대의 훈련들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행동들을 기계처럼 수행했었다.
단지 그 기계적인 행동의 대상을 인간들이 아닌 것으로 대체하고 있었기에 불완전했을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강준의 손에 무기가 들려져 있었다면 생각으로 인한 판단 보다 먼저 몸이 반응을 하게 될 것이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강준의 몸에 세겨져 있던 행동들과 머리 속의 관념이 불일치에서 일치로 변해갔고 이제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희미해져 버렸다.
지금까지는 지켜야 할 것이 있었기에 상대를 죽이는 서바이벌보다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서바이벌이 더 강했다.
“끝까지 살아남아서 어떤 새끼들이 이 짓을 했는지 알아봐야 너희들에게 알려 줄 수 있겠지.”
강준은 이제는 차갑디 차가운 몸을 가진 채로 점차 굳어가는 선혜의 몸을 차가운 바닥에 내려놓았다.
과거처럼 선혜의 죽은 몸을 땅에 묻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일에 힘을 뺄 정도로 인간적인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하아! 하아!”
“…….”
다만 아직은 살아있는 채로 숨을 몰아쉬는 밀러가 강준의 마음 속의 작은 짐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미 가망이 없어.”
강준은 독에 중독이 된 밀러가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감정적으로 생각을 했다면 살 수 있다며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기계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이런 위기 상황에 독에 중독된 몸은 임무 수행에 부적결하다고 여겼다.
죽어가는 밀러를 부둥켜 안고 있어 봐야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로 같이 죽는 것 말고는 다른 결말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푸욱!
강준은 밀러의 옆으로 걸어가서는 밀러의 머리 옆의 땅바닥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칼을 찔러 넣었다.
“힘들면 결정을 해라.”
강준은 그 말과 함께 동굴 밖으로 걸어나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두려움에 동굴 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강준이었지만 지금은 조금의 망설임조차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경쾌하다거나 기대감이 가득한 발걸음은 아니었다.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걷는 것처럼 별 다른 특색 없는 걸음걸이였다.
그렇게 조금은 안전한 동굴 속에서 동굴 밖으로 걸어 나온 강준의 움직임은 한순간에 변해 버렸다.
오랫동안 몸에 길들여져 있던 것처럼 신체가 반응을 하는 것이었다.
“…….”
말 없이 강준은 수풀 속을 주시하더니 이내 수풀 속으로 녹아들 듯이 사라지기 시작을 했다.
그와 동시에 강준이 지나가는 길 속에 나뭇가지나 풀 들이 하나 둘 씩 잘려져 나갔고 강준은 더욱 더 숲과 동화되어져 갔다.
그리고서는 오래지 않아 강준은 인간의 모습보다는 산짐승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해 같다.
군인들에게 있어서는 적들에게 들키지 않게 하는 위장과도 같은 것을 강준은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강준은 정글 속에서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위장을 한 채로 오직 하나의 임무 수행을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강준이 떠나가 버리고 난 뒤에 밀러의 몸이 들썩였다.
“하아! 하아! 강…준.”
비록 독에 중독이 되어 제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밀러였지만 어느 정도의 의식은 찾은 상태였다.
희미한 기억 속에 강준의 행동을 떠올렸고 선혜가 어떻게 된 것인지도 알았다.
밀러는 자신의 머리 옆의 땅바닥에 박혀 있는 날이 무뎌진 칼을 보며 입술을 악물었다.
강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은 강준에게 버려졌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배신감은 들지 않았고 서운함도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강준이 안쓰러운 생각이 왜 인지 모르게 드는 밀러였다.
‘후! 그래봐야 달라질 것은 없지. 결국 나에게 남은 건 자살을 하는 것 뿐인가?’
선혜도 그러했듯이 밀러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려움에 떨다가 누군지 모르는 존재에게 살해를 당하는 것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뿐일 터였다.
그렇게 최악이거나 조금 덜 최악이거나 한 선택사항에 밀러는 가슴 속에서 울컥했지만 스스로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힘겹게 강준이 남기고 간 칼의 손잡이 쪽으로 손을 움직였다.
이미 너무 많은 죽음들을 본 밀러였기에 죽음의 공포에 대해서 잘 알면서도 죽음에 무감각해지고 있었다.
덥석!
그렇게 힘겹게 칼의 손잡이를 잡은 밀러는 천천히 자신의 목줄기를 향해 칼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부들! 부들!
두려움이 없을 수가 없었다.
자살이란 희망이 모두 꺾여 버린 이들이 하는 최후에 최후의 선택이었다.
밀러의 지금 상황이 그러한 최후의 상황이었지만 밀러는 그 것이 너무나도 기가 막혔고 억울했다.
“크윽! 큭! 흐흐흐흐흐!”
밀러는 홀로 남겨진 동굴 속에서 오열을 했다.
누군가 자신을 막아주기를 원했고 그렇게 누군가가 들으라는 듯이 흐느껴 울었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구조요청을 들어주지 않는 것에 더욱더 절망해야만 했다.
“신은 존재하지 않아.”
밀러는 아무리 신을 불어보아도 자신을 돌아봐 주지 않는 것에 신을 부정했다.
그리고 그 것은 모든 희망이 불타버렸음을 의미했다.
[작품 후기]
손이 너무나 아프네요 ㅜㅜ
수십권이 넘는 책을 지금까지 타자로 쳐와서 그런지 이제는 손이 망가져 간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래서인지 신작을 쓰는 것도 마음은 있는데 몸이 따라 주지를 않네요
이틀에 한 편씩 돌아가면서 쓰는 데도 타자를 치고나면 손이 너무 아파요.
파라핀에 손을 담구고 있어도 그 때 뿐이고.
이제 고작 34살 밖에 안 먹엇는데 손은 늙은이가 된 모양입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고 모두 몸이 최고이고 재산입니다.
몸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