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쥐를 잡는 법
선혜의 이상 현상에 강준은 어찌 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판단력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고 정신적인 피로도가 크다는 것이었다.
“왜?”
강준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로 멍하니 선혜의 행동을 지켜 볼 뿐이었다.
“그…그만해…요. 그…만.”
선혜는 울듯 말 듯한 표정을 지은 채로 마치 애원을 하는 듯이 강준에게 말을 했다.
생사를 같이 보낸 동료를 보는 듯한 눈빛은 아니었다.
마치 눈으로 볼 수 없는 절대자에게 요청을 하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하지만 선혜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에게 부탁을 할 때는 대가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말이었다.
단순한 호의에 의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 것은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하는 기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는 어른이 된 선혜는 잘 알고 있었다.
대가 없는 거래는 없다.
너무 차갑고도 매정스러운 말일지도 몰랐지만 그 것이 맘에 편하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선혜는 자신의 부탁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것이 지금으로서는 없었다.
‘지금의 내 주변에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것들은 아무 것도 없는 흙더미들 뿐이었다.
아무런 가치를 부여받지 못해 보이는 것들 속에서 자신은 그 어떤 가치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 곳이 아닌 밖에서였다면 알량한 돈이나 귀중품들을 꺼내 보기라도 하겠지만 그 것마저도 없었다.
아니 있다고 할지라도 이런 곳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만 같았다.
“부…탁이…에요.”
결국 그녀는 자신의 부탁을 위해 지금 자신이 가진 가장 큰 것을 내 놓아야만 했다.
물론 그 것이 눈 앞의 절대자가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그녀도 알 수 없었다.
“제발.”
오직 받아주기만을 원하며 선혜는 자신의 가치를 숨기고 가려두었던 것을 벗었다.
바로 자신의 몸을 주려는 것이었다.
그 것 말고는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였으니 선혜의 행동은 망설임이 없었다.
스륵!
비록 흙과 땀에 엉망이 되어 있었지만 하얀 속살이 희미한 빛에 비추자 눈부시게 빛이 났다.
그 광경에 강준은 이성적 판단은 물론 감정적 판단조차 하지 못했다.
다가갈 수도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는 답답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제발 이 곳에서 나가게 해 주세요. 부탁이에요. 저 이제 그만 하고 싶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거 다 드릴 테니까…. 그러니까….”
다가오지 않는 강준에 선혜는 두 눈 가득 눈물을 머금은 채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결국 자신이 다가가 애원을 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부…부탁 드려요.”
“……!”
선혜는 서늘한 느낌이 들 정도로 푸른 빛이 나는 듯한 나신을 한 채로 강준에게 다가갔다.
“집으로 보내 달라고는 안할 게요. 그…그냥 이 곳에서만 나가게 해…주세요. 제발. 흐윽!”
선혜는 행여라도 자신이 볼썽사납게 울면 애원을 들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감정을 억누른 채로 강준의 선처를 바랬다.
그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라는 생각 뿐이었다.
강인하기만 했던 그녀가 이토록 나약해지리라고는 선혜 자신도 생각지 못했지만 이미 선혜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공포감과 좌절감의 극한까지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자살자들을 보며 그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죽으려는 생각보다 차라리 죽도록 노력해서 살라고 한다.
하지만 그 것은 때로는 당사자에게 너무나도 무책임하며 잔인하기까지 한 말일 수도 있었다.
살 수 있는 모든 희망이 꺾여 버린 인간에게 삶이란 지옥과도 같은 고통일 뿐이었다.
희망.
지금 선혜는 그 마지막 살고자 하는 희망을 붙잡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희망이 꺾여 버린다면 그녀에게는 그 어떤 의지도 남겨지지 않을지도 몰랐다.
“저…저.”
선혜는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는 강준을 보며 어쩌면 자신의 모든 것이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
그런 선혜와는 달리 강준은 선혜가 자신의 알몸을 보이며 애원을 하는 것에 왠지 모를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여인의 알몸이라면 강준 또한 한 두 번 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선혜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몸을 자신에게 주려고 한다는 사실 정도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를 안는 것 정도는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그런 행위에 장소 따위는 지금으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흠짓!
하지만 강준은 본능적으로 선혜의 손짓에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었다.
선혜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무의식적인 심리 상태에 빠져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다만 느끼는 것과 이해를 하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선혜를 안심시키려면 그녀가 원하는 것을 해 주어야만 한다는 것은 강준도 알고 있었다.
선혜를 품는다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선혜에게 마음의 안식이 생겨날 것이었고 그렇게 잠시 쉬고 난 뒤에는 그녀가 어느 정도는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가 원하는 해결은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말이었다.
“제…제발.”
“…….”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아니 머리 속에 지식으로서 기억하고 있는 강준이었지만 강준의 몸은 그렇게 반응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녀의 애원이 지금의 강준에게는 엄청난 부담감으로 작용을 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어깨에 올려진 짐이 무거워지는 것을 강준의 심리가 거절하고 있는 것이었다.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강준은 그 이상의 힘을 내기 어려웠다.
의무감에 짓눌린 가장이 거듭된 의무감에 점점 지쳐가다가 한계 이상의 상황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망가져 버리는 것과 같이 강준의 상태가 그러했다.
만약 강준 또한 휴식의 시간을 가졌더라면 그래서 조금이나마 마음의 여유를 가졌더라면 달랐을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강준은 절박함에 손을 내민 선혜의 손을 잡아 주었을지도 몰랐다.
‘아니 난…. 단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지켜주지 못했다는 마음의 상처와 자신 하나만도 벅찬 상태에서 강준은 정신적인 충격을 다시 한 번 받고 있었다.
그렇게 강준은 어느 사이엔가 자신의 코 앞까지 다가와 있던 선혜를 보고서는 흠짓 뒤로 물러섰다.
“아. 제발. 절 이 곳에서 나가게 해 주세요.”
선혜는 그렇게 뒤로 물러서는 강준에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는 더욱 더 강하게 애원을 했다.
마지막 동아줄이기라는 듯이 그녀의 애원은 이제는 강요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감정의 에너지가 워낙에 강했던 것 때문인지 강준의 심리 상태는 이미 금이 가 버린 유리창과 같은 내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 아! 그…그만…해.”
강준은 선혜의 다가옴에 뒷걸음을 치며 거부를 했다.
그런 강준의 행동에 울먹이며 애원을 하던 선혜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자신의 애원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부탁이 거절되어 버린 것이었다.
마지막을 건 인간의 간절한 바람이 꺾었을 때 야기되는 반응은 두 가지였다.
완전히 무너져 버리거나.
“날 여기서 내 보내 줘! 이 빌어먹을 새끼야!”
감정의 폭풍에 휘말려 스스로를 파멸 시키는 것이었다.
“나쁜 새끼!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고!”
선혜는 자신이 처한 모든 것이 눈 앞에 있는 강준 때문이라며 악을 썼다.
더 이상 그녀에게 거칠 것 따위라고는 없었다.
모든 희망을 잃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그런 원망과 저주를 받아내는 강준의 상태도 좋을리는 없었다.
“아…아니야! 내 잘못이 아니야.”
“아니! 너 때문이야! 이 모든 것이 너 때문이라고!”
강준은 자신 때문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런 강준의 힘 없는 목소리는 선혜의 악에 찬 목소리에 짓눌려 버렸다.
이미 뒷걸음을 친 순간부터 강준은 밀린 상태였다.
“아니야! 나 때문이 아니라고! 그만해!”강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가슴 속에 응어리진 것을 토해내면서 외쳤다.
“윽!”
하지만 바로 눈 앞에서 쏘아져 보이는 선혜의 저주어린 눈빛을 마주하자 이내 공포에 질려 버렸다.
“이익!”
강준은 그 공포와 자신을 짓누르는 부담감에 벗어나고자 했다.
도망?
아쉽지만 도망갈 길 따위는 없었다.
‘죽인다.’
강준은 과거 특전사의 고된 훈련을 받으며 도망갈 수 없다면 상대의 목숨을 끊어버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렇게 비극이 시작되어 버렸다.
“큭! 큭! 큭!”
강준은 어느덧 선혜의 알몸 위에 올라타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은 결코 야릇하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나도 무섭고도 괴기스럽기만 했다.
강준의 굵은 팔뚝의 힘줄들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여리디 여린 여인의 목이 조여졌다.
“이익! 익!”
강준은 안간힘을 쓰며 선혜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저주스러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에 안도가 되는 한 편 자신이 힘을 빼면 또다시 들려올 저주의 외침에 두려움이 계속됐다.
그렇게 강준의 우악스러운 힘에 선혜는 반항을 할 여력이 없었다.
아니 반항조차 할 생각이 없는 선혜였다.
두 눈 가득 뿜어져 나오던 저주의 눈빛이 강준이 점차 손에 힘을 주면 줄수록 누그러지고 있었다.
씨익!
오히려 선혜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희미하게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노력을 하는 이와 만난 것처럼….
그리고 선혜는 비록 목소리로는 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숨이 끊기기 직전에 자신을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 마. 워. 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강준은 너무나도 평화로운 얼굴과 함께 움직이는 작고 귀여운 여인의 입술을 볼 수 있었다.
“어?”
그 순간 사라져 버린 분노와 공포는 이내 강준에게서 손에 들어간 힘을 빼버리게 만들었지만 그 것은 너무나도 늦은 뒤였다.
툭!
선혜의 손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강준의 뺨을 닦아 주려다가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