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쥐를 잡는 법
숲 속은 적막했다.
풀벌레 소리조차도 들려오지 않을 정도로 아무런 생명체도 없다는 것처럼 아무런 소리도 만들어 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자연이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연의 적막함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자연이라는 공간에는 무수하게 많은 존재들이 서로의 소리를 만들어 낸다.
조금만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여 본다면 이내 수 많은 소리의 향연을 들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그 것은 상위의 포식자가 하위의 피식자들을 사냥하려는 순간일 터였다.
비록 자신이 상위의 포식자들에게 사냥을 당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위의 피식자들은 이 상위 포식자가 식사를 마치기를 숨죽여 기다린다.
언제 상위의 포식자가 사냥감을 자신들로 바꿀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포식자들의 사냥이 끝나고 난 뒤에 안도의 한숨을 쉬 듯이 평화로운 소음이 만들어 진다.
하지만 포식자들이 사냥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사냥에 나서려는 것에 피식자들은 두려움에 곧바로 몸을 움츠려야만 했다.
끝임 없이 뿜어져 나오는 살기 속에 주변의 공기는 차갑게 식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강요된 침묵으로 모든 생명체들의 신경은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마치 활시위가 바짝 당겨져 가는 것처럼….
하지만 그 활시위는 언제까지나 당겨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크아아아아악!”
과도하게 당겨진 신경이 더 이상은 그 내구성을 넘어서 버리면 이상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강요된 침묵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누군가가 고함을 지르며 숲 속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런 한 존재의 고함소리에 반응 하듯이 긴장감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던 숲 속 생명체들은 거친 숨을 토해냈다.
찌르르르르!
푸드덕! 푸드덕!
평화로우면서 나른한 소음은 아니었다.
너무나도 다급한 그래서 괴기스럽기까지 한 비명들의 향연이었다.
그런 피식자들의 소란스러움은 상위의 포식자들에게 있어서 사냥감을 발견하게 만들어 주는 기회였지만 상위의 포식자들조차도 그런 소란스러움에 인상을 찡그렸다.
“시끄럽군. 아주 난리도 아니야. 쳇! 오늘은 여기까지만 인가.”
생존 게임을 벌이고 있는 섬이 아닌 밖에서였다면 살인이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을 하시오는 이렇게 소란스러운 상황에 인상을 찡그렸다.
벌써 두 번째 임팩트 동안 하시오는 살아남았다.
최하 두 명 이상의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 왔다.
더 이상 나약하고 다른 이들에게 보호를 받는 인간은 살아남아 있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제는 쥐 사냥의 쥐가 된 것처럼 임팩트가 오기 전 먼저 상대를 죽여 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것은 다른 이가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로부터 시작된다.
‘난 죽을 거야. 비참하게. 처참하게 죽을 거야. 죽기 싫어. 죽기 싫단 말이야. 살고 싶어. 비참하게 죽고 싶지 않아.’
죽지 않으려면 다른 이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이제는 살아남은 이들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었다.
‘죽기 싫다면 날 죽이려는 놈들을 전부 죽이면 돼.’
그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인간은 죽었다.
다른 이들과 힘을 합쳐 이 상황을 해결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너무나도 다양한 인간들의 스펙트럼에 산산이 부서질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의심의 동물이다.
그 의심들을 통제하려면 강력한 시스템에 의한 통제가 필요했지만 그 시스템을 완성시키는 것은 많은 시간과 무수한 희생을 담보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시스템을 구출하려던 이들도 있었지만 그 시스템이 완성되기 전에는 작은 충격으로도 시스템은 파괴되어 버린다.
두 번의 임팩트는 그런 시스템이 파괴되기에는 충분한 충격일 터였다.
그렇게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결국 혼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자신 이외에는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없었고 그 믿을 수 없는 존재들을 하루라도 빨리 죽여야만이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하시오 또한 그런 부류였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다행인지 아니면 불행인지 광기에는 물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소란스러움에 온통 사냥꾼들이 날 뛰는 와중에 하시오는 같이 날 뛰지 않았다.
“난 내 능력을 어느 정도는 알거든. 나보다 더 무서운 놈들도 이 섬에 많이 있다는 거 말이야. 내가 몇 놈 더 죽이겠다고 날 뛰어 봐야 잡아 먹히는 놈 중에 하나가 될 뿐이라는 걸 말이야.”
하시오는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서는 자신의 몸을 숨길 곳이나 찾기로 했다.
물론 그 어디도 안전한 곳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공간이 안전할리는 없었다.
그렇게 하시오는 본능적으로 지금보다는 안전한 곳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륵!
사냥감을 사냥하러 가는 것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나서는 것에 심력이 더욱 소모되었다.
‘쳇! 도무지 마음에 드는 곳이 하나도 없네. 제길 그러고 보니 오늘도 제대로 먹지도 못했어.’
하시오는 지독한 허기짐에 먹을 것을 찾았지만 정글에서 먹을 것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후우! 또 풀 뜯어 먹어야 하는 건가?”
하시오는 더 이상 참기 어려운 허기짐에 갈등을 하다가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몇 차례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던 하시오는 이내 무언가를 발견하고서는 한 종류의 풀을 뜯어서는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크윽! 드럽게 맛없네. 이딴 걸 왜 쳐 먹는 거야?”
하시오는 욕설을 하며 인상을 구겼지만 입 안에 오물거리고 있는 풀을 뺏어 내지는 않았다.
우물우물!
사실 하시오는 자신이 먹고 있는 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 풀이 독초라면 하시오는 고통 속에 죽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시오가 먹어도 자신이 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은 자신의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하시오! 전혀 알지 못하는 공간에 조난을 당했다면 그리고 그 주변에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구분이 전혀 불가능하다면 말이다. 가장 가능성 높은 것에 모험을 할 수 밖에 없다. 뭐 정말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상황에서이고 설령 이런 판단으로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야.-
하시오는 자신의 아버지의 말이 자신의 생명을 조금이나마 유지시켜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면서 마저 자신이 뜯었던 풀을 입 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벌레들이 뜯어먹은 풀은 독초일 확률이 그나마 작다는 거지. 제길! 뭐 독초 좋아하는 벌레도 있지만 일단은 독만 없다면 인간의 위도 꽤나 소화 능력을 보여준단 말이거든.”
하시오는 지금 자신이 생명을 건 러시안 룰렛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즉시 죽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쥐들이 빠진 드럼통 속에서 그나마 먹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광적인 사냥에만 매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툇! 아직 사람 고기 먹고 싶은 정도는 아니라고.”
하시오는 안전한 곳을 찾던 중에 정글 속에서 머리를 처박고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는 괴물을 바라보았다.
그 괴물을 사냥할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마지막 이성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하시오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 것이었다.
그 아버지의 미소를 떠올리지 못했다면 하시오도 괴물 쥐가 되어 동족의 살을 뜯어먹고 있을 터였다.
자신이 살고자 하는 공포에 다른 동족을 죽이는 것 뿐만 아니라 살고자 하는 필요성에 의해 동족의 에너지를 얻는 처절함이 섬을 지배하고 있었다.
“포기하면 편해. 그런데 포기가 정말 안 되니까 문제야. 정말 죽기 싫거든. 하! 야끼 우동 먹고 싶다.”
하시오는 자신의 손에 들려져 있는 날카로운 단도를 슬쩍 바라보고서는 숲 속을 향해 스며들어갔다.
언제 자신이 죽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는 최선을 다해 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