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죽음보다 더한 고통
휴식은 사치일 정도로 정글 속에서의 생존게임은 잔인하고도 힘겨웠다.
강준은 허망하니 죽어버린 미셸을 바라보며 이제는 흘러내리지도 않는 눈물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토록 아등바등 살아남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결국에는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 버린 것이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강준조차도 이제는 귀찮음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왜 이들을 책임져야만 하지?’
대답을 결코 들을 수 없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는 강준이었다.
무엇 때문에 이들을 살리기 위해 아등바등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는 강준은 그만 놓아버릴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마지막 끈을 놓지 못한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망연자실해 있는 선혜와 함께 독에 중독이 되어서는 힘겨워 하는 밀러를 보며 강준은 지친 몸을 이끌고서는 죽음의 공간을 벗어나기로 했다.
살고자 하는 삶의 의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살아야만 한다는 막연한 생각이 강준의 머리 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지금 내 삶을 놓아버리는 것이 더 좋은 일 일터.’
강준은 자신을 붙잡고 있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지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 그들이 자신이 프랑스로 유학을 갈 때 했던 몸 건강히 돌아오라는 말이 지금의 강준을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인간은 관계의 동물이었고 그런 관계가 모조리 끊기게 되면 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미 죽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어쩌면 강준은 자신의 옆에 누군가를 두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홀로 남겨져서 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것의 두려움은 차라리 힘겹지만 옆에 누군가를 보호하고 있는 것보다 고통스럽고 무서운 일일 수도 있었다.
보호하고 있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하는 행동.
지극히 이기적이지만 이타적인 행동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강준은 그렇게 밀러와 선혜를 끌고서는 안전할만한 곳을 찾았다.
하지만 그 어떤 곳이 안전할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인간이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된 세계였고 그런 인간들이 어디에서 나타나 자신들을 죽일지 알 수도 없었다.
차라리 전쟁터가 더 낳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도 들 정도였다.
적어도 그 곳에서는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이 존재했고 보급을 받을 수 있으며 약간이나마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곳에서는 그 어떤 것도 지원받을 수 없었다.
오직 자신의 손에 들린 작은 정글도 하나와 이제는 거의 소진된 총알이 장전되어 있는 권총 한자루 뿐이었다.
비틀! 비틀!
그렇게 비틀거리며 세 사람들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로 절대 안전하지 않을 그리고 안전할 수 없는 곳을 찾아 정글을 헤매고 다녀야만 했다.
그렇게 얼마 동안이나 헤매고 다닌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강준은 이내 흐릿하던 정신 속에서 눈에 익은 장소에 도착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아! 결국 또 여기인가?”
인간이란 익숙한 곳에서 가장 안정감을 찾기 마련이었다.
그 것은 인간 또한 일반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생명체라는 것이었고 강준도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와중에 지금까지 자신에게 약간이나마 편안한 휴식을 주었던 곳을 행해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그렇게 도착을 한 곳은 바로 구덩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허물어져서는 내부로 들어갈 수 없는 구덩이였고 그 구덩이는 사자(死者)의 안식처가 되어 있는 곳이었다.
강준은 그런 구덩이의 이구였던 곳에서 이제는 풀들이 가득 자라 있는 것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아직 머리 속이 무거웠지만 조금이나마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강준이 이 곳을 아지트로 삼았던 이유가 주변에 생존을 위한 다양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과 식량 그리고 평안한 잠자리가 보장되던 곳이었기에 강준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안식처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것은 과거의 이야기 일뿐 현재는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는 강준과 일행들의 몸을 뉘울 수 있는 그 어떠한 안식처도 되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강준은 다시금 발을 돌려야만 했지만 강준은 막막함에 발길이 여간해서는 떨어지지 않았다.
“하아! 하아!”
“흐윽! 흑!”
“…….”
강준은 아직도 흐느끼는 선혜와 숨을 몰아쉬는 밀러를 지탱하며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더 이상 뒷걸음질을 치지 못하는 곳에 도착을 했을 때 강준은 자신의 등에 닿는 벽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구덩이를 발견했을 때 어느 정도의 경사가 있던 절벽이 있었고 그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던 강준이었다.
절벽이라고는 하지만 암벽과 같은 식의 절벽은 아니었고 흙더미들이 쌓여 있는 그런 가파른 경사였다.
등을 비빌 수 있는 그런 곳에 강준은 약간이나마 편안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두 사람을 지지하며 힘겨움을 느끼던 육체가 조금이나마 편안함을 강준에게 알려온 것이었다.
그렇게 강준은 자신을 짓누르는 힘에 더욱더 등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흙더미에 의지를 했다.
“후우!”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간 것이 자연이면서도 자신이 지금 의지할 곳 또한 자연인 것에 아이러니함을 느끼는 강준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행복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준의 몸과 마음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
비록 그 것이 일시적인 것에 불과할 수도 있었지만 강준에게는 지금의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푹!
“어?”
그렇게 자신의 체중뿐만 아니라 선혜와 밀러의 체중까지 지탱해주던 흙더미가 순간 밀린다는 느낌과 동시에 강준은 절벽 속으로 몸이 뚫고 들어가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크윽!”
“까아악!”
“으윽!”
세 사람은 뒤로 넘어지면서 완전히 절벽 속으로 빠져 들어갔고 이내 온 몸을 때리는 흙들에 기겁을 해야만 했다.
잘못하면 흙에 파묻혀서는 생매장이 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후두둑! 후두둑!
요란하게 넘어진 세 사람의 위로 흙더미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세 사람 모두 살기 위해 두 팔을 허우적거리면서 요동을 쳤고 그렇게 한동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난 것인지 더 이상 흙더미가 떨어지지 않게 되었을 때 쯤 세 사람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이건?”
“여기는 어디에요?”
세 사람은 동굴의 입구에 널브러진 채로 멍하니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넘어지면서 흙벽에 가려진 동굴의 입구가 들어난 것이었다.
내부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세 사람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이 두 눈에 보였다.
“동굴인가?”
어떻게 이런 공간이 만들어져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강준은 자신들에게 안식처가 생겼다는 것에 왈칵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다.
만일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자신들에게 커다란 선물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격을 하는 것이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이런 선물은 너무나도 감격적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입구가 들어나 버렸기에 안전성이 치명적으로 낮아졌지만 조금만 몸을 놀린다면 안전한 안식처로 삼을 수 있을 터였다.
“들어가자.”
“예? 아!”
강준은 힘겨워 하는 밀러를 끌고서는 동굴의 안 쪽의 한 구석에 눕히고서는 선혜 또한 동굴 속에 놓아 둔 다음에 동굴 밖으로 나가서는 가시 덩쿨같은 것을 끌고 와서는 입구를 틀어막아 버렸다.
좀 더 재대로 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 강준에게도 이 정도가 한계였다.
그렇게 세 사람은 새로운 아지트에서 달콤하면서도 편안한 휴식을 잠시나마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