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죽음보다 더한 고통
다들 만신창이였다.
미셸은 독살 당했고 아그네스 또한 교살 되었다.
밀러조차도 독에 중독이 된 것처럼 창백한 안색에 입가에서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 중에 선혜가 가장 멀쩡했지만 온 몸의 옷이 갈기갈기 찢겨져서는 결코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남은 선혜나 밀러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망연자실해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평온해 보이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고온으로 열이 펄펄 끓고 있으면서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강준이었다.
아니 그런 강준보다도 더욱 더 평온한 것은 이제는 이 세상의 사람들이 아닌 두 명의 동료들일 터였다.
산자가 죽은 자를 부러워하는 세상이었다.
“쿨럭! 쿨럭!”
입 맛이 없어서 미셸이 준 스프를 마시다가 버려버린 덕분에 죽음에 이를 정도로 독에 중독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혀가 마비되고 몸의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 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팔루를 추적하기에는 무리였고 고작해야 쫓아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시…싫어! 싫단 말이야! 이런 거 정말 싫어!”
선혜는 지금까지 지금의 자신의 상황들을 참아오다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서는 비명을 내질렀다.
“내가 왜 이런 곳에 있어야 하는 건데! 날 꺼내 줘! 꺼내 달란 말이야! 이제 못해! 안 해! 이제 그만 멈추란 말이야!”
선혜는 있는 힘껏 목이 터져라고 고함을 질렀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이 참을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들로부터 벗어나고만 싶었다.
차라리 죽는다면 이런 공포와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선혜였다.
“하아! 하아!”
그렇게 절규를 하는 선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밀러는 아무런 반응을 보일 수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자신들 스스로를 추스르는 것만으로도 역부족일 정도였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한 사람은 몸 상태를 추스르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하고 다른 한 명은 비명을 지르며 공황상태가 되어 가고 있었다.
다른 사냥꾼 한 명이 나타나면 누구하나 자신들을 지킬 수 없는 상태였다.
“차…차라리 죽으면 이 고통도 없어질까?”
선혜는 그 누구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경조차도 써주지 못하는 것에 점점 정신적으로 피폐해 지고 있었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강인한 그녀라고 할지라도 지금 그녀가 느끼고 있는 충격은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주변에는 시체들로 넘쳐났고 자신을 죽이려는 존재들이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이제는 동료들조차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 누구라고 할지라도 견디기 쉬울 리가 없었다.
차라리 미쳐 버리는 것이 정신적 충격에서부터 자유로울 수도 있을 터였다.
물론 생존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할 터였지만 선혜는 온전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었다.
“누가! 누가 나 좀 도와줘! 도와 달라고!”
선혜는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붙잡아 주려는 존재는 없었다.
“흐윽! 흑! 흐으윽!”
인간의 생존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관심이었다.
세상으로부터 격리가 되었다는 외로움은 인간이 자신들의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가장 큰 동기였다.
그렇게 선혜는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이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세상의 다른 이로부터 필요치 않는 존재라는 것은 그녀의 삶의 의지를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덜! 덜! 덜!
그렇게 선혜는 자신의 화살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붙잡았다.
지금가지 자신을 막아왔던 존재들의 심장에 박혀왔던 화살들이 지금은 선혜의 심장을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위였지만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지금의 선혜는 이 것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 행동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 이런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빨리 이 곳에서 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일 거야.”
선혜는 결국 죽게 될 것 빨리 죽어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선혜의 화살은 점점 선혜의 심장을 향해 다가왔다.
덜! 덜!
신체가 죽음에 대한 반발을 하고 있었지만 그 신체조차 과도한 피로로 인해 선혜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한계 상황에까지 도달을 한 것이었다.
영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강인한 의지를 가진 채로 모든 역경을 극복해 내는 것은 현실에서는 너무나도 힘겨운 일이었다.
꾹!
그렇게 선혜의 화살은 그녀의 옷에 닿았고 점점 옷을 파고들어가면서 피부에 붉은 핏방울을 만들어가기 시작을 했다.
“아파.”
선혜의 입에서 아프다는 말이 튀어나왔지만 그 아픔보다 더한 고통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아픔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미…미안해요.”
그렇게 선혜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겠지만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서는 화살을 붙잡고 있는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서는 두 눈을 찔끔 감고서는 날카로운 화살의 촉을 자신의 심장을 향해 있는 힘껏 밀어넣었다.
덥썩!
“……!”
하지만 그 순간 선혜는 자신의 손을 붙잡는 따뜻한 손길에 화들짝 놀라면서 두 눈을 떴다.
덜! 덜!
자신의 손에 누군가의 손이 닿자 놀랍게도 선혜의 손에서는 힘이 완전히 빠져 버렸다.
언제 손이 창백하도록 화살대를 붙잡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힘이 들어갔던 것이 지금에는 그 가벼운 화살 하나 들고 있을 힘도 없어졌다.
그렇게 선혜는 놀란 눈으로 자신의 손을 붙잡은 존재를 바라보았다.
“하아! 하아! 더…더 이상은 안…돼.”
“가…강준?”
의식을 잃고서는 쓰러져 있던 강준이었다.
그런 강준이 풀린 눈으로 선혜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제…발. 하아! 하아! 제발 부탁…이…야.”
강준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로 선혜의 손을 붙잡고서는 사정을 했다.
그 사정이 무엇인지 강준조차도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선혜를 앞에 두고서는 말을 했다.
그런 강준의 말에 선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거부를 했다.
“너…너무 힘들어. 나…나 그만 놔줘.”
“하아! 하아!”
선혜는 자신을 놔 주라는 말을 했지만 강준도 역시나 좌우로 고개를 흔들면서 말을 했다.
“제발…제발. 제발.”
강준의 말에 선혜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자신을 붙잡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편으로는 자신을 붙잡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 깊숙이에서 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흐윽! 흑! 흐으윽!”
그렇게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선혜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과 자신과 같이 고통을 받고 있는 이가 있다는 것에 안도가 되는 것이었다.
꼬옥!
그런 선혜를 강준은 의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 팔을 벌려서는 선혜를 껴안았다.
흐느끼는 가녀린 육체의 떨림이 강준에게로 전해지고 있었고 강준은 그런 가녀린 몸을 보듬어 주고서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작은 희망의 불꽃이 거센 바람 속에서 겨우 버텨내었지만 아직도 거센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그 거센 바람에 언제 희망의 불꽃이 꺼져버릴지 알 수 없었지만 살아 있으면 그 희망을 꿈꿀 수 있는 법이었다.
“흐윽! 흑! 흐으으윽!”
“…….”
강준은 공허한 눈빛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는 정글의 잎사귀들을 바라보았다.
‘저 잎사귀들을 치워 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