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모래알
두근! 두근! 두근!
자신의 심장 소리에 세상이 요동을 치는 듯 했다.
물론 자신의 작고 볼품없는 몸 속의 심장이 요동을 친다고 할지라도 거대한 세상이 미동조차 하지 않을 것은 분명했지만 자신의 심장의 요동에 세상이 온통 뒤집어 지는 것만 같았다.
“후우! 커억! 컥!”
약을 타기 전에 자신의 것을 떠 놓은 스프 접시를 급히 먹던 아그네스는 사례가 들려서는 기침을 했다.
“괜찮으세요?”
“으응? 그…그래 괜찮단다.”
아그네스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미셸을 보며 남은 스프를 허겁지겁 먹었다.
그리고서는 잔득 긴장을 한 채로 끊고 있는 스프를 따라서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미셸에게 내밀었다.
“어디 아프세요?”
“응? 아 몸이 조금 좋지 않구나. 이거 저 분들에게도 좀 드리겠니?”
“예! 알았어요.”
아그네스는 미셸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외면한 채로 밀러와 선혜에게 스프 접시를 가져다 주라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떨리는 것에 안절부절 못하는 아그네스였다.
그리고 그런 아그네스의 모습에 정말로 몸이 안 좋다고 생각을 한 것인지 미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스프 그릇을 받아 들었다.
“…….”
미셸의 그런 모습에 아그네스는 덜덜 떠는 손을 부둥켜 잡고서는 미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미안함과 죄책감이 그녀의 몸과 마음을 요동치게 했지만 아그네스는 이를 악물고서는 시선을 외면했다.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녀로서는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남을 짓밟아야만이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비정한 정글 속에서 인간성 따위는 사치스러운 일에 불과했다.
“이거 좀 드세요.”
“응? 아! 고마워.”
미셸은 밀러에게 스프 접시를 내밀었다.
아직은 서먹서먹하지만 강준을 중심으로 연결고리가 있는 이상은 적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다지 경계심 없이 미셸이 내민 스프접시를 받아드는 밀러였다.
밀러에게 스프를 전해 준 미셸은 이번에는 강준을 보살피고 있는 선혜에게 다가갔다.
“저기.”
“안 먹어.”
하지만 선혜는 먹지 않겠다는 말만을 하며 미셸에게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머쓱해진 미셸은 선혜의 차가운 목소리에 스프접시를 들고서는 모닥불 가로 갔다.
“안 드신데요.”
“그…그러니?”
아그네스는 스프를 받아들지 않는 선혜에 안절부절 못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데로 되지 않는 것에 불안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세 사람 모두가 독약이 든 스프를 먹어야만 했다.
그래야 강준을 제외한 다른 이들이 죽거나 행동 불능이 되어서는 아그네스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었다.
‘어쩌지?’
아그네스는 슬쩍 본 밀러가 스프 접시를 먹는 것을 보고서는 선혜를 바라보았다.
달그락! 달그락!
그런 와중에 미셸도 스프를 먹는 것인지 나무 스푼으로 스프를 떠먹었다.
단지 맛이 벌로 없는지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지만 이런 생활에서 맛이 있는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에 억지로 떠 먹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스프를 먹고서는 밀러는 주변을 정찰하려고 하는 것인지 정글 속으로 사라져 버리자 아그네스는 침을 삼키며 주변에 있던 돌덩어리를 붙잡았다.
두근! 두근!
계획이 어긋나기는 했지만 선혜를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다가가서는 억지로 먹일 수도 없는 것이었다.
저벅! 저벅!
아그네스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접시와 단단한 돌멩이를 들고서는 선혜의 뒤 쪽을 향해 다가갔다.
아그네스의 두 눈동자는 긴장으로 인해 실핏줄이 터져서는 점차 붉어지고 있었다.
마치 붉은 눈물을 흘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점차 붉어지는 흰자위들에 공포스러움 마저 느껴질 정도였지만 그 누구도 그런 아그네스의 얼굴을 보고 있는 자는 없었다.
덜! 덜!
점차 심해지던 몸의 떨림이 기이하게도 선혜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자 떨림이 사라지기 시작을 했다.
그리고서는 아그네스의 얼굴에서는 공포와 갈등에서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미소로 변해가기 시작을 했다.
분명 그녀의 지금 얼굴을 본다면 모든 사람들이 기대에 찬 미소를 짓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녀의 입가는 비틀어져 올라가고 있었다.
인간의 정신은 생각 이상으로 단단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그네스도 정신이 파괴되어 가고 있었다.
아니 이미 산산조각이 나서는 다른 인격이 된 것처럼 얼키설키 조립이 되어버렸다.
“스프 좀 드세요.”
“안 먹는다고 했잖아요!”
선혜는 다시금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것에 살쾡이처럼 화를 내었다.
역시나 미셸 때와 같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강준의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좀.”
목소리에는 걱정이 된다는 느낌이 들어 있었지만 역시나 무언가를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선혜였다.
하지만 그 때 그녀의 귀로 들려온 작은 소리에 선혜는 등줄기를 스치고 지나가는 차가운 한기를 느껴야만 했다.
“커억!”
단발마의 비명소리는 아니었지만 무언가를 토해내는 목소리과 함께 선혜는 몸을 본능적으로 비틀었다.
그리고서는 방금 전까지 다정스럽게 말을 걸어온 노인의 목소리에서 소름을 느껴야만 했다.
“그냥! 먹어! 이 년아!”
아그네스는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돌멩이를 있는 힘껏 선혜의 뒤통수를 향해 내려찍으려고 했다.
“이익!”
선혜는 당장이라도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내려찍어져 오는 무언가를 보며 최대한 몸을 비틀면서 다리를 땅바닥을 훑어내었다.
툭!
그렇게 선혜의 다리가 아그네스의 발에 걸리면서 아그네스는 몸의 균형을 순식간에 잃어 버려야만 했다.
만약 아그네스가 좀 더 젊고 힘이 강했다면 설령 균형을 잃었다고 할지라도 완전히 몸의 균형이 무너져 버린 선혜를 향해 달려들 수 있었을 터였다.
“윽!”
아그네스는 자신이 휘두른 돌멩이가 허공을 가르는 것에 화들짝 놀라면서 두 팔을 버둥거리며 허공을 휘둘렀다.
하지만 선혜가 그 것을 그냥 놓아 둘리가 없었다.
“이 늙은이가!”
선혜는 빠르게 일어서면서 주먹을 아그네스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퍼억!
정말이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아그네스의 얼굴에서 보였던 미소가 두려움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살려 줘요. 제발.”
아그네스는 자신의 얼굴의 통증을 느끼지도 못한 채로 두려움에 빠져서는 얼굴을 잔득 일그러트리고 있는 선혜를 보며 살려달라고 빌었다.
선혜는 그렇게 덜덜 떨며 살려달라고 부탁을 하는 아그네스를 노려보다가 모닥불 근처에서 주저 앉은 채로 피를 토해내고 있는 미셸을 보았다.
“커억! 커억! 컥!”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로 끈 풀린 인형처럼 땅바닥에 주저 앉은 채로 피를 토해내고 있는 미셸의 모습에 선혜는 망연자실 해야만 했다.
“이…이 미친 년이!”
선혜는 미셸 뿐만 아니라 지금은 보이지 않고 있는 밀러도 아그네스가 준 스프를 먹었다는 것을 떠올리고서는 아그네스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을 했다.
“왜? 왜! 이 딴 짓을 한 거야? 왜?”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되기 시작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시 시작된 비극에 선혜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온 얼굴이 피에 물들 정도로 아그네스를 때린 선혜는 여전히 피를 토해내면서 몸을 비틀어대는 미셸에게로 달려갔다.
“미셸! 괜찮아! 미셸!”
“쿨럭! 커억! 쿡!”
미셸은 도무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피를 토해내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몸 안의 모든 장기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듯이 통증과 함께 역겨운 무언가를 토해내고 있었다.
선혜가 말을 거는 것에도 못 알아들은 채로 초점마저도 점차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집에 가야 하는데.’
미셸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자신의 팔과 다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흔드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그 것도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서는 TV의 화면이 꺼지 듯이 앞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고 잠시 후 화면이 하얗게 켜지면서 두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 엄마! 아빠!”
미셸은 그 것이 자신의 엄마와 아빠임을 알고서는 정말이지 환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자신이 집에 돌아왔음을 안 것이었다.
자신의 엄마와 아빠의 손질에 이끌려 앞으로 가던 미셸은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다는 생각에 뒤를 돌아 보았지만 아무도 없는 푸른 들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운 누군가가 자신을 부른 것 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것이 누구인지조차도 잊어가는 것 같았다.
“이 지옥에서 벗어난 것을 축하해. 이제 푹 쉬렴. 미셸.”
선혜는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미셸을 가슴에 안은 채로 마지막 배웅을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