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모래알
모래들은 진흙과는 달리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
본래 모래는 진흙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단단한 바위나 돌들의 집합체였다.
그런 단단하기 그지없는 집합체였다가 다시는 하나로 합쳐지지 못할 모래알이 되어버린 모래들은 파도와 바람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파도와 바람이 강준의 파티에도 불어오고 있는 중이었고 이 파도와 바람에 의해 단단할 것만 같았던 강준의 파티가 잘게 부스러지고 있었다.
두근! 두근!
아그네스는 불안했다.
애초부터 강준의 파티와 자신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었다.
엘리의 파티와도 마찬가지이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엘리가 같은 여성으로서 자신을 어느 정도는 배려를 해 주었고 일단 지금의 상황과는 달리 그 때는 엘리가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구심점을 이루는 강준이 의식불명으로 쓰러진 경우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그네스는 굉장한 부담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살아남아야 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남아야만 해.’
그녀는 남편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기에는 위험 요소들을 제거하는 방법이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그런 위험 요소들은 바로 자신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자신으로서는 자신보다 젊고 강한 이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고작해야 미셸 정도나 제압이 가능할까 다른 사람들은 무리였다.
아니 미셸조차 힘들 수도 있을 정도로 아그네스는 늙고 약했다.
그런 그녀였음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하는 욕망과 갈망은 강했다.
‘내가 살려면 저들을 죽여야만 해.’
죽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 속에서 암세포처럼 퍼져나가기 시작을 했다.
과거의 그녀였다면 끔찍하고 역겨운 생각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녀의 눈에 다른 사람들은 경쟁 상대였고 자신을 죽일 대상들이었다.
이제는 남은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아그네스 그녀도 이제는 다른 이들을 죽여서 자신이 살아남는 일이 무척이나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그네스는 의식을 잃은 채로 누워 있는 강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서는 자신의 남겨진 시간을 바라보았다.
‘이틀 남았어.’
임팩트가 끝난지 하루 정도 밖에는 지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의 남겨진 시간이 동일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아그네스는 스스로가 사냥을 할 수 없었기에 다른 이들이 먹고 남은 것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자신의 타임을 리셋 할 사냥감도 마지막에 돌아가는 것이었고 그렇게 자신에게로 돌아갈 사냥감이 없다면 그녀는 파티의 구성원들의 손에 죽게 될 것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그네스는 다른 이들의 손목에서 반짝이는 숫자들이 전부 자신보다 더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나마 미셸이 가장 적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는 이틀 이상이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강준이 쓰러져 있는 상황에서 다른 이들이 자신의 시간을 늘려주기 위해 사냥감을 잡으러 다닐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결국 그대로 죽어서 다른 이의 라이프가 될 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발버둥을 칠 수 밖에 없었다.
그 발버둥이 결국 스스로를 죽이는 극단적인 선택이 될 수 밖에 없었지만 가만히 있다면 결국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임팩트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안도를 하고 있을 이들도 있었지만 그 임팩트와는 달리 아직도 치열한 싸움을 해야만 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니 어느덧 이 죽음의 게임장에서는 한시도 투쟁을 멈출 여유 따위는 없어져 가고 있었다.
매 시간 시간이 살아남은 이들에게 임팩트가 되고 있는 것이었고 아그네스에게는 지금이 바로 그 임팩트의 순간이었다.
인간성의 말살과 극도의 개인주의가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아그네스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사냥감을 저장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다른 이들을 죽이고 저 사람을 묶어만 둘 수 있다면 나는 이주 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주 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면 아그네스로서는 최대의 성과일 수 밖에 없었다.
오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는 몇 백명도 남지 않았다.
이대로 이 주면 살아남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얼마 되지 않을 터였다.
물론 그 기간 동안 식량을 찾아내고 정글이라는 자연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만 하겠지만 지금 아그네스에게 그런 것까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움찔!
아그네스는 그런 생각을 하고 난 뒤에 몸을 떨고서는 몸에 잔득 힘을 주었다.
‘할 수 있어. 빅터! 미안해요. 당신의 말을 따르려면 내가 이래야만 한다는 걸 이해해 줘요.’
아그네스는 다른 이들의 손가락질 보다 이미 죽어버린 자신의 남편이 자신의 이런 행동에 실망을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두려웠다.
비록 자신의 남편과 그렇게 다정스러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해더라도 그녀의 기억 속의 남편은 자신에게 헌신적이면서 정이 많은 최고의 남편으로 각인이 되고 있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린 남편에 대한 기억이 머리 속에 심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아그네스는 자신의 남편이 자신을 비난하지 말아 줄 것을 기도하면서 자신의 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후우! 후우!”
그렇게 자신의 품 속에 만져진 작은 주머니에 아그네스는 심장이 요동을 치는 것을 느꼈다.
숨이 거칠어지고 눈동자의 실핏줄이 조금씩 터질 정도로 그녀는 흥분 상태가 되어갔다.
혹시나 들키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에 얼른 작은 주머니를 놓고 싶었지만 그녀는 더욱 더 힘을 줄 뿐 절대 놓지 않았다.
‘이거라면….’
그녀는 지금 자신의 손에 움켜쥐어진 것이라면 자신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을 수 있다는 매력에 그녀는 다른 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힐끔거리며 바라보았다.
다행히 세 사람들은 쓰러져 있는 강준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그네스는 얼른 나무 접시에 야생초들로 만든 야채스프를 떠서는 강준을 간호하고 있는 선혜에게 다가갔다.
“뭐지?”
선혜는 아그네스가 다가오는 것에 매서운 눈빛으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했다.
“으…음식이에요. 일단 먹여야 빨리 일어날 듯 싶어서요.”
“…….”
강준을 먹이라는 것에 선혜는 아그네스를 노려보았다가 아그네스의 손에 들린 죽과도 같은 스프를 바라보았다.
결국 받아든 접시의 야채스프를 조잡하게 만든 나무 숟가락으로 떠서는 강철의 입가에 흘려넣는 선혜였다.
물론 아그네스를 믿지 못하기에 먼저 자신의 입에 넣어 보는 선혜였다.
이상이 없음을 알고 나서야 강준의 입에 떠넣는 선혜의 모습을 보며 아그네스는 조심스럽게 모닥불로 가서는 주머니에 있는 것을 품에서 빼내었다.
덜! 덜! 덜!
강준에게 준 것이야 별 다른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강준이 살아야 만이 자신이 이주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그네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안절부절 못해하다가 이를 꽈악 물고서는 품 안에 있던 주머니를 꺼내어서는 야채 스프에 집어넣었다.
보글! 보글!
검은 가루들이 스프의 위에 떨어져서는 검은 색을 띄자 아그네스는 화들짝 놀라고서는 얼른 나무 국자로 휘저어 검은 가루들을 지워나갔다.
그리고서는 다시금 다른 이들을 바라보았지만 다행히 그녀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이는 없었다.
씨익!
아니 단 한 사람 그녀의 행동을 본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는 아그네스의 행동을 보고서는 자신이 하려던 행동을 잠시 동안 미루기로 했다.
잘만 하면 일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훗! 일이 재미있어 지는 군.’
그는 강준의 파티의 구성원이 아니었다.
다들 정신이 팔려있는 가운데 습격을 하려고 했지만 자신은 혼자엿고 상대는 집단이었기에 조금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숨어서 기회를 노리다가 아그네스의 행동을 보고서는 잘만 하면 별다른 피해 없이 사냥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그네스도 그런 자신의 행동을 누군가가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모래알처럼 산산조각 난 파티에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할 지도 몰랐다.
[작품 후기]
몇 일 전에 올렸던 119편은 다른 작품을 제가 실수로 올린 것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시고 저녁 맛있게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