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어긋난 인연
어디서 부터 일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마치 현실이 아닌 꿈인 것만 같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모든 것은 현실이었다.
강준은 창백한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엘리를 보고서는 급히 엘리에게 다가가서는 그녀를 부축했다.
“엘리!”
“하아! 하아! 강준. 강준이야? 정말 강준이 맞는 거야?”
강준은 엘리의 몸을 붙잡자 손에서 느껴지는 진득한 물기와 후각을 아찔하게 만드는 핏내음에 몸에서 힘이 빠지려고 했다.
하지만 이대로 힘이 빠진 채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일단 출혈을 멈추게 해야 하니까! 엘리 정신을 차려! 정신을 차리라고!”
강준은 엘리의 출혈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옷을 벗어서는 지혈을 시키려고 했다.
“하아! 하아! 이미 늦었어. 내 몸은 내가 더 잘 알아. 괜한 힘 쓰지마. 그냥 나 좀 안아 줘. 나 좀 안아 줘.”
엘리는 지금의 자신의 상태가 되돌아 갈 수 없는 강을 이미 너머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살 수 있었다면 그녀도 절규를 하며 발버둥을 쳤을 테지만 이제는 힘들었다.
강철은 그런 엘리의 말에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지만 새파랗게 질려서는 시체 같은 느낌마저 주는 엘리의 상태에 가슴 한 편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제길! 엘리!’
강준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엘리의 몸상태가 이미 어떤 조취를 취하기에는 늦어 버린 것을 느끼고 있었다.
‘너무나도 짙게 풍기는 죽음의 냄새.’
살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남지만 죽을 사람은 어떻게든 죽는다는 격언이 떠올랐다.
지금 엘리에게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죽게 될 것이라는 느낌이 가득히 풍겨나고 있었다.
살리기에는 무리였다.
오히려 그 것이 엘리를 더욱 더 고통스럽게 할 뿐인게 될 상황이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
결국 강준은 엘리를 살리고자 하는 노력보다 엘리가 자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꽈악!
엘리의 몸에 강하게 느껴지라고 강준은 잔득 힘을 주어 엘리를 껴안았다.
피가 몸에서 빠져나가면 신체의 기능들은 점차 정지를 해나가며 감각도 둔해지기 마련이었다.
평소였다면 아프다고 소리를 쳤을 만큼 강하게 껴안았지만 엘리는 강철이 자신을 껴안자 주고 있다는 감각을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이야.”
“…….”
그녀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은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그다지 오랜 시간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건 강준도 그리고 엘리도 모두 알고 있는 일이었다.
“내 소원이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 말이야. 지금까지 기도를 해 왔었지만 단 한 번도 기도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었거든.”
엘리는 눈앞에서 강준이 나타난 것에 정말이지 놀랐다.
정말 신이 존재해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 준 것만 같았다.
“그…그런데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네. 으윽! 정말 기분이 좋은데 말이야. 흑윽!”
엘리는 얼굴을 찡그리고서는 울먹이며 말을 했다.
강준은 그런 엘리의 말을 들어주며 그녀의 거친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주었다.
“분명 강준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해서 만났는데 이제는 원망스러워. 너무나도 분해.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엘리는 감정을 통재할 수 없는 듯이 몸을 떨었다.
조금만 더 강준을 빨리 만났더라면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다치지 않는 상태였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왜 자신이 이런 꼴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듣고 있어?”
“그래. 듣고 있어.”
엘리는 조금씩 눈 앞이 보이지 않았다.
강준의 손을 붙잡고 있었지만 그 감각도 조금씩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점차 혼자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것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나 이제 강준을 다시 만났는데. 이제 헤어질 필요가 없는데. 나 정말 강해졌어. 누구도 나를 무시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고. 그런데 내 꼴이 왜 이 모양이지?”
엘리는 이제 행복하고만 싶었다.
비록 서로가 죽고 죽이는 지옥같은 공간이었지만 그런 공간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런 행복을 지금 강제로 빼앗기는 것이 너무나도 억울하기만 했다.
“나 참 이기적이지? 하나님께 그렇게 부탁을 했는데도 더 큰 걸 원하는 내가 너무나도 이기적이지?”
“아니. 이기적이지 않아.”
강준은 점점 식어가는 엘리의 몸을 꼬옥 안은 채로 엘리의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조금이나마 자신의 온기를 전달해 주고 싶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녀의 체온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지만 강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강준이 자신은 이기적이지 않다고 말해 주자 엘리는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너는 착한 아이라고 칭찬을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는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아! 춥다.”
엘리는 가슴 한 구석이 따뜻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몸이 무척이나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졸립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준. 내 옆에 있는 거야?”
“그래. 옆에 있어. 이렇게 니 손을 잡고 니 머리카락을 쓸어 주고 있는 걸.”
엘리는 강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느낌은 둔해져서는 잘 모르겠지만 강준의 목소리에 안심이 되는 것이었다.
순간 자신이 어린아이같이 응석을 부린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정도는 충분히 해도 자신은 괜찮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내 옆에 있어 줘. 이제 떠나지 말고 내 옆에 있어 줘.”
“그래.”
엘리의 부탁에 강준은 선선히 대답을 했다.
“춥고 졸려. 왜 이리 졸린지 모르겠네. 그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잠을 자도 평안하게 잔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내가 지켜 줄 테니까 편안하게 자.”
강준은 그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며 칭얼거리는 엘리의 말에 자신의 입을 엘리의 귀에 가져다 대고서는 말을 했다.
이미 엘리의 눈과 온 몸의 감각이 서서히 기능을 정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엘리에게 말을 해 주는 것도 과연 엘리가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엘리는 강준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잘 움직여지지 않은 입술을 움직여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응! 나 오랜만에 참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아.’
엘리의 입술은 마지막 미소만을 지은 채로 더 이상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엘리는 강준에게 말을 하고 있는 줄 알았지만 실상은 혼잣말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강준! 나 조금만 잘게. 그러니까 조금만 있다가 나 깨워 줘. 내가 맛있는 요리도 해주고 우리 같이 여행도 하고 하자.’
그렇게 엘리는 강준과 할 수 있는 수 많은 가슴 벅찬 일들을 계획하며 잠에 빠져 들어갔다.
다행히 그다지 아프다는 느낌은 없었기에 편안하게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렇게 완전히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버린 엘리를 몸으로 느끼며 강준은 미동도 없이 땅바닥에 주저 앉아 있을 뿐이었다.
삐삑!
그리고 잠시 후 강준은 자신의 손목시계의 타이머가 다시 리셋되는 소리를 들으며 지독한 모멸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가 떠나는 길에 거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강준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힘겹게 엘리의 몸을 안아들은 채로 몸을 일으켰다.
“푹 쉬어. 엘리. 너와의 추억 영원히 잊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강준은 엘리의 몸을 안은 채로 정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