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어긋난 인연
강준은 온 몸이 천근만근인 상황이었지만 다리를 멈출 수 없었다.
정성스럽게 그러면서도 집요하게 손바닥으로 물을 뜨지만 손가락의 틈 사이로 허무하게 빠져나가 버리는 물방울들처럼 희망들이 흩어져 가기만 할 뿐이었다.
‘끝까지 살리겠어. 더 이상 죽는 이가 없도록 말이야.’
강준은 지금까지 자신과 함께 했던 이들이 하나 둘씩 죽어갔던 것을 떠올리며 더 이상의 희생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길로는 그 어떤 것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포기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은 강준은 어느덧 되짚어 온 길 쪽으로 느껴지는 모든 인기척을 하나하나 잡아내기 시작을 했다.
작은 숨소리 하나, 세차게 뛰는 심장 소리 그리고 몸에 풀들이 부딪치는 소리 하나까지 강준의 감각에 온 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이 찌릿한 느낌을 받으며 잡아냈다.
덥썩!
“히익!”
그렇게 은밀하게 움직이는 고양이과 맹수처럼 강준은 숨어 있던 존재를 붙잡아서는 얼굴을 확인했다.
“사…살려 주…세요.”
“…….”
간득 겁에 질린 채로 자신의 몸을 낚아 챈 무표정한 남자에 사로잡힌 이는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다.
자신도 느끼지 못한 사이에 자신의 몸이 사로잡혔으니 놀라기도 놀랐지만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지독한 살기와 공포심에 저항의 의지가 차갑게 식어 버릴 정도였다.
“아니군.”
강준은 자신이 찾아낸 이가 자신이 찾고자 하는 사람이 아님을 확인하고서는 그대로 남자를 놓아 주고서는 사라졌다.
“허억! 허억! 뭐…뭐지?”
마치 유령처럼 나타나서는 다시금 유령처럼 수풀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강준에 놀라 심장 부근을 부여잡던 남자는 잔득 겁에 질린 표정을 짓다가는 더욱 더 몸을 움크리기 시작을 했다.
과연 자신이 이런 자들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자신감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강준은 자신이 향하는 길 도중에 숨어 있는 모든 이들을 전부 확인을 하며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 동안을 달리고 있는지 인지도 못하는 사이에 강준의 감각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한 존재가 포착이 되었다.
강준은 역시나 본능적으로 반응을 하며 그 존재의 뒤를 포착해서는 최대한 은밀하면서도 빠르게 접근을 했다.
그리고서는 곧바로 그 남자의 목에 날카로운 칼을 들이 밀었다.
“헉!”
순식간에 목덜미로 차가운 금속성의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에 밀러는 기겁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대로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에 아득해 지는 느낌이었다.
‘여기까지인가? 제길! 강준 미안하다.’
밀러는 강준에게 미안함이 들면서 결국 자신은 이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것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목덜미에 드리워졌던 칼이 사라지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는 밀러였다.
“후우! 밀러. 뭘 이런 곳에서 멍청하게 숨어 있는 거야. 정말 죽고 싶은 거냐?”
조금은 화가 나 있는 듯 했지만 무척이나 따뜻한 말투였다.
그러면서도 익숙한 목소리에 밀러는 멍하니 뒤를 돌아보았다.
“강준?”
조금 피곤해 보이기는 했지만 미소를 짓고 있는 강준의 얼굴이 보이고 있었다.
안도감과 함께 그 동안의 두려움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엘리는 어디에 있지?”
하지만 이내 강준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엘리라는 여자를 찾는 것에 밀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손가락을 한 쪽으로 가리켰다.
“저리로 갔어. 무언가 이상한 냄새가 났는데 그 냄새를 따라 갔어.”
“뭐? 냄새?”강준은 밀러의 말에 깜짝 놀랐다.
냄새라는 말에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제니퍼가 떠오른 것이었다.
만약 선혜의 도움이 없었다면 강준 자신은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엘리가 홀로 제니퍼를 쫓아갔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길! 언제! 얼마나 된 거야?”
“두…두 시간 정도 지났어.”
밀러는 창백한 표정을 짓고서는 경악을 하고 있는 강준에 일이 잘못되어간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강준의 표정에서 너무나도 다급함을 느낀 것이었다.
“제길! 한시간 뒤에도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데이브에게 가 있어. 최대한 조심을 하고 말이야. 알았지. 이번에는 나를 찾으러 오지 않아도 되니까 안전한 곳에 있으라고.”
강준은 다시금 밀러에게 말을 하고서는 밀러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을 했다.
‘엘리가 위험하다.’
강준에게 있어서 엘리는 겁에 질려 있는 연약한 여자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여자가 겁도 없이 제니퍼를 추적하고 있다는 것에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는 존재를 과연 엘 리가 제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못했다.
그렇기에 강준은 엘리와 제니퍼가 조우를 하기 전에 엘리를 찾아서는 밀러와 함께 돌아갈 생각이었다.
‘제발!’
그렇게 강준은 제발 엘리가 무사하기만을 기도하며 온 감각을 다 끌어 올려서는 주변을 진동시키는 감각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미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 버렸고 온 몸이 연신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지만 그 모든 경고를 무시해버리고 있는 강준이었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헤매고 다니던 중 강준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누군가 다가온다.’
엘리를 찾는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었지만 강준은 자신의 정면을 향해 다가오는 존재가 그리 만만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제니퍼? 아니야. 이런 느낌이 아니다. 지금의 느낌은 좀 더 강렬한 맹수의 느낌이다. 제니퍼 그녀처럼 거미나 뱀 같은 차디차면서도 살기가 뿜어지는 느낌이 아니야. 누구지?’
자신과 정면으로 붙더라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기에다가 상처를 입은 것 같은데.’
강준은 자신의 정면을 향해 걸어오는 존재가 정상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아직도 묵직한 흉포함이 느껴지지만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마치 죽어가는 느낌에 강준은 천천히 수풀 들 속으로 몸을 숨겼다.
“하아! 하아!”
그렇게 강철이 수풀들 속으로 몸을 숨기는 사이 수풀이 흔들리며 한 여인이 배를 손으로 틀어막은 채로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뚝! 뚝!
그녀의 배에서는 꽤나 깊은 상처가 난 것인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땅바닥을 적시면서 흘러나오는 피는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더욱 더 많이 몸 밖으로 흘러나왔다.
“아아! 아파. 너무 아파.”
그녀는 온 몸의 신경을 건드리는 통증에 아픔을 느꼈지만 몸을 멈추지는 않았다.
적어도 이런 정글 속에서 쓸쓸하게 죽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아! 하아! 미안해. 강준. 정말 미안해. 그런데 나 너무 아프다. 나 정말 보고 싶은데 내 눈 앞에 나타나 주면 안 될까? 나 이제 싸움도 잘 하고 살아남는 방법도 잘 알고 먹을 것도 잘 찾을 수 있게 되었는데 말이야.”
그 여인은 엘리였다.
엘리는 점점 힘이 빠지는 몸을 부여잡은 채로 힘겹게 움직이고 있었다.
강준을 공격했다는 제니퍼를 엘리는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고 잔득 상처 입은 맹수의 상태였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화가 나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엘리 또한 그녀 못지 않게 살기를 뿌려대는 맹수였고 그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 후에 격돌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엘리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때 난입을 한 다른 존재 덕분에 엘 리가 제니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엘리는 자신이 그다지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나님. 제가 정말 나쁜 아이인 것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마지막 소원이에요. 강준이 너무나 보고 싶어요. 제가 지옥에 가도 좋으니까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 주실 수 없으신가요?”
엘리는 간절한 미소를 지으며 기도를 했다.
평생토록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은 기도였지만 이번 한 번만은 들어 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엘리였다.
점점 몸의 통증도 사라져 가고 있었고 몸의 감각도 빠져나가는 피와 더불어 사라지고 있었다.
“싫어! 이렇게 죽기는 싫어! 무서워. 무섭단 말이야! 강준!”
엘리는 결국 점점 죽어가는 자신의 육체를 보며 울음을 터트렸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적막 속에서 홀로 죽어가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리고 그 때 엘리는 기적과도 같은 것을 붑 앞에서 목격을 할 수 있었다.
“엘리?”
“……!”
그리운 목소리!
반가운 얼굴!
강준이었다.
무척이나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강준의 모습에 엘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한 그래서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소원이 이루어 졌네.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