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두번째 임팩트
밤은 점점 깊어만 가고 강준과 밀러는 별 다른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두 사람 모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든 결국에는 입 밖으로 내기 힘든 진실을 이야기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쉽게 이야기 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고 침묵만을 지킬 수는 없었다.
“강준.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밀러가 먼저 불안한 듯이 물었다.
자신들이 결국에는 비참하게 죽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밀러였다.
아무리 살아남기 위해 바득바득 발버둥을 치더라도 결국에는 차디찬 시체가 되어서 땅바닥을 뒹굴고 말 것이라는 공포는 견디기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밀러도 그리 정신력이 약한 이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광경들과 경험들을 계속 겪고 있었다.
“동료들이 있어. 그들과 함께 최대한 살아남아 보려고.”
“동료? 그들을 믿을 수 있어?”
강준은 믿겠지만 다른 이들은 결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밀러였다.
‘후! 아무 것도 못 믿는 눈빛이군.’
타인에 대한 지독한 불신감이 가득한 눈빛에 강준은 쓴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밀러의 그런 불심감에 무어라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강준 자신도 타인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당장에 자신의 동료였던 엘리나 데이브 조차도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던 강준이었다.
비록 그들과 합류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완전히 믿는다는 것은 힘들었다.
‘과연 나는 그들을 믿을 수 있을까?’
강준은 몸을 살짝 떨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뢰는 철저하게 부서져 있었다.
그렇게 부서진 신뢰는 아무리 사랑이든 우정으로든 다시 이어붙이기란 어려웠다.
‘그리고 난 지금 눈 앞의 밀러를 믿을 수 있을까?’
강준은 절박하면서도 처절하게 밀러를 구해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는 과연 눈 앞의 밀러조차도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인간의 믿음이란 너무나도 쉽게 부서지는 유리창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강준이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자신의 생각을 떨쳐 낸 강준은 급히 밀러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믿을 수 있어.”
“…….”
강준이 믿을 수 있다는 말을 하며 미소를 짓는 것에 밀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강준이 믿을 수 있다는 것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것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안 것이었다.
‘어차피 강준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거다. 강준을 믿어야만해.’
밀러는 강준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죽었을 것이라는 것에 강준을 믿기로 했다.
자신과는 인종도 국가도 다른 친구였지만 같이 지내오면서 강준이라면 믿을 수 있는 친구라는 생각을 했었다.
사람은 위험한 순간에 본래의 진가를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다는 말처럼 이렇게 위험하고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강준이었다.
몇 일 전 정글에서 강준을 보았을 때는 강준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생각해서 도망을 쳤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도망을 칠 필요가 없다고 강하게 스스로에게 되뇌고 있는 밀러였다.
“그래. 니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믿을 수 있겠지. 그럼 언제 갈 건데?”
“해가 뜨고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난 다음에….”
강준은 세컨드 임팩트가 일어나고 난 뒤에 움직일 것이라고 대답을 해 주었다.
멀리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밀러는 그런 강준의 말에 몸을 부르르 떨고서는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반짝이는 타이머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타이머가 0이 되는 순간 자신의 목숨은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죽기 싫으면 살인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고 살인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치가 떨리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고 결국에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미 내 손으로 피를 묻혔는데 뭘 그리 두려워 하는 거지.’
밀러 또한 지금가지 살아있다는 것은 살인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 것이 사고이든 아니면 살해이든 결국에는 죽은 자를 만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눈 앞에 눈에서 빛을 내고 있는 강준도 살인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순간 밀러는 짙게 풍겨나는 피비린내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강준이 자신의 조국에서 군인이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나를 만나기 전에도 이미 사람을 죽였을 수도 있었어. 그는 달라진 것이 없어. 그래도 두려움을 느끼는 건 나의 마음이 달려졌을 뿐.’
밀러는 강준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달라졌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심호흡을 했다.
“나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서는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 죄책감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던 밀러였다.
숨기고 싶었지만 숨긴다고 사라질 것들이 아니었다.
“…….”
강준은 밀러의 고해성사와도 같은 말에 아무런 말 없이 들어주기 시작을 했다.
‘첫 살인에 대한 트라우마는 생각보다 강하다. 이 트라우마에 사람들은 미치거나 아니면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한다.’
십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교육을 통해 살인은 죄악이라고 세뇌를 받게 된다.
그렇게 정신이 완전히 세뇌를 받아 오던 이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난 뒤에 받는 충격은 상당히 강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것은 능숙한 살인자도 그리고 수 많은 이들을 죽였던 군인들도 처음에는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살인에 미쳐버린 이들은 이후로 점점 죄책감이 사라지며 살인을 즐기게 되거나 아니면 더욱 더 살인에 대해서 혐오감을 가지게 된다.
그 무엇이 되든 정신적인 충격은 평생 가게 되는 것이었다.
다만 그 살인의 당위성을 보장 받느냐 못 받느냐에 대한 문제가 있는데 보장을 받게 된다면 그 때는 어쩔 수 없었다며 모면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살인은 당위성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단지 살기 위해 악당들의 명령에 따라 자신들과 동일한 처지의 사람들을 죽인다는 것 뿐이었다.
결코 영화나 소설이 아니었기에 웃고 떠들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밀러는 자신이 처음 살인을 한 것에 대해서 담담하게 말을 했고 강준은 그런 밀러의 말에 아무런 말 없이 들어만 주었다.
그 것만으로도 밀러는 충분히 마음의 안정을 약간이나마 찾을 수 있게 될 터였다.
‘후우! 그에 반해 나는 말하기가 좀 곤란하군.’
그런 밀러에 비해 강준은 죽인 사람이 너무 많았다.
거기에다가 몇 번인가는 이유 없이 죽인 경우도 있었기에 더욱 더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살인에 무감각해졌어.’
강준은 자신이 어느 덧 살인에 무감각해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익숙해졌다고 할 정도로 스스로가 놀랄 정도가 된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밀러와의 연결 고리가 없었다면 눈 앞의 밀러도 죽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 여기를 빠져 나갈 수 있을까?”
조금은 마음의 짐을 털어낸 듯한 밀러의 질문에 강준은 정신을 차리고서는 대답을 했다.
“그래. 빠져나갈 수 있어. 그리고 우리를 붙잡아 온 듯한 놈들의 아지트를 찾아낸 것 같아. 그 곳에 가면 방법이 있을 거야.”
강준은 선혜를 떠올리며 말을 했다.
그녀가 살아 있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확신을 하지는 못했지만 흑표에 의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강준이었다.
“뭐? 그 놈들의 아지트를 발견했다고?”
밀러는 강준의 말에 꽤나 놀랐다는 듯이 물었다.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릴 정도로 화가 나는 일이었다.
지금도 무슨 목적으로 자신들을 이런 정글 속에 집어 던져 놓고 죽음의 게임을 시키는 것인지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곳에 가면 이 것을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동료들과 함께 움직여야만 해.”
강준은 그들을 믿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자신만으로는 자신들을 이리로 끌고 온 작자들에게 복수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조금이라도 더 복수를 할 수 있는 확률이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록 전부 죽게 될 수도 있었지만 그 것 그 것대로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강준과 밀러는 점점 대화를 이어가면서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득히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절규를 들으며 자신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안도와 함께 불안함을 계속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아직 두 사람에 대한 위기는 끝나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산 자와 죽은 자들의 파티가 어둠과 함께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는 중이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