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두번째 임팩트
상당한 양이 쏟아져 내린 빗방울을 향해 원망스럽다는 듯이 탐욕스러운 불길이 연신 하늘을 불태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 것은 헛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쏴아아아아아!
불길의 몸을 쉴 세 없이 두들기는 빗방울들은 자신에게 분노를 하며 열기를 뿜어내는 불길을 차츰차츰 제압해 나가기 시작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불길들을 제압해서는 온 세상을 물의 세상으로 만들기 시작을 했다.
후두둑! 후두둑!
하지만 그렇게 온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 것만 같던 빗방울도 사그라진 불길처럼 영원할 수는 없었다.
오래지 않아 찾아온 바람에 구름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고 그 것을 대신하는 것은 이제는 조금씩 빛을 잃어가는 태양이었다.
아직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태양의 빛이었지만 점점 서쪽 바다 너머로 떨어지려고 하고 있었고 그 태양을 대신해서는 푸른 달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영원불멸함은 없고 흥망성세가 있는 법인 것처럼 자연 또한 그렇게 어느 하나가 강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어둠이 찾아오기 시작을 했지만 세상은 조용함과는 달리 시끄러움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오늘은 마지막 밤이 될 수도 있었고 아니면 또 다른 지나가는 밤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이들이 점점 광기에 가득 차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춥다.’
태양에 의해 따뜻하게 덥혀진 모래와 흙들이 빗방울과 달빛의 차가움에 빠르게 식어 가고 있었다.
마치 얼음장처럼 식어가는 주변의 온도에 강준은 몹시도 춥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들오들 떨리는 몸은 강준이 견디기 어려운 한기를 느끼게 하고 있었고 더 이상의 잠도 빼앗아가고 있었다.
‘너무 추워. 왜 이리 춥지? 아! 춥다.’
이미 비는 그쳤지만 모래와 흙은 물을 잔득 머금고 있었기에 강준의 온 몸은 물에 잔득 젖어 있는 상태였다.
온 몸에서 추위를 느끼고는 있었지만 강준은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눈을 뜨면 두 번다시 감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이대로 눈을 뜨지 않은 채로 영원히 편안함을 느끼고 싶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추위는 점점 강준의 인내심과 의지를 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덜! 덜! 덜!
몸의 체온을 올리기 위해 연신 몸을 떨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고 오히려 허기짐까지 찾아오기 시작을 해서 강준을 참기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춥다. 그리고 배 고프다.’
인간의 욕구는 편하고자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을 한다.
그리고 그 편안하고자 하는 것은 살고자하는 것으로부터 온다.
강준은 죽는다는 느낌이 점점 강해져가는 주변 환경에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강준의 정신을 깨우는 소리가 강하게 강준의 뇌리를 때렸다.
탕!
강렬하면서도 위협적인 소리.
강준은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지금까지 뜨지 않으려고 했던 눈을 떴다.
‘정신 차려.’
총소리는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강준은 온 몸의 긴장이 돌아오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이내 강준은 자신뿐만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을 떠올렸다.
‘밀러!’
자신의 친구인 밀러를 자신이 구해냈다는 것을 떠올리는 강준이었다.
비교적 정상적인 몸을 가지고 있던 강준 자신조차도 지금의 추위와 허기짐을 견디기 어려워 했을 정도인데 결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밀러가 온전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강준은 허겁지겁 모래흙더미에서 빠져나와서는 밀러를 묻어 둔 곳에서 밀러를 빼내었다.
“하아! 하아! 밀러! 밀러!”
온통 흙에 더러워진 밀러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강준은 밀러의 몸을 흔들다가 멈추고서는 밀러가 숨을 쉬는지부터 확인을 했다.
“숨은 쉰다. 하지만 맥박이 약해. 이대로는 위험하다.”
아직 숨은 쉬고 있었지만 점점 맥박이 낮아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오랜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었다.
강준은 밀러의 상태에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불연듯 떠오른 것이 생각이 나서는 급히 밀러를 등에 업었다.
이대로 비를 피하고 따뜻하게만 해주는 것으로는 밀러를 살리기란 어려웠다.
‘강심제가 필요하다. 강심제.’
심장의 수축을 강하게 해 줄 수 있는 약이 필요했다.
하지만 별 다른 약품을 구한다는 것이 이런 정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곳으로 가야만 해!’
강준은 밀러를 등에 업은 채로 다리에 힘을 주고서 달리기 시작을 했다.
어디서 이런 힘이 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강준의 몸은 자신의 한계 이상을 내며 밀러를 업은 채로 정신없이 달렸다.
“후우! 후우!”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하던 강준은 오래지 않아 익숙한 지형으로 접어들었다.
고작 몇 일 정도 밖에는 지나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강준이 멈춘 순간 강준의 눈에서는 무척이나 애잔한 눈빛으로 변했다.
‘데일리.’
데일리의 무덤이었다.
팔루로부터 도망을 가기 위해 자신이 일주일 가까운 시간 동안 머물러 있던 구덩이 앞에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다시 돌아온 곳에는 데일리의 무덤이 강준을 기다려주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몇 일 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붉은 무덤의 흙에는 잡초 하나 올라오지 않았지만 강준은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한 쪽으로 무너져 버린 구덩이가 보였다.
“으으!”
잠시 회상에 잠기던 강준은 자신의 등 뒤에서 흘러나온 밀러의 신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는 연신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리기 시작을 했다.
자신이 찾던 것이 이 근처 어디 쯤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던 강준이었다.
그렇게 연신 고개를 두리번 거리며 무언가를 찾던 강준의 눈에 마침내 그 것이 포착이 되었다.
“디기탈리스!”
강준은 디기탈리스 꽃을 찾아내고서는 기쁨에 고함을 질렀다.
디기탈리스는 유럽이 원산지인 여러해살이 풀이었다. 그런 것이 어떻게 아프리카 옆의 이 섬에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강준은 분명히 기억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문제는 디기탈리스는 맹독을 가진 식물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강심제로도 사용이 되는 식물이었다.
‘강심제를 만드는 방법이 뭐지? 뭐였지?’
강준이 나름 여러 종류의 의약재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디기탈리스 꽃도 한국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꽃이기도 했고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던 중에 한 여학생으로부터 들었던 것으로 어떤 방식으로 강심제로 사용하는지는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다.
특히나 디기탈리스의 독은 꽤나 독하기에 몸이 약해져 있는 밀러가 잘못 먹는다면 정말로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강준은 어떤 부위가 약재로 사용이 되는지를 떠올려야만 했다.
“강준! 기억해 내자! 어떤 부위이냐! 뿌리? 아니면 줄기! 꽃? 어떤 부위였지?”
강준은 이를 악물은 채로 어떤 부위를 사용해야 하는지를 떠올리기 위해 머리가 터져나가도록 기억을 떠올렸다.
지금도 밀러는 죽어 가고 있었기에 약을 먹이고서는 영양을 섭취 시켜 주어야만 했다.
꾸욱!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고 머리를 차가운 땅바닥에 대고서는 웅크린 채로 한참동안 기억을 떠올리던 강준은 자신을 꽤나 좋아했던 여학생의 얼굴을 기억해 냈다.
‘그녀의 얼굴, 목소리, 그리고 몸. 눈동자. 봉긋한 가슴. 그리고...’
야한 장면들도 그리고 수줍게 웃던 미소도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쳐다보던 기억들도 연이어 강준의 머리 속에서 춤을 추었다.
그리고 그런 수 많은 기억들 속에서 그녀의 말을 떠올렸다.
-디기탈리스의 잎.-
강준은 두 눈을 번쩍 뜨고서는 일미터 가량의 디기탈리스 줄기에서 이파리들을 때어 내었다.
보통이라면 응달에 이 잎을 충분히 말리고 난 뒤에 약재로 사용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 따위는 없었다.
강준은 디기탈리스 입을 뭉쳐서는 자신의 입에 넣고 씹기 시작을 했다.
“크윽!”
입이 얼얼할 정도로 강한 맛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토해 버리고 싶었지만 이렇게 중화를 시키지 않은 채로 밀러에게 먹였다가는 밀러의 몸이 버텨내질 못할 것이었다.
디기탈리스의 독성을 겸디어 내면서 강준은 충분히 잎을 씹고 난 뒤에 밀러의 입 속으로 즙을 흘려넣었다.
강준은 자신의 입이 얼얼함을 느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적당한 양이라고 생각되는 양만큼 밀러의 입 안으로 흘려 넣은 다음에 밀러를 바라보기 시작을 했다.
두근! 두근!
디기탈리스의 약효가 강준의 심장을 점차 두근거리게 하고 있었지만 밀러의 상태를 바라보느라 자신의 몸 상태를 돌보지는 않고 있는 강준이었다.
“하아! 맥박이 빨라진다.”
그리고 점차 밀러의 맥박이 조금씩이지만 빨라지는 것을 느끼며 강준은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