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죽음의 혈투
강준이 파고 들어간 곳은 한 쪽 구석에 잔득 쌓여져 있는 흙더미였다.
사람들을 파묻기 위해 땅을 파고서 나온 모래가 제법 섞인 흙더미들을 쌓아 놓은 곳이었다.
그냥 일반적인 흙더미였다면 강준으로서도 절대 그 안으로 파고 들어가기가 쉬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당 부분의 흙들이 모래로 이뤄져서인지 백사장의 모래찜질처럼 안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었다.
먼저 밀러의 몸을 바닥에 눕히고서는 밀러의 옷을 찢어 밀러의 얼굴 부분을 가렸다.
그리고서는 자신의 가방에서 물을 꺼내서는 그 천에 뿌려 주었다.
그 다음으로 모래들을 밀러의 몸 위로 덮기 시작을 했다.
“하아! 하아!”
주위의 뜨거운 불길에 피부들이 따끔거리기 시작을 했지만 강준은 멈추지 않앗다.
멈추는 순간 자신이나 밀러 모두가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어.’
강준은 모래와 흙이 불길의 열기를 얼마나 막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하지 못했다.
만약 충분한 양으로 몸을 덮는다면 충분히 열기를 막아 줄 수 있을 테지만 그 정도로 충분한 양을 덮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거기에다가 숨을 쉴 수 있는 부분도 생각을 해야만 했기에 마냥 모래와 흙을 몸 위에 덮을 수도 없었다.
열기가 강해지면 주변의 공기가 끊어 올라 그 공기를 들이쉬면서 폐가 녹아내릴 수가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역시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밀러의 얼굴을 감아둔 천에 물을 뿌리기는 햇지만 그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물이 말라버린다면 역시나 마찬가지로 질식 아니면 폐가 녹아 죽음에 이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백사장에서 친구들과 놀 때 만드는 모래 찜질 무덤을 만들고서는 밀러의 머리까지 대충 덮어주고 난 뒤에 자신도 모래 속으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을 했다.
당연히 자신의 옷에서 찢은 천으로 입과 코를 막고서 그 천에다가 물을 뿌려 최대한의 열기가 내부로 들어가지 않도록 했다.
그 외에도 연기를 마시지 않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의 열기로부터 자신의 신체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강준은 태양열에 의해 뜨끈뜨끈한 모래흙 속에 파고 들어가서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벤의 파티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뿐만 아니라 집마저도 불에 붙어 타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거기에 더해 주변의 풀들이나 잡목들도 맹렬한 불길에 타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세상 전부다 불타오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행히 불길이 이 쪽으로는 오지 않는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탈 것이 별로 없는 모래흙더미 주위로는 불길이 다가오지 않았다.
모래나 흙은 불에 타는 물질이 아니었고 흙더미로 인해 주변의 탈 것들이 다 파묻혀서는 비교적 안전할 수 있었다.
물론 공기가 점차 뜨거워 지고는 있었지만 물에 젖은 천은 그나마 제 효과를 발휘해 주고 있었다.
강준은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심을 하며 불길이 사그라 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크아악! 살려줘!”
“뜨거워! 뜨겁다고! 살려줘! 살려 달란 말이야!”
그런데 그 때 강준은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설마?”
밀러의 옆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떠오르는 강준이었다.
온 몸이 땅 속에 파묻혀 있어서 불길을 피할 수 없던 사람들이었다.
오직 머리만을 땅 위로 내밀고 있어서 불길이 자신들의 머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지옥이군. 지옥이야.”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살려줘! 머리에 불이 붙었단 말이야! 뜨거워! 뜨겁단 말이야! 이 개자식들아! 살려줘!”
불길이 머리카락들에 옮겨 붙고 피부를 불태운다. 땅 속에 들어 있는 몸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지만 머리는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고개를 좌우로 휘두르며 그 불길을 끄려고 노력을 해보았지만 오히려 더욱 더 불길을 키우기만 할 뿐이었다.
“흐어어어엉! 차라리 죽여줘! 뜨거워! 죽여 달란 말이야!”
차라리 죽여주기를 소망했지만 그들을 죽여 줄 수 있는 사람조차도 없었다.
마치 신이 버린 자들처럼 불길에 자신의 머리가 타오르는 데로 천천히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제길!’
강준은 여과없이 들려오는 지옥의 울부짖음에 이를 악물었다.
그들까지 구하기에는 애초부터 시간이 부족했지만 이 모든 것이 마치 자신의 잘못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덜! 덜! 덜!
생존을 위해 사람을 죽이기는 했지만 최대한 고통을 주지는 않으려고 노력을 했다.
그들에게 그 어떠한 원한도 없었기에 강준은 고통없이 죽여주는 것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고통에 몸부림을 치면서 제발 자신들을 죽여 달라는 절규를 듣고 있어야만 했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하다고 할지라도 이런 절규에는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미치광이 살인범이 아닌 이상에는 도무지 맨 정신으로 버텨내는 것이 어려웠다.
덜! 덜! 덜!
두려움과 죄책감.
자신도 저렇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저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밖에 없다는 죄책감이 강준을 뒤흔들고 있었다.
‘제길! 제길! 제기랄!’
강준은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마치 자신을 원망하는 듯한 욕설과 모든 것이 너 때문이라는 비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바로 옆에서 직접 자신에게 고함을 지르는 듯한 그런 느낌은 참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너 때문이야! 네 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 거라고! 니가 불을 질렀지? 다 알고 있어! 왜? 왜! 불을 지른 거야!-
-니 놈이 불만 지르지 않았어도!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을 거야! 왜 불을 질렀어! 왜! 왜 불을 질렀냔 말이야!-
-부탁 좀 할께! 지금이라도 날 고통없이 죽을 수 있게 죽여 줘! 제발 부탁이야! 부탁이라고! 이 나쁜 새끼야! 날 좀 죽여줘! 고통 없이 죽여 달라는 말이야!-
강준의 귀로 환청이 듣려 오기 시작했다.
지금 불에 타 죽어가고 있는 이들이 자신에게 비난을 하고 있는 듯한 그런 환청이었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그 환청 때문인지 강준은 아니라는 혼잣말을 하기 시작을 했다.
하지만 자신이 불을 질렀고 그들을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는 것은 강준도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아니란 말이야! 듣기 싫어! 듣기 싫단 말이야!”
강준은 모래흙더미 속에서 온 몸을 요동치며 발악을 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지금도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절규를 듣기 싫었다.
“듣기 싫어! 꺼져! 꺼져 버리란 말이야! 애초부터 니 놈들이 그 놈들에게 안 붙잡혔으면 되었을 거 아니야! 내가 니 놈들까지 왜 신경을 써야 하느냔 말이야!”
결국 강준은 자기 합리화를 하며 자신에게 비난을 하던 이들을 거부하기 시작을 했다.
이를 갈아가며 거부를 하기 시작을 하자 강준의 신체는 강준의 의지대로 귀를 닫기 시작을 했다.
점점 소리가 들려오지 않기 시작을 했다.
이미 몸이 땅에 파묻혀 있던 이들은 머리가 불에 타 죽어 버린 뒤였지만 강준은 환청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에 스스로 청력을 포기해 버린 것이었다.
고요.
절대적인 고요가 강준에게로 왔고 강준은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강준은 청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환청도 강준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흐흐! 흐흐흐!”
강준은 이제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비명소리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편안함과 함께 강준은 지독한 피로감에 눈을 감았다.
졸음이 밀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하늘을 가득 뒤덮고 있던 시커먼 구름에서 물방울들이 하나 둘씩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을 했다.
쏴아아아아아!
이 작은 물방울들은 오래지 않아 폭우가 되어 쏟아지기 시작을 했고 지상의 불길을 꺼트리기 시작을 했다.
처음부터 하늘의 비구름을 보고 불을 질렀던 강준이었기에 빗 속으로 안전하게 밀러와 함께 도망을 치려고 했었던 것이었다.
그런 비가 땅에 떨어지면서 모래 흙더미 속에 몸을 파묻고 있던 강준과 밀러의 몸을 적시기 시작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땅의 열기가 식어 간다.
그리고 생존자들의 삶의 의지도 점점 식어가기 시작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