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죽음의 혈투
강준은 불길이 치솟아 오르면서 빠르게 울타리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을 했다.
신경을 곤두 세우면서 자신에게 생긴 육감으로 주변을 느끼려고 했지만 주변의 불길 때문에 그 것은 힘들었다.
‘생각보다 불길이 거세다.’
처음에는 고작해야 들불에 지나지 않았지만 바람과 만나면서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이 커져만 가고 있었다.
하늘의 시커먼 구름을 보며 오래지 않아 비가 내릴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 결정을 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정글의 날씨는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맑은 하늘이다가도 갑자기 비가 내릴 수가 있지만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고 할지라도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법이었다.
한마디로 지금 강준이 피운 불길이 이 섬 전체를 불태워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차라리 전부 다 불태워 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강준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차라리 이 섬의 모든 것이 다 불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살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그리고 어디에선가 이런 광경들을 지켜보고 있을 빌어먹을 놈들에게 복수를 하려면 그 것이 어떻게 본다면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물론 현실 도피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준도 잘 알고 있었다.
자살.
무척이나 편한 방법이었다.
포기하면 쉽다는 말처럼 모든 것을 다 불태워 버리고 나면 결국 손해는 자신 뿐이었다.
자신은 죽어도 세상은 아무런 일 없이 흘러갈 뿐이었다.
자신이 죽음으로서 세상에 복수한다는 것은 중2병 환자의 헛소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차라리 끝까지 살아남아 복수를 하는 것이 진정한 복수였다.
‘그 놈들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어 줄 테다. 그리고 목을 비틀어 죽여버리겠다.’
강준은 포기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울타리에 도착을 하고 신경은 곤두세워서 울타리 너머에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 한 뒤에 울타리를 넘었다.
이미 울타리까지 번지고 있는 불길은 더 이상 사람의 손으로 끌 수 없는 단계에 까지 왔다.
‘최대한 빨리 밀러를 구출해서 이 곳을 빠져나가야만 한다.’
불길이 완전히 이 주변을 뒤덮어 버린다면 강준이라고 할지라도 절대 빠져 나갈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은 슈퍼맨이 아니었다.
불길에 피부가 녹아내리고 뼈가 재가 되어 타버린다.
그렇게 된다면 결코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불길을 뚫고 나오는 그런 정면은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었다.
순간적으로 수백도에 이르는 온도가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면 피부는 회복 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런 불길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었으며 바람에 흩날려 옷에 붙기라도 한다면 결코 끌 수 없는 지옥의 불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일단 몸은 가볍다.’
강준은 자신의 몸이 무척이나 가볍다는 것에 만족을 했다.
컨디션은 좋았고 느낌도 좋았다.
몸과 마음이 모두 최적의 상태였기에 운만 따라 준다면 충분히 이번 임무도 완수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강준은 빠르게 밀러가 땅에 묻혀져 있던 곳을 향해 달렸다.
애초부터 그리 크지 않은 벤의 아지트였기 때문에 도착을 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밀러!”
강준은 아직 죽지 않은 채로 여전히 땅에 묻혀서는 머리만 내 놓고 있는 밀러를 보고서는 달려갔다.
정말이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밀러에게도 달려갔지만 밀러는 여전히 모든 희망을 놓아 버린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밀러! 정신을 차려! 나다! 강준이라고! 이 새끼야! 정신 차리란 말이야!”
강준은 밀러가 공황 장애가 온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공황장애가 온다면 견딜 수가 없었다.
지독한 무기력증과 우울증이 동반되고 삶의 의지마저도 잃어버릴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강준은 땅에 묻혀져 있는 밀러의 몸을 나이프로 파내면서도 연신 밀러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상태의 밀러였기에 일단은 강준의 힘으로 밀러를 파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제길!’
일단 땅에서 파내주고 난 뒤에 밀러가 자신의 발로 이 곳을 벗어나주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 사항이었지만 지금 상태로 봐서는 어려울 것 처럼 보였다.
결국 강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감당을 해야만 한다는 소리였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그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강준은 포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살아만 있어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마치 전우를 보는 것처럼 살아만 있어 준 것으로도 강준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인간은 절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다.
의지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고 강준은 지금은 그 의지의 대상이 밀러였다.
그렇기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강준은 자신의 온 힘을 다해서 밀러의 주변 땅을 파헤치고서는 밀러를 땅에서 뽑아내려고 했다.
한차례 파냈었던 땅이기에 뽑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울 것은 없었다.
땅에 묻힌 사람이 빠져나오는 것이 어렵지 밖에서 빼내는 것은 그리 어려울 것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강준은 있는 힘껏 밀러의 몸을 빼내었다.
“이봐 밀러! 정신 차려!”
밀러의 몸을 흔들며 밀러의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할 때 강준은 자신의 귀에 들려온 소리에 몸을 움찔 떨었다.
철컥!
“……!”
익숙한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가 불러올 위기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후우! 네 놈이었나?”
벤은 권총을 강준에게 겨냥을 하고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기억을 하고 있는 동양인이었다.
처음 자신들이 붙잡아 왔던 존재로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 죽이려고 했던 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자신들이 이런 처지에 빠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동료 3명이 죽거나 실종 된 것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보금자리마저도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는 것에 인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네 놈도 아주 빌어먹을 놈이다.”
벤의 말에 강준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히려 자신이 볼 때 벤의 파티가 더 빌어먹을 놈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원한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이나 자신들 모두가 같은 처지였고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 뿐이었다.
벤은 강준이 붙잡고 있는 남자가 강준의 동료이거나 친구라는 생각을 하며 강준이 이렇겠까지 한 것에 대해서 질문을 해 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대화의 필요성 따위는 없었고 그냥 자신의 마음 가는 데로 강준을 쏘아 죽이고서는 자신도 죽으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원한도 없고 네 놈이 죽고 나면 나도 죽을 테니까 저승길 가는 동안 심심하지는 않을 거다.”
“…….”
강준은 벤이 자신을 쏘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적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제길! 여기까지 인가?’
방심을 했던 안했던 어차피 도박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벤의 등장은 놀라울 것도 없었고 그가 강준 자신을 죽이려는 것도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강준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면 두 눈을 감아 버렸다.
상대의 조준 실력이 좋아서 고통 없이 한 번에 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강준의 귀에 총알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탕!
그 총알 소리에 허탈한 듯이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 몸을 날렸다.
‘이건 권총의 소리가 아니다.’
벤이 들고 있던 권총에서 날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제길!”
두 눈을 뜬 강준은 권총은 날아가 버린 채로 손목을 움켜쥐고 있는 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