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18. 사라진 흔적
새근! 새근!
한참을 몸을 떨다가 지쳐서 잠에 빠진 미셸을 바라보는 강준이었다.
“…….”
다행히 놀라기만 했을 뿐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아직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듯이 강준의 손을 꼬옥 붙잡고 있는 미셸이었다.
그리고 그런 강준의 눈에 숫자가 줄어가는 미셸의 타이머가 보였다.
‘후우! 하필이면 왜 이 것이 작동을 하는 것인지.’
미셸을 습격한 남자가 죽고 난 뒤부터 시작된 카운트 다운이었다.
물론 리셋이 되면서 일주일간의 시간이 벌려졌지만 결국에는 사람을 죽여야만이 생존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 어린 소녀가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정신적으로 멀쩡 할리는 없었다.
당장 강준 자신도 정신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고 앞으로 평생토록 시달려야만 할 일이었다.
그런 충격적인 일을 미셸이 감당할 수 있을지 강준은 걱정이 되었다.
‘미치지만 않으면 다행이겠지. 정말이지 미치지만 않는다면….’
강준은 차라리 자신이 미셸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랬다면 미셸은 지금까지 저 구멍 속에서 버텨내고 있을 것이었다.
물론 그 외로움과 적막을 버텨내야 하지만 사람을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에 참여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고 결국 강준은 최대한 미셸이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게 하면서 이 죽음의 게임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쳐야만 했다.
어쩌면 미셸이 강준 자신과의 생존을 위한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한 채로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잃을 수는 없다. 더 이상은….’
무언가를 지키고자 하는 존재는 강해진다.
마음의 결심이 달리지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가 강해지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 한계는 분명할 것이었지만 일단 강준 자신도 좀 더 살겠다는 의지가 강해지는 것 만해도 정신적인 충격이 상당부분 해소가 된다.
군인이 살인을 하고도 정신적인 충격이 일반인보다 적은 이유는 아무래도 책임을 국가에게 돌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국가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고 자신의 죄책감에 따른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일이었다.
잘되면 내 탓이지만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것은 단순히 한국인들에게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철저하게 개인주의가 강한 서양이라고 할지라도 잘못되는 것은 내가 아닌 남 탓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상당히 강했다.
그 것은 인간의 이기적인 유전자의 작용이었고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인간은 주변 인간들과의 사회 작용이 활발하기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책임을 덜어내려고 한다.
그와는 반대로 모든 것이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모든 잘된 것이라거나 못된 것이 전부 나의 책임이고 내가 모든 것을 주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강준은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 아니 의무라고 여기고 있었다.
‘더 이상 내 주위 사람이 죽거나 다치게 할 수 없다. 내가 해야만 해! 이제 나 밖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 죽어 버린다!’
강준은 자신이 버리다시피 한 선혜마저도 죽었다는 생각에 더 이상 회피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거기에다가 아직 살아 있는 밀러의 존재는 반드시 밀러를 찾아내서는 자신이 보호를 해야 한다는 보호본능을 강하게 자극을 하고 있었다.
눈 앞의 미셸과 밀러.
그리고 어디엔가 살아 있을 수도 있는 엘리 그리고 데이브 등 자신이 지켜 주겠다고 결심을 했거나 자신의 품에 들어왔던 이들을 보호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렴이 강하게 들고 있는 중이었다.
사랑했던 이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는데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에 그리고 미셸을 구했다는 것에 강준은 그러한 결심이 단단하게 굳어가기 시작을 했다.
두둑!
머리 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 듯 했지만 강철은 인지를 하지 않았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었다.
시퍼렇게 푸른 빛을 내는 강준의 안광은 괴기스러울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흑표의 샛노랗던 눈빛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아닌 사나운 맹수의 눈빛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었다.
붉은 광인의 눈빛보다 더욱 더 오싹해지는 그런 강준의 눈빛은 강준이 707 특임단에서 최전성기의 시절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신체가 반응을 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오감(五感)이 날카롭게 변하며 육감(六感)이라고 하는 인간의 신비로운 감각마저도 깨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감각이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려고 하자 강준의 머리 한 쪽에서 스멀거리는 기이한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을 했다.
씨익!
강준 스스로도 자신의 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 육감의 감각이라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각이었다.
다만 야생으로부터 벗어나서 이제는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항상 육감은 자신들에게 정보를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과학이 발전을 하면서 자신이 확인을 할 수 있는 오감에만 의지할 뿐 자신에게 끝임없이 정보를 제공하던 육감을 무시해 버리게 되었다.
그런 육감을 강준은 지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육감은 기쁜 마음에 주변의 공기의 흔들림 감정의 폭풍들을 여과없이 강준에게 제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강준은 미셸을 조심스럽게 땅바닥에 놓아두고서는 몸을 일으켰다.
씨익!
괴기스러운 미소의 강준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강준은 무언가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해메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죽인다. 나의 것을 파괴하려는 자는 죽인다.’
강준은 견딜 수 없는 살인 충동을 느끼며 한 걸음 내딛었다.
“흐으음! 강준.”
“…….”
강준은 미셸의 목소리에 살기를 거두고서는 미셸을 바라보앗다.
잠꼬대인지 몸을 덜덜 떨면서 자신을 찾고 있는 어린 새였다.
어리고 약한 새였지만 강준에게는 사냥의 대상이 결코 아니었다.
‘너는 내가 반드시 살린다.’
강준의 몸이 움직였다.
물론 인간의 신체의 한계를 벗어나는 초인적인 움직임은 아니었다.
아무리 육감이 깨어난다고 할지라도 인간의 신체는 약하디 약한 것이었고 그 한계는 명확할 뿐이었다.
하지만 강준의 움직임이 정글이라고 하는 곳과 만나게 되자 일반인들은 감지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은밀하면서도 빠르게 움직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글을 해메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
맹수가 사냥감을 사냥하듯이 천천히 그리고 은밀하게 사냥감에 다가가기 시작을 했다.
사냥감은 자신이 지금 사냥을 당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지치고 힘이 빠진 사냥감이었다.
어설프게 정글에 적응을 한 것인지 눈빛도 죽어가고 있었고 사냥을 하지 않더라도 오래지 않아 죽음을 당할 사냥감에 불과할 뿐이었다.
사냥감은 한참을 해메다가 작은 옹달샘을 하나 발견했는지 허겁지겁 물을 들이키기 시작을 했다.
목이 무척이나 말랐던지 흙탕물임에도 불구하고 들이키고 있었고 강준은 그런 모습이 얼마나 미련한 것인지를 알면서도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을 하며 빠르게 남자의 뒤를 향해 다가갔다.
“응?”
남자 또한 정글에서 적응을 해 왔던 것이 결코 허튼 것은 아니었던지 뒤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몸을 일으켰지만 이미 늦어 버린 상태였다.
퍼억!
목덜미에 커다란 충격이 오며 남자는 경기를 일으키 듯이 몸을 부르르 떨며 옹달샘에 머리를 처박으며 기절을 했다.
일반 성인 남자가 작정을 하고 휘두르는 주먹에 맞으면 운동을 하며 맷집을 키우지 않은 이상은 대부분 일격에 싸움이 끝이 난다.
특히나 운동을 한 이의 주먹이라면 치명적이었다.
급소를 공격하면 아무리 맷집이 좋아도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이었다.
“…….”
그렇게 목덜미를 정확하게 가격을 당해 거품을 물며 쓰러져 있는 남자를 무심히 바라본 강준은 남자를 들쳐 업고서는 미셸이 있던 곳을 향해 뛰기 시작을 했다.
자신의 몸무게에 육박을 하는 무거운 몸이었지만 강준은 조금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듯이 성인 남자를 옮겼고 이내 미셸에게도 돌아올 수 있었다.
‘미셸,’
아직 잠에 빠져 있는 미셸이었다. 아직도 공포가 가시지 않았는지 잔득 몸을 웅크리고서는 겁에 질린 듯이 덜덜 떨고 있는 안쓰러운 작은 새였다.
그런 미셸의 옆에 기절을 한 남자를 내려 놓고 강준은 고심을 하 듯이 미셸을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다. 미셸을 위해서는.”
강준은 한참 동안 고심을 하다가 어쩔 수 없다며 자신의 날카롭게 벼려진 나이프를 꺼내었다.
그리고서는 미셸에게로 다가가 미셸의 손에 천을 휘감았다.
그렇게 휘감은 천에 나이프의 손잡이를 들려주고서는 기절해 있는 남자의 심장어림에 천천히 찔러넣기 시작을 했다.
“흐읍!”
심장을 찔러 들어오는 나이프의 차가움 때문인지 아픔 때문인지 기절을 한 남자는 두 눈을 부릅 뜨고 비명을 지르려고 했지만 강준은 그 남자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아 버렸다.
‘미셸이 깨어나서는 안 된다.’
우악스러운 힘으로 남자의 입을 틀어막은 강준은 나이프를 더욱 더 심장을 향해 밀어 넣었다.
그렇게 남자가 몸을 부르르 떨며 고통의 몸부림을 치다가 생명의 빛을 꺼트리고 나자 강준은 미셸과 남자의 근처에서 얼른 비켜서 유심히 주시를 하기 시작을 했다.
삐빅!
남자가 죽으면서 남자의 맥박이 사라지자 남자의 시계의 액정에 데드라는 단어가 나타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가까운 미셸의 타이머가 리셋이 되었다.
강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남자에게로 다가가서는 심장에 나이프가 박힌 채로 들어 올려서 어디론가로 향했다.
저벅! 저벅!
이제 미셸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남자를 처리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게 남자를 버리고서 남자의 심장에 박힌 나이프를 회수한 다음에 미셸에게로 돌아가는 강준이었다.
그런 강준에게서 짙은 혈향이 풍겨나고 있었지만 적어도 미셸에게서 풍겨나지 않는 것에 만족을 하는 강준이었다.
‘미셸이 알지 못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살아남기만 하면 돼.’
결국 마지막에 남는 이는 단 한 명 뿐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그 것까지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다만 최대한 살아남기 위해 비정한 싸움을 해 나갈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스윽!
“으음! 강준.”
미셸은 무언가 무서운 꿈을 꾼 것처럼 살짝 눈을 떴다. 그러자 미소를 짓고 있는 강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안심해. 오빠가 옆에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좀 더 자.”
“으응.”
미셸은 강준이 편안한 미소를 지은 채로 자신을 안심시켜주는 것에 미소를 지은 채로 강준의 몸에 좀 더 바짝 다가가서는 눈을 감았다.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강준은 미셸을 위해 아빠와 크레파스라는 동요를 불러주었다.
그냥 생각이 나서 부른 노래였지만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치며 괴기스러운 느낌이 드는 노래였다.
다만 미셸과 강준은 미소를 지은 채로 가만히 그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일 뿐이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