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18. 사라진 흔적
얼마나 헤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강준은 심한 갈증을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습도가 높은 정글이었지만 물을 구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은 개울 하나, 물 웅덩이 하나 보기 어려웠다.
다시 하천으로 달려가 더러운 하천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지금은 다시 되돌아갈 정신이나 여유 따위는 없었다.
두근! 두근!
몸 안의 전해질 부족과 수분 부족 때문인지 심장이 급격하게 빠르게 뛰기 시작을 했다.
그 것이 불안감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신체의 불균형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강준이 견디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대로 끝을 내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강준이었다.
“끄윽! 이대로 못 죽어! 이대로 죽을 수 없단 말이다!”
강준은 이를 악 물었다.
자신의 신체 상황 따위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멋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쓰러져서는 죽어나자빠지는 상황을 모두 예상하고 있는 강준이었다.
이대로 멈추어서 쓰러지면 죽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운 좋게 비가 온다면 살 수 있겠지만 그 것은 운에 맡기는 최악의 수였다.
물을 찾아서 움직여야 만이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강준은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이도록 채찍질을 하는 것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강준은 과거 천리 행군 때를 떠올렸다.
10리가 4km 정도였으니 천리 행군은 대략 400km 정도를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두 다리로 걷는 것을 말했다.
하지만 그 천리 행군이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 자체만의 훈련이 아니라 보통 그 행군의 이전에 일주일에서 이주 간의 고된 훈련을 마치고서 체력적으로 거의 한계에 도달한 상태에서 천리 행군이 시작되기 때문이었다.
정신력의 싸움.
진정한 정신력 싸움으로 정상적으로 완주를 끝내면 아무리 단련된 이들이라고 할지라도 발바닥의 껍질이 떨어져 나가거나 피범벅이 될 정도의 고된 훈련이었다.
물론 그 훈련 도중에 죽는 이들도 나오기는 했지만 사실 심리적으로는 그다지 어려울 일은 아니었다.
‘그래. 그런 어려운 일들도 버텨 냈었는데 고작 이런 일 가지고 힘들어 할 수는 없지.’
강준의 눈에서 희미하지만 밝게 빛이 나는 불길이 피어오르기 시작을 했다.
그러자 점점 희미해져가는 갈증이 되살아나기 시작을 했다.
갈증이 더 심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 것이 지금으로서는 더 좋아진 상황이라는 것을 강준은 알고 있었다.
갈증의 고통이 사라지고 나면 되돌릴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미 낮의 시간대라 나뭇잎사귀에서 이슬을 구할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새벽이었으면 응결 작용에 의해 나뭇잎사귀에서 물을 얻을 수 있을 터였지만 지금은 불가능했다.
정글은 생각 이상으로 비가 자주 내리기에 체내에 물을 머금고 있는 다육식물들이 많지 않았다.
다육식물이란 사막이나 척박한 땅에 자생을 하며 체내에 물을 머금고 있는 식물들을 말하는데 물이 많은 지역에서는 당연히도 그런 식물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고로쇠나무처럼 나무의 피부를 상처내서 물을 받는 방법도 정글의 대부분의 나무들은 수분보다 진액이 강해서 그대로 섭취를 할 수도 없다.
‘오줌이라도 나왔으면 좋겠지만.’
강준은 극단적으로 자신의 오줌을 받아 천으로 간단히 거른 뒤에 마시고자 했지만 오줌도 나오지 않는 기가 막힌 상황에 쓴 웃음을 지었다.
아니 이런 극단적인 방법은 꽤나 도움이 되는 것이었지만 사실 이정도로 갈증 단계라면 방광의 오줌도 꽤나 수분을 빼앗겨서 노폐물이 진해져 있는 상태일 터였다.
아마도 지금 오줌을 눈다면 샛노랗게 나올 정도로 오염이 되어 있어서 섭취를 하는 것도 꽤나 고역일 터였다.
그렇게 한숨을 내쉴 때 강준의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씨익!
그리고 강준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어졌다. 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눈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쪽! 쪽!
한 방울이라도 더 마시기 위해 사력을 다해서 빨았다.
하지만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물에 강준은 아쉬움을 느끼면서 다음 넝쿨을 나이프로 잘라서는 다시금 입에 물었다.
시원한 느낌은 없었지만 다시금 목을 축일 수 있는 물이 흘러들어오는 것에 강준은 만족해했다.
강준이 본 적은 넝쿨이었다.
하지만 일반 넝쿨이 아니라 넝쿨 속에 물을 머금고 있는 놈이었다.
일부 넝쿨풀들 중에는 지면 아래 부분을 자르면 물이 흘러나오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정글이나 열대 지역에서 넝쿨들을 발견하면 지면의 뿌리 윗 쪽의 줄기를 자르며 물을 구할 수도 있었다.
강준은 그 넝쿨을 지금 발견을 한 것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수분을 흡수해서 목이 타들어 가는 것을 진정시키자 강준의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을 했다.
“우산 나무도 있었네.”
강준은 그 넝쿨나무의 옆에 있던 우산 나무 Umbrella tree를 보고서는 허탈함을 느꼈다.
식물에게서 물을 구할 때 대표적으로 마다가스카르의 나그네 나무나 서부 아프리카의 우산나무 오스트리아나 아프리카의 바오밥 나무들을 손에 뽑고는 한다.
그 중에 그다지 많은 양은 아니지만 한 사람 정도는 충분히 목을 축일 수 있다는 우산나무가 자신의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알지 못했다는 것에 기가 막힌 강준이었다.
나무 잎사귀 모양이 우산처럼 생겼다고 우산열매라고 불리는 우산 나무는 줄기에 상당히 많은 양의 물을 함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강준은 우산 나무를 통해서 물을 충분히 마시고 나서는 우산나무의 줄기를 씹으면서 한결 편해진 얼굴을 한 채로 달리기 시작을 했다.
아직 조금 더 쉬어야 했지만 아직도 세차게 뛰고 있는 심장 때문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지고 있는 중이었다.
“후우! 후우!”
어차피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기에 강준은 오래지 않아 눈에 익은 지형을 발견해서는 미셸이 있는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을 했다.
‘정글도다.’
그렇게 달리던 중 강준은 자신이 떨어트린 것인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정글도를 발견하고서는 급히 정글도를 집어 들었다.
“까아악!”
그리고 그 때 강준은 미셸로 추정되는 여자아이의 비명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미셸?’
단 한 번만 들린 비명소리였지만 다급한 비명소리에 강준의 움직임은 더욱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을 했다.
그 아이를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그런 것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자신의 주변의 모든 이들을 전부 잃어버린 강준에게 있어서 더 이상 사람을 잃을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어디냐? 어디야!’
강준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비명소리에 처음 들렸던 방향을 향해 달리고는 있었지만 정글의 나무들 때문에 소리가 난반사되어 정확한 위치를 찾는 것에 상당히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제길! 어디야? 어디냐고!’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도무지 미셸이 있는 곳의 방향을 가름 할 수가 없었다.
‘침착하자! 강준! 침착해야만 해!’
강준은 이리 날 뛰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느끼며 주변을 빠르게 훑어보기 시작을 했다.
자칫 엉뚱한 곳으로 뛰어가 버리면 곤란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소리가 들릴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 때 강준은 미세하게 풀들이 꺾이고 나뭇가지에 상처가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기다!’
미셸이 낸 것인지 아니면 미셸을 습격한 자가 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곳으로 달려가면 미셸을 발견할 수 있을 터였다.
강준의 몸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을 했지만 조금 더 조심스러우면서도 은밀하게 움직였다.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었기에 미셸을 구하려면 최대한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만 했다.
“흐흐흐! 가만히 있어 보라고! 예쁜이! 재미있게 해 줄 테니까 말이야!”
“흡! 읍!”
미셸을 습격한 남자는 미셸의 입을 한 손으로 틀어막고서는 미셸의 옷을 벗기기 위해 우악스러운 손을 놀리고 있었다.
이미 온통 붉게 변해버린 눈동자는 욕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무엇이 이리도 사람을 미치게 하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멈출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자신의 불안감을 폭력의 형태로 해소하지 못한다면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흐윽! 강준씨!’
미셸은 몸부림을 치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강준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에 강준을 불렀지만 강준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정의의 용사처럼 나타나서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랬지만 그런 일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어린 미셸은 알지 못했다.
영화나 만화처럼 언제 건 자신들과 같은 약자들을 위해 등장하는 정의의 히어로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정의의 용사의 모습은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찌직!
그렇게 옷이 찢겨나가고 미셸의 공포가 온 몸을 지배하며 떨리기 시작했다.
덜! 덜!
이제는 반항을 할 힘도 의지로 점점 약해져 가고 있었고 머리 속도 하얗게 변해가기 시작을 했다.
자신의 몸을 깔아뭉개고 있는 남자도 더 이상 미셸이 반항을 하지 못한다는 것에 더욱 더 거침없이 미셸을 유린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남자의 의도는 거기까지만 이었다.
“강준?”
눈물로 흐릿해져 있었지만 무시무시한 얼굴을 한 채로 나타난 사람이 강준임을 안 미셸은 강준의 이름을 불렀다.
“뭐?”
그리고 그런 미셸의 말에 남자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움찔 몸을 떨었다.
“개새끼!”
강준은 빠르게 두 팔로 남자의 얼굴의 위아래를 붙잡고서는 사정없이 머리를 돌려 버렸다.
두둑!
목뼈가 부러지는 느낌과 남자의 머리와 몸을 이어주던 뼈들이 부서져 버렸다.
강철의 최대 악력은 80kg에 육박을 할 정도였고 그 정도의 악력이라면 사람의 목뼈를 부러트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성인 남자의 악력이 50kg 내외인 것을 따진다면 강준의 악력은 꽤나 강한 편이었다.
그렇게 미셸을 덮치려던 남자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목숨을 내주고서는 땅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미셸.”
강준은 눈물로 얼굴이 엉망이 된 채로 흐느끼고 있는 미셸을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두 팔로 미셸을 안아 들었다.
“흐으윽! 흐윽! 흐어엉!”
조용해야만 하는 죽음의 게임장이었지만 공포와 서러움 그리고 살았다는 기쁨에 울음을 터트리는 미셸을 강준은 막을 수가 없었다.
“이제 괜찮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강준은 자신의 목을 두 팔로 감싸고서는 울음을 터트리는 미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했다.
어린 소녀가 감당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을 것이었다.
강준은 자신이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책을 했지만 한편으로 미셸을 구했다는 안도감에 다행이라는 기분이었다.
이제 그녀를 진정시키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미셸을 좀 더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는 살아남기 위해 노력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때 강준의 귀에 익숙하면서도 욕이 치밀어 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삐삑!
타이머가 리셋이 되는 소리였고 그 소리는 사람을 죽였을 때 들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 타이머는 강준의 것이 아니었다.
띠디!
미셸의 고장난 타이머가 리셋이 되면서 숫자가 하나씩 줄어가기 시작을 했다.
[167:59, 167:58, 167:57 …….]
미셸이 죽음의 게임에 다시 참가를 하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