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17. 딜레마
12일 째 아침.
어느덧 죽음의 게임도 12일 째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제 이틀만 더 지나면 두 번째 데드 임팩트가 일어나게 될 것이었고 다시금 섬 내의 생존자들의 숫자는 급감을 하게 될 터였다.
물론 이미 상당히 빠르게 생존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상태였기에 첫 번째 데드 임팩트 때처럼 사람들의 숫자가 급감을 할 정도는 아닐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일은 없을 터였다.
눈 앞에 있는 생존자를 사냥해야 만이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흐음!”
그런 가운데 아직까지 생존을 하고 있던 강준이 신음을 하며 눈을 떴다.
간만에 잘 잤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몸이 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긴?’
강준은 어제 밤의 일을 떠올리며 자신이 왜 이 곳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인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내 몸을 벌떡 일으키고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제 분명 귀신을 본 것 같았는데.”
어린 여자 아이의 귀신을 보았다는 기억이 떠오르는 강준이었다.
귀신을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왔던 강준이었다.
굳이 그 것이 종교적인 신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효 사상에 입각해서 믿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조상이 존재하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뿌리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강준이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귀신도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불연듯 드는 것이었다.
물론 귀신이란 밤에만 나타나는 존재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낮에는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후우! 꿈인가?”
하지만 마냥 귀신을 믿고 있는 것도 그리고 그 귀신 때문에 자신이 기절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남자로서 창피스러운 일이었다.
강준은 그 때문에 어제 밤의 생생했던 기억을 꿈으로 치부해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소리에 강준의 몸은 빠르게 굳어갔다.
“흐으음!”
누군가가 잠에서 깨어나는 듯한 신음소리였지만 자신의 주변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상태에서 듣는 신음소리는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
그렇게 강준은 그 신음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았고 그 곳에 그다지 크지 않은 구멍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서는 잠시 후에 사람의 머리로 보이는 것이 그 크지 않은 구멍에서 튀어나오는 것에 기겁을 해야만 했다.
“뭐…뭐야?”
사람이라면 두려울 것이 없었지만 귀신이라면 강준이라고 할지라도 어쩔 수가 없었다.
“아! 안녕하세요.”
소녀의 머리는 강준을 발견하고서는 인사를 했다.
강준은 소녀의 귀신이 프랑스인인 것을 알았다. 프랑스어로 인사를 했던 것이었다.
물론 프랑스어를 어느 정도는 할 줄 아는 강준이었기에 알아들을 수는 있었지만 과연 귀신에게 인사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준아! 밤길에 누가 너에게 인사를 하면 절대 대답을 해서는 안된다. 귀신이 붙잡아 간단다.-
옛날 할머니께서 귀신에 대해 이야기 해주시면서 하시던 말이 불연듯 떠오르는 강준이었다.
귀신이 부르는 말에 대답을 하면 귀신에 홀린다는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대답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머리 속에 가득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답 없이 몸이 굳어 있는 강준에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로 소녀는 몸을 동굴에서 빠져나와서는 기지개를 켰다.
“아우! 불편해서 혼났네.”
“……!”
머리 귀신인 줄 알았는데 몸까지 전부 멀쩡한 소녀에 강준은 멍하니 소녀를 바라보았다.
옷이 지저분하기는 했지만 다른 곳은 전혀 이상이 없어 보였고 건강 상태도 그렇게까지 나빠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쳐 있는 강준보다 더 팔팔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강준의 눈에는 비현실적으로만 보일 정도였다.
‘역시 귀신인가?’
어린 소녀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믿겨지지 않을 지경인데 12일 째인 상태에서도 별 다른 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강철의 심증은 점차 눈 앞의 소녀가 귀신이라고 믿게 해주고 있었다.
물론 섬이 아닌 밖에서였다면 강준의 판단력이 이렇겠까지 망가져 있지는 않았을 터였다.
이미 대부분의 생존자들의 정신력은 바닥까지 추락을 해 있는 상태였고 작은 일에도 눈 앞의 본질보다는 상상 속의 이미지로 판단을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일종의 과대망상의 정신질환에 걸려 있는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다시금 소녀가 인사를 해 왔지만 강준은 대답을 하지 않은 채로 소녀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아! 혹시 제 말 못 알아들으시는 건가요?”
소녀는 동양인 남자인 강준이 프랑스어를 못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강준은 이내 소녀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서는 말을 알아듣는다는 표현을 했다.
“아! 말은 알아들으신다고요? 그럼 말을 못하시는 건가요?”
소녀는 강준이 말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며 불쌍한 듯이 강준을 바라보았다.
강준 또한 말을 할 수는 있지만 귀신에게 대답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말 없이 멍하니 소녀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 제 이름은 미셸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아! 한국 사람이시죠? 저희 아빠가 킴쾅석의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하시거든요. 응? 그러고 보니 어제 노래 부르셨잖아요. 그런데 왜 말을 못하시는 거죠? 캉낭 스타일도 부르셨는데.”
소녀는 황당하다는 듯이 강준에게 물었고 강준도 소녀 귀신이 자신이 말을 할 줄 아는 것을 알아차리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제길! 기억력 좋은 귀신이군.’
귀신 잡는 해병대라는 말이 있지만 강준 자신은 해병대도 아니었고 그리고 해병대가 진짜로 귀신을 잡을 수도 없었기에 눈 앞의 소녀 귀신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결국 강준은 한숨을 쉬며 될대로 대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후우! 프랑스 귀신은 좀 다르려나? 안녕. 난 강준이라고 해.”
강준은 결국 자신도 인사를 했다.
그러자 미셸은 귀신이라는 말에 무슨 소리냐는 듯이 멍하니 강준을 바라보았다.
“귀신이요?”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미셸은 땅바닥을 구르면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호호호호호! 귀신이라니요! 호호호호호!”
“…….”
강준은 미셸이 귀신이 아님을 알고서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머슥해야만 했지만 결국 오해를 풀 수가 있었다.
‘이거 사람인지 귀신인지도 분간을 못하다니. 미치겠군.’
한참을 웃던 미셸은 오랜만에 기분 좋게 웃었다는 듯이 강준이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와! 강준씨는 참 재미있는 사람 같아요. 어제 달밤에 캉남 스타일도 추시고 말이에요.”
“아! 어제 봤어?”
강준은 어제 자신도 자신이 왜 그랬는지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것을 미셸이 보았다는 것에 또 다시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그런데 문득 강준은 어떻게 미셸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너 어떻게 지금까지 무사히 있었던 거지?”
물론 이 죽음의 경기장에서 사람을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를 묻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이미 퍼스트 임팩트는 지나가 있었고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면 살아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일 수 밖에 없었다.
“아! 저기 저 동굴에서 숨어 있었어요.”
미셸도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죽음의 경기가 이루어 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눈 앞의 강준도 그 경기에서 살아남았다면 다른 이를 죽였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부르르!
그 말은 눈 앞의 강준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스스로는 착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그 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강준 또한 그런 미셸의 눈동자에서 공포감을 느낀 것을 볼 수 있었다.
“아! 걱정 하지마. 나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미셸을 지켜 줄 테니까 말이야.”
강준으로도 그런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미셸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에 대해서 더 궁금한 강준이었다.
“가…가방을 하나 주웠어요. 그 가방에 먹을 것하고 마실 것이 있어서 그 거 먹고 버텼어요. 그리고 저 안에 작은 샘이 하나 있는데 물이 없으면 그 물 마시고 저기 앞에 카사바가 있어서 가끔 배 고프면 그 것도 먹었구요. 캐기가 어려워서 많이는 못 먹었지만요.”
“카사바?”
카사바는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다년생 작물로 고구마와 같은 모양의 덩이 뿌리를 가지고 있는 작물이었다.
칼슘과 비타민 C가 풍부하며 20%~25% 정도의 녹말을 함유하고 있었다.
강준으로서는 알지 못하는 작물이었지만 눈 앞의 미셸은 그 카사바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그 것을 먹으면서 버텨 왔던 것이었다.
“너 잠시만 손 좀!”
그리고 그 때 강준은 미셸의 손목의 시계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서는 미셸의 팔을 붙잡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붉은 색의 숫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것은 분명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셸의 것은 줄어들고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 고…고장 났나 봐요.”
미셸도 자신의 시계가 언제 부터인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걱정스러운 듯이 바라보았다.
그런 미셸의 걱정과는 달리 강준은 미셸이 대단히 운이 좋다는 것을 알고서는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 이해가 되었다.
‘결국 이 기계도 인간이 만든 것. 고장이 날 수 있다는 것이로군.’
강준은 자신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폭탄을 보며 어쩌면 이 것을 끊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방법을 찾는다면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눈 앞의 미셸을 죽여야 할 이유가 지금의 자신에게는 없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장이 난 이상 미셸을 죽이더라도 타이머가 리셋이 될지 안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 미셸을 어떻게 해야 하지?’
강준은 그 생각을 끝으로 미셸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