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17. 딜레마
강준은 선혜와 헤어지고 난 뒤 밀러가 도망을 친 정글 속으로 뛰어들었다.
밀러가 허겁지겁 겁에 질려서 움직인 덕분인지 생각보다는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부러진 나뭇 가지와 흐트러진 풀들 그리고 발에 밟힌 흙과 풀들은 밀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강준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탕!
그렇게 강준이 밀러를 추적을 하려고 할 때 강준은 자신의 뒤 쪽에서 들려온 소리에 몸을 멈추어야만 했다.
“총소리?”
분명 총소리였다.
총소리에 무척이나 익숙한 강준이 그 것을 모를 리는 없었다.
강준은 멍하니 총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분명 선혜가 있던 곳으로부터 들려온 총소리였다.
그 총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강준의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아니야. 아닐 거야.”
총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적을 제압하는데 사용되는 무기이지만 군대에서 권총은 그런 의미보다는 중요한 정보를 적에게 알리지 않게 하는 자살용으로 많이 사용이 된다.
물론 장군들이나 고위 장교들 이야기였고 실제 자살용으로 사용할 정도로 신념이 강한 군인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었다.
하여튼 마지막 남은 권총의 총알은 자신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에 사용되기 마련이기에 강준의 머리 속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선혜의 성격을 대충이나마 아는 강준으로서는 그녀가 허망하게 자살을 했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건 또 모르는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아무리 단단하다고 해도 조그마한 충격에 산산조각이 날 수 있을 정도로 약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안심을 할 수는 없었다.
‘돌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밀러를 찾아야 하는가?’
강준은 엄청난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비록 흔적이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점차 더 흐른다면 추적은 불가능해 질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총소리를 들었을 때 선혜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기는 했을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일이 끝이 난 상황일 수도 있었지만 잘하면 선혜를 구할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면 밀러를 찾는 것은 포기해야만 했고 밀러가 위험한 상황에서 구해 주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갈등은 점점 짙어지지만 쉽사리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몇 일 간이지만 같이 지내왔던 선혜에 대한 생각이 강준의 머리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하지만 강준은 결국 뒤돌아서서는 정글 속으로 뛰기 시작을 했다.
비겁할 수도 있었지만 강준은 자신과 좀 더 가까운 사람을 구해야만 했다.
그녀가 한국인이어서 그리고 여자이기 때문에 구해야 한다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는 웃기는 소리였다.
강준은 결코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좀 더 가까운 이에 무게 중심이 기울어지는 평범한 인간이었고 결코 영웅도 초인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강준의 마음이 편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찢어질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입 안에서 피가 나도록 이를 깨물어야만 했다.
“제길! 제길!”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가 토해져 나와서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드는 세상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고 힘겨웠다.
“신이 있다면 그녀를 도와주십시오! 하나님도 좋고 부처님도 좋고! 그 알라신! 시바신! 전부 좋으니 좀 도와주십시오!”
강준은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였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하자 믿을 것은 오직 신 뿐이었다.
신이라는 존재.
마음이 편안해지는 너무나도 쉬운 존재였지만 그런 신을 찾으면 점차 원망 밖에는 돌릴 수 없는 존재였다.
“제발! 제발!”
아무리 기도를 해도 들어주지 않는 존재.
그렇기에 자신에게 처한 현실이 너무나도 힘겨워서 점차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찾은 그 신이 자신의 바램을 들어 주지 않을 때.
강준은 이를 악물고서는 달렸다.
도무지 견딜 수가 없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유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다.
툭!
그렇게 달리던 강준은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해 버리고 말았다. 나무그루터기에 발이 걸려 버린 것이었다.
“크윽!”
답답한 마음에 전속력으로 달리던 강준은 자신의 몸이 기우뚱거리며 넘어지는 것에 두 팔을 허우적거렸지만 이미 무너져 버린 균형을 되찾을 수는 없었다.
쿵!
결국 강준은 커다란 나무에 머리를 박으면서 넘어져 버렸고 그 충격에 정신을 잃어야만 했다.
산행에서 이런 일은 생각보다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돌 하나 잘못 밟아서 발이 삐끗하는 것을 넘어서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고 굴러 떨어져서 크게 다치는 경우도 많았다.
전문 산악인들조차도 그런 부상은 비일비재한 일인데 이성을 잃은 채로 빠르게 달리는 강준이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강준은 커다란 충격에 머리에서 피가 흐른 채로 기절해 버렸다.
‘밀러. 선혜.’
밀러와 선혜를 모두 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강준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한 몸조차도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절해 있는 강준을 향해 다가오는 한 그림자가 있었다.
“…….”
멍하니 기절해 버린 강준을 바라보던 것은 밀러도 그리고 선혜도 아니었다.
워낙에 강준이 시끄럽게 움직이던 터라 그 소리에 다가온 존재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강준을 바라보고 있는 존재는 한 소녀였다.
“아저씨. 괜찮아요? 아저씨!”
한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기절해 버린 강준의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강준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그 정체불명의 소녀는 울쌍이 된 채로 강준의 몸을 흔들어 대기만 할 뿐이었다.
“흑! 일어나 봐요. 아저씨! 일어나 보라고요. 나 무서워요. 무섭단 말이에요.”
소녀의 옷은 무척이나 지저분해져 있었지만 딱히 어디를 다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연약한 소녀가 살아남기에는 힘겨운 지옥에서 아직까지도 별 다른 부상 없이 홀로 남겨져 있는 것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만 보여서 몸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어떻게 어떤 이유로 소녀가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소녀는 살아 있었고 겁도 없이 성인 남성을 깨우려고 하고 있었다.
“여기에 그냥 있으면 위험해요. 나쁜 사람들이 잡으러 온단 말이에요.”
소녀는 결국 깨어나지 않는 강준을 보며 강준의 몸을 힘겹게 끌고서는 어디 론가로 향했다.
질! 질!
물론 강준의 몸을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의 완력은 없었지만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안간힘을 쓰기 시작을 하자 조금씩 강준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을 했다.
억지로 끌고 가기에 강준의 몸에 상처들이 무수하게 생겨났지만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지금까지 숨어 있던 작은 동굴 앞까지 도착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동굴은 몸이 작은 자신은 들어 갈 수 있었지만 강준과 같은 성인남자가 들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작았다.
“어…어떻게 하지?”
소녀도 바보는 아니었다.
강준이 자신에게 위험할 수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혼자 남겨진 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은 어린 소녀가 견디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것이었다.
결국 소녀는 주변의 나뭇잎들과 풀들을 모아서는 강준의 몸을 덮었다.
다른 이들에게서 들키지 않도록 강준을 숨기는 것이었다.
그리고서는 다시금 작은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가서는 멍하니 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배가 고프면 가방에서 먹을 것을 꺼내어서는 조금씩 베어 먹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식량이었지만 아껴 먹으면 제법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때 강준의 전투 배낭에서 배꼼이 빠져 나와 있는 식물의 대를 보았다.
“아! 사탕 수수다.”
소녀는 그 것이 사탕수수임을 알아 본 것인지 다시 동굴에서 나와 강준의 사탕수수 대 하나를 움켜잡았다.
“아! 죄송해요.”
소녀는 강준에게 사과를 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는 듯이 사탕수수 하나를 빼내어서는 껍질을 벗겨서 입 안에 넣었다.
우물우물!
단 맛이 느껴지며 소녀는 기분이 좋아짐을 느끼고서는 조금 미소를 지었다.
오랜 만에 느껴지는 단 맛에 작은 행복 하나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소녀의 손목에는 강준과 마찬가지로 폭탄이 장착되어 있는 시계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시간은 멈추어져 있는 상태였다.
0이 아닌 가득한 숫자로 멈추어져 있는 시계를 찬 소녀였고 소녀에게 있어서 폭발의 공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맛있다.”
소녀는 점점 어두워지는 주변의 풍경이었지만 그래도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