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겟 어 라이프-68화 (68/161)

##68 16. 투쟁

사람은 기억을 통해 살아간다. 인간관계도 기억을 통해 이루어지고 유지되는 것이었다.

눈에 익은 그 사람과의 관계는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며 동료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세상의 그 어떤 누구도 빼앗아 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강준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존재의 모습을 지금 보았다.

“하하! 밀러?”

분명 잔득 겁에 질려 있었지만 분명 유학 시절동안 자신과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인 밀러임이 분명했다.

어떻게 지금까지 운이 좋게도 살아있었던 것인지 몸 멀쩡하게 자신의 눈 앞에 있었던 것이었다.

강준 자신과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누구들보다 믿을 수 있는 친구였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경계심을 가지고 있던 강준은 밀러에게만큼은 전혀 경계를 들어내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강준은 기뻤다.

언제부터 얼굴에 미소를 짓지 않은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고 과연 웃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들 정도였는데 지금만큼은 정말이지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흑표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은 없어졌다.

오직 친구를 껴안은 채로 무사함에 대한 기쁨만을 나누고 싶을 뿐이었다.

“밀러!”

강준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고 믿던 친구가 눈 앞에 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이내 강준은 이상함을 느껴야만 했다.

‘뭐지? 왜 뒤로 가는 거야?’

강준은 밀러가 뒷걸음질을 치는 것을 봤다.

분명 자신도 밀러를 보았다면 밀러 또한 자신을 보았을 것인데 반가워하기는 커녕 겁에 질려 있는 것이었다.

“밀러! 나야! 강준! 강준이라고!”

강준은 밀러가 자신을 못 알아 본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서는 밀러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을 했다.

밀러가 자신을 좀 더 잘 볼 수 있도록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강준이 가까이 다가가자 밀러는 더욱 더 겁에 질린 듯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이내 정글 속으로 뛰어들가는 것이었다.

“미…밀러! 어디 가는 거야! 밀러! 나야! 나 강준이라고! 어디 가는 거야! 나 강준이란 말이야!”

강준은 다급하게 밀러를 부르며 밀러가 도망을 가는 곳으로 달리려고 했다.

지금 놓치면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드는 것과 동시에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서 도망을 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뭐하는 거예요!”

“……!”

하지만 강준은 밀러에게로 뛰어갈 수가 없었다. 어느 사이엔가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선혜를 볼 수 있다.

“이…이…이거 놔. 내 친구야. 내 친구 밀러라고. 분명 밀러가 맞아. 그 놈이 맞단 말이야!”

강준은 자신이 본 것이 확실하다며 소리를 쳤다.

“아직 그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을 텐데 그렇게 다니시면 죽는 단 말이예요!”

선혜는 정글 속으로 사라진 남자가 강준의 친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이대로 강준이 얼이 빠진 채로 정글을 헤매다가 죽어 버린다면 곤란한 것 뿐이었다.

“그러니까 밀러를 잡아야지! 그 친구가 그 놈에게 당하게 놔둘 수는 없어!”

강준은 흑표를 떠올리자 밀러가 걱정이 되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을 텐데 홀로 흑표와 싸워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에다가 별 다른 무기도 없는 것처럼 보였기에 더욱 더 걱정이 되는 강준이었다.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것은 밀러 또한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었지만 그런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도 않고 있었다.

자신 또한 사람을 죽였고 강준에게 모르는 이들보다 밀러가 더 중요했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었기에 강준도 열 명의 모르는 사람과 한 명의 아는 사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한 명의 아는 사람을 선택할 것이었다.

그렇기에 밀러를 본 이상 무조건 그를 구해야만 했다.

“잘못 봤을 수도 있잖아요! 만약에 당신 친구라면 왜 이렇게 도망을 가겠어요!”

선혜는 강준이 이성을 잃었다는 것을 강준의 눈을 통해 알아보았다.

설사 강준의 친구라고 할지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위험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선혜는 온 몸을 다 매달리며 강준을 붙잡고 있었다.

“잘못 보지 않았어! 벌써 이년 동안 같이 지내왔던 친구라고! 내가 잘못 볼 가능성은 전혀 없어! 분명 밀러가 맞아!”

강준은 스스로 잘못 보지 않았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했다.

하지만 밀러가 자신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망을 간 이유라면 알 수가 없었다.

‘왜지? 분명 나하고 눈이 마주쳤는데…. 왜 도망을 간 거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인종도 다르고 국적도 다른 친구였지만 밀러라는 그 친구는 자신을 보고서는 도망을 갈 친구는 아니었다.

나름 배짱도 있었고 깡도 있던 친구였기에 강준은 밀러가 자신을 두려워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무언가 이유가 있었겠지.’

그 이유는 알 수 없겠지만 이 지옥 같은 공간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것은 무수하게 많은 사연들이 생겨나 있을 것이었다.

강준 자신 또한 평생에 한 번 겪을 일들이 몇 번이나 있어 왔기에 밀러가 겪었을 고통과 두려움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찾아야 해. 그 친구라면 믿을 수 있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야. 잠시만 대화를 한다면 그 오해를 풀 수 있을 거라고.”

강준은 밀러를 찾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그러면 저기 저 관제 센터는 어떻게 하고요!”

선혜는 강준과 함께 갈 관제 센터가 있다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관제 센터에서 누구 하나 죽이고 죽겠다던 강준이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포기 하겠다는 듯한 말에 선혜는 화를 내는 것이었다.

“밀러가 살아 있다면…. 그 친구가 더 중요해.”

강준은 태연하게 선혜를 바라보고서는 단호하게 말을 했다.

한 때는 군인이었기에 그리고 그 전에 한국인이었기에 전우에 목숨을 걸고 정에 이끌리는 것이었다.

다혈질적이면서도 유독 정에 약한 한국인들이었다.

그리고 강준 또한 그런 한국인이었기에 자신의 가족과 친구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목숨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되어지고 있었다.

“…….”

선혜는 강준의 얼굴에서 분노와 두려움이 사라진 채 무언가 알 수 없는 사명감이 느껴지는 것에 강준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따라 오려면 따라와. 하지만 따라오지 않아도 딱히 말리지는 않겠어.”

이 정글 속에서 안전 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기에 강준은 선혜의 결정을 존중할 생각이었다.

이대로 헤어진다고 할지라도 미련 따위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결정을 부정하는 선혜가 거추장스러웠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에게 보호를 요청한다면 또 거부할 생각도 없었다.

“…….”

강준의 말에 선혜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에게 선택을 하라는 강준이었지만 사실상 자신과 같이 행동하지 않겠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이름과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 뿐이었다.

완전한 타인이라는 것은 선혜도 잘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서운함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지끈!

순간 심장이 아찔할 정도로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를 악무는 선혜였다.

‘괜찮아. 어차피 처음부터 혼자였잖아. 그리고 지금까지 잘해 왔었잖아. 왜 남자 따위에게 의지하려는 거야.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선혜는 강준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강준을 놓아주겠다는 것이고 다시 홀로 서겠다는 의미였다.

말을 하지 않아도 강준은 선혜의 생각을 알고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결정을 존중했다.

“행운을 빌겠어. 그리고 이거 받아! 비록 한 발 뿐이지만 위험한 순간에 사용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강준은 마지막 한 발이 남은 권총을 선혜에게 내밀었다.

왠지 자신보다 그녀가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물론 그 것은 어쩌면 자살을 위한 마지막 한 발로 작용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것도 그녀의 선택일 뿐이었다.

“고마워요. 그리고 꼭 친구를 찾아요.”

선혜는 강준으로부터 권총을 받아들고서는 과거의 그 당당했던 미소를 지었다.

더욱 단단해진 마음과 각오가 세겨지고 있었다.

강준은 자신의 전투 배낭에 몇가지 물건들만을 챙기고서는 노릿노릿 구워진 피라니아의 살점은 급히 한 움큼 물어뜯고서는 밀러가 사라진 곳을 향해 뛰기 시작을 했다.

조금 늦어졌지만 추적술을 통해 밀러가 움직인 것을 찾아낼 수 있을 터였기에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천가를 벗어나려는 때에 강준은 자신의 뒤에서 들려온 선혜의 목소리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내가 당신을 죽일 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낸 눈 앞에 나타날 생각 하지 말아요!”

“…….”

처음부터 선혜는 강준을 죽이려고 몇 번이나 화살을 쏘았다.

비록 강준에게 제압을 당하기는 했지만 다시 만나면 강준을 죽이겠다고 말을 하는 선혜였다.

그 것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강준은 왠지 모르게 그녀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하지만 돌아 볼 수는 없었다.

그녀보다 친구인 밀러가 강준에게는 더 중요했고 그녀가 강준을 따르지 않는다면 강준으로서도 그녀와 함께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렇게 강준은 그녀의 말을 다 듣고서는 정글 속으로 사라졌다.

“…….”

강준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뒤 선혜는 이를 악물고서는 두 주먹에 핏기가 사라질 정도로 꽈악 쥐었다.

지금이라도 강준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자신의 목적지는 그 곳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강준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던 선혜의 입이 열렸다.

“왔니?”

선혜는 강준이 사라지고 난 뒤에 온 몸으로 느껴지는 살기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살기가 느껴지는 곳에서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는 흑표를 볼 수 있었다.

“미안하지만 나도 아직은 죽어 줄 수가 없어. 그러니까 우리 처절하게 한 번 싸워 보자.”

선혜는 자신의 손에 들린 활의 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기 시작을 했다.

크르릉!

상처입어 분노에 차 있는 맹수와 버림을 받아 슬픔에 잠겨 있는 여전사가 외나무 다리 위에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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