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15. 보이지 않는 위협
피가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주변으로 흩뿌려지는 피의 양은 상당했지만 강준은 그런 피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제길! 하필이면!’
화살은 흑표가 강준에게만 집중을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정확하게 박혀들어갔다.
그것도 제법 급소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왼쪽 눈이었다.
하지만 화살이 뇌에까지 이르지는 못한 것인지 단숨에 죽음에 이르게 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 덕분에 흑표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사방을 적시고 있었지만 강준의 긴장은 흑표와 대치를 하고 있던 때보다 더욱 더 곤두서 있었다.
‘죽여야 한다!’
강준은 상처입은 짐승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고 있었기에 눈 앞의 흑표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졌다.
지금은 총알이 아까운 때가 아니었기에 강준은 흑표를 향해 달려가면서 흑표의 머리를 겨누고서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찢어지는 소음과 함께 흑표의 머리가 무언가 둔탁한 충격과 함께 옆으로 젖혀졌다.
하지만 강준은 이내 정확하게 두개골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서는 이를 악물었다.
‘스쳤다!’
권총의 정확성은 정말이지 치가 떨릴 정도로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대로 일격 필사를 기대하는 것은 실력도 필요하지만 운이 따라주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총열이 짧다는 것은 그만큼 총알의 유도성와 정확성을 제한하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권총이 주력 무기가 아닌 보조 무기로 한정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다만 흑표의 분노가 자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무언가에 놀라 공포로 변했다는 것이었다.
크아앙!
호기롭게 포호를 내질렀지만 이내 자신의 몸에 박혀 들어가는 또 다른 아픔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푹!
화살!
자신의 눈을 찌르고 들어간 가늘고 긴 나뭇가지가 자신의 강인한 몸에 박혀 들어왔다.
흑표는 마지막 남은 자신의 눈을 들어 자신에게 이런 통증을 유발한 존재를 바라보았다.
“하아! 하아!”
아직 몸 상태는 그리 좋은 것은 아닌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선혜였다.
그런 선혜가 다시 화살을 활에 재고 있었다.
눈 앞의 맹수를 강준 혼자서 이길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강준마저 죽고 난다면 자신 또한 같은 꼴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견제를 해 주어야만 했다.
강준은 마지막 남은 권총 총알임을 알고서는 흑표의 머리를 겨누었다.
베레타의 파워가 조금 약하다고는 하지만 정확하게 머리를 때린다면 흑표 또한 어쩔 수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통증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하는 흑표의 움직임은 강준이 따라가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제길! 잠깐 만 멈추어라!’
강준은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고함을 질렀다.
“이 빌어먹을 새끼야! 나를 쳐다 봐! 나를 쳐다 보라고!”
강준의 고함이 먹힌 것인지 순간 흑표가 강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한 쪽 눈에는 화살이 박힌 채로 다른 눈동자에 살기가 넘실거리는 노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자 강준은 등골이 오싹함을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을 놓치면 절대 흑표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강준은 정확하게 흑표의 머리와 자신의 총구의 방향이 일직선이 되자 마자 방아쇠를 당겼다.
지금 정도의 거리라면 자신의 머리의 두 배는 될 듯한 흑표의 머리를 못 맞출 리는 없었다.
‘지금이다!’
그렇게 강준은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하지만 우연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가 막히게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소리는 강준에게도 꽤나 익숙한 소리였다.
‘걸렸다.’
강준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흑표의 살기 띤 눈동자를 보며 낭패임을 느껴야만 했다.
하필이면 지금 탄이 걸린 것이었다.
무리해서 가까이 다가온 상태였다.
흑표의 도약력이 얼마나 대단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정도라면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흑표 또한 그럴 생각이라는 듯이 이빨을 드리내며 강준의 당황스러워 하는 표정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강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화살이 있었다.
강준조차도 머리 한 쪽이 서늘해질 정도로 가깝게 스치고 지나가는 화살은 곧바로 흑표의 몸을 향해 날아들었다.
크아앙!
또 다시 날아가 박히는 선혜의 화살에 흑표는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터트리고서는 훌쩍 뒤로 몸을 날렸다.
“아!”
강준은 흑표의 도약력이 그 정도로 대단한지 몰랐다는 듯이 탄식을 터트렸다. 십여미터에 달할 정도의 거리를 단숨에 훌쩍 뛰어 버리는 것이었다.
자신과 흑표의 거리를 떠올렸을 때 숨 한 번 내쉬지도 못하고 죽을 뻔 한 것이었다.
“…….”
그렇게 흑표가 물러서는 것이었지만 순식간에 흑표의 모습은 정글 속에 가려져서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강준은 탄이 걸린 권총을 들고 있는 그 상태 그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머리 속은 이미 하얗게 변해서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고 있었다.
바보가 되어 버린 듯이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고 땅바닥에 그냥 이대로 주저 앉아서 어린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고만 싶을 정도였다.
다 큰 성인이었지만 순간 적으로 겪은 공포와 충격은 정신연령을 어린 아이 때로 퇴행시키기에 충분했다.
“괜찮아요?”
만약 선혜가 강준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강준은 잠시 후에 그렇게 했을 지도 몰랐다.
“이 봐요! 강준씨!”
“…….”
강준은 자신을 부르는 선혜에 고개를 돌려서는 선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잔득 얼굴을 찌푸린 채로 이를 악물고 있는 선혜의 모습이 보였다.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다행히 별 다른 상처는 없어 보였다.
강준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두 손으로 꾸욱 누르면서 선혜에게로 다가왔다.
풀썩!
어떻게 선혜에게까지 다가온 것인지 강준도 인지를 못했지만 선혜의 앞에서 풀썩 다리의 힘이 빠지면서 주저 앉아 버렸다.
“저 괴물은 도대체 뭐예요? 왜 저런 것이 있는 거지요?”
선혜는 강준이 다가오자 화를 내며 외쳤다.
잠시만이라도 늦었다면 자신은 흑표에게 잡아 먹혔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선혜도 강준이 자신을 버리고 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것을 원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신이라도 만약 강준과 같은 상황이라면 버리고 갔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죽음의 게임장에서 부상자는 짐일 뿐이었다.
비록 강준이 지금은 죽어버리기는 했지만 한 남자를 보살폈던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것도 안전이 확보가 된 상태였기 때문이지 지금과 같이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이렇게 자신을 다치 찾아온 것이 고마운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맹수의 존재가 선혜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다.
“말 좀 해 봐요! 왜 갑자기 바보가 되어 버린 거예요! 저 검은 괴물은 도무지 뭐냐고요!”
강준은 선혜가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것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검은 괴물.”
그리고서는 되뇌인 검은 괴물 흑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야 돼!”
“예? 어디를 가요?”
선혜는 강준이 반쯤 얼이 빠진 채로 가야 한다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이내 일어서서는 자신의 팔을 붙잡아 일으키는 것에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은 체온을 빼앗기지는 않고 있는 상태였고 의식도 있는 상태였기에 어렵지 않게 움직일 수 있었다.
“강준씨!”
“아직 끝나지 않았어! 위험해! 도망을 치던지 아니면 그 놈을 죽여야 한다고! 여긴 그 놈의 영역이고 맹수들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놈을 결코 살려두지 않아!”
강준의 눈빛이 돌아왔는지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선혜는 그런 강준의 눈빛을 보고서는 당황을 하면서도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드는 것이었다. ‘제길! 어디로 가지?’
강준은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여간 눈에 차는 곳이 없었다.
설령 나무 위로 올라간다고 해도 흑표는 인간보다 더 나무를 잘 탔기에 아무런 소용도 없는 행위였다.
“……!”
그리고 그 때 강준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장소가 있었다.
‘그 곳이라면.’
강준은 선혜의 손을 붙잡고서는 달리기 시작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