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15. 보이지 않는 위협
똑! 똑!
비는 그쳐 있었지만 나뭇잎을 타고 물방울들이 여전히 지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정글은 보통 적도 근처에 위치하고 있기에 기온이 항시 높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기온이 사람의 평균 체온보다 높은 것은 아니었다.
밤이 되면 사람의 평균 체온보다 낮아지고 비까지 내리게 되면 더욱 더 낮아 진다.
거기에 더불어 사람의 몸에 비가 젖으면 그 물이 마르면서 기화열로 체온을 빼앗아 버리게 된다.
그러면 영상 17~8도 정도에도 저체온증으로 죽을 수가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그럴 일 따위는 없겠지만 지속적으로 체온을 빼앗겨서 신체의 체온 조절 기능이 망가져 버리는 것이었다.
결국 죽음이라는 것은 단 한가지 요소만이 부족해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강준과 선혜는 그렇게 추위에 떨면서 서로의 몸을 부둥켜 안고 있었다.
밤새 추위에 강준도 결국 참지 못하고 불을 피우려고 했다.
하지만 장작이 모두 비에 젖어 버려서 아무리 강준이라고 할지라도 방법이 없었다.
처음부터 좀 더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았어야만 했다는 후회를 했지만 어두운 밤에 함부로 돌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아는 까닭에 움직이지 않은 것이었다.
“후우! 후우!”
강준은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그다지 편안한 자세가 아니었기 때문에 온 몸이 콘크리트처럼 굳은 상태였다.
몸이라는 것이 기계가 아니고 설사 기계라고 할지라도 급작스러운 움직임은 신체에 과부화를 일으킬 뿐이었다.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날 때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것은 의학적으로도 매우 좋지 않은 것이었다.
밤새 몸이 식어져 있고 굳어져 있는 관절과 근육은 다시 작동을 하기 위해 예비 가동이 필요하다.
젊은 때야 그리 큰 부담이 없다고 할지라도 신체에 부담이 주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오랫동안 안전하게 신체를 다루고 싶다면 아침에 일어날 때 천천히 손가락 관절부터 10분 가량을 움직여 주면서 몸의 상태를 끌어올려야만 했다.
그렇게 손가락 관절부터 시작해서 모든 몸의 관절들을 움직이면서 몸을 일으켜야 신체가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스윽! 스윽!
강준은 조금씩 움직이며 선혜의 몸을 손바닥으로 비비기 시작을 했다.
자신이 만지고 있기는 했지만 선혜의 피부는 차가움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물론 옷을 입고 있었지만 물에 다 젖어 있었기에 안 입은 만 못한 상태였다.
‘옷을 말려야 하는데.’
아침 찬 바람에 몸이 떨려 오고 있었지만 감기라도 걸리면 곤란하기에 옷을 벗어서는 말리고 움직여야만 했다.
“이 봐. 일어나 봐.”
강준은 선혜를 흔들며 깨우기 시작을 했다. 이미 십여분 전부터 어깨와 팔을 비비며 움직였지만 선혜는 여간 일어날 기색이 없었다.
“하아! 하아!”
살짝 선혜의 눈이 떠지는 것 같았지만 이내 닫혀 버렸다.
피로가 쌓이고 추위에 힘들어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제길! 또 이 꼴이군.’
지금까지 자신과 동료가 되었던 이들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점점 상태가 나빠지는 것이었다.
선혜 또한 약한 수준의 저체온증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목숨에는 영향이 없다고 할지라도 이대로 몸살이라도 나면 꼼짝없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수세적으로 밖에는 변할 수 없었다.
‘버릴까?’
순간 강준은 선혜를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신뢰로 맺어진 파티도 아니었고 아직도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으로 해서 그녀를 보호해 줄 이유가 없었다.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강준이 선혜를 보호해줘야 한다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웃기는 일이었다.
물론 강준도 별다른 위험, 아니 생명이 경각에 달리지 않는 수준의 위험이라면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의 행동을 했을 것이었다.
그 것이 남자로서의 의무이고 남자로서의 존재 의미 중에 하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그 누구도 갈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타인의 생명이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지를 생각해 본다면 분명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한 사람이 있기는 했다.
그 것이 자신의 자식이거나 부모 그리고 사랑하는 이라면 그럴 가치는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목숨보다 가치 있다고 믿어지는 존재가 아니라면 포기해야만 했다.
강준은 선혜를 바닥에 눕혔다.
몸에서는 차갑디 차가웠지만 머리는 열이 나고 있는지 붉게 홍조가 가득했다.
아무리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신체가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런 정신력도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강준은 한참으로 선혜의 온 몸을 주무르며 그녀의 몸이 풀리기를 도왔다.
부부나 연인 사이에서나 할 행동을 하는 것이었지만 강준은 아무런 생각이 없이 그냥 그렇게 한참을 주물렀다.
점점 기온은 올라가고 있었고 강준의 이마와 등에서는 땀이 차오르고 있었지만 선혜의 눈은 아직 떠지지 않고 있었다.
“후우!”
강준은 그렇게 손이 뻐근해지도록 선혜의 몸을 주무르다가 한숨과 함께 멈추었다.
“미안.”
선혜의 몸을 주무르고 있는 사이 강준의 눈동자에서는 수 많은 갈등들이 연달아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선혜에 대해서 믿지 못하고 의심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몇 일 동안 같이 지내오면서 든 조그마한 정이 생겨 있었다.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그 정이라는 것이 큰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최악의 단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 감정과 현실적이면서도 이기적인 본능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선혜의 몸을 주무르는 것이었다.
결국 강준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서는 몸을 돌려 수풀 속으로 걸어가기 시작을 했다.
선혜를 위해 몇 가지 필요한 물건을 옆에 두었고 그녀의 물건은 단 하나도 챙기지 않았지만 그녀가 과연 이 것들을 사용할 수 있을지는 장담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강준이 수풀 사이로 들어가면서 선혜의 한 쪽 눈에서는 살짝 이슬이 맺혔다.
그 것이 눈물인지 아니면 이파리에서 떨어진 빗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선혜의 거친 숨소리는 여전하기만 했다.
“하아! 하아!”
강준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김을 받으며 이를 악물었다.
평소 별 다른 두통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지금은 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머리 속을 파내버리고 싶을 정도의 두통에 강준은 관자노리를 손가락으로 꾸욱 놀러 보아도 그리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선혜를 버려두고 얼마 간을 움직였을까 하천이 보였다.
피라니아와 칸디루가 살고 있는 하천이었다.
“어차피 그 관제센터라는 곳이 이 하천만 넘어 가면 있다고 했잖아. 그럼 더 이상 저 여자는 필요 없는 거지. 안 그래? 그렇잖아! 이제 저 곳에 넘어가서 그 개새끼들을 전부 죽여 버리다가 나도 그 놈들의 총에 맞고 죽으면 되는 것 뿐이잖아. 어차피 죽을 건데 뭐.”
강준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자신 또한 그리 오래 살아 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신은 영화 속의 람보나 코만도가 아니었다.
고작 조잡한 손무기와 권총 5발 정도 밖에 없는 자신이었다. 분명 많이 죽여 봐야 3명이나 될까 싶을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단 한 명도 죽이지 못하고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를 안전하게 놔두는 거잖아. 저 길 건너면 죽을 테지만 여기 남겨지면 죽을 확률보다는 살 확률이 더 높을 테니까 말이야.”
그렇게 생각을 하니 강준은 자신의 두통이 조금은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하천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강준의 눈에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제 번개에 맞은 그 나무인가?”
강준은 기가 막힐 정도로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고 있는 커다란 나무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하천 중에서 그나마 폭이 좁은 곳에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있어서 다리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저 나무를 지나간다면 곧바로 저 너머로 건너 갈 수 있을 듯 싶었다.
“운이 좋네.”
강준은 운이 좋다며 쓰러진 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이대로 하천을 건너서 그 정체 불명의 존재들을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무 다리에 도착을 해서는 나무 다리 위로 올라갔다.
조금 탔는지 군데군데 검게 타 있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튼튼해서 하천을 건너기에는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저벅! 저벅!
그렇게 나무다리를 중간 쯤 건넜을 때 강준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볼 수 있었다.
“뭐지?”
다리의 중간 쯤에 보이는 것은 긴 칼날 자국이었다.
조금 미끄러운 지점에 연이어 세겨진 긴 칼날 자국을 보며 강준은 의아해했다.
그리고서는 유심히 그 칼날 자국들을 바라보았다.
‘칼날 자국이 아니야. 이건…. 무언가?’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가운데 강준은 고향집에서 키우던 애완 고양이인 똘이가 떠올랐다.
고양이는 자신을 돌봐주는 이를 개와는 달리 주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냥 동료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고 그 때문에 자신에게 귀찮게 하거나 적대적으로 보이면 바로 공격을 하는 놈이었다.
그런 똘이는 꽤나 사나운 고양이로 방 안의 이 곳 저 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흔적과 지금 보이는 긴 칼날 자국들이 강준의 눈 앞에서 오버랩되고 있었다.
“설마?”
어제 잠시 떠올렸던 그 불안감에 강준의 몸을 휩쓸고 가고 있었다.
그리고 곧장 강준의 고개가 선혜가 누워 있던 곳을 향해 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