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12. 미지의 여전사
눈을 뜨고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는 평범한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다.
모든 생명체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 움직임과 동시에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그 것이 나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한 위협이 아닐지라도 나 자신 스스로에 의한 위험 또한 덩달아가면서 올라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식물이 아닌 동물은 움직여야만이 살아갈 수 있기에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강준은 눈을 뜬 후에 그 위험을 감수 할 수 있냐는 스스로의 물음을 먼저 했다.
어느덧 해가 뜬 채였다.
밤 늦게 잠이 들었지만 이미 강준의 신체리듬은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리듬을 따라가고 있지 않았다.
밤낮이라는 시간 개념은 강준에게 사치일 뿐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시야가 확보되는 낮보다 어두운 밤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강준은 그렇게 구덩이의 입구 부분에서 주변을 둘러보고서는 천천히 구덩이 내부로 들어갔다.
“으으으! 으!”고통스러운지 신음을 흘리고 있는 남자가 구덩이의 낙엽에 파묻혀 있었다.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지만 강준은 그런 남자의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 땀을 그냥 바라만 볼 뿐이었다.
“위험한 순간은 넘긴 것 같지만 아직도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독초의 환각 증상은 끝이 났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온 몸에서 극심한 통증과 열을 내고 있을 터였다.
강준은 그런 남자를 지켜보면서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만을 확인할 뿐이었다.
그나마 강준은 남자의 입에 물을 흘려 넣어주고 비스켓을 잘게 부수어서 물과 함께 입에 넣어 주었다.
환자가 먹기에는 힘든 것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 것만도 감지덕지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얼마 되지는 않는 양이지만 무척이나 중요한 식량을 나눠 주고 난 뒤에 강준은 남자가 싸 놓은 소변과 대변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낙엽들을 모았다.
남자를 씻겨줄 마음도 생각도 없었다.
자신의 가족도 동료도 아닌 이름조차 모르는 인연이었고 그 인연도 지금 당장 끊어질지 알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강준은 그 남자를 자신의 아지트로 데리고 온 뒤에 곧바로 남자의 옷을 다 벗겨 버렸다.
생명체로서는 먹은 것이 있으면 나오는 것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 것은 환자들 또한 마찬가지여서 고역인 상황이었다.
똥이나 오줌이 옷에 묻는다는 것은 위생적으로도 그렇지만 꽤나 냄새가 나는 일이었고 강준은 그런 남자의 몸을 깨끗하게 닦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상대가 아름다운 미모의 여성이라고 할지라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청결 이상은 요구 받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시커먼 남자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이의 사타구니를 닦아 줄 마음이 강준에게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렇기에 강준은 남자의 대변과 소변이 그대로 낙엽에 묻도록 방치하고는 한 번씩 그 낙엽들을 한 쪽 구석에 파 묻어 버리는 걸로 해결을 했다.
그냥 놔두기에는 냄새가 심하게 나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화장실도 만들어야겠군.”
강준은 지상에서 위험하게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조금 냄새가 나겠지만 안전한 곳에서 이용하는 것이 훨씬 좋은 판단이었다.
그렇게 강준은 구덩이의 한 쪽을 파들어가서는 간단한 화장실을 만들었다.
물론 그 화장실이라는 것이 그냥 몸 하나 들어 갈 수 있을 정도의 구덩이에 발 아래로 대소변을 모아두는 그런 정도의 원시적인 형태였지만 강준은 오랜만에 마음 편히 뒤처리를 한 것에 마음이 들었다.
몸은 고되지만 충분히 그 육체적인 피로를 상쇄할 만큼 정신적인 만족감이 드는 것이었다.
인간이란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순간 순간 기쁜 마음이 들 수 있었다.
그렇게 강준은 뒤처리를 한 화장실 위로 살짝 흙을 덮고서는 구덩이를 빠져 나왔다.
아직 밝은 낮이었지만 자신의 물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식량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직은 어느 정도 먹을 것이 있지만 안심을 할 수 없어.’
어둠 속에서 나무열매들을 찾는 것은 강준이라고 할지라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위험을 감수한 채로 식량 확보를 해 놓아야만 했다.
‘거기에다가 소독을 할 수 있는 약초와 붕대로 쓸 만한 것도 찾아 봐야 한다.’
약초들은 꼭 사경을 헤매는 남자만을 위해 사용을 할 필요는 없었다. 강준 자신의 부상에도 쓰여야 했기에 시간이 된다면 구해야만 했다.
그렇게 강준은 주변을 경계하면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강준은 미소를 지었다.
‘찾았다. 기나나무.’
강준은 뜬금없이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신의 선물에 뛸 듯이 기뻐했다.
기나 나무.
키나 나무라고도 하는 나무로 열대지방에서 나는 식물로 코카 나무와 함께 약재로 사용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식물이었다.
코카 나무가 마약인 코카인의 원료가 되는 나무인 것에 반해 키나 나무는 온전히 치료제로 사용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특히나 말라리아 치료제와 해열제, 진통촉진제 및 강장제 등으로 사용을 할 수 있었다.
지금 강준에게 있어서는 가장 필요한 식물 중에 하나인 것이었다.
물론 약으로 사용하고 제대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정제를 해야 했지만 그 것이 가능할리는 없었다.
강준은 조심스럽게 키나 나무의 옆으로 와서는 정글도로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키나피를 4g 씩 하루에 두 번 씩 먹으면 말라리아의 치료제로 사용을 할 수 있다.’
물론 키나피의 약효 때문에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 증상들이 나타나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 할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약초였다.
이미 정글 내에서 상당히 많은 모기들에 뜯긴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았다는 보증을 할 수가 없었다.
의외로 말라리아는 매우 무서운 질병으로 삼일 간의 고온 뒤에 사망에 이른다는 삼일열 말라리아의 치사률은 대단히 높았다.
그렇기에 강준은 눈 앞에 나타난 카나 나무를 신이 주신 축복이라는 생각까지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것도 키나 나무에 대해서 알아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었다.
그렇게 강준은 키나나무의 껍질을 충분히 뜯어서는 자신의 전투 배낭에 집어넣었다.
이 껍질로 말라리아 치료제와 함께 해열제와 진통제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치료제로 쓰일 키나피를 충분히 얻은 강준은 몸을 돌렸다.
그리고서는 곧바로 자신의 얼굴을 스치고 들어가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퍽!
부르르!
화살 하나가 키나나무의 줄기에 박히면서 부르르 떨었다.
강준은 만약 자신이 몸을 돌리지 않았다면 그 화살이 자신의 머리에 박혀 들어갔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등줄기가 서늘했다.
물론 그 화살의 소리와 함께 강준은 몸을 날려서는 수풀 사이로 숨어 버렸다.
‘제길!’
정말이지 운이 좋아서 살아났다는 것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키나 나무를 발견한 것에 너무 들떠서 경계를 소홀히 했고 그 덕분에 목숨이 위협을 받는 것이었다.
강준은 아직도 자신이 멀었다는 생각과 함께 등을 맡길 동료의 부재에 혀를 찼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기에 강준은 자신을 공격한 이를 찾아야만 했다.
도망을 치더라도 상대의 위치 정도는 알고 있어야만 했지 무턱대고 도망을 갈 수도 없었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도망은 더 위험하다.’
온통 적들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었고 아군은 전혀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런 장소에서 자신을 들어내며 도망을 간다는 것은 사냥꾼들을 불러들이는 행동이 될 뿐이었다.
그렇기에 강준은 자신을 공격한 이를 제거하거나 적어도 더 이상 자신을 공격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강준은 빠르게 눈을 돌려 자신을 공격한 방향 쪽을 바라보았다.
‘제법인 녀석이다.’
이미 사라져 있었다.
강준이 공격을 받고 피한 뒤에 공격한 위치를 확인한 것은 정말이지 찰나의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이미 몸을 피했다는 것이었다.
강준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총을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조잡하지만 독이 묻어 있는 활을 사용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총을 사용하면 주변에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다 알리는 짓이다.’
강준은 상대방이 총이 아닌 활을 사용했다는 것에서 자신도 활을 사용하기로 결정을 했다.
괜히 주변에 팔루와 같은 자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총알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영화 같은 곳에서야 무한정 총알을 쏴대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아낄 수 있는 데까지는 최대한 아껴야만 했다.
물론 위험한 상황에서는 망설이지 않고 사용을 할 것이었지만 강준은 자신을 위혀한 작자에게 충분히 경고를 자신이 있었다.
‘내가 들고 다니는 무기가 이 것 뿐 만이 아니지.’
강준은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지 않은 채로 소리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서는 자신의 전투 배낭에서 휴대용 투석기와 돌멩이 하나를 꺼내어서는 장전을 했다.
조잡하게 만들어 졌지만 몇 차례 돌을 강력하게 날릴 수 있는 무기였다.
물론 위력을 강화 시킨다고 내구도를 포기해 버리기는 했지만 재료와 시간만 있으면 다시 만들 수 있었기에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그렇게 돌멩이를 장전한 강준은 그 어떤 움직임도 없는 적막 속에서 인내심을 가진 채로 가만히 있었다.
‘먼저 움직이는 자가 진다.’
상대가 어떤 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움직임을 멈춘 채로 하루 이상을 버텨낼 수 있는 것이 강준이었다.
괜히 특수부대가 강력한 군인이 아닌 것이 이런 인내심과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강준의 인내심에 상대방이 움직이기 시작을 했다.
‘찾았다.’
강준은 커다란 나무 뒤 쪽에서 슬쩍 보이는 움직임에 그 쪽을 향해 휴대용 투석기를 발사했다.
퍽!
투석기가 발사되자 빠르게 돌멩이가 정체불명의 존재가 숨어 있던 나무기둥에 박혀 들어갔다.
움찔!
정체불명의 존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무언가가 날아든 것에 몸을 움찔 떨었다.
자신의 위치가 발각이 되었다는 것에 이를 악물었지만 이미 늦어 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그제야 상대가 어설픈 애송이가 아님을 알았지만 그 것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그렇게 정체불명의 존재는 계속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지 아니면 물러서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그런 짧은 고민의 와중에 강준은 이미 빠르게 움직이며 정체불명의 존재의 뒤를 잡기 위해 이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강준의 활의 화살 끝에는 푸른 색의 빛깔이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