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11. 적막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일주일이 끝나고 찾아온 거대한 충격을 퍼스트 임팩트 혹은 데스 임팩트라고 불렀다.
그 것을 누가 처음 말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퍼스트 임팩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
생각과 행동 그리고 시선까지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그 전까지는 호의를 두고 상대방을 대한다면 마음을 열 수 있게 할 여지라도 존재했다. 그렇기에 집단이 만들어 지고 파티가 만들어 질 수 있었다.
하지만 퍼스트 임팩트 이후로는 오히려 기존에 만들어졌던 파티들 중에서도 산산이 부서진 곳이 한 두 개가 아닐 정도였다.
특히나 단 둘로만 이루어진 파티들의 경우는 둘 중 하나가 죽어서 끝이 난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인원이 많은 곳도 모든 파티원들이 살아났다면 문제가 없었지만 누구하나라도 폭발에 죽었다면 그 공포감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파티가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불신은 그 파티의 지속 가능성을 극도록 낮추어주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파티들은 더욱 더 강력한 유대력을 가진 체로 괴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벤. 이 자는 어떻게 하지?”
벤은 눈에서 광기가 흘러나오는 팔루를 보며 팔루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붙잡인 채로 덜덜 떨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살려 주세요! 제발! 뭐…뭐든지 할게요. 시키는 거라면 뭐든지 할 테니까 제발 살려 주세요!”
절규를 하는 남자는 퍼스트 임팩트에서 살아남았기에 더욱 더 살고자 했다.
결코 죽음의 공포를 비켜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죽음의 공포가 더욱 더 가깝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더 살고 싶어했고 비굴해졌다. 비굴해 보이더라도 살아야만 했기에 남자의 절규는 진심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 남자를 벤은 무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늦었어. 믿고 싶지만 믿을 수가 없다.’
동료로 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동료를 삼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상대의 손목시계 타이머에는 150시간 이상이 남아 있었고 그 이야기는 누군가를 죽였다는 의미였다.
“집어넣어.”
차갑디 차가운 목소리에 팔루는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자! 가자!”
“히익! 살려 줘! 죽기 싫어! 죽기 싫단 말이야!”
팔루는 우악스러운 손으로 남자의 뒷덜미를 붙잡고서는 잡아끌었다. 이미 손발을 묶어 놔 버렸기에 요동을 친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그럴수록 팔루의 성격만 포악스럽게 만들 뿐이었다.
그렇게 팔루에게 끌려가는 남자를 바라보며 벤은 안타까웠지만 동료들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자위를 했다.
‘어쩔 수 없다. 나에게 의지를 하는 이들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야.’
벤은 자신의 어깨를 무겁도록 짓누르는 책임감에 몸서리를 쳤다.
사냥을 허락하면서 팔루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냥감을 붙잡아 오기 시작을 했다. 그렇게 붙잡아 온 이들은 한사람씩 분배가 되었다.
어차피 한 사람만 죽여도 일주일 간의 삶이 유지가 되니 그 이상 죽일 필요는 없었다.
벤의 파티의 아이들인 델리와 하이테는 사람을 죽여야 하게 되었을 때 울음을 터트렸다.
결국 눈을 가리고 델리와 하이테의 손을 붙잡은 뒤에 벤이 손을 붙잡아서는 상대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어 주었다.
팔루가 대신 해 주겠다고 했지만 벤은 그럴 수가 없었다.
자신이 하지 않는다면 이 파티는 허물어 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델리와 하이테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아이들을 가장 먼저 살려야만 했고 그래야만이 다른 이들도 자신을 믿을 수 밖에 없을 터였다.
그렇게 다음으로 여자들에게 Get a Life를 하게 했다.
그리고 벤은 모든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며 모든 잘못은 자신이 가져 갈 것이라고 아이들과 여자들을 위로했다.
신께서 주시는 모든 벌은 자신이 가져 갈 테니 고통스러워 하지 말라는 벤의 외침은 이들에게 리더로서의 확고한 믿음을 줄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남은 남자들이 한 면씩 손목시계의 타이머를 리셋 시켰을 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벤의 타이머였다.
“이제 남는 시간이 얼마 없어.”
“나는 괜찮아. 에디. 내가 죽는다면 이 파티를 부탁한다.”
벤은 팔루가 아닌 에디에게 파티의 리더를 맡기려고 했다. 그런 말에 팔루의 얼굴이 미세하게 꿈틀거렸지만 다행히 팔루가 벤의 타이머가 끝이 나기 전에 사람 하나를 붙잡아 올 수 있었다.
결국 퍼스트 임팩트를 무사히 넘긴 벤의 파티였다.
그 후로 벤은 사람을 좀 더 늘리려고 했지만 팔루보다는 에디가 먼저 반대를 했다.
결코 믿을 수가 없다는 에디의 말에 처음에 벤은 의아해 했지만 다들 이구동성으로 과연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한 토론 결과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새로 들어온 상대에게 자신들의 등을 기댈 수 있느냐와 무기를 줄 수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서 그 누구도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결국 팔루가 사냥해 오는 모든 이들을 감옥에 가두어 두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자들도 무기를 쥐고 적으로부터 파티를 지키기 위한 훈련이 시작되었다.
내가 상대를 죽이려는 만큼 상대 또한 자신들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더 이상은 되돌릴 수 없게 된 죽음의 게임에 벤의 파티는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벤의 파티와는 달리 엘리와 데이브의 파티는 꽤나 고민을 하며 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지?”데이브의 말에 엘리는 겁에 질려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중년을 넘어 노년에 다다르고 있는 여자는 덜덜 몸을 떨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향해 애처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데런과 젠트는 데이브가 엘리에게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하는 것에 그다지 큰 반발을 하지 않았다.
데런의 경우는 데이브에 전적으로 의지를 하고 있었고 젠트는 딱히 데이브에게 도전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 와중에 데이브가 엘리에게 사실상 리더의 자리를 양보한 이유는 강준 때문이었다.
강준을 사실상 리더로 인정을 한 데이브였고 엘리를 그런 강준의 애인 정도로 여기다 보니 엘리가 임시나마 리더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엘리는 강준을 만나기 위해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며 사람들을 죽이자는 의견을 먼저 내었고 스스로 위험할 수 밖에 없는 미끼역을 자청했다.
그렇게 파티의 모든 인원들이 사냥을 성공해서 타이머가 리셋이 된 상태에서도 엘리는 강준의 라이프를 확보해야 한다며 한 사람 더 사냥을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을 했다.
그 어떤 파티이든지 주도권을 한 번 움켜쥐면 어지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그 주도권이 옮겨지지 않는다.
특히나 힘이 있는 자가 그 주도권을 움켜쥔 사람을 지지한다면 끝이 나는 문제였다.
결국 엘리가 결정을 한다면 모두 따르겠다는 것이었다.
엘리 또한 강준을 다시 받아들이려면 데이브는 몰라도 젠트가 리더가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장 눈 앞의 노년의 여성에 대해서도 그다지 믿음직스럽게 여기지 않고 있는 듯 싶은 젠트였다.
‘젠트 저 사람 왠지 모르게 믿음이 안 가. 지금 당장이야 데이브나 데런이 있으니까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 같지만…. 후우! 이럴 때 강준 씨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엘리는 강준이었다면 어쨌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신으로서는 너무 버겁기만 한 결정들의 연속이었다.
만약 강준이었으면 자신이나 다른 이들보다 더 현명한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 믿고 있는 엘리였다.
그만큼 엘리에게 있어서 강준은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자신을 구해주고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의지를 심어 주었으며 자신들이 살아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주었다.
지금도 강철이 알려준 열매들로 허기를 달래고 있었고 강철이 알려줬던 전술 행동을 통해 움직이면서 위험으로부터 피해 다니고 있었다.
그 외에도 단 몇 일 뿐이었지만 강준이 알려줬던 것들과 강준이 보여 줬던 행동들은 이들에게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 것이 사소하게 보일지도 몰랐지만 점차 정글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그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어차피 죽일 필요는 없잖아요.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 죽이러 다니는 것이 목적이 아니잖아요. 강준씨를 찾고 이 곳을 벗어나는 것 그 것이 목적이에요. 아그네스 라고 하셨지요?”
“그래요.”
아그네스라고 불린 노년의 여인은 처연한 표정을 지은 채로 엘리를 바라보았다.
자신도 엘리의 결정에 의해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떠나고 싶으시면 떠나세요. 그리고 우리 파티와 함께 가시고 싶으시면 따라오셔도 되요. 하지만 일주일 뒤에 다시 우리의 눈에 뜨인 다면 그 때는….”
모든 말을 다 잇지는 않았지만 엘리의 말에서 살기가 뜨는 것에 아그네스는 몸이 떨려왔다.
그렇게 모든 결정을 아그네스에게 하라는 엘리의 말에 아그네스의 두 눈동자가 불규칙적으로 흔들렸다.
수 많은 고민들이 가득했다. 과연 이들을 믿고 따라 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홀로 남겨져서 이 곳에서 헤매고 다녀야만 하는 것인지를 말이었다.
하지만 결론은 이미 나 있는 상태였다.
“따…따라 가겠어요.”
아그네스는 혼자 이 정글을 버텨 낼 자신이 없었다.
그녀가 일주일 동안 살아남은 것도 그녀를 도와준 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까지 버텨내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을 떠나 다른 이들을 만난다고 해도 그들이 과연 자신을 받아 줄 것인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떠나라고 하면서 같이 가고 싶다면 따라오라는 엘리의 권유 아닌 권유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일주일 뒤에 이들에게 살해를 당할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일주일간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당분간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그네스가 엘리의 파티에 합류를 하자 그들은 어두운 정글 속으로 움직이기 시작을 했다.
그렇게 그들을 따라가는 아그네스는 문듯 뒤를 돌아보며 그리운 얼굴을 떠올렸다.
‘짐. 잘 자요. 나 당신과 한 약속대로 끝까지 살아남아 볼게요.’
그녀의 눈에서 한방울 눈물이 흘러나왔지만 아그네스는 얼른 눈물을 소매로 닦고서는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이들을 따라 바쁘게 발을 놀려야만 했다.
자신이 뒤쳐진다고 해서 멈출 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곳에서는 더 이상 성별도 나이도 중요한 세상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