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겟 어 라이프-43화 (43/161)

##43 11. 적막

허망한 죽음.

폭발은 생각했던 것 보다 컸다.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서 사방으로 육체의 파편을 비산 시켰다.

하지만 강준의 뇌리 속에서는 너무나도 편안하다는 그래서 이제는 만족스럽다는 환한 웃음만이 세겨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몸의 체온을 나누고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붉은 피와 하얀 살로 변해 있었다.

“왜? 왜?”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간다는 것.

그 것이 소중한 사람.

아니 소중할 것 같은 사람이라면 그 충격은 극심할 수 밖에 없었다.

군대에 있을 때 한 미군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미국은 전투부대에 여자 지휘관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남성들이 여성 지휘관에 대한 애착이 은연중에 형성되어 여성 지휘관이 부상을 당하거나 죽음을 당하게 될 때 그 부대의 통제력은 완전히 붕괴된다는 것이었다.

복수심에 무모한 돌격으로 냉철함을 유지 할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 것은 여성 전우 또한 마찬가지여서 남성을 미치게 만드는데 커다란 요소로 작용을 한다.

그 것은 남성의 유전자에 깊게 각인된 본능이었다.

“데일리!”

강준은 고함을 내질렀다.

그 순간 만큼은 자신을 사냥할 존재에 대한 경계나 공포도 존재하지 않았다.

차라리 지금의 자신을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해방 시켜 주기를 바랄 정도였다.

“빌어먹을 개새끼들아! 왜 우리에게 그러는 거야! 왜! 이 씨발놈들아!”

강준은 자신들을 이런 지옥의 땅에 가두어 놓은 자들에 대해서 분노를 하며 저주의 말을 토해냈다.

이성을 잃은 듯이 토해져나오는 강철의 고함소리는 꽤나 멀리까지 퍼져 나갔지만 그 누구도 강준을 향해 달려오는 이들은 없었다.

사냥은 끝났다.

아니 당분간 사냥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 섬에서 죽지 않은 자는 사람을 죽이고서 삶을 연장한 자들 뿐이었다.

어떤 방식으로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죽였는지는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었지만 진정으로 생존 게임을 시작하고 있는 이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미 충분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시간을 확보한 이들이 지금 당장 움직일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다음 사냥을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었다.

전날의 사냥의 피로를 풀면서 말이었다.

하지만 강준과 같이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은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며 땅바닥을 딩굴었다.

그리고 그 때 손목시계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군들 살아남은 것을 축하하네.-

“……!”

강준은 자신의 속목 시계에서 들려온 사람의 목소리에 몸을 우뚝 멈추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강준의 모든 신경은 소리에 집중되어졌다.

-현재 5328명의 게이머들 중에 2115명의 생존자들이 살아남았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저조한 생존율에 저는 실망을 금치 않았습니다만 살아남으신 분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용맹하고 강인한 것에는 흡족한 기분입니다.-

과득!

강준은 목소리의 말에 이를 갈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치 장난처럼 사람을 죽인 자신들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몇몇 분들은 더 이상 게임을 지속하고 싶지 않아하시는 듯 해서 저희가 조그만 선물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 선물은 생존자들 중에 10명이 남게 된다면 저희와 싸울 수 있는 기회를 드리려는 겁니다. 물론 최후의 1인은 무조건 살려서 세상 밖으로 보내 드릴테니 안심을 하셔도 됩니다. 이상으로 조금 바뀌어진 룰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면 더욱 더 열심히 게임에 임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을 지켜보는 그 분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목소리가 끊겼지만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착각에 몸서리를 치는 강준이었다.

분명 자신들을 이 지옥같은 곳에 끌고 온 자들이 분명했다.

최후의 생존자들이 10명이 된다면 저들과 싸울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어떤 방식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노에 찬 이들은 악착같이 살아남아 자신들의 분노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말은 중간에 포기 하지 말고 더욱 더 싸우라는 의미일 터였다.

하지만 강준의 두 눈에서는 시뻘건 불길이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데일리의 복수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다.

‘최후의 10인까지 살아남아 주지. 그리고 네 놈들의 몸을 전부 찢어 발겨 주겠다.’

강준의 생각처럼 수 많은 이들이 끝까지 살아남을 하나의 동기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강준과 같이 분노에 물든 이들은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렇게 분노가 골수에까지 파고들어올 때 강준은 점차 머리 속이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

‘이성을 잃으면 죽는다.’

괜히 군인들이 철저하게 명령에만 따라 움직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감성적으로 변한 군인은 죽을 확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작전에 실패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지금 이 순간 강준에게 내려진 미션은 최후의 10인에 들라는 것이었다.

마지막 1인이 되라는 것은 강준의 머리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을 이런 지옥에 빠트렸으며 데일리를 참혹하게 죽게 만든 이들을 남김없이 죽여버리는 것이 강준의 최후의 목표이자 목적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힌 사람들은 목소리에 온갖 복잡한 생각을 하기 시작을 했다.

그렇게 더욱 더 적막은 깊어지기 시작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과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을 둘 다 맞보았기 때문이었다.

비틀! 비틀!

강준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서는 정글도를 들고서 데일리가 폭사된 곳까지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강준은 말없이 데일리의 살점 하나 하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붉은 피로 물든 흙들도 모았고 뼈조각 하나하나도 모았다.

삑!

그리고 그 때 강준은 데일리의 시신 앞에 손목시계의 타이머가 다시 리셋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선물이야?”강준은 다시금 168을 가리키는 타이머에 데일리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꼭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죽은 자의 옆에 가면 타이머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것이 상대방의 타이머의 전자 신호를 바탕으로 리셋이 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죽이는지 죽이지 않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기에 죽은 자의 옆에 있는 첫번째 생존자가 획득하는 방식인 듯 싶었다.

그 것이 설사 타임 오버로 속목시계가 폭발을 했다고 해도 유효한 것 같았다.

그 기술적인 방식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이 것이 다른 생존자들에게 알려진다면 강력한 함정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강준은 본능적으로 직감을 했다.

하지만 일단은 데일리의 영혼을 위로해 줘야만 했다.

강준은 햇빛이 비추는 곳에 땅을 파기 시작을 했고 그렇게 판 땅에 데일리의 몸을 하나 둘씩 모으기 시작을 했다.

“…….”

아무런 말 없이.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데일리의 모든 육체를 다 찾아 묻은 무덤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흙을 덥기 전 강준은 멍하니 데일리였던 고기조각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는 나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사랑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복수를 해 줄게. 너를 대신해서. …… 아니 너도 억울하지? 너도 화가 나지? 아름다운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든 저들이 너무나도 밉지? 그래! 그러면 너도 함께 복수를 하자.”

강준은 손을 들어서는 데일리의 살조각 하나를 들어올렸다.

그리고서는 자신의 입 속으로 가져갔다.

꿀꺽!

데일리의 육체를 삼킨 것이었다.

데일리가 자신의 몸 안에 있기에 자신은 이제 데일리와 함께 살아남아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이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라 믿는 강준이었다.

물론 이런 상황이 아닌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절대 강준은 사람의 육체를 입 안으로 삼키지 않았을 것이었다.

뇌에 난 상처.

외상 후 증후군이 강준에게 온 것이었다.

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사람이 폭발하며 죽었는데 온전한 정신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준은 데일리의 신체의 일부를 삼키고서는 주변의 흙들을 모아서 덮기 시작을 했다.

봉우리지게 덮은 무덤에 강준은 바로 무덤 앞의 나무에 정글도로 글자를 파기 시작했다.

-사랑스러운 데일리-

묘지명을 세긴 강준은 그렇게 데일리가 묻힌 무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서는 자신과 데일리가 같이 몸을 뒹굴던 구덩이로 돌아왔다.

그리고서는 눈을 감은 채로 가만히 그렇게 멈추어 있었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적막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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