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10. 폭발
두근! 두근!
견딜 수 없는 심장의 떨림은 불안함으로 변했고 그 불안함은 참을 수 없는 공포로 변하기 시작을 했다.
완전히 체념 했다고 생각했지만 죽음을 체념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데일리는 살고 싶었지만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방법은 있었다.
‘이 남자를 죽이면 돼.’
처음에는 경계를 하는 듯 했다. 칼 뿐만 아니라 권총도 있는 듯 해서 자신에게 별다른 틈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과 성관계를 가지고 난 뒤로는 그런 경계는 사라져 있었다.
지금이라도 강준과 자신의 옆에 놓여져 있는 정글도를 들어서는 강준을 죽일 수 있을 듯 싶었다.
그렇게 강준이 죽게 된다면 자신은 일주일간의 삶을 더 유지 할 수 있을 터였다.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속목 시계의 타이머는 점점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다. 이제는 단 몇 시간 후면 포갈을 하게 될 것이고 자신은 살 수 없을 터였다.
데일리는 잠이 든 것 같이 눈을 감고 있는 강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이기에 너무나도 격정적인 섹스를 했고 그로 인해 꽤나 피곤해 보였다.
지금이라면 죽일 수 있을 터였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한 남자라고는 하지만 칼로 찔러서 안 죽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덜덜!
데일리는 그 생각이 들자 손이 떨려왔다.
강준에게 들키면 안 되는데도 자신의 마음이 그 떨림에 그대로 전달이 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입술을 꽉 물고서는 참으려고 했지만 떨림은 참기 힘들었다.
연신 두근거리는 심장과 온 몸의 떨림은 계속되었다.
‘미안해요.’
데일리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과 함께 자신의 피부로 전해져 오는 강준의 따듯함에 강준에게 미안했다.
자신을 돌봐주고 자신을 지켜주며 자신을 안심시켜 준 사람이었다.
일주일 동안 공포에 질려서 한 숨도 편안히 쉬지를 못했던 자신이 강준을 만나 단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안심을 하고 안정을 찾았다.
이기적이게도 그런 도움을 받고도 도와준 사람을 죽이려는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데일리는 그 것이 너무나도 견디기 어려웠다. 자신이 평소 생각하고 있던 자신의 가치관이나 생각이 처절하게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데일리는 강준의 품에 안겨서 눈을 감았다.
“…….”
강준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데일리의 행동을 알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잠이 든 것처럼 보였지만 데일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만약 데일리가 자신의 몸 위에 있는 정글도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면 강준으로서도 결단을 내려야만 할 터였다.
‘제길! 멍청하게 확인을 하지 못했어.’
데일리와의 섹스를 끝내고 난 뒤에야 겨우 그녀의 손목시계의 타이머를 확인했다.
문제는 확인을 했다고 해서 다른 수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잠깐 전에 봤던 것처럼 사람 사냥을 하고 있던 팔루처럼 아무나 붙잡아 와서는 데일리보고 죽이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을 사냥하는 것일 터였다.
강준은 알몸 인 채로 자신을 껴안고 있는 데일리를 바라보았다. 눈물을 흘리다가 지금은 잠이 든 것인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여자였다.
사랑한다는 감정은 없었다.
그녀와의 섹스가 원나잇스탠드 같은 관계였지만 그런 관계만으로도 그녀를 지켜줘야 한다는 수컷의 본능이 남아 있었다.
아니 본능이 아니라 그냥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만약 그녀를 나 아닌 다른 이가 건들려고 한다면 이를 드러내어 공격을 할 것만 같았다.
그런 복잡한 생각 속에 결국 강준은 결단을 내렸다.
‘차라리 악마가 되자.’
강준은 아직 시간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를 살리기 위해 다른 이를 희생 시키자는 결심을 한 것이었다.
다른 이들처럼 같은 길을 걸어가자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간혹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와 총을 쏘는 소리들처럼 살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었다.
‘난 도덕군자도 성인도 그리고 사람을 사랑해야만 하는 성직자도 아니다. 살고자 몸부림치는 인간일 뿐이다. 살 수 있는데도 포기를 할 수는 없어.’
욕심.
그리고 욕망.
내 것을 지키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강준의 정신을 바꾸고 있었다.
강렬한 화학작용처럼 강준의 생각은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강준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꽈악!
그리고 그렇게 몸을 일으키려는 강준에 데일리는 손에 힘을 주어 막았다.
“…….”
“그러지 마요. 나 사람 죽이고 싶지 않아요. 처음에는 겁이 났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그냥 이대로 저를 조금만 안아 줘요.”
강준은 데일리가 자고 있는 줄 알았지만 그녀는 잠에 빠져 있지 않았다.
아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죽음이 두려운 나머지 지금의 살아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기만 했던 것이었다.
“강준 씨는 어떤 사람이에요? 훗! 그러고 보니 나 강준씨에 대해서는 이름만 알고 아무 것도 모르고서 섹스를 했네요. 여행을 하면 몸도 마음도 자유로워진다더니 정말인가 봐요. 나 그렇게 헤픈 여자 아닌데 말이에요.”
“지금이라도 여벌의 생명 하나 구해다 줄 수 있어요. 나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지요. 저 동쪽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특수부대원이었어요.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면 살 수 있어요.”
강준은 그녀의 동의를 구했다.
아니 그녀에게 죄책감을 미룬 것이었다.
그녀가 동의를 했으니 사람을 사냥하겠다는 죄책감을 해소하려는 말이었다.
“아! 군인이셨구나. 어쩐지. 멋지네요. 군인하고 연예를 해 보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데일리는 강준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가로 저으면서 말을 했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아요?”
하지만 강준의 다음 말에 몸이 흠짓 떨리는 데일리였다. 두렵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지금도 몸이 떨려오는 것이 살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용기가 나오지 않았다.
분명 강준이라면 자신을 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을 붙잡아 올지도 몰랐다. 그런 상대를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했지만 그럴 자신이 없었다.
“훗! 영화에서 보면 꼭 저 같은 사람이 있어요. 저도 제가 그런 사람들 같이 답답하고 찌질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말이에요.”
영화에서 보면 꼭 동료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사람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보며 욕을 하고 한심해 했지만 그런 사람들 나름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실제 세상에서는 용기 있게 위험을 물리치며 영웅같은 활약을 하는 이들보다 답답하고 찌질한 행동을 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만한 삶의 각오를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기에 차라리 포기를 해 버리는 것이었다.
“권총이 있어요. 눈을 감고 손가락에 힘만 주면 다 됩니다.”
강준은 다시 한 번 설득을 했다.
하지만 데일리는 고개를 역시나 가로저었다.
“싫어요. 그냥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빨리 나갈래요.”
데일리는 이 지옥 같은 곳에서의 생존 게임이 결코 끝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도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을 첫날의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서 들었었다.
만약 운이 좋게도 강준과 자신만이 살아남는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손으로 강준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강준에게 죽임을 당하고도 싶지 않았다.
아니 그 기간 동안 견뎌내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빨리 이 지옥에서 나가고만 싶었다.
그 것이 오직 죽음 뿐이라고 할지라도 더 큰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그렇게 강준과 데일리는 서로를 설득하며 시간만을 흘려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날이 점점 밝아 오고 있었다.
“안아 줘요. 그리고 키스해 줘요.”
밤이 새도록 한 숨도 잠을 자지 못한 강준과 데일리였다. 그리고 그런 해를 보며 데일리는 강준에게 키스를 해 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했다.
강준은 붉게 충혈이 된 눈으로 안타깝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득을 하지 말고 그냥 사람을 붙잡아 올 것을 하는 후회가 계속되었지만 강준 스스로도 우유부단함에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계속되는 비명소리와 고함소리 그리고 간혹 들려오는 총소리에 겁을 먹은 것일 수도 있었다.
대책없이 사냥을 나갔다가 자신이 사냥을 당해 버릴 수도 있었고 그럴 확률이 더욱 높다는 것을 잘 아는 강준이었다.
자신이 슈퍼맨이 아닌 이상은 별다른 대비없이 전장으로 뛰어들고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용기있는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자가 용기 있는 것이다.
강준은 사냥을 나간다면 사냥을 하는 것보다 사냥을 당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두려움을 감추고서 데일리에게 동의만을 구한 것이었다.
‘제길! 내가 고작 이런 인간이었나.’
인간은 가장 위험하고 힘든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들어내는 것이었다.
강준도 자신이 이렇게 비겁한 인간인지 몰랐다며 이를 악물며 치를 떨어야만 했다.
“미안해 하지 마세요. 그리고 꼭 살아서 이 곳을 나가면 제가 말했던 그 곳으로 가서 제 안부를 전해 줘요.”
데일리는 몸을 부들부들 떠는 강준의 입술에 입술을 맞대고서는 생애 마지막 여자로서의 삶을 불태웠다.
지상은 이토록 지옥 같았지만 하늘의 태양은 변함없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하악! 하악! 좋아요! 조금 만 더! 날 부서지게 안아 줘요!”
데일리는 온 몸을 흔들면서 자신의 마지막을 축복하고 있었다.
쾌락이 몸부림을 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그 어떤 걱정도 두려움도 사라지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부르르!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난 뒤에 데일리는 몸이 무너지는 듯이 강준의 몸 위로 쓰러지면서 강준을 꼬옥 붙잡았다.
띠! 띠! 띠!
강준과 데일리는 불길하게 들려오는 타이머의 소리를 무시한 채로 서로의 몸을 쓰다듬었다.
지칠만 한데도 강준은 그녀의 몸 속에서 잔득 팽창을 한 채로 유지가 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강준이나 데일리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덧 섬에는 비명소리도 고함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적막으로 가득했다.
마치 마지막을 기다리는 듯 했다.
‘그래. 차라리 이대로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자.’
강준은 자신도 데일리와 함께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자는 생각을 했다. 일주일간의 시간 동안 강준도 지쳤다.
마음 놓고 편하게 쉬지도 음식도 마음대로 섭취를 하지 못해서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힘들었다.
잠시만 포기하면 이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이 될 수 있었다.
인간은 강인한 존재이면서도 연약하기만 한 존재였다.
그런 강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데일리가 움직였다.
“포기 하지 말아요. 절대로. 그러면 내가 화를 낼 거에요. 그리고 정말 사랑해요. 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데일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환하게 웃고 있어서 강준마저 얼떨떨해 할 정도였다.
“데…데일리!”
강준은 자신의 몸 위를 올라타고 있던 데일리가 갑자기 일어서는 것에 놀라서는 그녀의 팔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강준의 팔아 데일리의 팔을 붙잡기도 전에 데일리는 알몸으로 구덩이의 입구에서 밖으로 뛰어나왔다.
강준은 급히 몸을 일으키고서는 그녀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그녀는 환한 웃음과 함께 강준을 향해 외쳤다.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아요! 사랑해요!”
그려의 손목 타이머가 어느덧 0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살인을 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냈던 다른 사람들의 시계에서도 0을 가리키는 이들이 많았다.
“데일리!”
강준은 손을 뻗어 그녀를 불렀지만 바람에 날리 듯이 멀어지는 그녀에게 좀처럼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섬의 곳곳에서는 폭발음이 터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