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9. 베이스 캠프
오랜만에 푹 잠을 잔 것처럼 몸이 개운 했다.
등은 따뜻했고 오랜만에 받는 햇살 때문인지 기분도 비교적 좋았다.
“운도 좋군.”
강준은 자신의 주변이 전부 나뭇잎사귀들임을 확인하고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쌓여 만들어진 낙엽구덩이인지는 모르겠지만 낙엽들이 층층이 쌓여 안 쪽에서는 발효가 되면서 마치 온돌처럼 열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거기에 다가 햇살이 낙엽웅덩이를 비추고 있어서 강준은 오랜만에 비타민 D를 보충하고 정신적인 피로도 풀 수 있었다.
그렇게 강준은 정신을 차리고서도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꾸물! 꾸물!
의외로 이런 낙엽 속에는 먹을 것이 상당했다.
강준은 꿈틀거리는 낙엽 속에서 애벌레들을 찾아 눈으로 확인을 하고서는 간식을 먹듯이 입 속으로 연신 집어넣었다.
쩝쩝!
고소하고 담백한 맛에 만족스러웠다.
물론 제대로 된 음식이 눈 앞에 있다면 이런 애벌레들을 입 속으로 넣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처할 때도 사실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량들은 제법 많았다.
물론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별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겠지만 먹을 수 있는 것들 중에서 많은 이들이 먹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문명화 되면서 인간은 음식을 조리하기 시작을 했고 생식은 비문명적이고 야만적이라는 교육을 받게 된다.
그 덕분에 생으로 고기를 먹지 않게 되고 먹을 수 있는 것도 몇 가지로 한정을 시켜 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의외로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먹지 않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굶으면 눈이 돌아가 아무 것이나 다 먹는다는 말을 하지만 인간의 뇌는 차라리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혐오감이 드는 것을 먹을 수 없다는 강력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 거부 반응은 결국 아사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럼 이제 움직여 볼까.”
강준은 충분한 휴식과 칼로리 보충을 마치고서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냥 이 곳에서 있어도 별 상관은 없었지만 이 낙엽웅덩이 속으로 빠지기 전에 보았던 전투 배낭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강준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문제는 여기를 어떻게 빠져 나가지?”
지금까지 빠져나오지 않은 것은 휴식이나 애벌레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삼미터는 족히 될 법한 높이의 구덩이 속에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타원형의 구덩이에 내부가 3~4평 정도 되는 구덩이였다. 거기에다가 내부가 항아리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걸어서 빠져나가기란 상당히 어려웠다.
점프를 해 보아도 바닥이 딱딱하지 않아서인지 제대로 높이 뛰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벽들이 미끄러운 돌로 되어 있지 않고 흙으로 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 흙을 손으로 무너트리기에는 어려웠다.
아니 무너트리더라도 잘못한다면 내부에서 흙더미에 깔릴 위험도 있는 것이었다.
툭! 툭!
강준은 구덩이의 벽들을 손으로 쳐보면서 확인을 하기 시작을 했다.
그리 단단한 흙벽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맨손으로 파나기는 어려웠다.
군데군데 나무뿌리들도 제법 많이 있어서 도구가 없다면 금세 지쳐 버릴 것이었다.
“점프로 어떻게 해 볼 생각은 애초부터 없고. 결국에는 한 쪽 벽을 파나가면서 계단을 만들어서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꽤나 시간이 걸리겠어.”
강준은 결국 흙더미가 조금 무너지더라도 벽을 파나가면서 위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맨손으로는 안 되겠고.”
강준은 자신의 뒷허리춤에서 베레타 권총을 때들고서는 조종간을 안전으로 바꾸고서는 권총의 손잡이 부분으로 벽을 파기 시작했다.
“사람은 도구를 써야지.”
강준은 그렇게 열심히 손을 놀리기 시작을 햇다.
다행히 그렇게 단단한 땅은 아니어서 그런지 손쉽게 파내려갈 수 있었다.
후드륵!
간혹 흙더미가 무너지기는 했지만 그런 흙더미는 바닥을 다지도록 하면서 조금씩 위로 올라가기 시작을 하는 것이었다.
중간에 힘들면 내려와서 휴식을 취하고 낙엽 속에서 꿈틀대는 애벌레를 잡아먹으면서 무리를 하지 않는 강준이었다.
살인에 대한 충격이 아직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지만 애써 기억에서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조금씩 강준은 구덩이 밖으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후우! 이제 조금만 하면 되겠어. 그리고 생각보다 은신처로 써도 괜찮겠는데.”
강준은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식량도 구할 수 있는 낙엽 구덩이가 마음에 들었다. 아지트로 사용해도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 낙엽 구덩이를 베이스 캠프로 삼기로 결정을 내렸다.
몇 가지 위장만 잘 해 놓는다면 충분할 것이었다.
“물만 근처에 있다면 최적의 장소인데 문제는 물인가?”
강준은 역시 생존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물에 인상을 찡그렸다. 애벌레를 씹으면서 최소한의 수분을 보충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갈증을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강준이 구덩이의 밖으로 빠져 나왔을 때는 어느 덧 해가 진 밤이 되어 있었다.
“후우!”
하루 종일 권총의 손잡이를 가지고 땅을 파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든 강준이었다.
아무리 충분히 쉬어가면서 무리를 하지는 않았다고는 하지만 강준의 손에는 어느덧 물집이 잡혀 있었다.
군인이었을 때야 이런 정도로 물집이 잡히기보다는 굳은 살이 박혀 있었지만 지금 일반인이 된지 꽤 된 상태인 지금은 그런 굳은 살도 연하디 연하게 변해 버린 상태였다.
툭툭!
권총 손잡이에 묻은 흙을 털어 낸 뒤에 조종간의 안전을 풀고서는 권총을 장전했다.
철컥!
커다란 소리가 들리면서 강준의 긴장도 다시금 올라가기 시작했다.
‘밖은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다. 실수 한 번으로 죽는다.’
이미 죽을 뻔한 경험을 한 강준이었기에 아마추어 같은 행동은 거의 사라져 가고 있었다.
철저하게 생존만을 위해서 몸과 정신이 적응을 해 가고 있는 것이었다.
강준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채로 슬쩍 머리만을 내밀고서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사람은 없었지만 안심을 할 수는 없었다.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서 눈으로는 위험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눈이라는 것은 가장 효과적인 정보인식 수단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왜곡된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렇게 일차로 눈으로 확인을 한 강준은 눈을 감고서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미세한 공기의 떨림 하나마저도 다 잡아 내겠다는 듯이 눈을 감은 채로 귀에 집중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강준은 십분 이상을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었다.
인간이라면 오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는 행위를 오랫동안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강준은 눈을 뜨고서는 낙엽 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
낙엽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강준의 몸은 잔득 웅크린 채로 주변을 연신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강준은 자신이 굴러 떨어진 곳을 가름하기 시작했다.
‘분명 저 쪽에서 떨어진 것 같은데. 정말 다리 하나 안 부러진 것이 다행일 정도야.’
강준은 제법 긴 산비탈을 바라보며 자신이 저 산비탈을 굴러서 천운이라고 볼 수 있게 낙엽 구덩이로 빠진 것에 등줄기가 오싹해짐을 느꼈다.
만약 낙엽구덩이로 빠지지 않고 더 굴러갔더라면 나무들이나 바위에 몸이 부딪쳐서는 어디 뼈 한 두 개는 부러졌을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이 곳에서 그리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었다.
‘일단은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군.’
강준은 산비탈을 올라가서는 전투 배낭을 찾을까를 생각했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한 차례 어둠 속에서 실수를 했는데 다음에도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고 그 실수에서도 운이 좋게 멀쩡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결국 강준은 주변의 나무 넝쿨들을 끌고 와서는 입구 부분을 가리고서는 천천히 낙엽 구덩이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