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겟 어 라이프-30화 (30/161)

##30 8. 탈출

강준은 자신을 노려보는 백인 남자를 보며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해를 풀고 싶었지만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천 때문에 오해를 풀 수가 없었다.

‘제기랄!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고! 내가 안 죽였어!’

나름 노력을 했다고 생각하는 강준이었다.

물론 그것이 최선이었나를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때는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그녀를 안고 최대한 체온을 전해 주었더라면 어쩌면 그녀는 살아날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은 있었을 터였다.

사람의 체온을 전해준다는 것은 자신의 체온이 낮아진다는 것이었고 그만큼 위험해진다는 것이었지만 그 것은 지금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름 모를 그녀는 죽었고 동수는 살았지만 죽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전날부터 아무 것도 섭취를 하지 못한 강준이었다.

배가 고픈 것은 둘째치고 목이 갈라지는 듯한 목마름은 점점 참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온 몸을 묶고 있는 밧줄에 의해 강준은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밧줄에 묵어서는 굵은 나뭇가지를 넘겨 강준의 몸은 허공에 띄워진 채로 묶여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탈출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지금 눈 앞에 감시를 하고 있는 남자가 없더라도 강준은 자력으로는 탈출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감시하는 남자는 강준을 감시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시선을 강준에게 주지도 않았다.

자신이 보더라도 탈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길 정도였다.

그렇게 강준은 몇 차례 몸을 비틀고 힘을 주었지만 오래지 않아 포기를 한 채로 허공에 매달려 있어야만 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죽음의 순간을 경함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아찔한 상황에서도 그 순간 죽음을 느끼고 상상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 아찔한 순간을 나중에 떠올리면서 죽을 뻔 했다고 생각을 할 뿐 죽는다는 것을 그 죽음의 순간에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강준은 그 죽음의 순간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제길 너무 하는군.’

강준은 자신의 힘으로 이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에 처연한 마음이 들었다. 한 때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지만 그 것이 자신의 만용이라는 것을 지금은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인간은 결코 만화나 영화 속에 나오는 영웅이 아니었다.

람보와 코만도 같은 그런 일인 군단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강철 같은 육체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초인적인 정신력은 오래 가지도 않고 생존을 위해서는 처절하게 비굴해지는 것이 인간이었다.

처음에는 억울함이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분노가 생겨나지만 그 분노는 이내 절박한 공포가 되어 버린다.

‘살아야 돼! 아직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살아야 해!’

밧줄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바둥거리면서 온 몸은 쓰라린 상처투성이가 되어 버린다. 피부가 까진 것인지 끈적거리는 피가 흘러나왔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그런 쓰라림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렇게 강준은 가슴이 터져버릴 정도로 고함을 치고 몸을 바둥거렸다.

그렇게 이성을 잃어가고 있을 때 강준은 자신의 눈 앞에서 안타깝다는 감정이 가득한 눈빛의 백인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영어 할 줄 아나? 뭐 못한다고 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일단 자네도 자네 사정을 알아야 할 듯 싶어서 말은 해 주려고 하네.”

강준 자신에게 찾아온 남자는 생존자 파티의 리더인 벤이었다.

강준도 처음 이 곳에 끌려왔을 때 자신을 붙잡은 세사람이 자신을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남자에게 끌고 갔었음을 떠올렸다.

‘이 곳의 대장.’

강준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지금 눈 앞의 남자를 설득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내 그런 강준의 생각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미안하지만 난 자네를 죽일 거야. 자네가 살인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벤은 자신의 손목시계 타이머를 강준에게 보여 줬다.

“이거 보이지? 다른 사람들도 이 시간이야. 아직 시간은 남아 있지만 이 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만약 그 것을 찾는다면 자네를 살려 줄 수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무슨 말인지 이해 하지?”

“…….”

강준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 벤의 말도 충분히 알아 들을 수 있었고 무슨 의미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 자네가 그 여자를 죽였다는 것도 그 때문이었을 테니 말이야. 자네가 죽는 것도 분명하게 이유가 있는 것이고 다른 원한은 없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러니 변명을 할 필요는 없어.”

벤은 강준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천을 처음부터 벗기지 않았다. 변명이 필요 없고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의미로 이렇게 강준에게 온 것 뿐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배부르게 먹여주고 싶지만 한 끼도 아까운 상황이라 미안하네.”

사형수에게 주는 마지막 만찬도 강준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차라리 사형수라면 사형이 시작되기 전 상황에 따라 멈출 수도 있다는 실 낮같은 희망이라도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런 희망조차도 기대를 할 수가 없었다.

“…….”

그 때문에 강준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체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죽게 될 것임을 깨달은 것이었다.

자신은 게임에서 나오는 보너스 생명 하나로 전락을 해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죽은 고기덩어리처럼 축 쳐져 버린 강준의 모습에 벤은 자신의 말을 알아들은 강준에 입술을 깨물고서는 몸을 돌려 버렸다.

‘만약 이런 곳이 아닌 밖에서였다면….’

벤은 자신의 생각이 부질없는 짓임을 알고서는 고개를 내저었다.

“…….”

그렇게 벤이 떠나고 난 뒤에 강준은 머리 속이 텅 비어 버린 듯이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강준의 이성이 돌아왔을 때는 어느덧 어둠이 찾아온 다음이었다.

마치 죽은 듯이 미동도 하지 않고 있던 강준의 몸은 조금씩 움직이며 자신이 아직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있었다.

오랜 시간 매달려 있어서 그런지 몸은 굳어 있었고 거기에 추위까지 다시금 몰려들어오기 시작을 하자 몸 상태는 점차 나빠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기회조차도 잡지 못한다.’

강준은 벤의 말처럼 그냥 죽어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웃기지 말라고 그래. 누구 마음대로 날 죽여.’

강준의 눈빛에서 점차 살기가 감돌기 시작을 했다. 처음부터 자신을 붙잡을 때 죽일 생각이었다는 것을 안 강준은 이 파티 내의 사람들이 자신의 적임을 확실하게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 또한 동료를 만들어서 이 난관은 해쳐 나갈 생각이었지만 자신에게 적의만을 내뿜고 있는 이들을 상대로 손을 내밀 생각까지는 없었다.

강준으로서도 생존이 목적이었지 다른 이들을 구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잘 들어 둬 강준! 서바이벌은 말이야. 말 그대로 서바이벌(생존)이야. 작전이라면 동료가 있고 지원이 있지만 서바이벌은 동료 따위는 없어! 아니 동료는 도구일 뿐이다. 살아남는 것이 최종 목표고 목적이다. 그 목표와 목적이 중요한 것이지 수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야.-

이런 서바이벌은 사실 경험할 일 자체가 없었다.

아무리 강준이 특전사 출신이고 때로는 홀로 고립이 되는 작전들을 수행했다고 해도 서바이벌이라는 것을 하지는 않았다.

동료와 상부의 지원 속에서 작전을 했던 것이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쳤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정으로 살아남기 위한 서바이벌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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