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6. 노리는 자
128시간 27분.
또 다시 하루가 지나가 있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간 것인지는 알 수 없을 정도였지만 조금씩 긴장이 풀리고 있었다.
먹을거리도 상당히 많았고 든든한 동료가 있어서 자신의 안전을 보다 많이 지킬 수 있었다.
손목시계의 타이머는 점차 줄어가고 있었지만 이 타이머의 시간이 다 사라지기 전에 이 지옥같은 곳에서 빠져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을 했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이 손목을 자르고 시계를 벗어낸다면 살 수 있는 확률이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정글에서 치료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일 텐데.”
세균감염도 문제지만 잘못하면 쇼크사로 즉사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다가 평생 불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거부감이 들게 만드는 일이었다.
네 사람의 가장 큰 관심사는 지금 탈출보다도 자신들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서늘한 느낌이 나는 손목시계였다.
아니 이제는 더 이상 시계가 아니라 폭탄인 물건이었지만 점멸하는 타이머는 착용자로 하여금 공포와 긴장감을 점차 유발시키고 있었다.
“빌어먹을 새끼들 도대체 그 놈들은 누구란 말이야? 왜 우리한테 이런 짓을 벌리는 거냐고!”
데이브가 화가 난다는 듯이 이를 갈았지만 지금 이 곳에 있는 네 사람 중 그런 일에 대해 아는 자는 그 누구도 없었다.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이런 일은 듣도 보지도 못했던 일이었고 지금이라도 몰래 카메라였다며 방송국 사람들이 튀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일단 지형을 확인해 봐야겠다.”
강준은 먼저 지금 위치를 알아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어떻게 말이에요?”
강준의 말에 데런이 대답을 했다. 이미 4사람 모두 이 곳에서 방향감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직선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들 커다란 원을 돌 듯이 돌고 있었다.
강준은 일단 나무 위를 바라보았다.
제법 높은 나무는 위로 올라간다면 상당히 멀리까지도 볼 수 있을 듯 싶었다.
“저 위로 올라가서 일단 해안가 쪽으로 움직이거나 아니면 근처에 높은 산이 있다면 그 쪽으로 향해서 이 곳이 섬인지 아니면 육지인지부터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서…섬이면 어떻게 하지요?”
육지라면 어떻게든 움직이다 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 곳이 섬이라면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탈출을 한다는 것도 너무나도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엘리는 섬이라는 말에 불안한 듯이 몸을 떨었다. 약간의 폐쇄 공포증이 있는 엘리로서는 비록 주변의 공간이 넓다고는 하지만 섬이라면 그 또한 자신이 갇혔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엘리 뿐만 아니라 데이브나 데런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 사람들의 불안감에 강준은 미소를 지으며 걱정말라며 안심을 시켰다.
“너무 걱정 마세요. 벌써 이틀 내도록 걸어다녔는데도 해안가를 발견하지도 못하고 사람들을 그다지 많이 발견하지도 못했습니다. 섬이라면 이 정도 규모의 크기의 섬일 수는 없어요. 그리고 이런 정도의 규모의 섬이라면 분명 무인도 일 수도 없구요. 아마도 아프리카 동쪽 해안 지역의 어느 부분일 것 같습니다.”
“그…그렇겠지요. 하긴 생가고다 넓은 것이 섬이라고 보기에는 어렵기는 하겠지만.”
강준의 말에 다들 안도의 미소를 지었지만 일말의 불안감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럼 일단 나무부터 올라가서 확인합시다.”
강준은 기운 내자며 힘차게 말을 하고서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
그리고는 결국 나무를 올라가는 것은 강준이었다.
‘제길! 아주 고생할 팔자가 확 열렸군. 열렸어.’
강준은 자신을 무슨 슈퍼맨으로 아는 듯한 사람들에 한숨이 나왔다. 아니 군인이라면 나무 타기 정도는 우습게 할 수 있지 않냐는 표정과 말에 강준이 결국 나무를 타야만 했다.
못해도 10미터는 넘어 보일 듯한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강준이었다.
몇 차례 미끄러지기는 했지만 데이브로부터 잭나이프를 빌려서는 나무기둥에 적당히 상처를 내면서 미끄러지지 않게 조금씩 올라갈 수 있었다.
덕분에 잭나이프의 칼날이 전부 상해 버렸지만 한시간은 족히 잡아먹은 채로 나무 위 끝까지 어떻게든 올라갈 수는 있었다.
휘이잉!
지상에서는 정글의 수풀에 가려서 그다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지는 않았지만 나무 위로 오르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는 강준의 이마의 흐르는 땀을 씻어주고 있었다.
물론 바람 덕분에 나무가 휘청휘청 흔들려 등줄기를 땀으로 적시기는 했지만 일단은 멀리까지 시야가 확 트이는 것이 강준의 답답함을 조금은 풀어주었다.
“그럼 한 번 볼까?”
강준은 나무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한 쪽으로 바다와 하얀 백사장이 보였다.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는 것이 돌아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대쪽은?’
바다를 보고 난 뒤에 그 백사장이 이어진 길을 통해 고개를 돌려나가자 어느덧 바다는 보이지 않고 육지만 보이더니 반대쪽으로는 제법 높은 산이 보였다.
그 산은 강준이 있었던 곳에서 바다 쪽보다는 가까워 보였다.
결국 강준은 바다보다는 산 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강준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지고 있었다.
‘제길! 해가 뜨는 곳이 바다다.’
강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아직은 확실하지는 않아.’
강준이 있던 곳은 분명 대서양이었다. 대서양의 기준으로 아프리카라면 해가 지는 곳이 바다가 되어야만 했다.
그 것이 아니라 해가 뜨는 곳이 바다라면 남아메리카가 되어야만 했지만 시간 관계상 남아메리가가 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강준으로서는 그렇기에 심정적으로 이 곳이 섬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한숨을 쉰 채로 동료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강준은 몇 차례 더 주변을 둘러보다가 비명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까아아악!”
“제길! 이게 뭐야!”
멀리서도 아닌 자신의 바로 발 아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강준 자신에게도 무척이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뭐지?’
강준은 비명소리와 함께 갑작스럽게 비명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 했다.
발 아래로는 두꺼운 나뭇잎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있었다.
발 아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을 할 방법이 없었고 과연 지금 내려가도 되는 것인지 조차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강준은 내려가야만 했다. 이대로 힘들게 만든 파티가 산산히 부서지는 것을 그냥 놔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르륵!
결국 강준은 몸에 적당히 힘을 빼고서는 빠르게 나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을 했다.
그렇게 단 몇 초의 시간이 흐른 것인지 땅에 발을 닫자마자 뒷허리 춤에서 권총을 빼어들고서는 주변을 경계했지만 강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뭐야? 다들 어디에 간거야?”
강준은 혼자 남겨진 채로 멍하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